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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린다 김의 6시간 인생고백

린다金 6시간 육성고백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린다 김의 6시간 인생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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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무기중개 로비스트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난 프로젝트를 보면 스터디부터 해요. 시작하는 단계에서 ‘난 졌다’고 자기최면을 걸어요. 일단 졌다는 자세로 출발하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무기중개업은) 정말 여성에게 권유하고 싶은 일이에요. 남자들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여성들은 섬세하거든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요. 그런데 남자들은 늘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려요. 그러다 끝판에 일을 망치죠. 1%의 변수로 일의 성패가 갈리는 게 무기중개업입니다.”

린다 김은 한국 정부의 무기구매사업에 대한 인식과 추진방식에 불만이 많다. 그녀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무기구매방식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즉흥적이며 게다가 억지까지 쓴다.

“한국측이 요구하는 ROC에 따르면 세상에 그렇게 좋은 무기는 없어요. 내가 한국 정부에 얘기해줬어요. ‘이건 불가능한 장비’라고 말이죠. 어떻게 360도를 돌면서 모든 각도에서 물체를 다 찍을 수 있는 레이더 장비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억지를 써요.”

린다 김에게 유쾌하지 않을 질문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여전히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앉아 있다. 배가 고플 만도 한데 오로지 인터뷰에만 집중하고 있다. 바로 이런 태도가 그녀가 그토록 강조하는 프로 근성일까. 기자의 목구멍에서는 아까부터 ‘이양호’라는 이름 석자가 꾸물꾸물 넘어오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잔일 터.



―당시 기무사는 린다 김과 이양호 국방부장관과의 관계를 추적했습니다. 이장관은 최근 언론에 “두 번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털어놓았는데요.

“제가 그 양반과 자려고 맘먹었다면 왜 두 번만 잤겠습니까. 아, 그렇지 않아요? 남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다 알잖아요. 한 번 갖고 나면 흥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그래 놓고 편지는 또 뭡니까. 대개의 남자들은 관계 후엔 관심이 없어지지 않나요?(그녀는 자신의 말에 이해를 구하듯 기자의 눈을 잠시 응시했다. 기자는 그녀의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안 맞는 것도 같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업상 수많은 남자를 만나야 하는데 어느 특정인과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쩜 그렇게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지.”

―이양호씨도 가정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직후 내게 전화해 왔어요. 미안하다고. 중앙일보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다. 이건 참 도대체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어이가 없더라고요. 화를 크게 냈어요. 어떻게 한 나라의 장관을 지낸 사람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이씨 말이 중앙일보가 ‘이것(성관계) 만 인정하면 언론이 잠잠해질 것이다.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거예요. 그 말을 믿고 두 번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집에 가 생각하니 자기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전화를 걸어 ‘내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진실을 밝혀라’고 말한 겁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번 감옥을 경험해본 사람은 다시 갇히는 것을 무척 두려워한다고 그래요. 이씨는 다시 감옥에 가는 일이 생기는 것보다 차라리 집에 가 무릎 꿇는 쪽을 택한 겁니다. 그 사람은 언론 노이로제에 걸려 있어요.

“바보인지, 순진한 건지”

―이양호씨가 뭔가 구린 구석이 있어서 그것을 덮기 위해, 말하자면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그런 주장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까.

“잘은 모르지만 이씨는 돈을 받거나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돈 욕심이 없고 순수한 측면이 있어요. 기자들한테 말린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이씨는 언론을 통해 “린다 김에게 이용당했다. 질이 나쁜 여자다”며 악담을 했는데요.

“당시 내가 몇 년 전 헤어졌던 남자와 재결합한 일을 두고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양호씨에게 ‘오해’를 줄 만한 언행을 한 적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고선….

“오해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 양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실제로 좋은 분이에요. 무척 따랐고 나중엔 삼촌이라고 불렀죠. 이번에 그 분에게 아쉽고 실망한 부분은 사건이 터지고나서 저에 대해 좋게 평가한 K전의원과 달리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점입니다.”

―이양호씨는 “린다 김은 다른 방법으로 로비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은 자기 삶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한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나는 그걸 가볍게 받아들였고. 사업자 선정이 끝난 뒤 2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어요. 사업이 끝나고 나서 자기한테 전화 한 통 없으니 화가 났을 겁니다. 전화번호 바꾼 것이 또 오해를 샀을 테고. 일을 진행할 땐 그렇게 자주 연락하다가 딱 연락이 끊기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사실 우리가 도청으로 걸렸기 때문에 일절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장관은 내가 헤어졌던 사람과 재결합한 일을 알고 나선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을 수 있냐’고 화를 냈어요. 오해할 만도 한 게 재결합 시기가 백두가 끝난 직후였거든요.”

이양호씨와 린다 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편지. 김씨가 이씨에게 보낸 편지엔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다음의 구절이 눈길을 끈다.

‘경솔했던 제 행동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과 신앙심으로 우러나는 약간의 죄의식과 또다른 한편으로는 정직한 감정의 표현이란 결코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복잡한 모순에 싸여 조금은 산란함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지금 세간의 관심사는 이양호씨와 주고받은 편지인 듯합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편지가 공개됐다고 생각합니까?

“1년 전 자기 이름을 한상만이라고 밝힌 50대 남자가 이양호씨를 찾아왔답니다. 자신을 FBI다, 뭐다 그런 식으로 기관원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편지들을 보여주더래요. 그러면서 자기한테 미국 변호사 비용으로 12만∼15만 달러 정도만 주면 편지뿐 아니라 ‘권병호 문제(무기중개상인 권병호씨는 96년 대우중공업으로부터 3억원을 건네 받아 그중 1억5000만원을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까지 모두 해결해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자기 은행계좌까지 알려줬대요.

이양호씨는 무척 순진한 분입니다. 투명할 정도로 순수해요. 그런데 너무 그렇다 보니 남의 말을 잘 믿는 경향이 있어요. 올 3월 한국에 들어와 만났을 때 이씨가 그 사람 얘기를 꺼내면서 ‘한 번 그렇게 해볼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아이구, 무슨 말씀이세요. 뭐 그런 기관원이 다 있고, 무슨 변호사 비용이 12만, 15만달러나 해요. 다 거짓말이에요. 사기꾼 같은 사람한테 속지 마세요. 또 그런 사신(私信)이 법적으로 걸릴 게 뭐가 있어요. 특히 미국같이 사생활 보호가 잘되는 나라에서요’라고 했어요. 그 사람이 금진호 전의원도 찾아갔더군요. 그런데 금씨는 ‘무슨 소리냐’며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고 해요.”

무기중개상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린다 김은 그 한상만이라는 인물을 무척 벼르고 있었다. 한씨 스스로 ‘교포 사회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하기에,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해보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일 끝내고 미국에 들어가면 그 인간부터 찾아낼 것”이라고 ‘전의’를 다졌다.

―그렇다면 한상만이라는 사람이 편지를 훔쳐간 건가요? 혹시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로비스트가 흘렸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나는 그렇게 꼼꼼한 성격이 아니에요. 편지가 오면 나중에 답장 쓸 것은 비서한테 맡기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은 그냥 책상 서랍에 넣어둬요. 이번에 공개된 편지 중에서 내가 이양호씨에게 보낸 것은 일종의 초안이에요. 일단 한 번 쭈욱 적어 내려갔다가 오자도 있고 글씨도 예쁘지 않아 다른 편지지에 옮겨 적어서 보내곤 했거든요. 그 중에서 먼저 (연습 삼아) 썼던 것이 밖으로 새나간 거지요. 그렇지만 (상황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아닐 거라고 확신해요. 10년 가까이 함께 일한 사람들인데, 그런 식으로 나를 곤경에 몰아넣진 않았을 거예요.

편지를 유출시킨 게 혹시 로비스트였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는 해요. 금강사업 때의 경쟁자였는데, 96년 사업자 선정이 결정된 후 나를 찾아와 “(입찰에서) 지는 순간 죽고 싶더라”고 자기 감정을 토로하더군요. 그 모습이 안돼 보여서, 또 너무 많은 적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사업에 약간의 도움을 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LA 월셔가에 있는 내 사무실을 몇 번 방문한 한 적이 있어요. 그렇긴 해도 증거가 없이 함부로 말할 순 없겠지요.”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린다 김은 자신이 업무를 처리하는 근거지가 세 곳 있다고 말했다. IMCL 본사는 영국 팜바로우에 있고, 한국에는 IMCL지사가 있으며, LA에 있는 것은 개인 사무실이라는 것.

사적인 감정 그때 잘랐어야

―하여튼 그런 민감한 내용의 편지들은 받으면 즉시 태워 버리거나 금고처럼 보안이 유지되는 곳에 보관할 법도 한데….

“난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출장 갔다 와서 비서에게 ‘나중에 답장 쓸 테니 갖고 있으라’고 맡기기도 했죠.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운 내용의 편지들을 뭐 하려고 감춥니까? 이양호씨는 정말 순정파예요. 첫 편지를 받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어요. 내가 비행기를 타는 시각에 맞춰 쓴 듯한 편지였어요. ‘린다, 지금쯤 당신은 비행기 트랙을 오르고 있겠지. 잠시 후면 당신이 탄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오…’. 대강 그런 내용이었는데, 요즘처럼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 아직 이런 분이 다 있구나 싶어 내심 놀랐어요. ‘유정’이나 ‘무정’, 그런 옛 소설에나 나올 법한 아주 유니크하고 낭만적인 표현 아니에요?”

―이양호씨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린다 김이 이씨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경솔했던 제 행동’이라는 표현은 일반인들에게 오해를 줄 만한 표현이지 않습니까. 이씨에게 오해를 줄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습니까.

“사실 이 양반이 제게 사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딱 잘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비즈니스는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저도 참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아첨인지도 모르죠. 비즈니스 때문에. 그런데 이씨의 편지를 보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어요. 너무 순수한 감정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 나이에 그렇게 순수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놀랍고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빙빙 돌려쓰다 보니 그런 표현이 나온 겁니다.”

―여자로서 그런 경우 처신하기가 쉽지 않지요?

“이양호씨는 업무가 끝난 후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오곤 했어요. 와서 함께 식사도 하고. 아마 수십 번은 드나들었을 겁니다. 관계를 가진 게 사실이라면 두 번만 했겠습니까. 남자쪽에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친구 사이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30% 정도 이런 고민을 안고 사업을 하죠. 딱 자르지도 못하고 난처하죠. 그런데 이런 걸 잘 요리하는 게 프로입니다. 상대 남자가 재미없는 얘기를 잔뜩 늘어놓아도 ‘재미있네요’ 하고 보조를 맞춰주면서…. 삼촌이라는 표현이 왜 나오는 줄 아세요. 가장 친한 사람에게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건 더 이상의 접근을 자연스럽게 막기 위해서입니다. 한번 관계를 맺고 나면 남자들은 ‘넌 내 거야’라고 생각하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일을 하기 힘들어져요. 강한 요구를 하지 못하게 되죠.”

―호텔방에서 밤에 몇 시간씩 남자를 만나는 것은 한국적 정서에서 보면 오해를 살 만하지요.

“내가 묵는 스위트룸은 안방 리빙룸 회의실 등 세 문을 거쳐야 침실로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바보입니까. 막말로 엔조이하려면 젊은 남자와 하지(린다 김씨는 웃으며 ‘이런 건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외국 비즈니스계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일입니다. 내 인생의 반은 한국에서, 반은 외국에서 보냈어요. 그나마 한국에선 사회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호텔방을 오피스룸으로 사용해왔어요. 나와 만나는 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죠. 예를 들면 참모총장과 커피숍에 앉아 얘기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 눈이 있는데. 무슨 마약 거래합니까.”

―경부고속철 사건으로 로비스트의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호기춘이가 무슨 로비스트입니까. 내가 제일 자존심 상하는 게 그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겁니다. 그건 로비가 아닙니다. 브로커 짓이지. 미국에선 로비의 개념이 정착돼 있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아요. (제품을) 잘 설명하는 것이 로비입니다. 그게 한국에선 안 통해요. 개선해야 합니다. 합법적인 로비관행을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해요. 필요하면 대통령도 로비스트를 만나 설명을 들어야 해요. 로비스트가 자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 판매회사로부터 수수료를 올려 받아 그중 일부를 자기네 나라 정부에 갖다주는 겁니다. 일종의 리베이트인데 이를 활용해 이익을 보는 나라도 많아요.”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린다 김은 군관계자들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내는 한편 백두사업 실무자들에게 뇌물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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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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