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1년생. 오는 10월이면 만 93세가 되는 노인이 활기찬 현역 임상의사로, 분주한 병원 이사장으로, 1년에 10권의 책을 써내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노인운동의 선도자로, 좌중을 울고 웃기는 명강사이자 언론의 단골 인터뷰이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건강비결과 노년기 인생철학, 그리고 ‘인간적 의술’의 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목소리를 한 옥타브쯤 높여 “어서 오너라” 하고 한껏 반기지만, 정작 부부간에는 그런 활기 있는 대화가 없다. 부부끼리 대화할 때는 음정도 낮아질 뿐더러 손님이 찾아와도 반기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짜증스런 표정을 짓기 일쑤다. 그만큼 정서가 메말라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신(甲信)이라는 지역의 ‘미소짓기 모임’은 몇 년 전부터 노부부들, 또는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가까운 사이에 인사 나누기 운동을 전개해 그 지방의 생활문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칼럼의 내용이다.
“인사 나누기 훈련의 다음 단계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사람들에게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는 꽤 시일이 걸릴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부끄러워도 일단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고 나면 두 사람 사이가 의외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친구끼리의 대화를 연습하게 되는데, 겉으로 드러난 상대방의 아름다움이라든가 내면에서 풍기는 인간미를 멋들어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상대의 젊음이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좀더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면 인간관계가 한결 매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이 모임에서는 늘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건네고 감사의 미소를 짓도록 훈련합니다. 우리들이 마침내 이승을 떠나는 순간 ‘신세 많이 졌어. 정말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자연스레 미소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소띤 고인’의 모습이 스며들고, 사별의 슬픔에서도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담담한 필치로 생활 주변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히노하라씨가 쓰는, 이런 내용의 주말 에세이를 기다리는 독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이보다 더 인기 있는 그의 에세이를 한 월간지에서 읽을 수 있다. 히노하라씨는 4년 전부터 ‘이키이키’(‘생생하다’는 뜻)라는 월간지에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 분량의 수필을 연재하고 있다. 생로병사와 같은 일상사를 주제로 나이 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뜻을 쉬운 문체로 풀어낸 글이다. ‘이키이키’는 일반 서점에서 사볼 수 있는 대중지가 아니라 우편주문으로 구독하는 중·노년층 대상의 특수 월간지지만 월 판매부수가 무려 33만부나 된다.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2000년 5월호부터 2002년 2월호분까지를 ‘이키가타 죠오즈’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묶어 펴냈는데, 1년 만에 120만부가 팔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대개 젊은 남녀나 주부를 겨냥한 애정소설 따위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노년층이 선호하는 수필집이 밀리언셀러가 된 것은 일본사회에서 대단히 신선한 뉴스였다.
‘이키가타’는 ‘사는 방법’, ‘죠오즈’는 ‘능하다’는 뜻인데, ‘How to live well’이라는 영문 부제가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구수하고 공감이 가는, 그리고 읽고 나면 뭔가 여운이 남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지만, 히노하라라는 한 인간에게 쏠리는 일본사람들의 외경심 또한 이 책을 밀리언셀러로 만든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나이다. 히노하라씨는 오는 10월4일이면 만 93세가 된다. 100세를 목전에 둔 노인이 천의무봉으로 엮어가는 평이한 문장과 친근한 내용이 수백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히노하라교(敎) 교조(敎祖)’
이쯤 되면 독자들은 그의 본업을 작가 또는 수필가쯤으로 추측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지난 30여년간 쓰고 펴낸 책이 무려 235권이라니까. 그중에는 베스트셀러가 수두룩하고 밀리언셀러도 적지 않다.
세토우치 자쿠조라는 여승이 있다. 젊은 시절엔 유명한 작가였고 나이 50이 넘어 출가한 후 30여년간 수도생활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히노하라씨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의 에세이는 어느 것도 판매순위가 1, 2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같은 ‘히노하라 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삶의 지침을 희구하면서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갈피를 못 잡는 일본의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라 평이한 말로 몸과 마음을 제대로 진단해주는 히노하라 선생의 가르침인 것이다. 마치 ‘히노하라교(敎)’가 생긴 느낌이다. 그 교조(敎祖)의 가르침에 신도들이 넋을 잃고 따라가는 형국이다.”
日野原重明<br>●1911년 야마구치(山口)현 야마구치시 출생 ●교토대 의학부 졸업, 동 대학원 의학박사(심장학 전공) ●성루카국제병원 내과과장·원장·이사장 겸 명예원장(現), 성루카간호대학 학장·이사장(現) ●일본의학교육학회 명예회장, 일본음악의료학회 이사장, 세계내과학회 이사 ●저서 :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 ‘신노인을 살다’ ‘의학개론’ 등 235권
1911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부친은 목사) 히노하라씨는 교토제국대 의학부에서 의학박사(내과학 전공) 학위를 받았다. 전문분야는 심장병이고, 관심분야는 예방의학, 건강교육, 허혈성 심질환, 종말의료, 노인의료 등이다. 일찍이 ‘환자 참여 의료’를 제창했고, 이를 위한 의사·간호사 교육에 진력했다. 1973년에는 ‘평생에 걸친 건강 유지’를 목표로 라이프 플래닝 센터를 설립했고,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국제내과학회장이 됐으며(1984년), 1994년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세웠다.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개칭하는 캠페인도 전개했다. 2000년부터는 75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을 위한 ‘신노인운동’을 벌여 현재 3000여명의 회원이 고령화 사회에서 생산적인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2000년에는 베스트셀러 ‘잎사귀의 프레디’를 음악극으로 만들어 본인이 직접 출연했으며,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 ‘삶이 즐거워지는 15가지 습관’ ‘의학개론’ ‘간호·의학사전’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 ‘늙음과 죽음의 수용’ ‘인생 백년, 나의 연구’ ‘생명, 살아가는 것’ ‘생활습관법을 아는 교본’ 등은 널리 알려진 저작이다.
93년의 인생행로에서 히노하라 박사가 무엇보다 관심과 정력을 쏟은 것은 인간이다. 궁극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어떻게 접근하느냐 하는 명제다. 그 자신 수십 년 세월 동안 쉴새없이 일했고 초인적인 건강을 누렸다. 아흔을 넘긴 지금도 빈틈없는 일정표에 따라 움직인다. 아마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일본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다음은 월간지 ‘이키이키’가 2001년 6월의 어느 하루 동안 히노하라 박사를 밀착 취재,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 책머리에 실은 그의 일과다.
“의사는 현장에서 배운다”
·오전 8시30분 : 병원 도착. 바로 회의실로. 차로 이동중 집필하는 일이 많아 차 안은 자료들로 산더미를 이룸.
·8시30분 : 병원 스태프와 업무 일정 의논.
·9시 : 성루카병원 부설 토이슬러(병원 설립자인 미국 성공회 교단 의사 루돌프 토이슬러 박사의 이름에서 따옴) 클리닉에서 중년 남성 상담자를 진단. 상담자가 긴장하지 않도록 흰색 가운을 입지 않음. 1시간 예정이었으나 본인과 가족이 만족할 때까지 40분 더 연장 상담. 토이슬러 클리닉은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해 수술 여부 등을 결정하게끔 이 병원 전문의뿐 아니라 외부의 명의들도 참여해 도움을 준다.
·10시40분 : 병원내 토이슬러 하우스로 이동, ‘아트(Art)로서의 의료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잡지사의 취재에 응하다.
·11시15분 : 토이슬러 하우스에서 거래은행 사람들을 면담하고 병원 이사장실로 향하다.
·11시40분 : 이사장실에서 음악요법에 관해 신문사의 전화 취재에 응하다.
·오후 12시10분 : 점심을 들면서 병원 스태프들과 업무 논의. 점심은 우유 한 팩과 쿠키 3개 정도.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요청받은 과제에 대해 몇 장의 색종이에 메모를 하다.
·1시 : 병원 맨 윗층에 있는 완화 케어 병동(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병동)을 1시간 반 동안 회진하다. 그는 “의사는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소신에 따라 지금도 완화 케어 병동과 일반 병동을 주 1회씩 회진한다. 입원한 후 1∼2주 만에 사망하는 환자도 있으므로 완화 케어 병동의 환자와 가족들에겐 잔여 생존 기간이 매우 소중하다. 따라서 사망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병상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판독해 이를 데이터로 보존하는 방법을 젊은 의사들에게 가르친다. 환자들에겐 “어떻게 지냈습니까”라든가 “어떻게 되기를 바랍니까”처럼 환자의 삶을 부각시키는 질문을 던지도록 의사들에게 조언한다.
·2시30분 : 토이슬러 하우스에서 의료보험제도의 위기상황에 관해 통신사의 취재에 응하다.
·3시15분 : 다시 토이슬러 클리닉에 가서 2명의 상담자를 진찰. 1명은 30분, 다른 1명은 50분.
·5시 : 빠른 걸음으로 간호대학 회의실로 이동. 5층까지 단숨에 뛰어오른다. 성루카대학의 미래 구상을 주제로 1시간 동안 격한 토론을 주재하다.
·6시10분 : 회의를 마친 직후 병원 구내식당으로 이동, 회식을 겸한 일본종합검진(인간도크)의학회 회의에 참석.
·8시25분 : 일과를 끝내고 지하주차장으로.
이처럼 빡빡한 병원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면 작가로서의 일과가 기다리고 있다. 독서와 원고 쓰기가 그것. 2002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살아가는 방법의 선택’에는 히노하라 박사와 젊은 여가수 시마다 가호의 대화가 나온다. 다음은 그 중 일부로, 히노하라 박사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朴權相<br>●1929년 전북 부안 출생 ●서울대 영문학과·미국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 논설위원·편집국장·영국특파원·논설주간·고문 ●시사저널 편집인 겸 주필, KBS 사장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석좌교수, 일본 세이케이대 객원연구원 ●저서 : ‘자유언론의 명제’ ‘영국을 생각한다’ ‘미국을 생각한다’ 등
히노하라 : 오늘 새벽 4시 반까지 원고를 쓴 후 목욕을 하고 5시에 잠자리에 들었죠. 7시에 일어나 병원에 출근, 8시 반에 회의에 들어갔다가 이곳으로 온 거요. 내 목소리가 좀 갈라지죠? 두 시간밖에 안 자서 그럴 거예요.
시마다 : 엣? 믿기지 않는데요.
히노하라 : 밤 10시부터 아침까지 쓰면 400자 원고지로 25매쯤 쓸 수 있지. 원고 마감에 대지 못할 것 같으면 철야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 달에 두서너 번은 꼬박 밤을 세우죠. 그렇지 않는대도 잠자리에 드는 것은 대개 새벽 한두 시지. 5시간 자면 돼요. 젊었을 때부터 그랬어. 토요일에는 지방에 가서 강연하는 경우가 많고. 작년엔 7월부터 10월까지는 매월 외국에 가서 1주일 정도씩 일했어요.
시마다 : 식사에는 어느 정도 신경 쓰십니까.
히노하라 : 난 아침식사는 안 해요. 오늘 아침도 주스와 밀크커피뿐이었어. 오늘은 무척 바쁜 날이에요. 이 대담이 끝나면 바로 세다가야에 가서 노인회 모임에서 강연해야 하니까 자동차 안에서 우유 한 팩과 쿠키 세 개를 점심으로 먹게 되지.
시마다 : 그것만 드셔도 되나요?
히노하라 : 아침과 점심은 그래요. 제대로 챙기는 것은 저녁식사뿐이지. 하루에 1300kcal를 먹으니까 엄청나게 싸게 먹는 거지. 정말 식비가 필요없어.
대단한 사람이다. 보통사람은 생각하기 어려운 생활양식인데, 그것도 젊은 시절에 익힌 습관이란다.
히노하라 박사가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한 것은 25년 전 일이다. 일본 정부는 6년 전에야 이를 받아들였다. 예방의학에 역점을 두고 보면 습관과 질병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인과관계가 있다. 이와 관련해 몇 해 전 그가 히로이게 학원의 히로이게 모토다카 이사장과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소년 시절에 습관화된 것은 대개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법입니다. 그것은 마치 수목의 겉껍질에 새겨둔 글씨가 그 나무가 성장하면서 함께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병에는 4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전자에 의한 것입니다. 색맹 등이 그런 예인데, 이는 유전자 연구가 진전되어 유전자 교환이 가능해지면 극복됩니다. 두 번째는 환경에 의한 것입니다. 물이나 공기의 오염, 나쁜 세균의 유행 등이 원인이죠. 세 번째는 경제적인 원인입니다. 돈이 없어 의료혜택을 못 받는 경우입니다. 네 번째는 안 좋은 습관입니다.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비만해지고 당뇨병이 생깁니다. 염분을 과다 섭취하면 고혈압과 위암의 원인이 되죠. 이처럼 어릴 때부터 되풀이된 식생활과 행동, 습관이 병을 만드는 것입니다.”
“1957년 후생성은 고혈압, 심장병, 암과 같은 질병이 40∼60세 사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 걸 알아내고 조기 발견을 목적으로 ‘성인병’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병에 안 걸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20년 전부터 성인병을 ‘습관병’으로 고치자고 제안했습니다. 1998년 정부도 마침내 이를 수용해 ‘생활습관병’으로 개칭했습니다.”
“생활습관병이라는 명칭이 보급되면 누구나 자기의 생활습관이 이대로 계속되어도 좋을지에 대해 신경 쓰게 될 겁니다. 이게 열쇠입니다. 인간은 습관을 고칠 수 있거든요. 새는 나는 방법을 못 고치고, 육상동물은 기는 방법과 달리는 방법을 못 고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는 방법을 고칠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새로운 습관을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새로운 행동을 반복해 새로운 자기를 형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활습관 때문에 생기는 질병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3년치 스케줄 수첩’
히노하라 박사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매우 흥미로운 신문기사 하나를 접했다. 지난 2월22일자 ‘마이니치신문’ 기사로 제목은 ‘3년치 써넣는 스케줄 수첩’이었다.
“(히노하라 박사는) 성루카국제병원과 간호대학 등 6개 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하루 18시간 일하며 1년에 백수십회의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3년치 일정을 미리 써넣은 수첩이다. ‘나의 3년 후 일정이 기입되어 있으니 이게 없어진다면 몇백만원을 빼앗긴 것보다 아까울 겁니다. 내 몸의 일부 같은 것이죠’라는 것. 예컨대 내년 10월21일에는 히로시마에서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씨와 만날 예정이라고 쓰여 있다. 원자탄 피격 60주년을 맞아 두 사람이 음악과 강연으로 세계에 평화의 메세지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히노하라 박사는 장수의 비결을 ‘운동과 환경’으로 요약했다. 박권상 경원대 석좌교수(오른쪽)와 대담하고 있는 히노하라 박사.
히노하라 박사를 만난 곳은 토이슬러 하우스. 20여층의 웅장한 병원 건물 앞에 꽤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아담한 목조 3층 건물이다. 70년전 병원 설립자 토이슬러가 지었다고 한다. 약속시간인 1시 반에 현관문을 두드렸다. 선생은 대형 카메라 앞에서 대여섯 명의 NHK 스태프와 면담중이었다. 1시40분쯤 되어서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악수를 나누면서 보니 온유한 인상이다. 흰머리는 물론 얼굴에 잔주름도 별로 없었다. 기미나 검버섯도 보이지 않았고, 하얀 얼굴에 약간의 홍조를 띠고 부드러운 미소를 품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꼿꼿한 체구에 움직임이 가뿐했다. 누가 그를 보고 90 넘은 노인이라 하겠는가. 고작 회갑을 갓 넘긴 듯한, 건장한 초로의 맑은 표정과 조용한 말투가 포근한 인간미를 풍긴다.
그는 60세를 눈앞에 둔 1970년 3월31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일본내과학회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적군파에게 납치됐다. 일본도를 빼든 적군파 9명에게 납치되어 승객 106명이 3박4일간 김포공항에서 기내에 구금되어 있었던 이른바 요도호 사건이다. 납치범들은 전원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해 전원이 폭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히노하라 박사에게도 당시는 일생에서 가장 위급한 순간이었다. 그는 무사히 풀려난 후 “지금까지의 목숨은 내 목숨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제2의 인생이다”고 선언했다. 요도호 사건으로 첫 질문을 시작했다.
요도호 사건으로 인생관 전환
-당시 저도 동아일보에서 요도호 사건 취재를 지휘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아슬아슬한 3박4일이었죠. 그때 이야기부터 들려주시겠습니까.
“벌써 34년이나 됐군요.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북한 군복을 입은 이들이 ‘일본 적군파 환영’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더군요. 저는 창밖으로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보고 그곳이 평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막 내리려고 하는데 열일곱 살의 살의 소년 납치범이 ‘스톱! 속았다’며 소리를 질렀어요. 셸(Shell) 주유소며 포드 자동차가 보인다면서 납치범의 우두머리에게 한국이라고 보고를 한 것이죠.”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향하던 요도호는 적군파들의 손에 들어간 뒤 일단 후쿠오카에 들러 어린이와 노약자 23명을 내려놓고 나머지 106명의 승객을 실은 채 평양으로 기수를 돌렸는데, 조종사가 꾀를 부려 김포에 착륙했다. 사전에 지상과 연락을 취해 김포를 평양으로 위장, 적군파를 속이고 승객을 구출하려는 작전이 전개된 것. 그러나 이를 간파한 적군파가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아 4일간이나 대치했다. 결국 적군파는 일본 국회의원 한 사람을 인질로 해서 평양으로 갔고 승객들은 풀려났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범인들에게 증오심은 없습니까. 살아남은 납치범들이 곧 일본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인데요.
“(증오심은) 없습니다. 당시 인질들은 오히려 납치범들을 도우려 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가진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이 위험해지니까요. 무슨 말이든 시키는 대로 들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인터내셔널 혁명가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심리상태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하잖아요. 납치범과 인질들이 서로 동화해 한 마음이 되는 것이죠. 함께 도와주고 함께 살고 죽는다는 심정이 되는 겁니다.
후쿠오카에서 평양으로 기수를 돌렸을 때 납치범들은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들은 평양을 거쳐서 쿠바에 혁명을 배우러 간다고 하더군요. 읽을거리가 필요한 승객에겐 책을 빌려주겠다고도 했어요. 적군파 팸플릿, 김일성 전기, ‘카라마조프 형제들’ 등을 내줬는데,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빌렸습니다. 3박4일 갇혀 있는 동안 밤마다 그 책을 읽었습니다. 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모두들 잠을 이루지 못했거든요.”
이 사건을 겪은 후 그의 인생관은 크게 달라졌다. 무사히 집에 돌아오자 수백 명의 친지들이 화환을 보내 그의 생환을 축하했는데, 그때 무심코 이 꽃들이 조화(弔花)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3박4일 동안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돌아온 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고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생께서 쓰신 많은 책 가운데 급히 대여섯 권을 골라 대충 읽어봤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삶이 즐거워지는 15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인상적이더군요. 요점을 간략하게 부연해주시죠.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살아가는 방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만약 내일부터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내일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하면 끊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좋지 못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기에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베르그송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진리를 잊고 있다’고 했습니다. 딱한 일이에요.”
-스스로 노력해서 습관을 고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좋은 습관을 가지면 병을 예방할 수도 있죠. 그런 개념에서 제가 제창한 것이 ‘인간도크’라는 것입니다. 1955년부터 시작했는데, 상담자를 면밀하게 검사한 뒤 일주일 정도 입원시켜 생활지도를 하는 것이죠. 요즘은 입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검사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길어도 하루 정도면 모든 검사가 끝납니다.”
-개인적 경험 등을 고려할 때 과연 장수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우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 다음은 환경입니다. 먹는 것도 환경, 사는 것도 환경, 친구들도 환경, 종교도 환경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갑니다. 제가 90을 넘어서도 현역 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제 자신이 가장 놀라고 있습니다. 공부하느라, 글 쓰느라 밤을 세우는 날도 많아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건강비결은 없지만, 좋은 습관을 몸에 익혔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마음의 습관을 익힌 것이죠. 어려운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불과 15가지의 습관으로 정리했는데, 이게 제가 오늘날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요인입니다. 그러니 15가지 습관은 제 인생의 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15가지 습관’에서 노인들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른바 ‘신노인’ 개념을 여러 차례 강조했더군요.
“그렇습니다. 65세에 은퇴를 한 다음에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면 75세가 된 후에 직접 행동으로 옮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75세는 돼야 노인
히노하라 박사의 신노인 운동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그는 60세를 인생의 종착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농경사회의 낡은 사고방식이라며 이를 철저하게 배격한다. 이제는 60세를 노령기가 아니라 중년으로 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50세가 채 못 됐다. 그랬으니 60세란 ‘50 인생’이 끝난 후에 얻는 ‘여생 10년’이라는 개념이 적절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생활이 개선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남성이 78세, 여성은 85세를 넘었다. 평균수명이 30년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쯤 되면 60세라는 나이가 갖는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과거의 60세가 지금은 90세인 것이다. 남성의 경우 평균수명이 78세라고 해서 지금 60세인 남성이 앞으로 꼭 18년만 더 살게 된다고 할 수는 없다. 평균수명은 0세에 죽은 갓난아기까지 포함해 계산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60세까지 산 사람은 20대나 40대에 죽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력이 센 체질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60을 넘긴 사람의 ‘평균여명’은 이미 죽은 사람들의 그것보다 길게 봐야 하므로 지금 60세인 사람은 평균수명이 78세(남성) 또는 85세(여성)보다 훨씬 길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정년퇴직 후에는 하루 8시간의 노동에 매여 살 필요가 없다. 하루 8시간을 자기의 뜻대로 자유롭게 설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훨씬 속 편하고 즐거운 인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연금까지 받으니 기본적인 생계는 보장돼 있다.
“지금 환갑을 맞은 일본인 중에 체구가 빈약한 노인은 보기 힘듭니다. 혈색도 좋고 걸음걸이도 당당합니다. 스포츠도 즐기고 해외여행에도 나섭니다. 기력도 체력도 충분해 ‘노인’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아요. 1956년 발족한 일본노년의학회는 55세를 ‘향노기(向老期)’, 60세 이후를 노인기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10년도 못 가서 노인기 시작시점을 65세로 조정했지요. 지금은 노년의학회는 물론 상당수의 사회학자들도 75세를 노인기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20여년 전 ‘신노인 운동’의 깃발을 올렸고, 2000년에는 ‘신노인의 모임’을 조직했다. 이 모임에는 심신이 건강한 75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한다. 그들을 지역별로 조직, 함께 컴퓨터를 배워 어린이들에 전수하기도 하고, 대형 병원에서 도우미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동호인들끼리 테마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노부부간 ‘사랑해요’ 인사 나누기도 신노인 운동의 일환이다.
“신노인의 모임 회원들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벌써 3000명이 넘었어요. 지부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컴퓨터교실, 합창단, 시청각모임을 만들어 즐겁게 활동하고 있죠. 어린이들에게 젊은 시절 겪은 전쟁 이야기나 불행한 과거사 얘기를 들려주는 교실도 열고 있습니다. 또 하나 힘을 기울이는 것은 자원봉사 활동입니다. 우선은 병원과 노인 시설을 중심으로, 예를 들면 호스피스 병동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경우만 해도 환자는 20명인데 자원봉사자는 80명 정도 됩니다.”
자원봉사 원장님
세계적인 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선 노인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래서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호(介護)제도가 있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의 집을 찾아가 식생활을 돕고 의료혜택을 베풀어주는 사회보장제도다.
그러나 여기에도 자원봉사의 손길은 필요하다. 히노하라 박사에 따르면 2025년에는 개호제도를 필요로 하는 인구가 무려 520만명에 달한다는 것. 정년퇴직 후 나이 60이 넘고 삶에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가장 보람있는 일이 자원봉사 활동이라고 한다.
이 점에서 일본은 미국에 한참 뒤진다. 미국에서는 대략 4000만명이 자원봉사에 종사하고 있다. 인구비례로 따진다면 일본의 자원봉사 인구가 2000만명은 돼야 하는데 아직은 어림없는 숫자라는 것. 미국의 경우 웬만한 대형 병원 한 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가 몇백명이나 되지만, 일본 병원에는 전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있다 하더라도 그 수는 극히 적다.
그런 면에서 히노하라씨가 이끄는 성루카국제병원은 ‘예외 중의 예외’에 해당한다. 520개 병실을 갖춘 이 병원에선 35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단연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이라면 자원봉사자가 500∼600명은 될 것이라는 게 히노하라 박사의 지적이다. 환자보다 자원봉사자가 많기 때문에 자원봉사자 한 명이 1주일에 한 번씩만 병원을 찾아도 환자는 거의 매일 한 번씩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92세의 히노하라 박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12시간씩 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적극적인 자원봉사 활동이다.
10여년 전, 그가 심혈을 기울인 성루카국제병원의 새 병동이 완공됐다. 520개 입원실이 모두 1인실로, 일본에서 처음 시도된 환자 중심의 의료시설이었다. 히노하라 박사는 원장직을 맡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65세 정년제 조항이었다. 당시 그는 80세였다.
히노하라 박사는 정년제 규약에 위배된다며 원장직 취임을 사양했다. 그러자 병원 간부들은 궁리 끝에 “자원봉사자로 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냐”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병원측은 “자원봉사자이되 풀타이머로 일해달라”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자원봉사니 급여를 받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1주일에 한두 번 출근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도 없는 일.
결국 그는 풀타임 자원봉사직을 받아들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일할 테니 간부 여러분도 월요일에는 아침 7시30분에 회의를 시작해 모두가 자원봉사자로 한 시간 일찍 일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모두가 동의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병원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 선두에 희생정신으로 충만한 ‘히노하라 노인’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
-나이 들어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고령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할까요.
“예컨대 자신의 활동을 어린이들에게 환원시킨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컴퓨터를 배워서 어린 손자에게 가르친다든지 함께 음악을 즐기거나 하는 것도 좋죠. 그렇게 해서 어린이들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노인들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면 어린이들도 인생에 희망을 갖게 되고 생명의 소중함도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노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노인이 늘 지녀야 할 수칙이 있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요긴한 수칙이라 할까, 특히 나이 든 사람이 유의해야 할 수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창조적인 마음가짐으로 늘 생산적인 생활을 지향한다. 둘째,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도록 함으로써 생생한 삶을 이끌어간다. 셋째,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보다 인간적인 인간이 된다. 이 세 가지는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이지만 특히 신노인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일본과 같은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에 대한 예절과 대접이 긴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요즘 일본에선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군요.
“부모들의 2세 교육이 부족한 게 원인입니다. 일을 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자녀들을 가르칠 기회가 줄어들게 된 거죠. 특히 최근에는 한 자녀 출산이 보편화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자랍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라도 노인들이 어린이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경험한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모임을 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이런 것이 신노인의 역할이라고 봐요. ‘Don’t’로 시작되는 말로 아이들을 속박하는 지금까지의 설교식 교육에서 탈피해 자연, 사회, 역사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또 열 살 안팎의 어린이들과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꼭 지켜야 할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절대로 설교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5세 이상의 노인들 중 가능한 사람에겐 어린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도록 권장하기도 합니다. 신노인 운동의 핵심은 1세대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3세대인 손자, 손녀가 함께 손잡고 활동하자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인생 80세 시대’인데, 이런 시대에 어떤 고령자상(像)을 그려볼 수 있겠습니까.
“일본은 이제 곧 세계 제1의 노인대국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를 포함해 국가 전체가 활력을 잃어버리기 쉽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더욱 젊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인들이 지력, 체력, 창조력을 발휘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노인이라고 하면 ‘끝난 인생’이라고 치부해왔고, 이에 안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사는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오슬러 박사가 모델
공자는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나이 마흔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쉰 살에 천명을 터득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가 하는 심오한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90세를 넘게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생 백년’까지 염두에 둔다면 느긋하게 80세쯤에 지천명하겠다는 목표로 행동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도 선다. 공자님 말씀보다 30년쯤 순연시켜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히노하라 박사의 활기찬 현역 인생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으레 믿고 따라온 인생의 모델이 있게 마련이다. 모든 예술행위도 모방에서 시작한다. 피카소 같은 천재화가도 젊었을 때는 명화를 모사(模寫)했다고 하지 않는가. 천재도 스승을 철두철미 모방한 끝에 독창적 세계를 그려보이는 것이다. 히노하라 박사의 모델은 윌리엄 오슬러 박사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미국 의사다.
-선생께서 스승으로 삼았다는 오슬러 박사는 어떤 분인가요.
“오슬러 박사는 184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몬트리올대 의학부를 졸업했고 유럽에 유학한 후 35세 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존스홉킨스대학에 의학부를 만들어 의학 연수교육 모델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그는 강의 내용을 모아 ‘평온한 마음’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의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안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자를 만나도 말이죠.”
‘Art of Medicine’
그가 오슬러 박사를 알게 된 것은 의사가 된 후 병원 부속 도서관에서 우연히 뇌외과학의 권위자 쿠싱 박사가 쓴 ‘윌리엄 오슬러의 생애’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이 전기물은 퓰리처상을 받은 역작.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라는 오슬러의 말에 끌려 마음의 평온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후 오슬러에 관한 모든 저작물을 빠짐없이 탐독하고 연구했으며, 마침내 ‘의학의 길을 찾아’라는 전기도 저술했다. 오슬러는 의학에 대한 과학적 접근 못지않게 인간적인 의료의 실현에 무게를 뒀다고 한다. 다시 말해 ‘Science of Medicine’에서 한발 더 나아가 ‘Practice of Medicine’ ‘Art of Medicine’에 역점을 둔 것이다. 의학에는 ‘사이언스’와 ‘아트’의 양면성이 있는데, 여기서 ‘아트’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시대부터 거론된 것이다. 환자를 과학의 대상이라기보다 인간성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개념이다.
“오슬러 박사는 의사를 양성하는 중요한 과정인 레지던트 제도를 만들었는데, 환자를 각별히 중요시한 분입니다. 의사는 문제가 생긴 ‘장기(臟器)’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앓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므로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만 임상의의 임무를 다 할 수 있다고 확신했죠.”
‘Art of Medicine’에서 ‘Art’는 환자와 의사 간의 인간적 교감을 뜻한다. 의사가 환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성실하게 대화를 나눔으로써 신뢰관계를 수립해야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와 거리감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의사의 행동과 제스처, 언어, 그리고 환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의사와 간호사의 투시력 같은 인간적인 접근을 강조한 것이 오슬러의 의술이다.
히노하라 박사는 오슬러라는 우상에 다가가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는 오슬러가 존경한 17세기의 의사이자 신학자 토마스 브라운이 쓴 ‘의사의 종교’도 수없이 읽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스승의 스승까지 모셔다 배운 것이다. 그리고 90세가 넘도록 오슬러와 브라운의 교리를 실천하고 있다.
누에고치에서 실 나오듯 쓴다
약속한 면담시간이 끝났다. 인터뷰가 끝나고 2시 반에 만나기로 한 손님 서너명이 약속시간 10분 전에 들이닥첬다. 준비한 질문의 절반 이상이 남아 있었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현역 임상의로 환자를 돌보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92세의 고령이지만 웬만한 50∼60대 의사보다 기력이 더 좋아 보입니다. 백수(白壽) 정도가 아니라, 요즘 평균수명에 30년을 보탠 110세까지는 사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금도 주 3일은 오전과 오후에 각각 3시간씩 직접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눈도 밝고 다리도 튼튼하거든요. 일본에 100세 이상 노인이 2만561명 있습니다. 종전 10년 후인 1960년대에 128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미국에는 100세 이상 인구가 6만명 가량 된다고 해요. 이는 제대로 관리만 하면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몇일씩 밤을 새며 원고를 써도 끄떡없는 체력과 정신력이 부럽습니다. 글 쓰는 일이 고통스럽진 않습니까.
“저녁 10시부터 아침 5시까지 쓰면 400자 원고지 25매 정도는 채웁니다.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집필하고 있습니다만, 젊은 시절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밤새 글을 쓰다 보면 조금은 살이 빠지죠. 젊을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며 책상 앞에서 끙끙 앓기도 했는데, 70이 넘으면서부터는 누에고치에서 실이 나오듯 그다지 힘들지 않게 글이 술술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공부는 언제 합니까.
“매일 밤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책들을 읽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현재 230권 이상 출판했는데, 인세는 전액 자원봉사 활동에 사용합니다. 강연내용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하고요.”
-70세부터 저서가 쏟아져 나왔으니 매년 1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는 셈입니다. 모두 대필자 없이 손수 쓴 것입니까.
“전부 직접 썼습니다. 요즘은 컴퓨터에 대고 말을 하면 글자로 옮겨지는 프로그램도 나와서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는 출입문까지 따라나와 정중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만면에 지어 보였다. 어딘가 성스럽기까지 한 여운을 남기면서.
지금껏 수많은 인물과 인터뷰를 했지만, 이렇듯 스스로 맑고 깨끗해짐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