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전세사기로 무너진 ‘주거 사다리’ 빌라, 정부 대책에도 반응은 ‘미지근’

[Special Report | ‘시계제로’ 부동산시장] 아파트 가격 대비 27%인데 외면받아…

  • 김미리내 비즈워치 기자 pannil@bizwatch.co.kr

    입력2024-09-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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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은 투자매력도·전세사기·열악한 환경에 수요 하락

    • 시장 침체 일로, 아파트 대비 거래량 13.3%

    • 8·8주택공급대책 나왔으나… “빌라 수요가 없다”

    • “아파트 수준 거주 환경 목표” 뉴:빌리지 사업에 이목 쏠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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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0월 수도권에서 1139채에 달하는 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하다 사망해 대규모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를 촉발한 이른바 ‘빌라왕 사건’이 터졌다. 전세 제도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른 기점이다.

    이후 집값이 하락하며 ‘무자본 갭투자’로 빌라, 다세대, 오피스텔 등을 매입한 ‘제2의 빌라왕’ 사태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역전세, 깡통전세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사기’가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만 올해 8월 기준 2만 명을 넘어섰다. 피해가 커지며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초기 대응이 미흡해 제도의 구멍만 드러났다. 아울러 구제를 기다리다 견디지 못한 피해자 일부가 세상을 등지면서 ‘빌라 포비아(공포증)’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6월 23일 서울 마포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6월 23일 서울 마포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주거 사다리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빌라

    아파트보다 가격이 저렴해 서민·청년들의 ‘주거 사다리’ 노릇을 해온 다세대, 연립주택 등 빌라는 이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주택 1954만6299가구 가운데 단독·다세대·다가구·연립이 차지하는 비중은 34.3%, 670만 가구에 달한다. 아파트(64.6%, 1263만 가구)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빌라에 거주하는 셈이다.

    최근 주택 거래량을 보면 빌라 시장은 침체 일로다. 한국부동산원 주택거래현황에 따르면 7월 주택 거래량은 10만5005건(호), 이 가운데 아파트가 8만6845건으로 82.7%에 달한다. 반면 빌라 거래는 1만1589건으로 전체의 11%에 그쳤다.

    ‌신축도 급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빌라 인허가 물량은 전국 1만8000가구, 서울에선 2000가구에 그쳤다. 이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토부가 집계한 장기 평균 인허가 물량 대비 전국은 26%, 서울은 10% 수준 규모다. 서울만 놓고 보면 새로 들어설 빌라 물량이 90% 감소했다는 의미다.

    착공·준공 상황도 비슷하다. 상반기 착공에 들어간 빌라는 전국 1만7000가구(장기 평균 대비 26%), 서울은 2000가구(14%)다. 준공은 전국 2만2000가구(40%), 서울은 3000가구(26%)에 불과했다. 가격 격차도 크다. KB부동산 데이터허브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2914만 원인 반면 빌라 평균 매매가는 3억3441만 원으로 27% 수준에 그쳤다.

    매매가격에서 전세가가 차지하는 비중인 전세가율(서울)은 아파트가 54%, 연립주택은 70.6%다. 집값이 내려가면 전세보증금 반환 위험이 아파트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즉 오르지 않는 가격, 전세사기에 대한 두려움 등의 얽혀 빌라 기피 현상을 만든 셈이다.

    “8·8 대책으로 빌라 살리기? 효과 미미할 듯”

    정부는 8월 8일 집값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규모 공급책이 담긴 ‘8·8 주택공급대책’을 내놨다. 여기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 시장 정상화 방안도 담겼다. 서울 주택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빌라 시장 회생과 더불어 아파트값 급등 현상을 일으킨 아파트 전세·매매 수요 집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국민평형인 전용면적 85㎡, 공시가격 5억 원 이하 단독주택이나 빌라를 보유한 경우 ‘무주택’으로 간주해 아파트 청약에 유리하도록 했다. 신규 구입자뿐 아니라 기존 주택 보유자도 포함된다. 장기간 빌라에 살았다면 청약 가점이 최대 32점(무주택 기간 만점)까지 오를 수 있다.

    또 2027년까지 신축 빌라를 매입해 임대등록을 하면 취득·종합부동산·양도소득세 중과세를 면제받는 세제 혜택을 준다. 기축(旣築)의 경우 새로 매입해 임대등록을 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받을 수 있다. 민간 임대사업자가 대부분인 빌라 시장에서 투자 수요를 높여 주거 사다리 역할을 회복하겠다는 복안이다.

    부족한 수요는 공공에서 지원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2025년까지 신축 11만 가구 이상 물량을 매입해 임대로 공급할 계획이다. 전세사기로 무너진 임대 시장 신뢰를 공공 물량을 통해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8·8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정부가 기대한 정책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봐서다. 전문가들 역시 수요 진작이 쉽지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특히 청약 시 무주택자 간주 혜택이 오히려 수요가 빠져나가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기존 빌라 보유자에게 아파트로 이동할 ‘급행 티켓’을 주는 셈이라서다.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빌라를 무주택으로 간주해 아파트 청약 기회를 주는 것은 자칫 시장에서 ‘빌라 수요자도 아파트로 가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며 “빌라 시장 정상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급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요가 받쳐줘야 짓겠다는 투자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금리가 높다면 임대사업자 등 투자자 수요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금리 인하가 예고된 데다 전세사기로 전세 수요자를 찾기 어려워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정부가 서울은 한계를 두지 않고 빌라 매입임대주택 물량을 무제한으로 매입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상황에선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임대 물량 공급을 위해서는 투자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빌라는 아직 침체 국면”이라며 “정책에 대한 신뢰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투자 수요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LH를 통한 공공 물량 공급 역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2년 내 신축 매입임대 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시장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아 진행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LH 매입임대 사업에 참여했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LH 신축 매입에는 다양한 요건이 정해져 있어 11만 건의 성과가 나려면 실제로는 3~4배 넘는 신청 물건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일이 사업자를 찾아가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구조여서 LH가 직접 짓는 것과 대비해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린다”고 부연했다.

    정부 대책 ‘뉴 : 빌리지’… “빌라 시장 전환점 될 것”

    5년간 LH가 매입임대로 공급한 공공주택 공급 실적은 연평균 1만8980가구다. 이를 감안하면 2년 내 11만 가구 공급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대표는 “8·8 대책과 관련해 그린벨트 해제 등 문제로 아파트는 공급에 10년 이상이 걸리고, 빠른 공급이 가능한 빌라는 수요가 없다”며 “수요자가 관심이 없어서 지어도 팔리지 않고, 정부가 매입해 준다고 해도 시장 금액과 맞지 않아 사실상 실효성을 갖긴 어렵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뉴 : 빌리지’ 사업 구성안. [국토교통부]

    ‘뉴 : 빌리지’ 사업 구성안. [국토교통부]

    ‌정부가 빌라를 주거 시장으로 육성하기보다 아파트로 가기 위한 공간으로 인식,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해 왔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그동안 대부분 정책은 아파트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같은 인식을 고려한 듯 정부는 빌라 시장 정상화 촉매제로 올해 3월 ‘뉴 : 빌리지’(이하 뉴빌리지) 사업을 내놨다. 낡은 빌라촌의 주택 정비와 ‘아파트 수준’의 주차장, 운동시설, 공원 등을 갖추도록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주차난, 좁은 도로 등 부족한 기반시설과 노후화로 외면받는 빌라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그동안의 정비사업이 아파트로의 전환을 최종 목표로 하던 것과 달리 뉴빌리지는 저층 주거 형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즉 빌라의 문제점 개선을 통해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 정부는 주택정비사업과 연계하면 주차장과 공원 등을 갖춘 타운하우스 형태의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빌라 등 정비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에 국비를 투입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국비는 뉴빌리지 선정 지역에 주차장, 도로, 공원, 체육시설 등 생활·안전시설과 편의·복지시설에 지원된다.

    이 같은 시설을 갖추면 지역당 최대 150억 원을 지원받는다. 빈집이나 공유지를 활용해 주택 건설, 공동이용시설을 설치할 경우 추가로 30억 원을 지원한다. 지자체와 연계해 국비가 지원되는 만큼 최대 360억 원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민간 주택 정비사업 시 갖춰야 하는 법정 주차 대수와 정부가 추가로 지원하는 주차장을 감안하면 빌라촌의 최대 문제로 꼽히는 주차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민간에서 주택정비에 나서면 금융·제도적 지원도 받을 수 있게끔 했다. 민간 자율주택정비 융자(금리 2.2%) 한도를 총사업비의 50%에서 70%까지 높이고 다세대주택 건축 시에는 1호당 융자(금리 3.2%) 한도를 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늘린다.

    ‘뉴 : 빌리지’ 사업 추진계획. [국토교통부]

    ‘뉴 : 빌리지’ 사업 추진계획.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에서 빌라를 개량·신축할 경우 용적률도 법정 상한의 1.2배로 완화한다.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내용을 ‘뉴빌리지 사업 공모 가이드라인’에 담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10월 초 공모해 선도사업 대상 지역 30곳을 연내 선정할 계획이다. 주택정비 내용이 있으면 가점을 주고, LH 신축 매입약정 임대주택 공급지역으로 선정되거나 심사를 받은 경우에도 가점을 부여한다.

    정부 목표는 이를 통해 2029년까지 빌라 5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이다. 선도사업 후보지 공모는 10월 초 진행할 예정이다. 공모 대상은 면적 5만~10만㎡ 사이 노후 저층 주거 밀집 구역이다. 도시 쇠퇴 지역, 소규모 주택정비관리계획 대상 지역 중 저층 비아파트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면 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선도지구는 도시·주택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사업타당성·계획합리성·사업효과 최고 득점을 얻은 지역으로 꼽는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기존 도시재생사업을 민생 중심 노후 저층 주거지 개선사업으로 전면 개편, 양질의 빌라 시장을 활성화하는 전환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바람대로 뉴 : 빌리지 정책이 빌라 시장을 살리는 방향타가 될지, 빌라 수요자를 아파트로 이주하라는 시그널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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