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불꽃의 작가’ 서효원

깊은 절망, 뜨거운 소망이 낳은 자아 부활의 武曲

  •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 junaura@snu.ac.kr

    입력2003-12-29 14: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워룽성(臥龍生)과 진융(金庸). 30대 이상에겐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대만과 홍콩을 대표하는 무협소설 대가. 무협지광은 아니었다 해도 청소년기에 이들이 쓴 무협소설 한두 권 안 읽어본 이는 드물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들의 이름을 달고 소개된 작품 중 상당수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이들 모방작을 밑거름 삼아 1980년대부터는 독자적인 스타일의 한국 무협소설이 입지를 굳혀갔다. 체계적인 정리작업의 부재로 그저 추억 속의 통속소설로 빛이 바래가는 한국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주요 작가·작품론을 연재한다.<편집자>
    ‘불꽃의 작가’ 서효원
    지난 가을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필자는 ‘한국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라는 주제의 글을 발표했다. 이 발표문은 그 무렵 출간된 필자의 저서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중에서 한국 무협소설에 관한 내용을 간추려 요약한 것이었는데, 중국 신문 ‘중화독서보(中華讀書報)’는 이를 두고 “‘신무협’ 소설의 내용과 장르의 새로운 변화를 통해 한국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를 분석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당시 약정토론을 맡은 중국 학자(그는 중국에서 꽤 알아주는 문학평론가다)는 기본적으로 ‘한국 무협소설’에 대해 냉소적인 선입관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조심성 없이 거칠게 드러냈다(물론 그는 한국 무협소설 작품을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협소설이 한국인에 의해 씌어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한국 무협소설이 되는 것인가, 설사 그것을 한국 무협소설이라고 부른다 해도 거기에 무슨 대단한 문화적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 선입관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무협소설을 ‘국적 불명’이라고 비난할 때 그 비난의 근거가 바로 이러한 생각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배경이나 인물에 있지 않고 서사의 성격에 있으며, 바로 이 점에서 한국 무협소설은 중국 무협소설과 구별되는 뚜렷한 독자성을 갖추고 있다는 게 필자의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서 한국 무협소설의 주요 작가와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통해 한국 무협소설의 독자성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그 독자성이 무협소설 장르 일반이라는 지평에서 일종의 전위성을 띠며, 나아가서는 단순한 통속문학 내지 대중문학이라는 틀을 넘어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자세한 검토 없이 막연한 일반론만 되풀이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시한부 생명 12년간 128편 출간



    우리가 처음 살펴볼 작가는 서효원(徐孝源)이다. 서효원은 한국 무협소설의 역사를 말할 때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되는 작가다. 한국인이 창작(번역이나 번안이 아니라)한 최초의 무협소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대체로 1970년대 후반에 주로 대만 작가 워룽성(臥龍生)의 이름으로 출판된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은 한국인에 의해 씌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워룽성의 이름으로 출판된 ‘팔만사천검법’(1978?)이다. 이 작품을 쓴 김의민은 1979년 ‘을제상인(乙齊上人·제(齊)가 아니라 재(齋)로 쓰는 것이 적절하겠지만)’이라는 필명으로 ‘속팔만사천검법’을 출판했는데, 이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 무협소설은 더 이상 대만 작가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제 이름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품 스타일이 여전히 워룽성의 모방에 머물렀기에 이들을 참뜻에서 한국 무협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기 스타일을 갖춘 한국 무협소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의 일인 바,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서효원, 야설록(夜雪綠), 금강(金鋼), 사마달(司馬達), 검궁인(劍弓人) 등에 의해서였다.

    이들 중에서 우리가 서효원에 먼저 주목하는 것은 그의 비극적 삶과 관련이 있다. 1959년생인 서효원은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에 재학중이던 1980년 3월 위암 수술을 받았고,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아주 운이 좋으면 10년’이라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다.

    서효원의 무협소설 쓰기는 바로 이 시한부 생명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됐다. 1980년 9월 첫 작품을 출간한 서효원은 1992년 1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12년 동안 놀랍게도 128편, 1000여권이나 되는 무협소설을 써냈다(기네스북에 올라 마땅할 세계 최고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렇듯 엄청난 다작은 서효원 무협소설의 문체적, 서사적 특징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짧은 문장의 숨가쁜 배열, 묘사는 거의 없고 있는 것은 오직 사건 전개의 속도감뿐인 문체, 기험(崎險)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만큼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 이런 특징들 때문에 다작이 가능했다고 할 수도 있고, 거꾸로 다작이기 때문에 이런 특징들이 생겨났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이러한 문체적, 서사적 특징은 1980년대 한국 무협소설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서효원을 1980년대 한국 무협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는 것은 확실히 근거가 있다.

    더더욱 주목할 것은 1990년대 한국 무협소설의 부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죽은 서효원이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한국 무협소설은 작품의 질에 있어서나 독자의 호응에 있어서나 급속히 몰락했고, 독자들은 ‘영웅문(원제·사조영웅전)’의 번역 출판을 계기로 홍콩 작가 진융(金庸)에게 몰려갔다. 그 결과 생계에 쫓긴 많은 작가들이 무협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만화 스토리 작가로 변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서효원의 대표작으로 1981년에 처음 출판된 ‘대자객교(大刺客橋)’가 1993년 재출판되고 이것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부터였다. 독자들이 ‘대자객교’에 보낸 관심의 상당 정도는 작가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서효원을 중시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무협소설=현실도피+대리만족’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등식은 대부분의 경우 무협소설을 비난하는 데 사용되고, 아주 드물게 무협소설을 옹호하는 데 사용된다. 비난도 좋고 옹호도 좋지만 그에 앞서 필자가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단순한 도식 자체다. 이 단순한 도식을 전제하는 한 비난이건 옹호건 정당성을 가질 수 없으며, 진실은 그 도식 너머 먼 곳에, 혹은 그 도식 밑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보여주는 작가가 서효원이다.

    그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천하 제일의 미남이고 거의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로 유능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좋아하고 그의 부하가 되기를 자청하며, 죽음의 위기에 부딪히면 반드시 기연(奇緣)을 만나 화가 오히려 복이 된다. 이렇게 묘사해놓고 보면 서효원의 작품은 1980년대 한국 무협소설이 차츰 빠져들어간 저열한 기풍의 표본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아닌게아니라 이것이야말로 ‘현실도피+대리만족’의 가장 저열한 모습이다. 답답하고 괴로운 현실로부터 소설 속의 세계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이 터무니없이 운좋은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통해 대리만족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때로 휴식과 위안이 필요한 법이고, 이 대리만족은 비록 저열하다 하더라도 적절한 휴식과 위안을 제공해주지 않는가 하는 것이 소수 옹호자들의 논리다. 반면 다수의 비난자들은 그것이 일종의 마취제에 불과하며, 이 마취제는 답답하고 괴로운 현실과의 정직한 대면을 영원히 방기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양쪽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무협소설=현실도피+대리만족’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전제했을 때에 한해서다. 서효원의 무협소설은 그 단순한 도식에 부합하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의 이면에, 혹은 심층에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함께 갖추고 있다.

    1993년에 출판된 유고집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에 실린 시와 산문, 일기들을 보면 서효원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시한부 생명을 치열하게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아래서 김지하 시인의 비극적 서정은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새’에서)라는 명구를 낳았거니와, 서효원의 몸부림이 피를 토하듯 토해낸,

    나는 죽어도 새가 되지 못한다새가 되지 못하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이미 죽었거늘 또 죽을 수 있으랴(‘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에서)

    라는 시련(詩聯)은 김지하 시인의 명구보다도 절망의 정도가 한층 더 깊다. 물론 이 절망의 진술이 단지 절망의 진술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노오란 나비 한 마리 날아 오른다/ 육체를 이탈하는 영혼처럼”(‘비누방울’에서)이라는 구절에 표현된 뜨거운 소망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깊은 절망과 뜨거운 소망이 그의 무협소설 쓰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그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그의 무협소설 쓰기는 그 절망으로부터의 도피이고 그 소망의 대리만족인 것일까.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 이상이다. 그 ‘이상’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본론이다.

    자아를 상실한 주인공들

    서효원의 대표작 ‘대자객교’의 주인공 이혈릉은 자객이다.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지만, 군계일학의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지닌 천하제일의 자객이다. 그가 속한 청부살인 조직의 이름이 ‘대자객교’이고, 이 조직에서 그는 네 번째 서열이어서 ‘사살(四殺)’이라 불린다. 기억을 잃은 채 다 죽어가던 그를 살려주고 그를 제자로 삼아 무공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대자객교의 교주(橋主)다.

    이혈릉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임무를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능력을 키워가는데, 그의 임무 수행은 공교롭게도 그를 기억상실 직전의 사고 현장으로 이끌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월영지존과 대결을 벌이다가 부상을 입고 절벽 아래 유룡탄이라는 급류 속으로 추락한다. 원래 그의 신분은 명나라 황제 대륭제의 아들인 태자 주천업이다. 그는 월영지존의 부하에 의해 중상을 입고 유룡탄 급류 속으로 추락했었는데 이때 기억을 상실했던 것이다.

    ‘불꽃의 작가’ 서효원

    ‘대설’ ‘실명마제’ ‘자객 무’ ‘실명대협’ 등 서효원의 주요 작품들.

    그러나 두 번째 추락은 그에게 기억을 되찾아준다. 기억을 떠올리고 본래의 자신을 되찾은 주인공 앞에서 이제까지 은폐되어 있던 일들이 그 진상을 드러낸다. 대자객교주는 예전의 무림삼기 중 한 사람인 귀수옹이었다. 귀수옹은 자기 사문(師門)의 한을 풀기 위해 준비해온 것들을 배반한 제자 부궁석에게 모두 빼앗기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대자객교라는 청부살인 조직을 만든 것이다. 부궁석은 귀수옹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기반으로 월영지존이 되어 무림을 일통(一統)하고 나아가서는 스스로 황제가 되기 위한 음모를 추진해왔다. 그 과정에서 주천업이 기억을 잃고 이혈릉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혈릉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모든 진상이 드러난 이제 남은 것은 이혈릉과 부궁석의 대결인 바, 이 대결에서 승리한 이혈릉이 기쁨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허망함을 느끼는 데서 이 작품은 종결된다.

    ‘대자객교’의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이 기억을 상실한 상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기억을 상실했다는 것은 본래의 자아를, 혹은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기억을 상실한 상태의 주인공은 거짓 자아이며 거짓 정체성일 따름이다.

    이 구도는 서효원의 무협소설에 널리 나타난다. 가령 ‘대자객교’보다 앞서 나온 ‘대설(大雪)’의 주인공 백무엽도 자객인데 역시 기억상실의 상태로 등장하며, ‘대자객교’ 뒤에 나온 ‘자객 무(霧)’의 주인공 검류향은 기억상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신분도 모르는 채 어려서부터 폐쇄된 감옥에서 성장해 자객이 된다. ‘실명대협(失名大俠)’의 능설비도 갓난아이 때 납치되어 마도(魔道)의 차세대 전사(戰士)로 훈련받으며 성장한다. 기억상실이나 갓난아이 때의 납치나 본래의 자아 내지 신분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주인공들의 거짓 자아, 거짓 정체성은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자객이거나 마도 인물인 것이다.

    업둥이 모티프와 실명(失名) 모티프

    그에 반해 그들의 본래의 자아와 신분은 한결같이 고귀하다. 이혈릉은 황태자이고, 백무엽은 마도의 소종사(少宗師·마도 인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고귀한 신분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이며, 검류향은 황제의 쌍둥이 동생이고, 능설비의 어머니는 황제의 사촌동생이다. 이렇게 보면 서효원의 무협소설은 자아를 상실한 인물이 자아를 회복하는 이야기이며 핵심적 모티프는 업둥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크게 업둥이형과 사생아형의 둘로 나눌 때 전자는 오이디푸스 이전의 잃어버린 낙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며 부모 양쪽을 모두 부정하는 낭만주의 소설이고, 후자는 오이디푸스의 투쟁과 현실을 수락하며 아버지를 부정하고 어머니를 인정하여 아버지와 맞서 싸우는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주장한 마르트 로베르를 참조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서효원의 업둥이는 콤플렉스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나타나는 업둥이다. 서효원의 주인공들은 모두 본래의 자아나 신분을 회복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좀더 생각할 것은 회복된 자아나 신분이 상실 이전의 자아, 신분과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거기에는 커다란 변화가 수반되는데, 그 변화의 내용을 일종의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상실의 상태에서 겪는 고통과 그 고통의 극복 과정을 거친 자아가 본래의 자아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같지만 다르다’는 이 점을 중시하고 보면 그 변화는 자아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점이 가장 잘 나타난 인물은 백무엽이다. 백무엽은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자 더 이상 마도의 소종사가 아니라 천하제일협(天下第一俠)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대자객교’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실명(失名)’이라는 모티프도 서효원 무협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모티프는 주인공이 자신의 자아와 신분을 모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억상실 모티프와 다르지만, 잃어버린 자신의 것을 되찾는 이야기를 낳는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같다. 여기서 주인공은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될 뿐이다.

    ‘불꽃의 작가’ 서효원

    집필에 몰두한 서효원. 그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나서부터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가령 ‘실명마제(失名魔帝)’의 주인공 곡비룡은 무림제일의 정도(正道) 문파인 검왕성(劍王城)의 소성주(少城主)라는 고귀한 신분의 인물이지만, 자신의 얼굴 가죽과 신분을 빼앗긴다. 그는 실명마제가 되어 적과 싸우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여 결국 얼굴과 신분을 되찾는다. ‘실명천하(失名天下)’의 주인공 친왕(親王) 주린은 적의 음모에 걸려들어 이름과 신분을 상실한다. 그는 목비린이라는 이름으로 적과 싸워 이겨 결국 자신의 본명을 되찾는다. ‘실명대협’에는 어렸을 때의 납치로 인한 신분상실과 성장 이후의 실명이라는 두 모티프가 함께 나타나고, 두 가지 상실의 회복은 동시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를 작가 서효원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고 싶어진다. 즉 그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실의 상태를 작가 자신의 시한부 생명이라는 현실의 알레고리로 보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렇게 보는 데 일리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상실 극복과 자아 회복을 통해 자신의 시한부 생명이라는 삶의 조건에 대한 대리만족을 이루는 것만이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조건에 대한 은밀한 성찰이 수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서효원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동지가 되는 인물들 대부분이 한(恨)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원래 정파(正派)의 인물이건 사파(邪派)의 인물이건 한결같이 몹시 억울한 일을 당했던, 그리하여 많은 경우 거의 죽을 뻔했던 사람들이다.

    한(恨) 지닌 인물들의 실존적 고뇌

    예컨대 ‘대자객교’의 교주 귀수옹은 제자에게 배반당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고, 삼살(三殺) 무영금강검은 아내에게 배반당하고 섬전제검사에게 패배해 역시 모든 것을 잃었으며, 황제의 사촌동생인 혈릉왕은 만사부주에게 이용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겼다. 그런 체험을 거친 뒤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변한다.

    중국 무협소설의 일반적 관습은 정(正)과 사(邪), 그리고 선과 악의 구분이 미리 주어져 있고, 사실은 제도적인 그 구분들을 자연적인 것,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데 반해 서효원의 이야기 속에서는 정사(正邪)와 선악의 제도적 구분이 해체되어 버린다(단순히 가치가 역전되는 것이 아니라). 서효원의 인물들은 그 해체 이후의 지평에 서 있다. 그들같이 한을 지니지 못한 인물들은 순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고 정사와 선악의 제도적 구분 속에 함몰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물론 각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한(恨)은 이들이 삶의 조건에 직면하고 그것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데서 생겨난다. 깊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는 일종의 실존적 고뇌에 해당한다.

    이 실존적 고뇌가 가장 극단적으로 형태화될 때 그것은 죽음과 재생이라는 신화적 구조로 나타난다. ‘대자객교’만 보더라도 주인공 이혈릉은 두 차례의 죽음을 겪는다. 한 번은 주천업의 죽음이고 다음은 이혈릉의 죽음이다. 두 번의 죽음 모두 재생으로 이어져 한 번은 이혈릉이 태어나고 다음에는 이혈릉-주천업(두 자아의 통합)이 태어난다. 이야기 전체로 보면 이 두 번의 죽음-재생은 이혈릉-주천업이라는 인물의 완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 장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렇게 해서 완성된 이혈릉-주천업이라는 인물이 마지막에 보여주는 정서가 견딜 수 없는 허망감이라는 점이다. ‘대자객교’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뒤엉켰던 온갖 고뇌와 갈등의 끈들이 풀려 이제 하나씩 제 위치를 찾아가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것은 견디기 어려운 허망함 때문이었다.(…)삶과 죽음.그 무수했던 흔적들을 뒤로하고 그는 또다시 삶과도 같고 죽음과도 같은 인생의 이치에 매달리려고 하는 것인지…

    이혈릉-주천업이라는 인물의 완성이 실존적 고뇌의 극복을 결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완성과 동시에 실존적 고뇌의 극복은 지연되어버린다는 점, 실은 부단한 극복과 부단한 지연이 삶의 조건이라는 점을 위 인용문은 슬며시 암시한다. 물론 이러한 결말이 서효원의 모든 작품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대설’의 백무엽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고향을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실명천하’의 목비린이 변황으로 떠나는 것은 정도는 약하지만 역시 같은 맥락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작가 서효원의 삶과 그의 이야기를 결부시켜 볼 수 있겠다. 요컨대 서효원의 시한부 생명의 고뇌가 그의 이야기의 출처이며 그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재료이며 그의 이야기가 그려내고자 하는 감추어진 목표가 아닐까. 얼른 보면 초능력을 지녔으며 엄청나게 운이 좋은, 그래서 악의 세력을 호쾌하게 무찌르는 영웅을 그린 것 같지만, 그런 영웅 이야기를 빌려 실은 자신의 고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산문에서 서효원은 “암은 생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해주었고, 시간의 중요성을 암살자의 비수처럼 예리하게 보여주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가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읽어낸 것은 “삶과도 같고 죽음과도 같은 인생의 이치”였던 것이고, 그 이치를 영웅담 속에 슬며시(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새겨 넣은 것이 그의 무협소설이었던 것이다.

    서효원은 ‘죽음을 만나러’라는 시편에서 “철학은 죽음의 연습/종교는 죽음의 극복/상업은 죽음의 망각/예술은 죽음의 거부”라고 쓴 바 있는데, 이 시구를 빌려 말하자면 서효원의 무협소설 쓰기야말로 바로 죽음의 연습이고 극복이고 망각이고 거부였다. 마치 도박이 불운과 패배의 연습이고, 그렇기 때문에 “암세포가 알려준 목숨의 허무감을 극복할 매력”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서효원에게 무협소설은 단순한 무협소설이 아니라 철학이고 종교이고 상업이고 예술이었으며 또한 일종의 매력 있는 도박이었던 것이다. 서효원 무협소설에서 그 영웅담의 껍데기만을 취해 그것의 단순 재생산을 되풀이한 많은 후배 작가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서효원 무협소설을 지배하는 숙명론이다. 이 숙명론은 기원론과 등을 맞대고 있다. 가령 ‘대자객교’에서 이혈릉이 적수인 월영지존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기원을 획득해야 한다. 하나는 섬전제검사가 거기에서 나온 빙하궁(氷河宮)이라는 기원이고, 다른 하나는 귀수옹이 거기에서 나온 열하지성(熱河之城)이라는 기원이다.

    이 두 기원은 실은 하나다. 빙하궁의 시조 빙하제와 열하지성의 시조 열하제는 부부였고, 그들의 무공은 감리무록(坎離武錄)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었다. 빙하제와 열하제의 적수는 부공이었다. 천하사마(天下四魔)의 사대마경(四大魔經)을 빼돌린 부공의 후예가 월영지존이고 월영지존은 이미 사대마경이라는 기원을 획득했으므로 이혈릉이 월영지존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감리무록이라는 기원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재의 현실을 무려 1000년 전의 기원이 규정한다는 이 스케일 큰 숙명론은 ‘대자객교’ 서사의 또 하나의 틀이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서효원 무협소설의 가장 큰 취약점일 것이고 그가 후배 작가들에게 미친 가장 나쁜 영향일 것이다. 자신의 무협소설에 슬며시 새겨 넣은 실존적 고뇌의 치열성을 결정적으로 희석시키는 이 숙명론은, 그러나 죽음의 연습, 극복, 망각, 거부의 치열한 되풀이에도 끝내 그를 짓눌렀을 죽음이란 운명의 중압감을 상기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 중압감에 짓눌린 채 토해낸 다음과 같은 처절한 시편을 보라.

    잠들어 있는 자는 밤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밤의 무서움은 깨어 있는 자들에 대한 처벌이다잠들고 싶다무슨 죄를 지었기에 잠들지 못하는 것인가밤이 무섭다밤이 무섭다(‘밤이 무섭다’ 전문)

    자신의 시한부 생명을 무협소설 쓰기로 불태운 서효원의 넋에 안식이 깃들이기를!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