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찰떡궁합 박근혜와 ‘수요모임’, 영남 다선 밀어내나

  • 글: 이명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gun43@donga.com

    입력2004-08-25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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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한나라당 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반(反)박근혜 모임인 국가발전연구회가 소속 의원간
    • 의견 차이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반면 반대편에 선 수요모임은 영남권 의원들의 견제를 받으며 조심스레 당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
    찰떡궁합 박근혜와 ‘수요모임’, 영남 다선 밀어내나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남경필 원내 수석부대표가 여야 원내대표회담 결과를 박근혜 대표에게 보고하고 있다.

    “선배, 이대로 중국에 안 갑니다.”8월6일 정오 서울 여의도 맨하탄21 빌딩의 한 중국 음식점.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의원에게 ‘중국 방문 불가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홍 의원 특유의 고음에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이들을 흘끗흘끗 쳐다봤다.

    이들은 한나라당 내 의원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 소속으로 당초 이날 오전 중국으로 출국해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주한 중국대사관이 5일까지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아 중국 방문이 연기됐다. 이들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던 것.

    홍 의원은 중국측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한 중국을 방문할 수 없다는 논지를 폈다.

    “우리가 보통 관광객이면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각자가 헌법기관 아닙니까. 중국이 의도적으로 홀대한 것을 알면서 굽히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에 김 의원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홍 의원, 그 말도 일리가 있는데 다른 면도 있어. 고구려사 문제도 다뤄야겠지만 북한과 관련된 것도 알아볼 게 있으니 일단 갑시다.”

    이 의원도 “중국대사관이 고의로 비자 발급을 늦췄다는 심증은 있지만 증거는 없어. 오늘 오전 비자가 발급됐으니 일단 고구려 유적을 보러 가는 게 어때”하며 김 의원을 거들었다. ‘명분’은 홍 의원에게, ‘실리’는 이 의원과 김 의원에게 있었다.

    홍 의원은 그러나 “문수 선배, 이렇게 중국에 가면 공안들이 계속 따라다닐 게 분명한데 가봤자 뭘 챙길 수 있겠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의 논쟁은 30여 분이나 계속됐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홍 의원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시선을 테이블에 고정한 채 입을 다물어버렸다. 결국 그는 다음날 이 의원과 김 의원이 탄 중국 상하이행 항공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이 세 의원은 곧잘 ‘대여(對與) 강경파 3인방’이란 한 묶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앞에서 봤듯이 이들은 단일한 대오(隊伍)가 아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최병렬(崔秉烈) 대표 체제에서도 그랬다. 지난해 말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정국을 휘감았을 때 이 의원과 홍 의원은 각각 비상대책위원장과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아 대여 공세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올해 초 이 의원은 당무감사 자료유출에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후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최 대표 퇴진운동을 벌였다.

    반면 홍 의원은 최 대표가 대표직을 떠날 때까지 최 대표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또 김 의원은 최 대표가 지명한 총선공천심사위원장직을 맡았다. 공천 과정에 “최 대표의 의중에 따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버텼다.

    세 의원은 박근혜(朴槿惠) 대표와의 관계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 의원은 박 대표를 ‘독재자의 딸’로 규정한다. 최근 그는 박 대표를 상대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공개적인 반성을 촉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박 대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비주류’로 굳어졌다.

    대여 강경 3인방, 이명박 지지하나

    김 의원은 이와 조금 다르다. 박 대표는 7월19일 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재선된 직후 김 의원에게 당 개혁 및 원외 인사들의 조직화와 관련된 중책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를 거절했다.

    그는 8월12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박 대표는 군부의 강탈 논란이 일고 있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즉각 사퇴해야 한다. 또 수도 이전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천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나와는 뜻이 달라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박 대표를 막다른 코너로 몰지는 않는다. 대여 대응 및 당 운영 방식에 대해 비판하더라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표현은 삼간다.

    홍 의원은 7월22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박 대표가 대안이 된다면 또 다시 나는 당과 나라를 위해 대여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그 며칠 전만 해도 이 의원과 비슷한 기조로 박 대표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3인방으로 묶이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당 안팎에선 3인방이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의 대권행보에 동참하고 있지 않으냐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 의원이 염두에 두고 있는 대권 후보는 따로 있다는 것.

    발전연에는 3인방 일부를 포함한 다른 전선도 있다. 이 의원과 김 의원, 재선의 박계동(朴啓東), 초선인 고진화(高鎭和) 의원이 그 축이다. 이 4명은 모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곧잘 국회 도서관 옆의 공사장 식당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한나라당에서 “발전연을 쭉 짜면 5, 6명만 남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의원은 발전연을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처럼 보수 이념의 중심이 되는 연구재단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가 박 대표를 대하는 방식은 3인방과는 좀 다르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면 “박 대표를 도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액션을 취한 적은 없다. 그는 박 대표의 대권후보 검증 작업이 당내가 아닌 밖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전연의 중심은 3인방과 박, 고 의원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상에 있다는 게 당내 다수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발전연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삼가고 있다. 세(勢)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박 대표 중심의 주류와 어긋나는 행보가 발전연의 이름으로 행해질 경우 부담을 느낄 발전연 소속 의원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발전연은 7월26일 출범 2개월을 맞아 의원 간담회를 갖고 “발전연은 특정인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계파 모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모임이 3인방 중심의 ‘반(反)박 대표 계파’로 비치는 데 대해 모임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재오 의원은 이 자리에서 “박 대표에 대한 비판은 발전연과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오 의원은 발전연의 의원들과 함께 정치풍자 연극을 공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기엔 발전연의 성격이 당내 계파 구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수요모임과 박근혜의 만남

    당분간 발전연은 정책 연구모임으로서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상대적으로 3인방의 색깔이 워낙 튀기 때문이다. 게다가 3인방은 모두 “이제는 3선으로서 ‘내 정치’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어서 발전연의 변화 시점은 당내 대권 레이스의 시동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큰 폭의 권력쟁투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구심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엔 발전연과 대치되는 지점에 남경필(南景弼) 원희룡(元喜龍) 권영세(權寧世) 정병국(鄭柄國) 의원 등 소장파 중심의 ‘새정치 수요모임’이 있다. 대표는 정 의원이다. 수요모임은 8월4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박근혜 대표와 식사를 했다. 이날 자리는 수요모임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대표님, 국가 정체성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시죠.”

    “전면전은 대표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의 중심이 너무 부실합니다. 중요한 일을 누구랑 상의하시나요.”

    “당명 개정은 왜 안하십니까. 수구 세력에게 밀리면 안 됩니다.”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은 이날 대표에게 대여 대응 및 당 운영 방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박 대표가 속내를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박 대표는 대여 대응 방식과 관련해 “여러분이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박도 했으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요모임 의원들은 자리를 끝내며 “다음번엔 대표님이 우리를 초대하시죠”라고 제의했고 박 대표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이날 모임에서 오간 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수요모임 의원 대다수는 박 대표에게 호의적이다. 비판에도 애정이 담겨 있다. 박 대표와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3인방과는 거리가 있다.

    남경필과 전여옥의 진실 채팅

    수요모임의 구심점은 남경필 원희룡 의원이다. 남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으며 원 의원은 최고위원이다. 원 의원은 7월19일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를 제외한 대표최고위원 경선 출마자 중 최고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당 내에선 두 사람의 관계를 ‘전략적 제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선 본인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최근 이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남 의원이 전여옥(田麗玉) 의원과 인터넷 공개 채팅을 하며 원 의원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이다. 두 의원은 7월27일 오후 10시 ‘17대 국회 2개월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주제로 채팅을 했다.

    전 의원이 “3선인데 왜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남 의원은 “원 의원과 역할 분담을 했다. 저는 원내, 그는 최고위원”이라고 답했다. 원 의원은 7월9일 오후 전격적으로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그날은 경선 후보 접수 마감일이었다. 그 전날만 해도 원 의원은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당내에선 7월9일 오전 홍준표 의원의 갑작스런 경선 출마 선언에 소장파가 자극을 받았다는 분석이 많다. 소장파 중에서도 특히 남 의원이 원 의원의 경선 출마를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홍 의원은 이날 밤 경선 출마를 번복했다. “수도권 출신 의원끼리, 더욱이 후배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이유였다. 3인방과 소장파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경쟁심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소장파가 3인방에게 모두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채팅에서 전 의원이 “김문수 의원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순수한 분이죠”라고 말하자 남 의원은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화답했다. 김 의원이 올해 초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게 된 데는 소장파의 강력한 지지도 한몫했다.

    반면 지난해 10월 불법 대선자금 정국에서 당 비대위가 만들어지고 이재오 의원이 당 사무총장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자 한 소장파 의원은 “비대위가 아니라 국보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소장파와 이재오, 홍준표 의원은 대여 대응방식을 놓고 자주 부딪혔고 서로 공개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박근혜 대표가 3인방 중 김문수 의원에게만 주요 당직을 맡아줄 것을 제안한 점과도 연결해 생각해볼 대목이다.

    또 전여옥 의원은 채팅에서 “완벽한 시나리오로 원내외를 장악했느냐”고 물었고 남 의원은 “뒷걸음질치다 쥐 잡았다. 원 의원은 망설였지만 뜨거운 피는 감출 수 없었다”고 답했다.

    남 의원은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또 동물적인 정치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30대이지만 3선 의원으로서 중량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중이다. 남 의원은 이날 채팅을 통해 소장파의 개혁성을 과감히 드러냈다.

    “우리 자신을 먼저 반성하고 특히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저지른 과거의 과오를 겸허히 받아들여야죠. 먼저 광주에 대해 한나라당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전제돼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재 보궐선거라는 작은 전투의 승리에 도취해 있어요. 당명(黨名) 개정 반대가 많잖아요.”

    수요모임엔 당의 ‘전략가’로 급부상한 초선 박형준(朴炯晙) 의원도 있다. 그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박 대표가 구상중인 ‘당 개혁 3개년 계획’의 실질적인 입안자다.

    영남파 “수요모임이 당 망친다”

    박 의원은 항상 ‘대선 승리’에 초점을 맞춰고 있다. 여당과의 사상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수’ 대신 ‘선진화’를 내세워 이념적 중간지대를 선점하고 미국 정당의 ‘전국위원회(National Com- mittee)’ 조직을 본뜬 원외조직을 만들어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그는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편을 설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유연성에 점수를 주는 의원이 많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 수립 능력을 따지자면 남 의원과 원 의원도 박 의원에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요모임은 최근 농활(農活)을 다녀왔다. 또 광복절을 맞아 8월14일 1박2일 일정으로 독도를 방문해 광복절 기념식을 가졌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 이만큼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의원모임은 없다.

    수요모임은 비교적 오래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권력투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젊은 초·재선 의원이 많기 때문이다. 소속 의원들의 성향이 균질한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수요모임은 16대 국회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미래연대’의 후신이나 마찬가지다.

    수요모임은 영남권 중진급 의원들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수요모임이 당명 개정 추진 등 당의 변화와 유연한 대여 대응 방식 등에 있어 지나치게 앞서나가고 있다는 게 보수적인 영남권 의원들의 판단이다. 최근 영남권 의원 일부는 박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수요모임이 당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요모임과 보수적인 영남권 의원들 간의 갈등은 당의 개편을 초래할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요모임 소속 일부 의원은 사석에서 “저들(영남권 의원들)과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숨기지 않는다.

    올해 3월 최병렬 대표를 사퇴시킨 힘의 중심에도 소장파가 있었다. 당의 개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권구도 변화에도 수요모임이 적잖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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