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대만이 그러하듯 대중화경제권으로 편입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유기적인 생존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중국은 1986년 이래 근 15년 동안 WTO 가입을 추진해 왔으며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에는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의 전반적인 경제환경과 무역·산업구조 및 대외관련 정책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며, 지난 20년간 추진해 온 개혁·개방정책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은 1983년 10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옵서버 자격을 얻은 데 이어 1986년 GATT 가입을 신청, WTO 가입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추진했으나 미국과 의견차이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1999년 11월15일 미국과 협상이 타결되면서 WTO 가입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과의 극적인 합의가 바로 중국의 WTO 가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실질적인 걸림돌을 제거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남게 함으로써 WTO 가입을 현실화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어 중국은 지난해 5월 유럽연합과 쌍무협상을 마무리했고, 2001년 7월 초에는 제네바에서 열린 16번째 WTO 가입 협상 작업반회의에서 그 동안 남아 있던 쟁점사안이 타결돼 오는 11월 카타르의 도하에서 열리는 제4차 각료회의에서 WTO에 정식으로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어떤 것들이 달라질 것인가. 현재 거론되는 주요 논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 구조조정 가속화 전망
우선 무역에서는 현재의 중국 제조업 평균 관세율 16.8%를 2005년까지 9.44%로 낮추게 된다. 특히 반도체, 컴퓨터, 통신설비 등 첨단 전기·전자제품의 경우엔 아예 관세를 없애야 한다( 참조). 그리고 수입허가 및 쿼터, 내국인 대우, 국내 생산요소 사용조건, 불투명한 규제, 미흡한 투명성, 불공정한 입찰관행, 기술이전 및 보호 등의 비관세 장벽도 모두 없애야 한다.
또한 유통서비스(도·소매, 회계 및 경영컨설팅, 영상음향, 택배), 금융서비스(은행 및 보험), 정보통신 분야의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참조). 아울러 농산물 부문에서도 중국이 고수해온 고관세, 수량규제, 비과학적 위생·검역기준 등을 완화해야 한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단기적으로는 기회와 위기의 틈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쟁과 시장원리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장기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WTO 가입은 개혁·개방정책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즉 세계 기준에 맞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정비를 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산업구조 측면에서 보면 경쟁에 따른 진입·퇴출 원리가 확산되면서 경쟁력에 바탕을 둔 산업 부문의 구조개편이 단행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이어질 것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고도의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미국 선진업체들이 대거 진출함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파급효과로 중국 전자·정보 관련 산업의 발전과 구조 고도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가전산업은 중국에 진출한 세계 유명 브랜드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가격경쟁력보다는 기술경쟁력 위주로 시장질서가 재편되고, 석유화학산업도 세계적인 다국적기업과 대형 기업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들과 경쟁하기 위한 국내 업체들의 구조재편이 가속화할 것이다. 자동차 부문은 관세가 큰 폭으로 내림에 따라 완성차의 수입이 증가하는 한편, 중국 업체들의 도산, 흡수합병과 같은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체질 개선이 병행될 것이다.
또 법규, 제도, 정책 등의 투명성이 향상되고 시장경제원리가 파급, 확산됨에 따라 사업 및 투자환경이 개선되어 외국인 직접투자도 크게 늘어나, 2005년에는 그 규모가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이러한 변화가 한국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편으로는 관세율 인하 등 수입시장 확대에 따라 대중(對中) 수출이 증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력이 높아지는 중국산 제품과 미국 등의 주요 수출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출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자주 거론된다. 그래서 이런 상반된 효과를 상쇄하면 중국의 WTO 가입으로 인해 우리는 2005년까지 대략 20억달러 안팎의 대중 수출증대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중국의 WTO 가입이 한국의 대중 수출에 끼치는 영향은 한국의 대중 수출상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 인하폭과 중국시장에서의 우리나라 제품과 주요 경쟁국 제품 간의 경쟁력에 따라 좌우된다.
중국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상위 800개 품목 중 관세가 50%포인트 이상 인하되는 품목은 자동차밖에 없다. 관세 인하율이 10∼20%포인트인 품목은 에틸렌 중합체, 도포한 종이와 판지 등이며, 총 257품목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상위 800개 품목 중 32.1%를 차지한다.
관세가 5∼10%포인트 인하되는 품목에는 전자직접회로와 초소형 조립회로 등 218가지가 있다. 800품목 중 34.6%에 해당하는 276개 품목은 관세가 5%포인트 로 인하된다. 관세가 전혀 내리지 않는 품목도 있는데, 정제한 동과 동합금, 석유 잔류물 등 전체의 7.4%가 여기에 해당한다( 참조).
중국의 WTO 가입과 이에 따른 관세 인하가 한·중 간의 수출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연구기관마다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중국의 WTO 가입이 미국 및 세계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는데, 이에 따르면 중국의 WTO 가입시 2005년까지 중국의 수출은 1998년 대비 10.1∼12.2%, 수입은 11.9∼14.3% 증가할 전망이다. 한편 한국의 대중 수출 및 수입은 중국 수출 증가액의 3.2%, 수입 증가액의 12.1∼13.3%만큼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중국의 WTO 가입은 2000∼2005년 누계액 기준으로 한국의 대중 수출을 22.2억∼24.3억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은행은 중국의 수입함수를 추정한 후 가격탄력성과 소득탄력성을 이용,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 동안 중국의 수입 증가액을 예상하고 여기에 한국 수출품의 중국시장 점유율을 적용해 중국의 WTO 가입 이후의 대중 수출 증가액을 산출했다. 그 결과 이 기간 중 중국의 총수입은 260억달러 정도 증가하고 같은 기간에 한국의 대중 수출은 27억달러 정도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중국의 WTO 가입 후 평균관세율이 1995년의 약 36.0%에서 1995년 기준 ASEAN(동남아국가연합) 평균관세율 수준인 15%, 이보다 낮은 10%, 또는 이보다 높은 19% 등 세 가지 경우를 상정해 한국의 대중 수출이 32.1억∼55.5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WTO 가입 후 한국의 대중 수입은 한국의 조정관세 인하에 따른 대중 수입증가 효과와 한국의 대중 수출증가에 따른 수입유발 효과를 합산할 경우 2000∼2005년에 약 3억달러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같은 기간 중 24억달러 정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추정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개선액 16.4억∼17.3억달러, 11.1억∼17.5억달러보다 다소 큰 규모다( 참조).
중국, 제3국 시장 공세 강화
중국의 WTO 가입이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데 있어 우리 상품의 대중 수출입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제3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과 중국 제품의 수출 경합관계다.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 시장 등을 대상으로 한국과 중국의 주요 품목별 수출 경합관계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경쟁력이 높은 품목은 반도체 음극선관 전자총 등 전자부품 및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기, 자동차, 기계류, 철강, 선박 및 고무 타이어, 인조장섬유직물, 공업용 방직섬유제품, 메리야스 편물 등이다. 이들 품목이 대(對)3국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59.7%, 중국이 19%다(1999년).
반면 중국은 변압기, 진공청소기, 카세트 플레이어, 믹서, 라디오, 커넥터 등 일부 전기·전자 제품, 면직물, 신발류, 완구, 가구, 여행용품 등 잡제품과 농수산물에서 우리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품목이 대3국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7.9%, 중국은 35%다.
그러나 의류, 일부 직물(견직물, 인조단섬유직물, 특수직물) 및 일부 가전제품(VTR, TV 및 그 부품, 전기다리미, 헤어드라이어, 마이크, 이어폰, 전동기, 전기모터 등)의 경우 양국간 경합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품목이 대3국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10.3%, 중국이 22.4%다.
에서와 같이 한국이 중국보다 경쟁력이 낮거나 경합관계에 있는 품목의 비중은 약 18%에 불과해 두 나라가 치열한 경합관계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WTO 가입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이 수입하는 주요 전자부품에 대해 관세가 인하될 경우 이들 부품을 사용해 만드는 중국산 전기·전자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결과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중국 제품이 우리 수출품의 영역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WTO 가입으로 인해 중국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중국의 공업구조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산업경쟁력이 높아지면 전기·전자는 물론 석유화학, 철강산업, IT산업의 경우에도 중국 및 해외 시장에서의 제품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WTO 가입이 한국경제에 끼치는 또 하나의 영향은 외자기업의 중국내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중국에서 우리 기업의 사업기회가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각종 제도의 수준이 국제적 시장규범에 맞게 개선됨에 따라 투명성이 높아져 기업의 비자금이 줄고 외자기업에 대한 각종 차별조치가 폐지돼 외자기업도 중국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중국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중국이 무역관련투자조치(Trade Related Investment Measures)를 준수, 수출 의무, 외환수지 균형 의무, 현지 부품 사용 의무가 폐지하면서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할 기회도 커질 것이다. 아울러 무역 및 유통 분야의 개방으로 외자기업들이 중국 내에 자체적인 판매망과 물류망을 구축하는 것이 쉬워지고, 외자계 금융기관 진출이 확대되면서 현지 금융조달 여건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중국 외자기업의 경영여건이 개선되면 중국에서 사업을 펼칠 기회가 확대되고 동시에 더욱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중국의 WTO 가입에 따라 새로 개방되는 분야들은 상대적으로 우리가 비교열위에 있는 첨단 기술분야나 금융 서비스 분야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출입과 직접투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WTO 가입이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그러나 결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항들은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측면의 전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의 WTO 가입은 단순한 무역 투자확대 이상의 의미, 즉 ‘대중화경제권(大中華經濟圈)’의 재편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WTO 가입협상에서 약속한 제반 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 중국경제는 세계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될 것이고, 아울러 자국 경제권의 범위를 ASEAN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권으로까지 확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중국의 WTO 가입은 ‘붉은 자본주의’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지금까지의 중국경제를 세계경제라는 광장으로 내딛게 함으로써 중국경제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1978년에 표방했던 역사적인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경제와 사회를 변혁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며, 세계화·지역화가 가속화되는 21세기의 시대 조류에 부응,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필수과정일 뿐 아니라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견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중국의 WTO 가입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WTO 가입 이후 중국의 향후 행보는 21세기 중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동력이 될 것이다( 참조).
한국의 대중화경제권 편입
경제 지도의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만이 그러하듯 한국경제도 이른바 대중화경제권의 틀 안으로 편입될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유기적인 생존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가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그리고 기업이 생산과 판매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중국의 동향을 일일이 점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향후 중국의 일개 성(省) 기능을 담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석유화학,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 우리의 주력산업에서도 중복투자, 과잉설비 등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일 경제권에서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서로 다른 기업들이 정부의 보호 아래 생존해 왔지만 이 보호막이 사라진 후의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포항제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의 대표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동종 기업들, 그중에서도 상하이 NEC, 상하이 폴크스바겐 등과 같은 외자계 기업들에 비해 얼마나 높은 품질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이 중국경제의 부상과 중국의 WTO 가입에 대단히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오래 전부터 나름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고심해온 것에 비해 우리는 국내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이런 중요한 국제 문제에 대해 너무나 여유로웠던 듯하다. 대중 무역수지 흑자라는 한순간의 단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