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최대 이권’이라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이 코 앞에 닥쳐왔다. 사업권 획득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도 사실상 끝난 상태. 예상대로 ▲한국통신과 자회사인 한통프리텔(016), 한통하이텔, 한통엠닷컴(018) ▲SK텔레콤(011)과 최근 이 회사에 합병된 신세기통신(017) ▲LG텔레콤(019)과 LG그룹 계열사인 데이콤 ▲하나로통신, 온세통신을 축으로 한 한국IMT2000컨소시엄 등이 3장의 티켓을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됐다. 각 컨소시엄은 다음달 말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사업권 쟁탈전의 열기를 반영하듯, 언론은 연일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관심거리는 크게 세 가지다. 어느 컨소시엄이 탈락할 것인가, 어떤 기술표준을 선택할 것인가, 일명 ‘꿈의 통신’으로 불리는 IMT2000 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상철(李相哲·52) 전 한통프리텔 사장을 만났다.
이 전 사장은 경기고·서울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주립대에서 석사학위, 듀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무선통신 전문가다. 1976년부터 7년간 미 항공우주국(NASA) 통신위성설계담당 선임연구원, 국방성 지휘통신자동화체계설계담당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82년 귀국해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주파수 도약 무전기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군에 지휘통제자동화체계를 도입키도 했다. 1991년 한국통신으로 자리를 옮겨 통신망연구소장, 사업개발단장, 무선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한국통신프리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지난 2월 총선 출마(민주당 경기 성남분당을지구)를 위해 사직했으나 낙선했다. 현재 민주당 정보과학기술특위 위원장이다.
이사장은 오명 동아일보 사장, 서정욱 과학기술처 장관 등과 더불어 ‘한국 통신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무선통신 기술개발의 권위자일 뿐 아니라, 통신업체 사장을 지낸만큼 업계 사정에도 정통하기 때문이다. 올 초 개각 때에는 정보통신부 장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전사장의 형 이상훈 재향군인회장 또한 국방장관을 역임한 터라 ‘최초의 형제 장관 탄생 가능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조훈현 9단과 4점을 깔고 대국해 이길 정도로 바둑 실력이 뛰어나다.
왜 ‘페이퍼 컴퍼니’여야 하는가
─정통부는 지난달 IMT2000 사업 관련 정책 방안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주 내용은 ▲사업자 선정시 컨소시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주파수 대여 출연금은 1조원으로 하며 ▲기술 표준은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중 컨소시엄 우대 정책에 대해 몇몇 업체는 자사에 불리한 내용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는데요, 그에 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PCS사업자 선정 때도 지금처럼 컨소시엄이 들어갔습니다. 국가적인 인프라 사업을 할 땐 가능한 한 많은 사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석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어도 ‘확실하게 망하지 않는’ 사업인만큼 되도록 많은 기업에 과실을 나눠주자는 거죠. 물론 이번에 SK텔레콤이 그랬던 것처럼 “왜 컨소시엄을 강요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국가적 프로젝트엔 꼭 중소기업을 끼도록 돼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도 50만 달러 이상 되는 국책사업엔 무조건 중소기업을 넣도록 돼 있었어요. 컨소시엄 정책은 적절하다고 봅니다.”
─컨소시엄 장려가 자칫 통신시장의 출혈경쟁과 중복투자를 조장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기존 무선 사업 3사에, 새 법인 3개가 더해지는 격이니까요. 이에 대해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컨소시엄 대주주도 기존 이동전화 사업자이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합병이 이루어질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과연 일이 그렇게 쉽게 풀려 나갈까요.
“컨소시엄을 장려한다고 하지만 기존 무선 사업자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메인(대주주)으로 말입니다. SK도, LG도, 한국통신도 다 마찬가집니다. IMT2000이 아무리 새로운 서비스라 해도 결국 고객은 현재 휴대폰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처음 PCS폰 나올 때는 ‘전 국민’이 고객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저수지에 고기가 많았던 거죠. PCS폰이란 그물로 던지고 잡고 던지고 잡고…. 그물 좋고 미끼 좋으면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저수지엔 더 이상 고기가 없습니다. 지금 휴대폰 사용자 수가 2600만, 2700만을 헤아립니다. 이 사람들을 빼고 또 다른 고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일 기존 휴대폰 사업자와 IMT2000사업자가 제각각이라면 상황이 어떻게 되겠어요. 대단한 출혈경쟁이 이어지겠지요. 이건 저수지 물고기 갖고 싸우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얘깁니다. 남의 횟집 수족관에 들어있는 물고기를 빼오는 격이에요. 횟집 물고기는 저수지 고기보다 10배는 더 비쌉니다. 아니 100배가 비쌀 수도 있어요. 결국 새 사업자가 한 명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선, 반대로 기존 사업자가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뜻이지요. 그런 식으로 경쟁하다간 양쪽 다 큰 피해를 입게 돼요. 망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전 옛날부터 지금의 무선통신 사업자가 IMT2000에서도 주사업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결코 제가 한통프리텔 사장이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컨소시엄은 국가 정책이니 따른다 해도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존 사업자가 돼야 해요. 왼쪽 주머니에 든 물고기를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수순이죠. 어쩌면 정부가 컨소시엄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우리는 셀룰러폰 때도, PCS 때도 참여하지 못했다. IMT2000만은 꼭 끼워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를 좀 다른 방식으로 들어주기 위한 고육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다른 주주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어요. 대주주인 SK, LG 또는 한국통신은 괜찮겠지만 나머지 주주들에겐 엄연히 둘은 다른 회사니까. 앞으로 그게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커요. 예를 들어 A라는 PCS 사업자가 자사의 휴대폰 고객을, 역시 자사가 대주주로 있는 IMT2000 쪽으로 유도한다고 합시다. 그럼 A사야 상관 없겠지만 PCS 쪽의 나머지 주주들은 “왜 우리 고객을 빼가느냐, 주가 떨어진다”고 반발할 수 있겠죠.
장관이 언급하셨듯 언젠가는 대주주가 같은 회사들끼리 인수합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이쪽 저쪽 주주들 달래야 하고, 또 고용 승계 문제도 있지 않겠습니까.”
겉으론 비동기식, 속으론 ‘글쎄…?’
─그런 진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있어야 될까요.
“전 새로 생기는 IMT2000 서비스 업체들은 ‘페이퍼 컴퍼니(종이 회사)’ 수준이 돼야 한다고 봐요. 그게 사실 경제 논리에도 맞는 겁니다. 컨소시엄 꾸리고 돈 모으고 그런 것은 하라, 정부도 주파수 값(출연금)은 받아야 하니까. 대신 회사는 페이퍼 컴퍼니로 가라, 그래야 나중에 합치기가 쉬워지니 말입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기술표준을 채택한 업체끼리는 가능하면 한 네트워크를 썼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거든요.”
네트워크 공유는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정통부에서도 권장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기술 표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표준이 서로 다르면 네트워크 공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IMT2000 기술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세계 어디서나 한 단말기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를 ‘국제 로밍’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역시 세계가 같은 표준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 꿈은 말 그대로 ‘꿈’이 돼버리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 회의에서 비동기 진영의 ‘W─CDMA’, 동기 진영의 ‘cdma2000’을 포함, 모두 5개의 무선 규격을 IMT2000 기술표준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세계 단일통화권 구축을 위한 단일표준 구상을 사실상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5개의 기술표준이 있지만 세계시장의 대세는 비동기식 W─CDMA(이하 비동기식)와 동기식 cdma2000(이하 동기식)이다. 국내 사업권 신청업체들도 이 두 방식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동기식은 미국 퀄컴사의 기술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에서 주로 사용한다 해서 ‘미국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재 국내 휴대전화가 채택하고 있는 2세대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이 진화한 것.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한 국가답게 단말기나 시스템 분야에도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동기식을 선택할 경우 기존 설비 및 기술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다 수출 경쟁력도 탁월하다. 문제는 국제 로밍이다. 동기식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해 ‘유럽식’이라고도 불리는 비동기식의 경우,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국내 업체들엔 생소한 GSM기술을 기반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80%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해외시장 개척이나 국내 업체의 기술고립 방지 차원에서는 단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 동기식에 비해 국제 로밍 범위가 3배 가량 넓어 세계화 및 편의성이란 측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카드다.
사업권 신청을 눈앞에 둔 4개 진영은 현재, 모두 비동기식을 채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통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복수 표준’, 다시 말해 사업자에게 표준 결정 권한을 준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내심 하나 이상의 사업자가 동기식을 택하길 바라고 있다. ‘CDMA 개발에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시장은 작지만 지금 와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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