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토종약재 지킴이 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

“과학화한 재배로 경쟁력 있는 토종약재 만들 터”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12-29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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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생약 살리기와 생약 재배농가의 권익보호를 위해 힘쓰는 사단법인 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은 지난 30년 동안 생약 재배 및 판매에만 매진해온 ‘생약통’이다. “GAP 방식을 도입, 토종 약재의 품질을 높여 중국에 빼앗긴 약재 시장을 반드시 되찾아오겠다”는 그를 만나보았다.
    토종약재 지킴이 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
    “무조건 ‘신토불이’를 외치는 것은 1990년대식 사고입니다. 이 말로는 더 이상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없어요. 엄격한 기준에 맞춰 과학적으로 재배된 생약재만이 국내외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생약협회의 엄경섭(54) 회장은 현재 국내 생약재 시장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등지에서 들어오는 값싼 약재들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고 무엇보다 농업인의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것. 그는 이런 위기 상황을 타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화된 재배 양식을 도입해 국산 생약재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970∼80년대만 해도 국내 생약재 시장은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우리 농가에서 생산한 약재의 30% 가량을 일본, 동남아, 북미 등지로 수출해 ‘수출역군’으로서 생약재배 농민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 중국이 무역자유화를 추구하면서 값싼 약재를 다량 수출하기 시작했고, 속절없이 우리는 생약재 시장을 중국에 빼앗기고 말았다. 이젠 생약재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게 된 것.

    “값싼 중국산 약재가 들어오면서 많은 농가들이 생약재배를 포기했어요. 굳이 경쟁력 떨어지는 생약재배를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실제로 생약 재배는 이윤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대규모 유통물류센터 등 직거래 할 장소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중간 상인이 재배 농가에서 약재를 사서 도매상으로 넘기고 도매상은 다시 소매상으로 넘기는 단계를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배 농가는 싼값에 넘겨도 소비자는 높은 가격에 구입해야 합니다. 중간 유통마진 때문에 당연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거죠. 그 과정에서 일부 몰지각한 상인들은 마진을 더 남기려 중국산을 국산과 섞어 팔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워낙 생약 재배 농가 수가 적다 보니까 농림부에서도 별다른 육성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요. 이런 추세로 가다간 우수한 우리 생약재의 종자와 종근마저도 보존하기 힘든 지경이 될 거라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3월 한국생약협회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우리 생약 재배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답은 간단했다.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때마침 농림부에서는 우수약용작물 재배관리(GAP·Good Agricultural Practice) 규범을 만들어 시범 실시할 농가들을 찾고 있었다. 엄 회장은 ‘바로 이거다’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약재 재배를 해왔어요. 토양이나 수질이 약재에 맞는지 알아보지도 않았고 농약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했으며 재배 후 관리에도 소홀했습니다. 그러니 가격뿐 아니라 품질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GAP 규범을 도입해 과학적, 체계적으로 생약을 재배한다면 중국산 약재와 경쟁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품질 경쟁력 갖춘 GAP 약재

    GAP는 한약재의 생산단계에서부터 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규격기준에 의거해 관리하는 규범이다. GAP에 따르면 우선 작물을 재배하기 전 토양, 수질검사를 실시해 최적의 재배환경을 선택하고, 환경에 맞는 종자를 뿌린다. 농업진흥청에서 마련한 작물별 재배기준에 맞춰 약물을 관리하는데, 가급적 유기질 비료와 독성이 약한 농약을 사용한다. 수확 후 중금속 검사, 잔류농약 검사, 이산화황 검사 등을 실시해 합격한 약재에는 GAP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독성이 없는 포장지에 생산자의 이름과 연락처, 파종 및 수확 날짜, 수확 후 관리 내용 등을 일일이 기록한 후 약재를 포장하고, 해충이나 가축의 접근이 불가능한 깨끗하고 건조한 장소에 보관하도록 한다.

    토종약재 지킴이 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

    엄경섭 회장은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양질의 국산 약재와 값싼 수입산 약재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생약협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GAP 규범에 따라 황기, 당귀, 구기자, 맥문동, 작약 등 5개 품목을 재배했다.

    현재 이들 GAP 인증 약재들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한국생약협회 산하 국산한약재상설매장(02-967-4984)과 한약재 전문 온라인 쇼핑몰 ‘e-허브(www.e-herb.co.kr)’에서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시범실시했기 때문에 품목당 두 농가밖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올해에는 생산자 농가 수를 30∼40개로 늘리고 산약, 오미자, 지황 등 세 가지 품목을 추가할 계획입니다. 품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면서 중국 약재와 겨뤄도 경쟁력 있는 약재들로 골랐습니다. 이젠 GAP 마크가 붙어 있는 약재라면 품질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GAP로 생산된 약재들을 전부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세계의 각종 약재 관련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GAP 약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주력할 예정.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에 빼앗긴 세계 약재 시장을 되찾는 것은 물론 역으로 중국에까지 수출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엄 회장은 이런 청사진의 기반이 되는 생산 농가 수를 확충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생산하는 사람이 없다면 쓸모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이는 생약뿐 아니라 우리 농업 전체의 고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생약재는 특수한 재배 기술이 필요해요.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온 베테랑들도 어려워하는 게 생약 재배죠.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젊은 세대가 생약 재배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협회에서 GAP 품목을 중심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온라인으로는 경쟁력 있는 품목을 소개해주고 재배법과 사진 등을 올려놓으며 Q&A 게시판을 만들어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할 겁니다. 오프라인 교육은 도별로 실시할 예정이고요. 하지만 저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요. 워낙 농사를 지으려는 젊은이를 찾기 힘든 형편이니까요.”

    민족 자존심 국산 생약재

    엄 회장은 생약 재배의 이윤이 높아진다면 인력 부족 문제는 저절로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그는 GAP를 도입해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이윤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첫 번째로 ‘e-market place’라는 온라인 경매제도를 도입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1억8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시스템인데, 저희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구입했어요(웃음). 말 그대로 온라인 경매제도예요. 생산자가 약재를 한국생약협회 홈페이지(www.koreaherb.or.kr)에 올려놓으면 제약회사나 약재 소매상, 일반 소비자 가 경매에 참여해 최고가에 낙찰하도록 하는 거죠. 중간 마진이 사라지니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어요. 현재 막바지 준비중이고 올해 4∼5월쯤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작될 것입니다.”

    한국생약협회는 식품사업부를 개설해 원자재뿐 아니라 도라지환, 느릅나무환 등 건강기능성식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

    엄 회장은 1950년 경기도 이천, 산수유나무가 많은 한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산수유를 비롯한 다양한 약재를 재배, 가공하는 전형적인 농가였다. 어릴 적부터 약재를 접해왔지만 그는 생약 농사를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기 때문. 1960년대 말 중동 바람이 불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4년 동안 건축학을 공부하면서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멋진 건물을 세우고 싶었는데, 건축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찾은 일이 무역회사였어요. 외국으로 돌아다니며 바이어들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1976년부터 청송실업이라는 무역회사에 다녔는데, 공교롭게도 한약수출부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렇게 한약재와 다시 연을 맺게 된 그는 1979년 아예 약재만을 판매, 수출하는 ‘경리한약물산’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내친김에 고향 경기도 이천에 ‘백사 약초원’이라는 농장을 차려 생산에도 직접 뛰어들었고 1995년 회사의 규모를 키워 (주)원록약품공업을 설립해 약재 수출의 최선봉에 나섰다.

    “지난 30년 동안 생약재의 생산, 판매, 수출에 헌신해온 저로서는 우리 생약 농가가 날로 쇠퇴해가는 현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일부에서는 굳이 이윤도 없는 생약재를 재배하지 말고 값싼 중국 것을 사다 쓰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지난 5000년 동안 한민족과 함께 살아온 생약재가 멸종된다면 우리의 민족 자존심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우리 생약재의 품질을 더욱 높이고, 그 우수성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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