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청소년이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정규직”이라고 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IMF는 최근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 및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성장을 해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실업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 불평등을 심화해 경제 안정성을 저해했고 지속적 성장동력을 갖추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
또한 근로자의 신분 불안정성은 노동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맹자는 2300년 전에 이미 “생계가 불안하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無恒産 無恒心)”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비정규직 문제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 중 9명이 비정규직이고, 선장도 1년 계약으로 고용됐다. 이들의 비도덕적 책임 윤리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상태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아’는 비정규직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가며 노사화합을 시도하는 기업을 ‘이윤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 즉 ‘인본(人本)기업’으로 정의하고 그 실태를 살펴본다. 그 첫 회는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초, 10대 그룹 중 최초로 비정규직 직원 2000여 명을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평소 ‘신용과 의리’를 강조하는 기업답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름 조푸르내. 한화손해보험 총무과 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올해 26세인 그는 사실 “젊음이 벼슬”이라는 취업 시장에서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다. 3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씨는 출산휴가를 간 정규직 여직원의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화손보에 ‘파트타임(PT)’으로 입사했다. 2년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니 어느덧 스물다섯. 계약 만료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안정적이고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계약 만료 며칠을 앞두고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파트타임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것. 그는 “집안의 경사였다. 부모님이 ‘이제 발 뻗고 자겠다’고 하셨다. 같은 부서 팀원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뀐, 충청도에 위치한 한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그에게 사실 대기업 정규직 입사는 꿈만 같았다.
“대부분의 대학 동기가 지금도 소규모 중소기업이나 사무실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일해요. 월급도 적고 전문직도 아니고…. 저는 정말 행운아죠. 지금도 서울 여의도의 이 좋은 건물에 제 책상이 있다는 게 때로는 믿기지 않아요.”

2012년 한화그룹 고졸공채 신입사원이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창립기념일에 회사에서 ‘선물 목록’이 내려와요. 청소기, 운동기기, 녹즙기 뭐 이런 선물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사원들한테 주는 거예요. 사실 금액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나는 비정규직이라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선물을 못 받는구나’ 싶어서 내심 섭섭했어요. 선물을 받는 다른 직원들도 제 눈치를 보는 것 같고…. 근데 이젠 당당하게 받을 수 있어요. 이번에 청소기 받아갔더니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던데요.(웃음)
대기업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몇 명 있는데, 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회사 쪽에서 ‘다른 계열사에 잠깐 있다 와라’ ‘잠깐 쉬다 와라’는 식으로 유도한대요. 일단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협상을 하는 거죠.”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플라자호텔 직원 이슬기 씨도 “전환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주변 직원들에게서 ‘애사심이 커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만약 정규직 전환이 안 됐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 대전에 내려가려 했는데, 정규직 전환 후 일에만 집중하게 됐다는 것. 그는 “일본 손님에게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