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직격탄 “전공노·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4-11-23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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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파업권,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불허돼야
    • 비정규직 완전 철폐 부르짖는 시각은 시장 현실과 괴리
    • 성장-분배 논쟁은 무의미, 양자의 선순환 구조 확립이 시급
    • ‘전투적 실리주의’ 노동운동 관행은 개발독재시대의 투쟁적 타성
    • 나는 노동계와 친한 척하는 ‘감성적 진보주의자’와 다르다
    • 재벌 문제의 핵심은 재벌총수의 경영세습 욕심
    • 노동계, ‘명분없이 들이받다간 머리만 깨진다’는 걸 깨달아야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직격탄 “전공노·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김대환(金大煥·55) 노동부 장관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노(勞)-정(政)간 정면충돌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던 11월9일이었다. 비록 정부당국의 원천봉쇄로 사실상 무산됐지만, 이날 법외노조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은 단체행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11월15일 총파업 돌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편에선 민주노총이 11월 하순경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될 비정규직 관련 정부입법안(‘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에 강력 반대하며, 11월14일 조합원 10만명이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기로 하고 11월6일 파업 찬반투표를 끝냈다. 한국노총도 11월21일 7만명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노동계의 총력투쟁 선언으로 노-정간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팽팽했다.

    비정규직 법안은 11월2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이 의결됐고 같은달 8일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 회부된 다음, 11월말이나 12월초쯤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본격 심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정부는 공무원의 파업권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 아래 노동계의 이번 총파업을 불법적인 ‘정치적 파업’으로 규정하는 한편 노동부와 행정자치부, 대검찰청 공안부 등 관계부처 및 기관들이 파업 찬반투표를 주도한 전공노 집행부에 대해 지방공무원법 위반혐의로 체포영장까지 신청해둔 상황이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임에도 김 장관은 ‘신동아’의 인터뷰 제의를 수락했다. 노-정의 정중앙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그로선 최근 노동계의 공세적 속보(速步)에 예각(銳角)을 세운 주무부처의 입장을 국민여론에 호소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법도 하다. 그는 핵심 노동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장관께선 11월8일 전국 노동기관장회의에서 비정규직 법안, 공무원노조법안 등의 국회 통과에 노력하겠다며 이들 법안의 추진에 반발해 총파업을 강행하려는 노동계의 움직임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 규정했는데, 그렇게 보는 근거는 뭡니까.

    “통상 그 목적에 비춰볼 때 노동운동의 성격은 정치적 성격, 경제적이고 실리적인 성격, 사회적 성격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이번 총파업은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에 관한 게 아니고 제도개선을 위한 새 입법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정치적 색채를 띤 거라 할 수 있죠. 노동계가 정부입법안에 대해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할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국회 입법과정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심의·토론을 통해 조율되도록 해야지, 파업이라는 물리력을 동원해 생산현장에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요구를 관철하려는 건 현행법상 위법일 뿐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얻거나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어렵습니다.

    올 상반기에도 민주노총이 이라크 파병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파업을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곧바로 기자회견을 했어요. ‘이건 명백히 정치적 목적을 가진 불법파업이다. 정치적 파업은 실정법 위반이므로 강경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입법 반대는 명백한 ‘정치적 파업’

    -10월9일 건국대에서 열린 ‘공무원노조 간부 결의대회’를 주도한 전공노 집행부에 대해 체포영장이 청구됐는데, 당시 대회에서 결의된 사항 중 특징적인 게 있나요?

    “그 대회는 파업 찬반투표 돌입 결정을 내림으로써 파업을 예고한 행사였죠. 그런데 전공노는 아직 합법화된 노조가 아니라 노조 준비단계의 조직입니다. 따라서 노동조합 관련법이 아니라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을 적용받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당연히 불법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거죠.”

    -이른바 ‘청주시장 모욕사건(전공노 청주시지부의 일부 간부가 청주시장을 ‘개’에 비유해 물의를 빚은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화운동에 있어 그 목적이나 과정의 순수성과 도덕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됐습니다. 반독재투쟁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과 참여하는 자들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을 땐 도태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민주화된 공간이 열린 상태인데도 그런 사건이 하나의 표현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건 매우 퇴행적입니다.

    나는 9월18일 전공노 대표단이 공무원노조법안과 관련해 면담을 하자고 찾아왔을 때도 ‘노동운동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했어요. 여담이지만, 당시 내가 ‘국민여론의 85% 이상이 공무원에게 파업권을 줘선 안 된다고 한다’고 했더니 그들은 대뜸 ‘그 사람들(국민)이 파업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느냐. 우리(공무원)는 압도적 다수가 파업권을 원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은 공무원이 아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우리는 운동가다’라고 하더군요.”

    -마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장관께서 그날 전공노 대표단과 면담 도중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면서 “(공무원노조법과 관련한) 정부입법안은 전혀 문제없다. 대화할 필요도 없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감정적으로 대처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전국의 전공노 지부 홈페이지마다 그런 요지의 글들이 올라 있습니다. 당시 ‘당신네 집단’ ‘전공노가 의견을 낸다고 그 의견을 내가 다 들어야 하느냐’ 등 장관의 자질이 의심되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하던데….

    “그건 전공노의 언론플레이겠죠. 당시 전공노 대표단이 면담신청을 하길래 ‘만나보자’고 했는데, 그들은 장관 부속실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치 ‘건달집단’-이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을 연상케 했어요. 면담 자리니까 이러저러한 사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앉자마자 자꾸 뭔가 추궁하고 몰아붙이려 했어요. 그래서 ‘왜 추궁하려느냐’고 했더니 장관 자격이 어쩌구 하는 거예요. 전공노가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자기들한테 불리한 부분은 쏙 빼고 각색한 것 같은데, 당시 나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일어서서 ‘면담하러 온 게 아니구만요’ 하고는 나와버린 겁니다.”

    -당시 전공노 대표단 중 일부가 장관부속실 여직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썼다면서요?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음료수를 갖다주니까 뭘 마실 건지 물어보지도 않고 가져왔다고 트집을 잡은 모양입디다. 뭐 이젠 다 지난 얘기지만.”

    “당신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11월8일 전국 노동기관장회의를 마친 뒤, 공무원에 대한 파업권 제한은 위헌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요?

    “헌법에 명시된 내용은 공무원에 대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을 통째 보장하거나 제한토록 한 게 아닙니다. 공무원의 업무성격 등 상황에 맞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돼 있죠. 더욱이 공무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게 세계적 추셉니다. 미국의 몇몇 주(州)가 파업권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주정부가 파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뒀어요. 공무원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은 게 위헌이란 주장은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선진 외국 사례에 비춰보나 맞는 얘기가 아닙니다.

    좀더 부연하면,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노조가 설립된 적은 없어도 법적으론 1948년쯤인가 한번 허용된 적이 있어요. 당시 법 해석에 있어 다수 의견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었던 반면, 소수의견은 단체행동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해요. 전공노가 그걸 어디선가 찾아내 재차 파업권을 인정하라는 것 같은데, 본말이 뒤집힌 얘깁니다.”

    -공무원의 파업권 허용이 현 시점에서 시기상조란 뜻인가요?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허용해선 안 된다는 건가요?

    “앞으로도 그래야 (불허해야) 해요. 외국 사례를 봐도 그렇고. 특히 우리의 노사관계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파업권이 그야말로 최후 수단으로 사용되는 건데, 이를 공직사회에까지 인정한다면 정치적으로, 집단이기주의의 도구로 남용될 우려가 큽니다. 민간 기업의 경우 근로자의 파업권에 대해 직장폐쇄라는 사용자의 대항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정부조직은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원리적으로 봐서도 공무원에게 파업권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법안 시행해도 비정규직 급증 않을 것

    -최근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도 노-정간 충돌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주무 장관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비정규직 문제는 2년 넘게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돼왔고, 정부안은 그런 논의결과를 토대로 마련한 겁니다. 노사단체와도 법안내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해왔어요. 정부안의 주요내용은 지난해 9월4일 노사관계 개혁방안을 발표할 때 이미 알려진 사안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수많은 세부쟁점에 대해 노사가 의견접근을 본 사안이 전혀 없을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난제여서 노사합의를 통한 입법추진이 거의 불가능해요.

    따라서 노동계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다중의 힘으로 정부입법을 저지하려는 건 옳지 않습니다. 아울러 정부입법을 이유로 사용자 대상의 파업을 하는 건 정당성이 없는 불법파업일 뿐입니다. 게다가 노동계 의견은 민주노동당 의원 입법안으로 이미 국회에 제출됐고, 이제 정부안도 제출돼 국회 논의가 시작되려는 상황인데, 입법 자체를 무산시키려 드는 것은 결코 책임 있는 노동운동이 아닙니다. 국회에서도 충분히 노동계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있고 최종 판단도 국회에서 이뤄지므로 국회를 중심으로 합리적 토론을 해야 합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직격탄 “전공노·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김대환 장관은 인터뷰 내내 노동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정규직 정부입법안이 ‘비정규직 확산법’이며 반(反)노동적이라 비판하는 노동계의 불만이 정당하지 않다고 보신다면, 그 근거는 뭡니까. 일본의 경우 1999년 파견근로제를 확대해 4년 만에 파견근로자 수가 배나 늘었다던데요.

    “노동계는 정부안이 시행되면 정규직 근로자도 파견근로자로 대체돼 마치 우리 노동시장이 파견근로자로 가득찰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업에선 핵심인력을 정규직으로 운영하고 있고, 일시적으로 필요하거나 전문적인 직종 등에 대해 파견수요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정규직이 파견근로자로 대체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 이번 정부안에 따라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원칙이 적용되면 파견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관리비 등을 감안할 때, 정규직을 파견근로자로 교체할 경우 사용기업 입장에선 오히려 비용이 더 들어요. 실제 독일 등 유럽에선 파견근로에 대한 비용이 직접고용 비용보다 크다고 합니다.

    지금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도 법에 호소할 수 없지만, 정부안에 따르면 앞으로 이를 시정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생깁니다. 정부안의 상당 부분이 파견근로자 차별해소 및 남용규제 방안이어서 크게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실질적 보호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가 이런 법 취지를 이해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일부 법규정을 확대 해석해 전체 법안을 호도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져요.”

    -그래도 노동계는 정부안이 파견업종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 한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도 명문화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데요.

    “물론 파견업무대상이 늘면 파견근로자는 어느 정도 증가할 겁니다. 그러나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규정이 신설되고, 3년간 파견사용 후엔 그 업무에 3개월간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는 제도(휴지기간)가 도입되므로 우려할만큼 증가하진 않습니다. 현재 파견근로자는 약 10만명인데 전체 임금근로자의 0.7%에 불과합니다. 파견업무 제한이 없는 선진국도 대개가 전체 근로자의 0.7~4.5% 수준이에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관련해서도 노동계는 이를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원칙은 언뜻 비정규직에게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정부안의 차별금지 원칙이 오히려 실효성이 더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업무의 성질, 내용, 책임 및 중요성의 정도 등이 다른 경우가 많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정부안은 포괄적으로 차별금지 원칙을 규정하고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절차를 마련해 폭넓게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해나갈 계획입니다.”

    -비정규직 법안의 일부를 특별법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처벌규정이 강력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노동계의 견해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에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어요. 국내 파견근로자는 약 10만명인데, 이들을 위해 이번에 이 법을 개정하려는 겁니다. 이에 반해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는 394만명에 달합니다. 이들을 위해서도 별도의 법이 필요한 까닭에 이번에 특별법안으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만든 겁니다. 근로기준법 규정은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경향이 있어 정규직과 고용형태가 크게 다른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해선 별도 법률을 만드는 게 옳습니다. 전공노도 특별법인 공무원노조법 대신 일반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는데 전공노든 전교조든 특수상황하의 근로자에겐 특별법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勞·政 관점 다른 이유

    -장관께선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노동계의 시각부터 다르다는 인식을 갖고 계신 듯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는 건가요.

    “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양극화에 있습니다. 정규직은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하고 근로조건도 매우 열악합니다. 따라서 정규직의 유연성을 높이고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과 남용을 규제해 안정성을 높임으로써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균형 있게 맞추는 게 노동시장정책의 해법일 겁니다. 이번에 정부안을 마련하면서 비정규직 보호조치를 강화하면서도 노동시장 전체의 유연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고심했습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사용 여부에 대해선 노동시장 여건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되, 노동시장의 건전한 고용질서 확립을 위해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남용을 규제하는 데 중점을 둔 거죠. 비정규직을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 시각은 시장 현실과는 너무나도 괴리가 큽니다.”

    -‘노사문제는 자율해결이 원칙’이란 지론을 갖고 계신데, 실질적으론 이상론이 아닐까요.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정부가 개별 사업장의 분규해결에 급급해 직접 개입하는 건 노사의 정부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자율해결 관행을 저해해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어요. 따라서 정부는 노사갈등 현안에 대해 법테두리 내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자율해결하도록 하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원칙이 노사갈등에 대해 정부가 수수방관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정부는 노사간 자율해결 역량을 쌓도록 지원하면서 자율해결되지 않을 경우 조정서비스 제공, 불법행위에 대한 조치, 파업시 비상대책 마련 등 국민경제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한 조정자·심판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거죠.”

    원만한 노사관계로 사회비용 줄여야

    -참여정부 들어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이 반복되곤 하는데요.

    “그 얘긴 이제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노동부 장관이자 노동경제학자로서 성장과 분배에 관한 지론이 있을 것 아닙니까.

    “사실 그 부분은 내가 전공잡니다. 노동경제학은 부전공이고 발전경제학이 전공입니다. 발전경제학의 흐름을 봅시다.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는 원조성장론이 대세였습니다. 원조를 통해 성장한다는 거죠. 그후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는 산업화론이었습니다. 농업만으론 안 되니까 이제 공업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 경제성장은 이뤄지는데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죠.

    그래서 1970년대에 나온 게 이른바 ‘분배를 수반한 성장’이에요. 이게 환경문제 등과 결부되면서 주요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게 ‘지속가능한 발전’이고요. 이런 관점에서 계속적 성장이 이뤄지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구조나 토대가 있어야 합니다. 격심한 빈곤이나 격심한 분배 불평등이 있으면 성장 자체가 지속적일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안한 거죠.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건 불합리합니다.

    현 시점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기 위해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겁니다. 그러면 성장잠재력 확충에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동시에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자체가 소득증대로 이어지죠. 즉 분배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경제발전과정에서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인권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다면 거기엔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따릅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게 바로 노사관계입니다. 노사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므로 노사관계의 안정적 발전에도 사회적 투자를 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죠.

    따라서 성장과 분배를 양분해서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해야 하느냐를 정하는 것은 이론적 논의 수준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선 무의미합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기 위해 지혜를 모은다면 사회적 논쟁을 벌일 필요 없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확립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 방식이 여전히 전투적이라고 보십니까. 민주노총의 경우 지난 2월 이수호 위원장 체제 출범으로 과거 단병호 위원장 때와 달리 강성 이미지가 희석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이수호 위원장 취임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가 투쟁보다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등 일정 부분 합리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임단협 과정에서의 시기집중 투쟁이나 이번 비정규직 입법 저지를 위한 총파업에서 보는 것처럼 아직까지 전투적 실리주의 노동운동 관행이 잔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는 일부 대기업·공공부문 노조를 중심으로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투쟁적 노동운동 타성이 그대로 이어져온 데 기인합니다.

    투쟁복, 머리띠, 깃발 등을 앞세운 집회나 점거 등이 대내외적으로 우리 노사관계를 투쟁적·전투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인이죠. 그러면서도 실리 챙기기에 급급해 조직이기주의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런 노동운동 방식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고조되고 있고, 노동계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제기되는 만큼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이는데, 무엇보다 노동계 내부의 자기혁신이 절실합니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는 언제쯤 실현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화채널 조기 복원을 위해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6월4일과 7월5일 두 차례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7월30일 민주노총이 일부 사업장의 직권중재 회부 등을 이유로 3차회의(8월6일 예정)를 유보한 데 이어 8월3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 참여 문제를 내년 1월 정기 대의원대회로 연기했습니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는 그때 결과를 지켜봐야겠지요.”

    분파주의·투쟁문화, 집행부 발목 잡아

    -장관과 이수호 위원장의 노동운동 철학에 공통점이 많다고들 말하는데요(김 장관과 이수호 위원장은 대구 계성고등학교 55회 졸업 동기생이다).

    “그렇죠.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대화와 타협, 노사를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하고 이해하는 관계로 접근하는 점은 일치하죠. 그러나 아직도 노동계 일각에는 도식적 사고방식, 이를테면 자본과 정부를 노동의 적(敵)으로 규정하고 노동이 잘 되기 위해서는 자본과 정부에 흠집을 내야 한다는 논리가 남아 있죠. 민주노총의 조직구조와 분파주의, 198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내부의 독특한 투쟁적 문화 등이 집행부의 발목을 잡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수호 위원장에게 한번 승부수를 던져 강한 리더십을 확보하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만나기도 하고 전화도 종종 하죠. 그런데 난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데 이 위원장은 그렇지 못한지 민주노총 내부 인사들과 같이 나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혼자 좀 와라’고 했더니 나중엔 혼자 나온 적도 더러 있지요.”

    -‘노동운동의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고 있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 속뜻은 뭡니까.

    “노동운동은 그간 우리 사회의 민주화, 경제발전, 약자 보호 등에 기여하며 성장·발전했지만, 신장된 지위에 걸맞은 사회적·법적 책무를 등한시한 채 전투적 실리주의 운동방식을 지속해왔습니다. 최근 이런 노동운동이 더 이상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해 위기에 직면했다는 의미죠. 게다가 점점 심화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노조조직의 다양화로 노동계 내부 조합원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화하는 추세잖아요.”

    나는 ‘친노(親勞)’여서 노동계 비판

    -지난 17대 총선에 즈음해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이 향후 노사관계 개선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신 바 있는데, 7개월이 흐른 현 시점에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아직까진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봐요. 당시 내가 이렇게 얘길 했죠. ‘이젠 국정을 직접 다루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될 테니 도식적이고 분파적인 사고가 아니라 합리적 사고가 가능할 것’이라고.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다 그렇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우선 국회 환노위 소속인 단병호 의원만 보더라도 아직도 민주노총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단 위원에게 이런 얘기도 했어요. ‘지역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 번에도 (노동계) 조직이 국회의원 시켜줄 것으로 아느냐? 그러니 임기중에 소신 있게 의정활동을 하라’고요.”

    -올해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를 마친 소감은?

    “1년간 우리 노동부와 산하단체가 추진해온 여러 업무에 대해 깊이 되새겨보는 기회였습니다. 의원들도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책자료집을 내는 등 나름대로 의욕을 보였고, 그들이 국감에서 제기한 의견 또한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취임 이전 노동계에선 ‘친(親)노동자’적이며 진보 성향인 대학교수가 노동부 장관이 됐다며 기대가 컸는데, 지난 2월11일 취임식장에서 “노동부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문제를 고려해 노사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노동계 인사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요.

    “그 얘기는 노동부로 오면서 한 게 아니고 그 전부터 되풀이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시 재계나 정부측에서 나를 ‘친노(親勞)’라고 하길래 ‘맞다. 친노다. 그건 노동자의 친구란 뜻이다. 친구이기 때문에 노동계를 비판하고 꼬집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친노다’고 한 적이 있죠. 일부 지식인들이 노동계에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진보적으로 비치지 않을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걸 ‘감성적 진보주의’라고 부릅니다. 나는 그런 것과는 다르게 노동계와 접촉해왔고 연구나 활동도 그렇게 해왔어요.”

    -일각에선 전임자인 권기홍 장관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권 전 장관이 재임 당시 화물연대 파업 등을 겪는 과정에서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에 섰던 것으로 압니다. 권 전 장관 스스로도 노동계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는 전제하에 노동계 권익을 향상시키겠다고 한 바 있는데 그건 나와 같은 맥락입니다.”

    -재계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요? 예전 ‘한국재벌개혁론’이란 저서에서 ‘재벌개혁의 핵심은 재벌체제의 해체’라고 주장하신 적도 있는데….

    “그런 소신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과거 독재권력의 문제가 곧 독재자의 문제였듯, 현 재벌체제의 문제는 곧 재벌총수의 문젭니다. 재벌총수가 아들한테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상당 정도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어요. 재계의 경영행태가 예전과 꽤 달라지고 있는 만큼 이젠 재벌총수 스스로 전근대적인 사고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에 비해 노동계의 행태는 과거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무조건 들이박고 보는’ 경향이 남아 있어요. 하지만 명분없이 들이받다가는 머리만 깨진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노동계보다 재계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노동계, 재계, 정부 모두 변화에 적응해 혁신을 해야만 합니다.”

    거칠기 짝없는 노동계 논리

    -장관께서 갖고 있는 노동운동관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글쎄…한마디로 하자면 좀 추상적일 수 있는데 ‘합리적인 노동운동’이라고나 할까요? 노동운동은 필요한 것이지만,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발전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계 내부의 분파문제, 헤게모니 쟁탈, 정치적 위상 제고 등을 위한 운동은 노동계 스스로 철저히 지양해야 합니다. 또한 연구하는 노동운동이 돼야 합니다. 연구를 통해 전문성을 키우는 거죠. 그런데 아직도 노동계가 들고나오는 이런저런 논리는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목전의 이익에 함몰돼서는 노동운동의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취임하신 지 9개월 됐는데, 그간의 소회가 있다면요?

    “현 시점에서 우리 노사관계가 재정립되고 노동행정도 혁신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노사관계가 합리적 틀로 정착되고 그 다음엔 그간 노사관계 쪽에 쏟아부었던 노동행정력이 고용서비스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봅니다. 실업문제가 심각한 만큼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 일자리를 적합한 적성의 구직자에게 연결하는 알선서비스, 직업훈련 등에 신경을 기울여야죠.”

    현 노동정책 중 좌파적인 게 있나?

    -‘노동전문가’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 밑에선 장관의 운신 폭이 그리 넓진 않을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대통령이 노동경제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에 노동부의 노고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합니다. 올해만 봐도 노동문제에 관해 대통령이나 청와대 쪽에서 직접 나선 적이 없지 않습니까. 또 나서지 않는 게 실제 노동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내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일각에선 참여정부를 자꾸 좌파정부라고 칭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만일 좌파정부가 맞다면 그 성향이 극심하게 드러나는 게 노동정책분야일 텐데 현 노동정책 중 과연 좌파적인 게 있나요?”

    -언론매체의 노동관련 보도 태도는 어떻게 보십니까.

    “획일적으로 얘기하긴 어렵고요. 다만 이상하게도 참여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해 노동행정분야에서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나름대로 노사의 가운데서 중립적으로 노동행정을 펴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언론은 노와 사, 노와 정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여전한 것 같아요. 그런 시각은 노사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노동정책이란 게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우선 이해집단이 많고 경제와 노동간 균형을 잡는 문제도 있고, 또 이런 것 모두가 사람에 관한 문제다 보니 섬세한 측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얽힌 문제를 언론이 단순화해버리면 국민에게 노동행정의 이모저모를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애로점이 생기지요.”

    김 장관은 낮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노동관과 경제관을 적극 피력했다. 노동계와 경제계의 정중앙에서 최적의 무게중심을 잡겠다는 그의 야심찬 의지가 어떤 리더십으로 어떻게 발휘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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