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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비용이 아닙니다”

2000명 정규직 전환 ‘의리 경영’

“사람은 비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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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의리와 신용’이 기업 강령…“함께 멀리 가자”
  • ● 10대 기업 최초 2000명 정규직 전환
  • ● “전문대 졸업한 내게 대기업 정규직은 꿈같은 일”
  • ● 저소득층, 한부모 자녀, 생활보호대상자 우대
국내 근로자 10명 중 3명은 비정규직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미명(美名) 아래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이 개편되면서 많은 근로자가 열악한 고용환경에 신음하게 됐다.

상당수 청소년이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정규직”이라고 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IMF는 최근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 및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성장을 해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실업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 불평등을 심화해 경제 안정성을 저해했고 지속적 성장동력을 갖추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

또한 근로자의 신분 불안정성은 노동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맹자는 2300년 전에 이미 “생계가 불안하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無恒産 無恒心)”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비정규직 문제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 중 9명이 비정규직이고, 선장도 1년 계약으로 고용됐다. 이들의 비도덕적 책임 윤리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상태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아’는 비정규직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가며 노사화합을 시도하는 기업을 ‘이윤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 즉 ‘인본(人本)기업’으로 정의하고 그 실태를 살펴본다. 그 첫 회는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초, 10대 그룹 중 최초로 비정규직 직원 2000여 명을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평소 ‘신용과 의리’를 강조하는 기업답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람은 비용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외모였다. 큰 키와 늘씬한 몸매.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달려오는 그의 가슴팍에서 사원증이 경쾌하게 흔들거렸다.

이름 조푸르내. 한화손해보험 총무과 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올해 26세인 그는 사실 “젊음이 벼슬”이라는 취업 시장에서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다. 3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씨는 출산휴가를 간 정규직 여직원의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화손보에 ‘파트타임(PT)’으로 입사했다. 2년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니 어느덧 스물다섯. 계약 만료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안정적이고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계약 만료 며칠을 앞두고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파트타임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것. 그는 “집안의 경사였다. 부모님이 ‘이제 발 뻗고 자겠다’고 하셨다. 같은 부서 팀원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뀐, 충청도에 위치한 한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그에게 사실 대기업 정규직 입사는 꿈만 같았다.

“대부분의 대학 동기가 지금도 소규모 중소기업이나 사무실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일해요. 월급도 적고 전문직도 아니고…. 저는 정말 행운아죠. 지금도 서울 여의도의 이 좋은 건물에 제 책상이 있다는 게 때로는 믿기지 않아요.”

“사람은 비용이 아닙니다”

2012년 한화그룹 고졸공채 신입사원이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신분 상승’ 후 달라진 점이 많다. 먼저 연봉이 800만 원 올랐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당당함’이다. 매년 20일 정도의 정기휴가, 회사 콘도 이용 등 사내 복지 혜택을 당당하게 누릴 수 있게 됐다. 조씨는 “파트타이머일 때는 매번 6500원짜리 식권을 사서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제 사원증만 찍고 직원 할인가(4500원)로 점심을 먹는다. 소박하지만 즐거운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파트타이머로 일할 때 겪은 창립기념일의 설움에 대해 들려줬다.

“매년 창립기념일에 회사에서 ‘선물 목록’이 내려와요. 청소기, 운동기기, 녹즙기 뭐 이런 선물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사원들한테 주는 거예요. 사실 금액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나는 비정규직이라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선물을 못 받는구나’ 싶어서 내심 섭섭했어요. 선물을 받는 다른 직원들도 제 눈치를 보는 것 같고…. 근데 이젠 당당하게 받을 수 있어요. 이번에 청소기 받아갔더니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던데요.(웃음)

대기업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몇 명 있는데, 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회사 쪽에서 ‘다른 계열사에 잠깐 있다 와라’ ‘잠깐 쉬다 와라’는 식으로 유도한대요. 일단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협상을 하는 거죠.”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플라자호텔 직원 이슬기 씨도 “전환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주변 직원들에게서 ‘애사심이 커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만약 정규직 전환이 안 됐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 대전에 내려가려 했는데, 정규직 전환 후 일에만 집중하게 됐다는 것. 그는 “일본 손님에게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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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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