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실력은 어느 수준일까.
- 6자회담 등 해결방안 마련의 경우 미국과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지만, 정보를 분석하고 상황을 판단해 장기전략을 준비하는 작업 또한 발등에 불 끄기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 1차 수집부서인 국정원과 국방부의 허약한 정보역량, 이를 통합·조정해야 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역할의 한계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는데….
미국이 수집하는 북핵 정보는 크게 세 가지다. 첩보위성 KH-12에서 찍은 가시광선 사진과 열적외선 사진,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나와 있는 정찰기 WC135W를 통해 수집된 크립톤85(폐연료봉을 재처리할 때 공기 중으로 퍼져나오는 불활성 기체) 농도정보. 이렇게 수집된 ‘생자료(raw data)’와 ‘첩보(information)’는 미 국방정보국(DIA)과 중앙정보국(CIA) 분석관들에 의해 의미를 지닌 ‘정보(intelligence)’로 탈바꿈한다.
한편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북핵 관련 정보를 전달받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오산에 있는 미7공군사령부의 전술항공통제본부와 DIA에서 한미연합사(CFC)를 거쳐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에 전달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미 CIA에서 국가정보원 과학기술과에 전달하는 경로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에 고정적으로 전달하는 생자료 혹은 첩보는 가시광선 사진뿐이다. 열적외선 사진과 크립톤85 농도정보는 ‘특이사항이 있어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만’ 전달된다는 것이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한국이 갖게 되는 것은 난방용 연기인지 재처리로 발생한 연기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가시광선 사진뿐이다(자세한 내용은 ‘신동아’ 2003년 12월호 ‘북 폐연료봉 8000개 재처리의 진실’ 참조).
사실 미국 수준의 정보 수집력을 확보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WC135W는 대당 가격만도 수백억 원이고 유지비도 엄청나다. 한국군은 거저 준다 해도 운용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한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정보군·과학군’을 역설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예산은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토로다.
일견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 정부가 갖지 못한 것은 수천억 원이 필요한 첨단장비만이 아니다. 미국이 ‘떠 먹여주는’ 밥을 씹을 힘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갖고 있는 역량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시스템의 한계가 뚜렷하다. 더 크게는 근시안적인 시선과 장기전망의 부재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정보학 개론에서는 정보가 ‘수집-분석-배포’의 3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이 가운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단계는 수집이지만, 가장 미묘한 단계는 분석이다. 수집된 정보를 판독하고 해석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위성사진에서 발견된 연기가 재처리 때문인지 난방용인지 판단하는 일부터 그 동안 누적된 정보를 종합해 과연 재처리가 얼마나 이루어졌을지 추정하는 작업까지 이 단계에 포함된다.
따라서 이 작업에는 전문지식이 필수적이다. 재처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때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지 꿰뚫고 있어야 하므로 핵공학 전문가가 분석관을 맡는 것이 좋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해석된’ 정보를 전달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해석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채색된’ 것인지 검토하는 작업은 첩보 분석보다 더 수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학사’가 유일한 전문가?
그렇다면 한국의 합참과 국정원은 과연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까. 해당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일 듯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선 합참 정보본부에는 핵공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춘 분석인력이 한 사람도 없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는 대학에서 학부과정을 마친 초급장교 한 명이 전부다. 그나마 북핵 위기가 불거지고 나서 한참 후에야 다른 부대에서 급히 파견받아 배치됐다.
때문에 합참은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학계 전문가들을 급히 섭외해 자문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실제로 2003년 5월 무렵에는 “특이 징후를 해석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재처리 전문가를 수소문하는 전화를 받은 학계 인사들이 꽤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의 말이다.
“군에서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과연 북한이 핵 물질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이걸 터뜨릴 수 있는 고폭장치 제작기술을 확보했느냐, 폭탄을 미사일에 실을 만큼 가볍게 만들 수 있느냐. 결론부터 말하면 합참도 국정원도 모른다. 공식보고서의 결론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기관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을 지상과제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전문가들이 보기에 이 같은 질문은 별 의미가 없다. 양파만한 플루토늄 덩어리를 반으로 쪼개 양손에 쥐고 갑자기 확 부딪친다고 생각해보자. 고폭장치도 화약도 없으니 터지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것도 터진다. 효율이 적을 뿐이다.
경량화 문제도 그렇다. 보유중인 장거리 미사일에 실으려면 500kg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 담당자들의 ‘고정관념’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든지 500kg 이하로 만들 수 있다. ‘표준형’ 핵 폭탄 무게의 대부분은 고폭용 화약이다. 화약을 적게 쓰고 플루토늄을 많이 쓰면 충분히 터진다. 양에 따라 도시 하나도 날릴 수 있다.”
불거지면 검토, 가라앉으면 취소
이 정도는 핵공학 전문가라면 대개 동의할 수 있으리라는 게 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정부기관들이 ‘불확실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의 제작 매뉴얼에 나와 있는 제원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이는 ‘최적화된’ 폭탄 형태이므로 북한이 꼭 그 제원과 일치하는 폭탄을 만들리라는 법은 없다면서 이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기본 원리를 알지 못한 채 매뉴얼에 나와 있는 수치만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져온 정보를 미국에서 가져온 틀로 분석하는 것, 그러다가 그 틀에 잘 안 맞으면 ‘불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정부의 북핵 관련 정보분석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국정원 과학기술과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1차 북핵 위기 직후 국정원에는 모두 세 명의 핵공학 박사급 인력이 특채되었다. 이중 지방에서 근무하는 인원을 제외하고 두 사람이 북핵 관련 정보분석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재처리나 우리늄농축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다. 핵공학이라는 학문은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만드는 과정, 특히 이를 미사일에 장착하는 과정에 관해서는 국정원 인력들도 별다른 전문지식이 없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북핵 문제가 처음 불거진 1991년부터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인력을 양성했다면 지금쯤은 박사급 전문인력을 여럿 배출할 수 있었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70만 대군을 통틀어 원자력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일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국방부와 그 유관기관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이들이 두세 명 있지만 이들은 ‘정보 병과가 아닌 사람은 정보본부에 배속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분석실무를 담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대신 이 가운데 일부는 장기 핵 정책을 담당하는 군비통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 역시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북핵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에야 국방부로 발령받았다.
군 수뇌부 또한 문제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이루어진 조직개편 과정에서는 대량살상무기 전담부서를 새로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국방부 신청사에 공간배정까지 되었던 이 부서는 첫 6자회담 이후 북핵 문제가 한 고비를 넘기는 듯하자 신설계획이 백지화됐다.
전문가 부재 또한 마찬가지다. 1차 북핵 위기가 심화된 1993~94년 무렵 적잖은 장교들이 핵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자원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로 공무원들의 해외 연수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국방부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때문에 핵 전문가 양성 계획도 대부분 미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참과 국정원에서 작성한 정보보고서는 평상시에는 주 단위로, 사안이 발생하면 즉시 청와대에 보고된다. 문제는 합참과 국정원의 분석내용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CIA와 DIA는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측 관계자들에게 특정사안을 설명할 때면 두 기관 요원들이 어김없이 함께 나타날 정도다. 따라서 합참과 국정원에 전달되는 정보 또한 기본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같은 소스, 다른 기관, 다른 결론
그러나 우리의 경우 담당자들 사이의 사적관계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기관간 공유체계가 없다. 이 때문에 똑같은 정보를 분석하고도 합참과 국정원의 결론이 다른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두 기관의 본질적인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합참이 관련 정보를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정확한 정보 생산에 중점을 두는 국정원은 다소 ‘유연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핵이 있을 것으로 본다’와 ‘핵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비교해보자. 언뜻 들으면 같은 말이지만 정책에 반영될 때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만약 국정원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발표한다면 당장 난리가 나고 6자회담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갖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준으로 표현한다.
1992년 12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12차 회의.
이 같은 차이가 꼭 나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인다. 다양한 분석 결과를 두고 서로 검증하는 체제 또한 장점이 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서로 다른 의견을 묶어내는 작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장점이다. 과연 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기관별로 작성된 보고서를 종합해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전략기획실(이하 NSC 전략기획실)의 몫이다. 이를 위해 NSC는 두 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외교부 북미1과, 국방부 대북협상과, 통일부 담당자 등이 참석해 향후 대책과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고 다른 하나는 외교부 군축원자력과, 국방부 국제군축과, 통일부 대북정보분석과, 국정원 과학기술과 등이 모여 상황판단과 정보종합을 진행하는 자리라고 한다. 회의마다 매번 동일한 사람들이 참석하기보다는 사안별 관계자가 모이는 유연한 체계다.
이 가운데 북핵 개발과 관련한 정보, 특히 기술적인 문제를 주로 취합하는 자리는 후자다. 애초에 이 TF는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원전기술 등 민간전문가까지 참석하는 큰 테이블이었다. 첫 회의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정점에 이르렀던 2003년 4월. 북한의 핵개발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우라늄농축프로그램 폐기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북핵 협상과정에서 나타날 기술적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이 주제였다.
그러나 이 회의는 이후 성격이 크게 변했다. 우선 나타난 문제점은 민간인 신분인 참석자들에게 기밀 사항인 북핵 관련 첩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으니 단순한 의견개진 회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몇몇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민간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 등 참석자들이 모두 ‘본연의 업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해당분야 전문가라고는 해도 북핵 문제만을 전담해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닌 이상 의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더욱이 자기 일을 제쳐두고 정부 기술자문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던 것. “회의에 임하는 NSC의 자세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아 더 이상 나가지 않기로 했다”는 이들도 있다. 그 중 한 사람의 이야기다.
“특정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자 보고서를 만들어달라는 연락이 와 시간을 쪼개 만들어줬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또 다른 문제가 터졌고 이번에도 연락이 왔다. 솔직히 짜증스러웠다. 나도 담당업무가 있는데, 아무 때나 불러내 일을 맡기려 하니 곤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화로 이야기하지 말고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라고 했다. 그 쪽에서는 어찌어찌 이슈만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같은 ‘임기응변’ 체계에서 누가 열심히 협조하겠나.”
이러한 한계 때문에 5월 들어 멤버가 상당수 교체되고 규모도 간략해진 이 회의는 이후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모이는 현재 형태로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담당자들이 모두 북핵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이들에게도 별도의 자기 업무가 있기는 마찬가지.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력들이 전담해 매달려도 부족할 일이 담당자들의 부정기적인 ‘추가 업무부담’이 되고 말았다”고 전했다.
앞서 설명한 국정원과 합참 혹은 국방부의 분석결론 이견 문제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조율하는 주체가 이 문제에 정통해야 한다. 그러나 NSC 전략기획실에도 현재 핵공학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 국제정치를 연구한 학자 출신들이 대부분인 인력구조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정보분석 TF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관 또한 기술문제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더욱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TF를 맡아야 하는 과중한 업무부담 때문에 이 문제에만 집중할 수도 없는 처지다.
한 관계자는 “현재의 논의체계는 비전문가가 ‘상대적’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모아놓고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시스템”이라고 촌평한다. 기관 간 이견을 조정해 정부 정책에 반영할 결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대신 참석자들이 모두 수긍할 ‘두루뭉실한 결론’으로 귀결되곤 한다는 지적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집중적으로 모였다가, 최근처럼 다소 잠잠해지면 논의가 뜸해지는 것 역시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 관계자들 중에는 “NSC가 TF를 운영하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북핵 문제 대응체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 정체상태나 다름없었던 2003년과는 달리 기술적인 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기가 계속될 ‘사찰검증 국면’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6자회담은 북핵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기술적인 배경 없이 회담에 임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현재는 대북 안전보장이나 경제제재 해제 등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당근’이 무엇인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러한 합의사항 도출보다 그 이행여부를 확인할 절차와 규정을 만들고 실천을 검증하는 작업이야말로 향후 문제해결의 최대 난코스다(구체적인 내용은 400쪽 ‘6자회담은 준비운동, 사찰검증이 본 게임’ 기사 참조).
특히 제네바 합의 때의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부시 행정부는 “단순히 ‘핵 활동의 동결’이 아니라 ‘과거 전력까지 철저히 검증하는 완전한 핵 폐기’를 목표로 한다”고 수 차례 공언해왔다. 이는 미국과 북한이 검증절차에 동의하는 과정은 물론 그 실행에도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수용한 남아공의 경우 사찰준비에서부터 완료까지 3년 남짓이 걸렸다. 핵사찰에 ‘끌려 나올’ 북한의 경우 이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다.
그러나 현재의 정보판단 및 기술분석 체계로는 이 ‘지루한 싸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장 2차 6자회담에서부터 사찰검증 문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거론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와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를 검토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전문적인 분석작업은 어디서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부 대응체계 안에는 사찰검증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본 전문가도 드물고, 더욱이 이를 담당할 팀은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노틸러스 등 민간연구소에서도 사찰검증 문제에 대한 보고서가 쏟아져나오고 있어 사뭇 대조적이다.
NSC와 외교부의 ‘사농공상’?
사찰검증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를 검토하는 작업은 2차 6자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사찰의 폭과 깊이와 참여주체 등 무수한 경우의 수에 대비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그 중 어느 것이 가장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일, 미국과 중국이 기술적인 문제를 두고 대립할 경우 어느 쪽에 서는 것이 유리한지 파악하는 일 등 기술문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략수립의 핵심요소가 될 공산이 크다. 이를 간과할 경우 6자회담도 한국을 ‘돈만 대는 봉’으로 만들었던 제네바 합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NSC의 정보판단 TF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핵무기를 만드는 데 얼마의 플루토늄이 필요한가. 얼마까지 염두에 두고 사찰을 준비할 것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공식자료에는 8kg이라는 숫자가 있다. 우리 정부기관들이 참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개 수치지만, 이건 절대적인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도 만들 수 있다. 8kg이라는 숫자는 IAEA가 사찰편의를 위해, 그 이하까지 모두 찾아내려면 추적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자신들의 업무역량을 고려해 편의상 그어놓은 선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그냥 IAEA의 수치를 따라야 할까. 지금의 정보판단 체계는 이런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다.
사찰검증에 관한 기술적인 지식 없이 2차 6자회담에 들어가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다. NSC 구성원들은 국제정치학과 외교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실무 부서인 외교부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기술문제를 그저 자문이나 받으면 충분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사농공상(士農工商)’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정치학적 접근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놓치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던지는 한마디는 기술적인 판단을 거쳐 시점을 맞춰 나온 흔적이 역력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폭탄발언을 할 때마다 정부나 언론은 외교적인 각도로만 접근하지만, 그 역시 재처리 시간표나 진행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련된 말 한마디, 노동신문 기사 한 줄에도 핵공학적인 맥락이 있다. 주로 연구개발과 관련해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의 공식 대응체계에서는 체크하지 않는다.”
핵통제공동위원회의 선례
우리 정부 북핵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곧 시작될 사찰검증 단계에 대비해 새로운 대응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해결할 과제는 기관간 회의에 가까운 현재의 NSC TF 대신 각 부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문가들을 파견받아 상설팀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 사실 이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남북비핵화선언 직후 핵통제공동위원회(이하 핵통제위)와 함께 구성돼 1차 북핵 위기 때까지 기술문제를 바탕으로 한 전략수립을 담당했던 핵통제위 정보분석팀이라는 구체적인 선례가 있다.
핵통제위는 남북 상호 핵사찰을 위해 비핵화선언을 통해 설치하기로 합의했던 기구로, 이후 남북은 1993년까지 이 위원회에 마주앉아 사찰조건 등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이 시기 북핵 문제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우리측 통제위원들의 회담전략을 준비하기 위해 국방부와 과기부, 통일원 등에 소속되어 있던 핵공학 전문가들이 구성했던 것이 바로 핵통제위 정보분석팀이다. 남북회담사무국 사무실에 매일같이 모여 정보분석 회의를 열었던 이 팀의 구성원 일부는 이후 IAEA의 핵사찰관 교육과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핵통제위 정보분석팀과 현재의 NSC 정보분석 TF에 모두 참여해본 한 인사는 “두 체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담 여부에 있다”고 전한다. 부정기적 공조회의에 가까운 현재의 체계와는 달리 핵통제위 정보분석팀의 경우는 구성원들에게 공식 인사명령이 떨어져 전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남북간의 의견대립으로 핵통제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정보분석팀도 해체되었고, 대신 이 과정에서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 원자력연구소 등에 핵 관련 담당부서가 만들어졌다. 현재 NSC TF에 참석하고 있는 각 기관 담당자들은 대부분 이때 생겨난 부서 소속이다. 그러나 창설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각 부서마다 고유업무가 생겨났고, 이 때문에 이들은 북핵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몇몇 주요기관의 경우는 부서체계가 흐트러지면서 누적되었어야 할 관련정보와 정보파일이 모두 유실되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나마 쌓여 있던 정보분석 노하우와 부분적으로 육성된 전문인력들은 순환인사와 조직개편에 따라 정부 곳곳으로 흩어져 북핵 문제와는 별 상관 없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핵 문제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대응체계 또한 부실해진 셈이다. 채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정부운영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질책일까.
핵통제위 정보분석팀에 준하는 상설체계로 현재의 NSC TF를 개편하는 경우, 합참과 국정원의 분석결과 이견을 해소하는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기관별로 정보를 분석한 뒤 그 결과를 들고 회의에 들어오는 현재의 방식 대신, 아예 생자료와 첩보를 상설팀으로 집중시키고 여기서 함께 난상토론을 거쳐 통일된 결론을 내는 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상설체계 안에 외교 전문가들과 핵공학 전문가들이 함께 한다면 기초정보 분석에서부터 이슈 해석, 결론 도출, 대응방향 설정, 전략 수립에 이르는 전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새 대응체계가 현실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바로 NSC의 어중간한 위상 문제다. 정부조직상 새 대응체계 또한 NSC 안에 설치될 수밖에 없다. 정부 각 기관의 전문인력을 파견받고 이미 흩어져있는 업무를 통합하려면 반발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미 백악관 NSC와는 달리 독자적인 정보분석·정책집행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조정·조율기구로서의 의미가 강한 우리 NSC로서는 넘어서기 쉽지 않은 장애물이다. 이미 참여정부 들어 대폭 강화된 NSC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래 지속된다
1992년 남북비핵화선언이 공표되었을 때, 1994년 제네바 합의가 타결되었을 때, 한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6자회담 한번 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 또한 순진한 발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 핵은 이제 만성질환에 가깝다는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는 식의 허술한 TF 체제로는 장기전략을 만들고 그 세부전술을 검토하는 작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당장 눈 앞에 와 있는 사찰검증문제 협상에서부터 삐걱거릴 공산이 크다.
북핵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밀도 높은 전문역량을 투입해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어차피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면 대응체계도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형태로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은 분명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다. 한번에 해결하겠다는 욕심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관리해 위기가 고조되거나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겠다는 자세다. 장기전략의 모태가 될 비전이다. 이를 준비하는 실행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