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황수관 박사 찹쌀수제비

삼복더위에 신바람 난 ‘찰옹심이’를 아시나요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08-26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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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에겐 ‘웃음보’라는 게 있다. 한번 터지면 주체하기 힘들다. 심하면 눈물이 난다. 간혹 부작용도 발생한다. 기진맥진, 그 뒤에 찾아오는 허기. 한여름, 그 속을 채우는 데 찹쌀수제비만한 음식도 드물다.
    황수관 박사 찹쌀수제비
    황수관(黃樹寬·59) 신바람 건강박사의 트레이드마크는 ‘웃음’이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한번 웃으면 수명이 이틀 연장돼요. 웃음이 면역기능에 관여하는 임파구나 세포를 자극해 면역력을 높여주는 거죠. 체내에는 650여개의 근육이 있는데 웃을 때 231개의 근육이 동시에 움직입니다. ‘마음의 조깅’인 셈이죠.”

    황 박사의 설명대로라면 그는 잠잘 때를 빼곤 항상 조깅하고 있는 셈이다.

    항상 웃고 다니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2000년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 마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직후의 일이다. 당시 당직을 맡고 있던 황 박사는 당사에서 우연히 이희호 여사와 마주치자 평소처럼 환하게 웃으며 안부 인사를 건넸다. 이 여사는 그날 오후 청와대에 들어가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물었다고 한다. “황 박사 당선됐나요?”

    보는 이가 오해할 만큼 편안함과 기쁨을 전해주는 황 박사의 웃음, 그건 결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기나긴 질곡의 세월 속에서 찾아낸 ‘깨달음’이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이듬해 부모의 품에 안겨 국내로 들어왔다. 그의 부모가 터를 잡은 곳은 경북 경주 인근의 안강. 아버지는 일본에서는 그런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지만 귀국 후에는 논 열다섯 마지기를 일구는 가난한 농사꾼일 뿐이었다. 그런 농사꾼의 아들로서의 고달픈 삶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7남매의 맏아들로.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고등학교까지는 장학금을 받아 그럭저럭 다녔지만 대학이 문제였다. 당시 2년제였던 교육대학이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1966년 첫 발령지는 대구 내당초등학교.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새로운 도전의 길을 찾아 나서게 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1974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한 그는 졸업 후 다시 경북대 교육대학원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황수관 박사 찹쌀수제비

    찹쌀반죽으로 옹심이(새알)를 빚고 있는 황 박사 가족. 왼쪽부터 며느리 박소정씨와 아들 진훈씨, 황 박사, 부인 손정자씨.

    인체의 신비는 그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1981년, 의대를 졸업하지 않아 의대 대학원 입학자격이 없던 그가 선택한 길은 경북대 의대 생리학교실 조교였다. 그로 인해 그가 감내해야 할 고통은 너무도 컸다. 14년간 이어온 교사생활을 접고 그 사이 어렵사리 마련한 집도 학비와 책값을 대느라 팔아치워야 했다. “이사하던 날 아내가 집 기둥을 잡고 울더군요.”

    그와 아내, 두 딸과 아들. 다섯 식구는 전세와 사글세를 전전해야 했다. 가난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1986년 9월 그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는다. 평소 별다른 감정 없이 다니던 교회에서 어느 날 한 외국선교사의 강연을 듣던 중 한 마디가 그의 가슴을 벅차게 내리쳤던 것. ‘항상 기뻐하라. 그것이 주님의 뜻이니라’. 이때까지 황 박사는 무뚝뚝한 표정에 산적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 해맑은 웃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황 박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삶이 즐거운 것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많이 했다. 물론 처음엔 너무나 어색했고 우락부락한 내 몰골도 형편없이 구겨져버렸다. 그런 심각한 표정으로 웃는 연습을 하는 내 모습이 우스워 히죽 웃고 말았는데 그게 바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었다.”

    황수관 박사 찹쌀수제비

    ◀수제비 국물을 우려내고 있는 황 박사.<br>▶찹쌀반죽을 하고 있는 황 박사와 며느리. 황 박사의 며느리 사랑은 남다르다.

    그 후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다음해 경북대 의대 교수임용에서 탈락했지만 곧바로 연세대 의대 생리학교실 부교수로 임용되는 행운을 안았다. 전화위복인 셈이다. 그리고 1997년 발간한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건강법’은 그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황 박사의 강의에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안 됐다고 실망하지 말라. 돌아서면 곧 좋은 일이 있으니까.”

    어려울때나 지금이나 한여름이면 변함없이 황 박사 가족의 허기진 속을 채워주는 음식이 있다. 전형적인 경상도 음식인 찹쌀수제비다. 찹쌀은 예부터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곡물로 여겨져 왔다. 찹쌀은 보통 삼계탕에 넣거나 찰밥, 찰떡 등으로 만들어 먹는데 아밀로펙틴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소화가 잘될 뿐만 아니라 기력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먼저 찹쌀을 씻어 3~4시간 물에 불린 다음 물기를 빼고 믹서로 곱게 간다. 찹쌀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한다. 반죽이 끝나면 옹심이(새알)를 만든다.

    황수관 박사 찹쌀수제비

    서울 시내 한 교회에서 초청강연 중인 황수관 박사. 그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긴 단어는 ‘smiles’이다. S와 S사이에 1마일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국물은 멸치와 다시마, 무, 대파, 양파 등을 넣어 우려낸다. 국물이 끓으면 불린 미역과 옹심이, 감자 등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옹심이가 동동 뜨면 다 익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시원한 국물에 찰지면서도 부드러운 옹심이의 맛이 일품이다. 찹쌀수제비는 보통 뜨겁게 먹지만 차갑게 식혀 먹는 것도 별미다. 시골에선 큰 솥에 한가득 끓여놓고 아무 때나 속이 출출하면 부담 없이 먹는다는 것. 열무김치나 동치미와 궁합이 딱 맞다.

    황 박사는 요즘 각종 모임과 단체의 강연, 방송 및 광고출연 등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많을 땐 하루 280여건에 달하는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정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황 박사는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691표차로 석패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다시는 나가지 말라”며 울먹이던 부친의 당부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때문에 2004년 4·15 총선 때 황 박사는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부본부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펼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국구를 신청했다가 당 공천심사 과정에서 지역구 출마를 강력하게 권유받았지만 부친과의 약속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

    하지만 황 박사는 내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뜻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국민경제와 민생이 어려운 때에 정쟁만 일삼고 있으니 참 한심해요. 정치가 건강해야 국민과 이 나라가 건강해집니다. ‘신바람 정치’를 꼭 한번 펼쳐보고 싶은데…. 아버님을 설득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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