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대는 항공우주 분야를 특성화한 국내 유일의 대학이다. 드넓은 교정을 가로지르는 활주로를 박차고 창공을 나는 비행기처럼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비행하는 항공대의 성장 비결을 알아보았다.
선진국들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첨단 항공우주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도 2003년 10월 중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전세계의 관심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에는 건설산업과 선박산업에서 국가경쟁력을 키웠다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항공우주산업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을 선택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대학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국항공대학교다. 한국항공대는 항공우주에 관한 모든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연마하는 대학으로, 항공우주에 관련된 대학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오는 6월 항공우주센터 준공
비행기 한 대를 하늘에 띄우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외압을 견디는 튼튼한 기체를 만드려면 금속공학에 관련된 지식이 필요하겠고, 터빈이나 프로펠러 등을 제작하기 위해 서는 기계장치에 관한 지식도 필요할 것이다.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는 관제탑과의 교신도 필수 불가결하니 통신 관련 지식도 있어야 한다. 또 항공 사고에 대비해 국제법도 알아야 한다. 물론 영어나 주요 외국어를 막힘 없이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야말로 항공우주산업은 인문·자연·과학·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킨 종합학문인 셈이다. 항공대가 교육부가 지정한 ‘2003년 전국 특성화 대학 최우수상’을 거머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항공대 홍순길(洪淳吉) 총장은 “우리 대학은 항공 운송과 항공기 제작 산업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항공교육의 메카로, 한국이 민항공 운송산업 세계 8위를 차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최근 항공대학교는 첨단 항공우주산업 시대를 활짝 열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항공우주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오는 6월 이 센터가 완공되면 세계 각국으로부터 항공우주와 관련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서로 교류하면서 연구하게 된다. 또한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업체와 학교,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장소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또 센터 내에 ‘항공우주박물관’을 두어 일반인은 물론 미래 항공우주산업의 주역이 될 청소년에게 항공우주기술의 역사와 비전을 한눈에 보여줄 계획이다.
홍 총장은 “매년 2만여명의 학생들이 항공기와 비행기를 조종하는 장면, 비행기 제작하는 과정을 보기 위해 우리 대학으로 견학을 온다”며 항공우주박물관이 청소년들에게 항공우주산업을 더욱 쉽게 이해시키고 항공우주과학의 꿈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항공대는 이 센터를 건립하는 데 드는 50억원을 자체 충당하기로 하고 모금운동을 펼쳤다. 고양시에서 이 센터에 관심을 갖고 10억원을 후원했고, 동문과 교직원들이 모금에 앞장섰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선뜻 기부한 학생, 푼푼이 모은 100만원을 내놓은 학교 앞 하숙집 아주머니도 있어 항공대 식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항공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민간항공 분야 개척을 위해 교통고등학교 2년제 특설항공과로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휴전 후 서울 용산구로 자리를 옮겨 1953년 11월 4년제 국립항공대학으로 개편하였고, 1963년 경기도 고양시로 이전했다.
하지만 1970년대 당시 정부는 항공산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항공대는 매년 신입생만 뽑을 뿐, 전문인력으로 양성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에는 항공산업보다는 군사 목적의 항공기술 개발을 더 우선했기 때문이다.
1978년 대한항공이 항공대를 인수했지만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도 없을 뿐더러 국내 항공산업이 취약하다 보니 졸업생들의 취업도 막막했다. 또 항공운항과 정비기술만 다뤘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항공대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비약했다. 대한항공이 적극적으로 대학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항공우주산업이 미래의 첨단산업으로 서서히 부각되면서 새로운 학과가 다수 신설되는 등 외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기획홍보팀의 이근수 부장은 “항공대는 모든 학과와 전공이 항공우주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항공관련 학문이란 외길을 꾸준히 걸으며 지금까지 1만여명이 넘는 전문인력을 배출했다. 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핵심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졸업생들도 꽤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항공대는 총 3개 학부, 9개 전공과 5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4000여명의 학생이 재학중이다. 한해 900여명의 학생이 입학하고 졸업한다. 현재 항공대 학부에는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전자·정보통신·컴퓨터공학부, 항공교통물류학부 등이 있다. 학과로는 항공운항과, 항공재료공학과, 경영학과, 영어학과, 항공우주법학과가 있다.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는 주로 항공기의 하드웨어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한다. 기계공학부는 기계공학에 관한 기본원리는 물론, 기계 설계·개발·생산을 연구한다. 항공우주공학 분야는 항공기, 우주추진 발사체, 인공위성 및 유도무기 등을 탐구한다. 항공기 시스템 공학 분야는 항공기 전반에 관한 전문 엔지니어 양성을 목표로 비행 시뮬레이션, 비행시험, 항공운항에 필수적인 항공안전 등에 대해 공부한다.
전자·정보통신·컴퓨터 공학부는 현대 항공우주산업에 빠져서는 안 될 첨단 기기 및 이동통신,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룬다. 일반 대학의 전자·컴퓨터 학과 졸업생과 비슷한 자격을 취득하게 되나, 항공 분야로 교과 내용이 특성화되어 있어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학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전자상거래, 정보통신기기 관련 벤처기업에 진출한 졸업생이 많다.
국내에서 유일한 학과인 항공교통물류학부는 항공교통 전공과 교통·물류 전공으로 나뉜다. 항공교통 전공은 항공활동에 기반이 되는 공역과 항공교통시스템의 설계·관리·운영 전문가인 민간항공교통관제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를 전공한 학생들은 건설교통부의 항공관제사와 항공사의 운항관리사로 진출한다.
항공운항과는 비행기 조종사를 배출하는 학과다. 한국에서는 공군사관학교를 제외하고는 항공대 항공운항과가 유일하다. 1·2학년 때는 비행원리나 공중항법, 국내외 항공법 등 이론을 배우며, 3·4학년 때에는 실제 비행을 실습한다. 1년에 230시간의 정규 비행시간을 채워야 자격증이 나오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말은 물론 방학을 반납하면서 비행실습에 열중하고 있다. 4학년 때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계기훈련이라는 고난도 훈련을 받는 등 교육내용이 알찬 편이다.
항공운항과의 입학요건은 비교적 까다롭다. 체중은 남자 48kg, 여자는 47kg 이상이어야 하고, 신장도 162.5∼190cm에 들어야 한다. 시력은 좌우 0.8 이상, 그 밖에도 치과·이비인후과·심장 및 혈관계·폐흉부 및 피부 등에 질환이 없어야 한다. 이에 대해 이근수 부장은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이 조종사 한 명에게 달려 있는데, 다른 학과와 동일한 조건으로 신입생을 뽑을 수는 없다”며 미래의 조종사에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항공우주법학과는 최근 신설한 학과다. 지금까지 국제간에 영공·영해 문제나 항공기 사고로 인한 보상문제 등 국제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많이 보았다. 항공우주법학과는 항공법과 국제법 등을 연구해 항공우주와 관련된 국제분쟁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항공우주법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모든 학과가 항공우주 분야에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학부간 연구 성과를 교류하고 있어 학생들의 학습의욕과 자부심도 높은 편이다. 졸업생의 90% 이상이 취업하는 점도 항공대의 자랑거리다.
항공 분야 특성화한 동아리 인기
항공우주 분야를 특성화한 항공대만의 개성은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총 30여개의 동아리 중 항공 관련 동아리가 8개나 된다.
항공기제작연구회는 항공이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며 항공기를 직접 제작해 시험 비행을 하는 동아리다. 매년 5000여만원의 예산을 지원받는 이 동아리는 지금까지 4대의 비행기를 제작했다. 모형항공기반 역시 학생들이 직접 모형항공기를 설계·제작해 실제 비행하면서 비행기술을 배우는 동아리다. 모형항공기반의 한 학생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비행기를 하늘에 띄울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고 말한다.
열기구 동아리 ‘라퓨타’도 유명 동아리 중 하나인데 열기구는 한번 띄우는데 5만~6만원의 돈이 든다. 비행기 정비사를 꿈꾸는, 목표와 취미가 비슷한 학생들이 모인 동아리라 친화력이 높은 편이다.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 항공교통물류, 항공운항, 항공재료공학…. 한국항공대는 50년간 오직 항공과 우주에 관한 연구에만 정진해 온 ‘원조’ 특성화 대학이다.
사실 항공대는 그 동안 여러 제약에 묶여 외형적인 성장을 도모하지 못했다. 현재 항공대 부지는 그린벨트 지역 안에 있고, 대학 내 활주로를 군부대와 공유하고 있는 까닭에 군사시설로 제약을 받았다. 또 수도권 이전 촉진지역으로도 묶여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새로운 연구시설과 학생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규제가 풀릴 것으로 보여 ‘고양 테크노 파크’ 건설과 함께 제2의 도약을 도모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 테크노 파크는 약 3만8000평인 현재 항공대학 부지와 약 5만여평의 인근 부지를 합쳐 조성할 계획이다. 2001년에는 대학 구내에 중소벤처육성지원센터가 지어져 기계·항공우주·전자통신 분야의 벤처기업이 입주했다. 부준홍 기획처장은 “항공대는 인천공항과 가까워서 우리나라가 동북아 항공 중심국가로 부상하는 데 주도적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따라서 항공대 교육 수준도 국제 수준에 버금가도록 이끌어낼 것이다”고 강조했다.
항공대는 2002년부터 고양시와 경기북부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해 이 지역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방송 및 교육 포털사이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설 교육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교육 방송업체는 많지만 대학이 직접 나서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항공대가 처음이다.
지역사회와 미래 개척 도모
항공대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경비행기 자격증 취득반을 개설할 예정이다. 6개월 과정으로 경비행기에 대한 이론과 실습 교육을 한 뒤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발급한다는 계획이다.
항공대는 또한 산학 협력의 일환으로 예비 조종사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대한항공과 함께하는 사업으로, 남자 대학졸업생 중 지원자에 한해 조종사 과정을 훈련시키고 아울러 전문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벌써부터 졸업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50여년 동안 오로지 항공우주 분야의 외길만 걸어온 한국항공대학교. 첨단 우주항공 산업에 필요한 전문 일꾼을 양성하는 데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항공대에서 ‘강한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