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성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은 과대포장되고 옷차림이나 화장 등 비본질적인 요소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 측면은 여성성 특유의 합리적인 이미지를 고양시킨다는 점이다.
- 강 장관의 합리적이고 섬세한 여성적 리더십은 남성 위주의 정치문화에 식상한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의원의 얘기는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인 강 장관이 남성적 권위주의가 팽배한 국회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강 장관은 국회에서 자주 혼나는 편이다. 의원들은 강 장관 부임 초기 그녀의 자질과 자격을 문제삼는가 하면 패션과 머리 스타일까지 ‘간섭’했다.
업무능력 면에서도 높은 점수
그런데 의원들은 아마 잘 모를 것이다. 강 장관의 인기가 오르는 데 자신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를. 의원들이 혼낼수록 강장관의 인기는 올라갔다. 국감장에서나 대정부질의 때 의원들이 강 장관을 집중 공격하는 모습은 TV를 통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때마다 강 장관을 동정하고 보호하려는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강사모(강금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팬클럽 회원 수는 늘기만 했다.
그렇다고 강 장관이 의원들에게 고분고분한 것만은 아니다. 강 장관의 소신 있는 답변은 추궁하는 남자 의원들을 때로 당황하게 만든다. 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사무총장은 “남성 의원들 앞에서 눈물이 나올 만큼 혹독하게 추궁 당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대중적 인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인터넷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엔 강 장관의 팬 클럽이 8개 개설돼 있는데, ‘강금실 법무장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회원 수가 5000명을 넘는다. 강 장관의 5년 재임을 위한 모임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 만들기’ 모임도 있다. 인터넷 포털 ‘네이트닷컴’ 조사에 따르면 강 장관은 정치 분야 검색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연예 분야 1위는 가수 이효리였다. ‘강효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또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인물 검색 순위에서는 10위권에 들었다. 1위는 역시 이효리였다.
강 장관은 업무능력 면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12월 ‘주간동아’가 각계 전문가 1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관 성적 평가 설문조사에서 강 장관은 19명의 국무위원 중 2위 박봉흠 기획예산처장관과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정세현 통일부장관이었다.
‘주간동아’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 장관에 대해 다음의 종합평가를 내렸다. ▲식을줄 모르는 대중적 인기 못지 않게 조직장악력도 수준급이라는 평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법무부의 제자리 찾기에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호평도 있으나 일부에서는 “법무부장관으로서 검찰과 대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고 처신에 무게가 없다”는 지적 ▲교정 분야와 호주제 폐지 등 인권 분야에 쏟은 정성이 돋보이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 ▲정치권의 방해만 없다면 최장수 법무부장관도 가능할 듯.
또 경실련이 각계 전문가 197명에게 물어 21개 부처장관(국무위원 19명+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위원장)의 업무수행능력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강 장관은 7위를 차지했다. 1위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장관들의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2.81이었는데, 강 장관은 2.97점을 기록했다.
한편 청와대 인사보좌관실이 연말 개각을 앞두고 자체 평가한 결과 강 장관의 경우 안팎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적 인기와 달리 조직 내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 이 같은 결과는 강 장관의 업무능력이나 성과와 별개로 강 장관에 대한 검찰의 ‘정서적 거부감’이 작용한 탓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3년 11월10일 강금실 장관이 강력부 검사들과 함께 청와대 오찬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강장관 바로 뒤는 서영제 서울지검장.
“장관은 취임 후 부장검사, 평검사, 검사장들과 각각 FGI(Focus Group Interview : 집중 집단면담)를 가졌는데, 면담에 응했던 평검사들 얘기가 ‘왜 부장들이 장관을 만나고 나면 장관 편이 되는지 이해된다’는 것이었다. ‘편이 아니라 팬이 됐다’고 말하는 검사도 있었다. 이들중엔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해 장관을 공격했던 검사도 있었는데, 그도 ‘장관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직장악력 부재는 난센스”
앞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 강 장관의 업무능력은 검찰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법무부 한 간부는 “강 장관은 인간적 매력 이전에 업무능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강 장관은 복잡한 사안의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데다 일 지시방식이 명쾌하며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강 장관이 나름대로 검찰을 장악하고 큰 무리 없이 검찰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평했다. 이 실장은 또 “강 장관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나 대선자금 수사 등과 관련해 처신을 잘하고 있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사무총장은 “강 장관은 업무능력 면에서 남성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며 “원칙적이고 단호한 업무수행태도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정치인 상이라 할 만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강 장관이 지난 10개월간 이룬 성과 중 검찰 내부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인사개혁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혁명적 인사”라며 강 장관의 인사정책을 높게 평가했다. “과거와 달리 ‘빽’이 통하지 않는 인사를 실시했다”는 것.
“강 장관의 개혁방향을 지지한다”는 서울지검의 초급간부도 “강 장관이 표방한 경향(京鄕) 순환인사 원칙에 대해 말없는 다수의 검사들은 환영하고 있다”며 “과거에 특혜를 받아왔던 소수 검사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두고 조직 장악력 부재라고 비판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재경지청의 한 간부도 “강 장관이 처음엔 검사들과 불편한 관계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검사들과 가까워졌다”며 “지금은 많은 검사가 강 장관을 검찰 편으로 생각한다”고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 마당발’로 통하는 최아무개 변호사는 ‘계모론’을 폈다.
“처음엔 검사들이 다들 계모로 여겼다. 계모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계모가 생모보다 더 잘하려 애쓴단 말이지. 나이든 간부들은 아직도 강 장관을 계모로 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언론에서 그토록 띄우고 대중적 인기가 좋으니 드러내놓고 욕하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강 장관을 좋게 평가하는 검사들이 장관의 ‘장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소탈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지검 고위간부는 “업무순시 때 격식에 매이지 않고 직원들을 배려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장관이 업무순시를 할 경우 지청 간부들이 신고식을 치르는 게 관례다. 그런데 강 장관은 처음에 이를 사양하다가 간청에 못 이겨 인사를 받았는데, 아주 약식으로 치렀다. 또 직원들과의 면담 때는 차려·경례도 못하게 하고 훈시라는 용어도 쓰지 못하게 했다.”
법무부 검사들에 따르면 강 장관은 전입·전출 신고도 거수경례를 받고 ‘훈시’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티 타임 형태로 받는다. 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행사 때도 의례적인 인사말 준비를 시키지 않고 장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스스럼없이 얘기하기를 즐긴다.
“걷고 싶었고 라면이 먹고 싶었다”
강 장관의 인기 비결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친화력이다. 대북송금 특검보로 활약했던 김종훈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강 장관은 적이라 여겨지는 사람들한테도 나쁜 얘기를 안 듣는다. 극단적 사고를 하지 않는 데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한테 욕먹을 만한 언행이나 미운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낙천적이다.”
‘보신탕 회동’에서 강 장관이 송광수 검찰총장의 팔짱을 낀 것도 이런 친화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사들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낸 것도 마찬가지다. 강 장관은 검사들과 회식을 하면 2차로 노래 부르러 가자는 얘기를 거리낌없이 한다.
솔직하고 탈 권위적이고 꾸밈이 없는 점도 큰 매력으로 꼽힌다. 강 장관은 상사가 휴가를 가지 않아 부하 직원들이 휴가를 쓰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였는지 부임 후 처음으로 맞은 여름휴가 때 1주일간이나 자리를 비워 주변을 놀라게 했다.
강 장관의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어느날 국회 일정을 마친 강 장관은 여의도 광장을 가로질러 혼자 걸었다. 점심시간이었다. 길을 걷다가 강 장관은 눈에 띄는 분식집에 들어가 떡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주변사람들이 걱정하자 강 장관은 “걷고 싶어 걸었고, 라면이 먹고 싶었다”라고 대꾸했다.
어느날 모 단체에서 장관실로 항의방문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보고를 받은 강장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항의할 건 해야지. 방문하라고 하세요.”
강 장관은 또 남에게 일부러 잘 보이거나 마음에 없는 얘기는 못하는 성격이다.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한다. 국회 답변과정에서도 몇 차례 드러났듯 모르면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렇기에 “강 장관, …언제 들었습니까”라는 국회의원의 추궁에 “지금 들었습니다”라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가능했던 것이다.
강 장관의 인간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특성은 색깔 있는 감성이다. 이는 강장관 특유의 여성성과 문화·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진 것으로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검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대화와 소통을 유난히 강조하는 강 장관은 실·국장은 물론 과장들과도 격의 없이 회의를 갖는데, 토요일 같은 경우 회의가 끝난 후 단체로 미술전시회에 가거나 영화관람을 하기도 한다.
또 춤과 노래에 일가견이 있으며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한마디로 예술적 끼가 있는 것이다. 법무부 건물 복도에 그림을 전시하고 검사장들과 회의하고 난 후 함께 클래식 연주를 듣는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런 타고난 감성 덕분이다.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강 장관의 여성성이 갖는 장단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칼집에 장검이 꽂혀 있더라”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크다고 본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은, 과대포장되고 옷차림이나 화장 등 비본질적인 요소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 측면은 여성성 특유의 합리적인 이미지를 고양시킨다는 점이다. 강 장관의 합리적이고 섬세한 여성적 리더십은 남성 위주의 정치문화에 식상한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강 장관은 자신의 여성성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귀고리에 화장에 의상에, 남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내세운다. 한 변호사의 말마따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른바 외유내강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집중 집단면담에 참여했던 한 평검사는 강 장관의 이미지에 대해 “칼집에 장검이 꽂혀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여성적 리더십의 강인함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법무부의 한 간부는 “강 장관의 업무능력이 대중적 인기에 가려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엔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대중적 인기가 강 장관의 업무능력을 더 돋보이게 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최 변호사는 “솔직히 용모도 한몫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젊고 예쁘고 엘리트코스를 거쳤고 거칠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고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여성장관이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여성 장관의 능력을 평가하면서 용모를 거론하는 것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민변 시절부터 강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김종훈 변호사는 “강 장관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인기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의 분석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