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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미국시장 공략과 코카콜라의 왕좌 지키기

소니의 미국시장 공략과 코카콜라의 왕좌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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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카콜라는 수없는 도전을 받았지만, 그래도 100년 이상 선두기업의 자리를 방어하고 있다.또한 콜라전쟁으로 상대적 점유율은 줄어들 었을지언정, 시장 수요는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애틀란타시의 코카 콜라 박물관 전광판에는 전세계에서 마시는 코카콜라 병의 숫자가 쉴새없이 게시되고있다. 매일 8억3400만병이 소비되고 있으니 1000단위 숫자가 바뀌는 것은 눈에 보이도 않는다. 》
오늘날 소비자 시장은 시장 개방의 압력, 기술의 급속한 확산 등으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이에 각 기업은 시장 점유율의 증가를 통하여, 즉 다른 회사의 희생을 딛고 이익을 얻어야 하는 상 황에 이르렀다.

단순한 경쟁의 수준을 넘어서 전쟁의 양상으로 바뀌어가는 작금의 마케팅 상황을 전술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군사전략의 원리가 유용하다. 마케팅에서는 이미 군사전략 용어들을 많이 빌려 오고 있다. 예를 들어 ”판매고 300억원 돌파” ”500만 상자 고지 점령” ”일본 제품의 무차별 융단 폭격” ”오디오 시장에서의 한판 격돌”등 군사용어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군대에서 차입된 것은 용어뿐 이지,그 용어의 뒤에 숨어 있는 군사 전략의 틀 안에서 마케팅 경쟁의 상황을 이해해 본다.

전쟁의 기본적인 틀은 공격과 수비다.이를 동시에 설명하는 것을 창과 방패를 모두 설명하려는 모순적 시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기업에 있어서는 두 가지 전략을 균형 있게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공격과 수비의 개념을 ‘일본업계의 미국 가전시장 공격‘ 및 ‘코카콜라의 방어‘라는 두 가지 대표적 사레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 제1부 공격편:일제 텔레비젼의 미국시장 점령 ]

텔레비전은 미국 기업의 산업적 리더십, 기술적 발명력, 상업적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 제품이었다. 텔레비전의 판매는 놀라우리만치 급속히 신장하여 50년대가 끝나기도 전에 미국 가정의 80% 이상의 흑백 텔레비전을 보유하였다.



50년대 미국에서 판매되던 텔레비전은, 물론 모두 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었다.그 당시 미국에서는 RCA, GE, 제니스, 모토로라 등 27개기업이 텔레비전을 생산하였다.그러나 오늘날, 텔레비전을 생산하던 미국 기업들은 전멸하였다.일본 기업의 다양한 공격 앞에 무릎을 꿇고만 것이다.이 비극적인 전사를 살펴본다.

측면공격

공격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적이 경계를 늦추고 있는 곳에 힘을 집중한다는 것이다.그래서 공격기업은 마치 표적기업의 정면을 공격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하게 된다(양동작전).

미국에 진출한 첫 일본제 텔레비전은 소니로 1961년이었다.소니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의 초기 진입전략은 미국 기업들과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는 전형적인 측면공격이었다.소니 제품은 건전지로 작동 하는 280달러 짜리 8인치 텔레비전이었다.1962년에는 3개의 일본 기업이 미국에 진출하였고, 63년에는 10개 기업이 진출했다.미국의 텔레비전시장이 17인치와 19인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지 만, 일본 기업들은 12인치 이하의 시장에만 판매하였다.

일본기업들은 텔레비전의 크기에서뿐만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측면공격을 시도했다. 소니를 제외한 일본 기업들은 미국 생산업자나 소매업자의 상표를 부착함으로써 미국 상표와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초기 몇 년간은 유통 경로에서 미국 기업과 직접 대결하지 않았다.가격에 있어서도 일제 텔레비전은 소형이었으므로, 자연히 미국 것보다 낮게 매겨졌다.

1963년중엽에 이르자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컬러 텔레비전 시장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흑백 텔레비전도 계속 생산 판매했지만 ‘미래는 컬러의 시대‘라고 생각하였다.점차 감소하리라 에상되 는 흑백 텔레비전 시장에서 제품의 개선이나 경쟁을 등한시한 것은 당연하였다.

일본은 64년부터 컬러 텔레비전을 조금씩 내놓았다.일반적으로 일본제 텔레비전들은 미국제보다 크기가 작았다.소니 이외 다른 일본 텔레비전들은 여전히 미국의 유통업자나 생산업자의 상표를 부착 한 채 판매되었다.

미국 시장을 정면 공격할 자원도 지식도 없던 일본으로서는 측면공격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들은 방치된 시장의 틈새를 찾아겨우 자리잡은 것이다.그런데 다행히 미국 시장의 컬러텔레비 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할 때 진출했기 때문에, 일본이 출현했다해도 서로 뺏고 빼앗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유발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6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기업이 일본기업에 변다른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미국 기업들은 16인치 이하의 소형 텔레비전 시장을 잠재력이 있는 분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더구나 소형보다는 대형이 이익도 많았으므로 17인치 이상의 모델에만 게속 몰두했다.

그런데 미국 기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장이 있었으니, 바로 두 대 이상의 텔레비전을 구매하는 가정이었다.이러한 고객이 구매하는 두번째 텔레비전은 소형이거나 휴대용 또는 흑백인 경우가 대부 분이었다. 일본 제품들은 이러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 기업은 일본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16인치 이하의 소형 모델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그러나 이제 일본 기업들은 더 이상 측면공격에 만족하지 않고 공격 범위나 강도에 저 극성을 띄게 된다.

정면공격

측면공격의 성공은 결국 정면대결로 가지 않을 수 없다.신규 진출 업체가 제품라인을 확대하여, 유동을 잠식하고 시장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선두기업의 영역에 점차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장성장이 둔화하면서 시장점유율 확대는 기존 선두기업의 희생위에서만 가능해지게 된다.이제 포지티브-섬 게임은 전형적 인 제로-섬 게임으로 바뀌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정면대결로 치닫게 된다.즉 상대편의 약점보다 강점을 공격하여 누가 더 강한 힘과 인내력을 가지고 있느냐고 승부를 겨루게 된다.

일본기업의 정면공격은 우선 제품 자체에서 나타났다.16인치 이하를 주로 취급하던 일본은 66년을 기점으로 미국 기업의 주제품인 19인치 텔레비전의 수출을 점차 늘렸다.일본 기업들은 자기들이 명 백한 약자일 때는 엄살을 섞어 동정을 구하지만, 일단 유리한 위치로 바뀌면 표변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하는 성향이 있다.1966년이 되자 도시바, 히티치, 파나소닉은 일제히 자기 상표를 부착해 미국기업에 정면으로 맞설 준비를 갖추었다.

정면공격을 성공시키려면 강력한 힘의 우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정면 공격은 획기적인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969년 히타치는 텔레비전의 진공관을 100% 트랜지스터화한 일명 솔리드스테이트(solidstate) 텔레비전을 내놓았다.다음해에는 일본의 주요 생산업체가 모두 솔리드 스테이트로 바꾸었다.텔레비 전의 트랜지스터화야말로 일본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기술적으로 앞서는 전환점이 되었다.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면서 불량률을 낮추고, 고장 수리를 줄일 뿐 아니라, 전기도 절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생산면에서는 자동화를 촉진할 수 있었다.

정면대결 체제는 유통의 변황에서도 나타났다.유통에서의 변화는 제품유형의 변경이나 자기 상표 부착 등의 변화보다 월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미국 기업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통구조에서 벗어나 일본기업이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일본기업들은 ‘소니-아메리카‘와 같은 현지 판매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포위공격

포위공격은 적의 전선을 여러 곳에서 공격해 적으로 하여금 정면뿐만아니라 측면, 후면도 동시에 방어하게 만드는 전략이다.일본 기업은 60년대에 주로 측면공격과 정면공격을 가하였으나 70년대로 들어서면서 포위공격까지 곁들였다.1970년대 초반부터 스크린의 크기를 늘려온 일본 기업들은 7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모든 크기의 텔레비전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또한 일본 의 자체 유통경로를 통하여 세차게 미국 제품을 밀어내면서 판매를 급신장시켰다.

이렇게 미국 기업이 포위를 당하게 된 이유로 미국 생산업체의 수가 급격히 줄어 일본 업체의 수보다 적었다는 것도 들수 있다.1976년에 흑백 텔레비전의 98%는 수입품이었으며, 컬러 텔레비전을 포함한 일본 제품의 점유율은 45%를 넘어서기 시작했다.1970녀대 말이 되자 소매점마다 미제 텔레비전보다 일제 텔레비전이 더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한편 제품개발에서도 포위공격을 찾아 볼 수 있었다.1970년대 후반까지 일본은 VTR의 침투를 성공시켰다.VTR에 관한한, 미국 기업들은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일본 기업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그 후 일본은 스테레오 텔레비전과 더불어 모든 커뮤니케이션(라디오, 전화)과엔터네인먼트(오디오, CD, 전자오락) 관련제품으로 미국제품을 압도해 들어갔다.

게릴라 공격

게릴라공격이라는 것은 소규모 간헐적인 공격을 서로 다른 여러 지역에 감행함으로써 적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사기를 떨어뜨려 종내에는 손들게 하는 전략이다.이러한 전략의 기본이 되는 조건 은 나보다는 적의 진을 빼는 효과가 훨씬커야 한다는 점이다. 별이득도 없는 싸움터에 적을 끌어들이거나 짜증나게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에너지를 고갈시키려는 시도이다.

일본 기업들이 일부러 게릴라 전략을 쓴 것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그렇게 된 경우가 많다.1962년부터 81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미국을 끊임없이 짜증나게 하였다.덤핑, 담합, 부정, 독과점법 위반 등이 그 내용이다.

일본 기업들은 처음부터 드러내 놓고 덤핑을 해댔다.이에 미국 기업들이 1968년 반덤핑 소송을 걸었으나 보통 1년이면 완결되는 소송을 일본기업들은 3년이나 질질 끌었으며, 71년 덤핑 판정을 받아 과세액이 산정되었으나 일본의 섬유류 대 미 수출 제한과 맞물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일본에는 기계수출협회 산하에 텔레비전 수출위원회가 있다.그들은‘5개회사 규정‘이라는 자체 규정을 두어 미국 수입업자를 5개씩 지정한후 다른 회원사의 미국 회사는에는 서로 팔지 않도록 하였 다.또한 최저가격을 설정하여 일본의 텔레비전 생산업체들을 보호하였다.이러한 담합은 미국 측에 실질적인 피해를 줄 뿐아니라 개방경쟁에 익숙한 미국 기업들에는 짜증나는 일이었다.미국은 이 러한 담합 행위가 독과점법 위반이라고 항의하였지만, 일본은 과열 경쟁에 따른 불만 및 불법활동에 대한 예방조처에 불과하다고 발뺌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 기업들이 ‘관리 가격‘ 이하로 미국에 판매하고, 비밀계좌를 이용하여 미국 수입업자에게 별도의 할인액을 지급하였음이 드러났다.할인액의 부정 지급과 텔레비전 산업의 곤경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76년, 새 덤핑 벌금 4억 달러가 부과되었다. 이에 일본 기업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엄청난 자료로 압도해 나가면서 미국 무역대표부의 은퇴한 고위 관리자를 로비스트로 고요하여 벌금을 4600만 달러로 삭감시켰다.이 삭감에도 또한 부정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미국 정부는 관세국을 개편하기에 이른다. 규정에 따르면 일본은 최소 1억4000만 달러에서 7억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던 것이다.

1977년 재무성은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피하기 이해 벌금을 5000만달러로 삭감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하였다. 의회는 결정을 보류한 채 이 문제를 재무성에서 상무성으로 넘겼다.상무성이 덤핑 벌금 6600 만달러, 관세 부정 벌금 1000만 달러, 도합 76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것은 덤핑소송이 시작된 지 12년이 지나서였다.그 벌금 액수라는 것은 일본 기업의 1년분 할인액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었고,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이미 텔레비전 생산을 중단한 후였다.

또한 70년 독과점 규제법 위반으로 소송이 시작되었으나 82년 기각되었는데,표면상의이유는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재판에서 압수 서류의 사용을 금지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자동 차 수출 자율규제의 법적 근거를 무효화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위협에 굴복하고만 것이다.

이와같이 일본 텔레비전 제조업체들은 끊임없이 미국 기업과 정부를 괴롭혔다.미국 기업들은 20여 건의 불공정 무역 소송을 제기하였고 37차례에 걸친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결과는 유야무야된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과 일본 간의 텔레비전 전쟁에서 승자는 단연 일본이다.1950년대 27개에 달하던 미국 텔레비전 생산업체 중 80년까지 살아남은 업체는 GE, RCA, 제니스의 3개뿐이었다.1986년 RCA는 GE에 매입된 다. 그마저 87년에는 프랑스의 톰슨 CSF에 매입됨으로써 제니스만이 미국의 유일한 생산업체로 남았었다.그런데 제니스는 95년 한국의 LG전자에 매입되었다.미국 내 텔레비전 제조업체는 전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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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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