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측에서 김지사를 공식 초청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번 방문은 사실 오래 전부터 준비된 일이었습니다. 저는 통일정책은 국가적 차원의 큰 틀에서 다뤄져야겠지만 분권적, 미시적 접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방정부나 민간 사이드를 포함한 여러 계층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하고 이런 것이 모아지면 통일에 한층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분단의 당사도(當事道)라 할 강원도의 역할은 어느 지역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98년 취임 때부터 남·북강원도의 교류협력사업을 꾸준히 준비해 왔습니다. ‘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와 그 산하 실무기구인 기획단을 만들었고, 강원개발연구원에 ‘북강원연구센터’를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남북교류지원팀과 함께 강원도남북교류협력기금도 조성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남·북강원도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외형적이고 일회성이 아닌, 내실있는 일을 찾다보니 남·북강원도의 유사한 환경조건을 이용해 공동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씨감자 공동생산, 솔잎혹파리 공동방제, 연어 공동방류사업 등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습니다. 그래서 정부 관련부처와 민간기구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도의 협력사업을 적극적으로 제안했지요. 곧 우리의 뜻이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전달됐고, 마침내 북측에서 실무협의를 갖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 11월10일과 11일 이틀간 금강산 지역에서 첫 공식 실무회담이 열렸는데, 양측이 모두 진지하고 성의있게 협의에 임해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일방적 지원 아니다
―북측에서 상당히 성의있게 준비를 한 것으로 압니다.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이미 방북문제를 협의하는 단계에서부터 북측이 매우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실무자들의 보고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강원도에 도착했을 때 북강원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우리 일행을 직접 영접하는 등 여러 면에서 세심하게 배려하더군요. 평양에서도 민족화해협의회 김령성 부회장(남북정상회담 준비 실무접촉 북측 대표단장)이 우리의 전 일정에 동행하면서 안내했고, 돌아올 때는 원산까지 나와 환송했습니다.
평양에서 민화협 김영대 회장(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정운업 회장과 회담을 가졌을 때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남·북강원도 협력사업을 놓고 북강원도와 민화협, 민경련이 모두 머리를 맞댄 셈이지요. 우리측의 시찰 일정에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시찰 요청을 했던 농업과학원의 씨감자 재배시설과 빙상관 등을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남·북강원도간의 교류협력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북강원도 인민위원회 고종덕 위원장을 비롯한 책임있는 인사들 모두 “강원도는 분단의 아픔을 가장 많이 겪은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느 곳보다 교류협력이 잘 이뤄져야 한다”며 관심을 보였어요.
그래서인지 북한측은 두 가지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기도 했습니다. 도지사 자격으로 최초의 공식 초청방문이라는 점과, 장전-원산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택한 것도 아주 이례적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에 합의한 내용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우선 남·북강원도간의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기본원칙에 합의했고, 우리 도가 제안한 3개 협력사업을 당장 올해부터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씨감자 원종시설 건설과 기술협력 및 품종 상호교환 재배, 금강산지역 솔잎혹파리 공동방제사업, 연어 공동방류와 부화장 건설사업 등이 그것입니다.
합의서에는 ‘그 밖의 상호 관심사가 되는 문제를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한다’는 문구도 있는데,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3개 협력사업 외에 관광 학술 문화예술 체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해나간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북강원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남측 강원도를 방문하기로 합의한 것도 중요한 사실이지요.
지역 공동발전모델 만들 터
이번에 합의한 3개 협력사업은 우리측이 지원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들입니다. 씨감자 사업에선 원종시설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서로 품종을 교환 재배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또한 설악-금강 지역은 같은 산림권역이므로 금강산지역 방제도 남·북강원도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연어 방류도 동해안의 어족 자원을 함께 증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일방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김지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원하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관계는 좀더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형편도 어렵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을 동포애의 정신에서 돕는 일을 놓고 지나치게 잇속만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원과 함께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남북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교류, 협력한다면 평화가 정착되고 나아가 통일의 길도 열리겠지요. 1996년 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으로 침투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때부터 몇년 동안 동해안지역의 경기가 꽁꽁 얼어붙지 않았습니까. 남북의 대치상황과 긴장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지를 절감한 계기였지요.
남·북강원도의 협력사업도 그런 큰 틀에서 봐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계속 협력사업을 펼치면서 세부적인 면이나 방법론에 있어서는 상호 대등하게 균형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라고 해도 중앙 정부와 아무 교감 없이 이뤼지진 않았겠지요? 김지사께선 지난해 말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하셨는데요.
“남북교류는 당연히 중앙정부와 부단히 접촉하면서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북측과의 이번 협의과정에서도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강조했고, 북측도 항상 이것을 앞세웠어요.
정부는 이번 방북이 지역단위 교류협력의 첫 시도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방문 그 자체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봤지만, 협의과정과 방문결과를 놓고 보니 조금 의외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방문경로와 북측의 성의있는 자세, 그리고 최종 합의서 채택 등에서 이렇게 성공적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합니다.”
―이제 남·북강원도 사이에 교류의 물꼬가 터진 셈입니다. 향후 교류가 본격화된 이후의 구상을 들려주신다면?
“무엇보다 3개 협력사업부터 착실하게 실천해야겠지요. 오는 3∼4월경에는 북강원지역에서 연어 공동방류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씨감자 원종시설은 우선 적지(適地)를 선정하는 일부터 서두르게 될 것이고, 6월에는 금강산지역 솔잎혹파리 공동방제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서는 양측 실무진과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남북을 왕래하며 만나야겠지요. 이런 왕래는 이 사업들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이들 사업 외에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면 남북간에 높게 쌓인 벽도 점차 낮아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남북간의 연결교통망 건설사업도 앞당겨지리라 봅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남북 연결교통망의 복원과 함께 지역의 공동발전모델도 연구할 계획입니다.
예컨대 동해안은 동해북부선 철도나 7번국도의 연결로 ‘금강-설악권’을 한 고리로 묶어 국제 관광자유지대로, 양구·인제지역은 생태환경과 평화를 주제로 하는 ‘DMZ 평화생명마을’로 조성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북한도 함께 참여하도록 협의할 생각입니다. 또한 한반도 X축의 중심지인 철원지역은 경원선의 복원을 통해 관광객과 물류의 중심지로, 나아가 평화시로 발전시키는 ‘물류기지모델’로 만들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