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에 또 일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올해 11월 20일에서 11월 30일 사이에 국지전 비슷하게 뻥 터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올해 액운은 끝난 것 아닙니까? 또 있단 말입니까?”
- “좌선하던 중에 그런 장면이 눈에 보였습니다.”
- 필자와 수산도사가 2010년 9월 초순 나눈 대화다.
- 공부한 사람은 작은 일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으나 국가 대사는 예측이 어렵다.
- 고공에서 내려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수산도사는 경남 양산시 영축산 자락의 암자에서 10년간 면벽 좌선을 했다.
- 현재는 만행(萬行) 중이다.
- 선지식을 만나려 세상을 떠돌고 있다.
수산도사.
필자는 6년 전 몸이 좋지 않았다. 필자는 사주를 봐도 2006년은 좋지 않은 해였기에 오래전부터 2006년을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렸다. 2006년은 간지로 병술(丙戌)년이다. 필자는 여름에 태어났으므로 사주가 조열(燥熱)하다. 그래서 물이나 금이 필요하다. 반대로 불이 들어오면 설상가상(雪上加霜) 형국이 되므로 아주 좋지 않은 운을 맞이한다. 병술년은 훨훨 불이 타는 해였으므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6년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과연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 좋을 것인지는 몰랐다. 자동차 사고가 있을지 모르므로 차를 극도로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해외여행도 자제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차 조심을 한 적이 있다.
김재규가 1970년대 중반 도계 박재완 선생을 만나 운세를 본 적이 있다. 도계 선생은 “1979년은 특히 조심해야 할 해다. 풍표낙엽(楓?落葉)에 차복전파(車覆全破)가 되는 해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 점괘를 받은 김재규는 1979년이 되자 자신의 운전기사를 닦달했다. 운전기사가 속도를 내면 “야! 조심해. 천천히 가란 말이야!”라고 주의를 줬다. 도계 선생은 실상 10·26 사건을 예언한 것이다. 한발 더 들어가 차복전파(車覆全破)를 해석하면 ‘차(車)지철은 확인 사살로 화장실에 엎어져서 죽었고, 자신은 전(全)두환에게 파손당한 것’이다.
대만 女도사의 예언
필자는 병술년에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심장에 갑자기 부담이 온 것이다. 일간지, 월간지 등의 원고를 쓰느라고 한 번에 3대의 노트북을 열어놓고 일했다. 과로가 누적되니 심장에 이상이 왔다. 심장도 오행으로 따지면 불(火)이다. 병술년의 불이 들어오니 몸의 오장 가운데 불에 해당하는 장기에 무리가 온 것이다. 액운의 실체는 자동차가 아니라 심장이라는 것을 그해 4월이 돼서야 알았다. 뭐가 오려는가 하고 10년 전부터 걱정했지만 심장에 무리가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인생이 이런 것이다. 필자는 탄식했다. 자기 몸에 이상이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동안 헛공부했구나! 그렇지만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나 혼자 고치자 여겼다. 못 고치면 그것도 운명 아니겠는가.
2000년 중앙아시아의 톈산(天山)을 여행할 때 일이다. 키가 해발 4000m 넘는 설산이 도열한 톈산산맥에 이시쿨이라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이시쿨은 해발 1500m가 넘은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 민족이 아주 옛날에 이 호수와 인연을 맺었다고 해서 신시(神市)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살펴볼 겸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 향했다. 비슈케크도 해발 900m에 터를 잡았기에 8월인데도 날씨가 선선했다. 비슈케크의 노상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옆자리에 50대 아주머니가 한 사람 앉았는데 백인 남자 7, 8명이 이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아닌가. 추종자들 같았다. 아! 뭔가 기운이 있는 아주머니로구나! 교주급이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보니 대만의 도사였다. 대만에서 도교 수행을 하다 인도의 라즈니쉬 아쉬람에서 1년가량 머무른 후 인도 전역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서양인 남자 제자를 두게 된 것이었다. 여자는 영발(靈發)이 대단했다. 여도사는 생전 처음 보는 필자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여도사가 필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유명한 책을 쓸 팔자다(당시 ‘신동아’에 나중에 베스트셀러가 된 ‘명문가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수년 뒤 ‘아나하타 차크라(中丹田)’가 막힐 것이다. 고통이 온다. 이 막힌 중단전을 푸는 것이 당신의 과제가 될 것이다. 중단전이 뚫리면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 내가 그때 닥칠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기 위해 의식을 집행해주고 싶다.”
“방에 저승사자가 있다”
“나는 지금 톈산에 올라가야 하므로 시간이 없다. 사흘 후에 시간이 난다. 그런데 당신은 톈산에서 내려왔으니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할 것 아니냐. 3일 후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줄 수 있느냐?”
“기다리겠다.”
필자는 사흘 후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여도사는 필자에게 중단전을 풀어주는 의식을 집행해주었다.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우면서 신의 가호를 빌었다.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의 낯선 여행자를 위해 사흘이나 기다려준 여도사를 나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2006년 가슴이 아플 때 불현듯 비슈케크에서 만난 여도사의 예언이 생각났다. ‘아 그때 말한 중단전이 막힌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이구나!’ 기병(氣病)이었다.
그즈음 국내 도사를 한 명 만났다. 그가 수산(水山)도사다. 외모가 평범했다. ‘나는 도사다’라고 나타내는 그 어떤 징표도 없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아래다. 상대방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도사는 구체적인 한 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때 필자는 아파트 7층에 살고 있었는데, 수산도사가 필자의 아파트 서재에 들어오자마자 긴장하는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왜 그렇게 긴장합니까?”
“방 안에 저승사자가 와 있네요.”
“저승사자가 와 있단 말입니까. 저 데리러 온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설득해서 일단 밖으로 보냈습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필자가 그동안 수집한 임상 사례에 따르면 사람이 죽기 전에는 대개 한두 달 전부터 저승사자가 그 사람 주위를 따라다닌다. 물론 보통 사람의 눈에는 이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지만 영안(靈眼)이 열린 사람에게는 보인다. 꿈에 죽은 부모나 형제, 또는 조상의 모습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는 그 부모형제가 저승사자다. 나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않아 저승사자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저승사자 말을 듣고 나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에게 “미분양된 아파트가 어디 있느냐? 아는 곳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판단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결단을 못 내리고 어물어물하면 물 건너가는 수가 있다. 이럴 때는 이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사를 하면 번지수가 바뀐다. 번지수가 바뀌면 저승사자도 헛갈려 한다. 반드시 못 찾아온다는 것은 아니다. 꼭 저승사자가 아닐지라도 운이 안 좋을 때는 거주하는 주거 공간, 사무실 등을 옮기는 게 좋다. 그날 택시기사와 함께 미분양 아파트를 물색해 당일로 계약금을 치르고 얼마 후 이사했다. 새로운 장소로 거처를 옮기니 차츰 몸 상태가 호전됐다. 언론 매체에 글 쓰는 일도 줄였다. 당시는 ‘신동아’에 ‘고수기행(高手紀行)’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이사하면서 갑작스럽게 이 연재를 중단해버렸다. 동아일보사에는 이러한 사정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쉰다고 짤막하게 말해줬다. 이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 수도 있다. 수산도사의 ‘저승사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사를 감행했고 결과적으로 사지(死地)에서 빠져나왔다.
수산도사와의 인연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鷲靈山) 자락에는 필자의 글방인 휴휴산방(休休山房)이 있다. ‘쉬고 또 쉬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휴휴(休休)라고 지었다. 어느 날 휴휴산방에 놀러온 수산도사가 산방의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는지 필자에게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조 선생님 뒤에 커다란 붓이 보이네요. 보통 붓이 아니라 아주 큰 붓입니다. 처음 뵈었을 때는 팔뚝 크기만한 붓이었는데, 오늘 뵈니까 그 붓이 더 커져서 작은 전봇대만한 크기입니다. 조 선생님은 큰 붓을 휘둘러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붓을 안 휘두르면 안 됩니까. 붓 휘둘러서 먹고사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드네요. 이거 이 정도에서 그만두면 안 됩니까? 좀 쉬고 싶네요.”
“조 선생님 뒤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서 계십니다. 그 흰 수염의 노인이 아마도 보호령(保護靈)일 공산이 높습니다. 그 노인이 문장을 쓰던 분이었으므로 조 선생님은 평생 붓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팔자를 내가 보아도 나는 문필(文筆)과 인연이 있다. 조상묘를 문필봉(文筆峰)이 보이는 곳에 썼고, 팔자도 목화통명(木火通明) 격(格)이라 글을 쓰는데 적합하고 문곡성(文曲星)과 학당(學堂)이 비추고 있으므로 유·불·선 3교와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글을 쓸 운명이다. 같은 별이라도 문창성(文昌星)은 법학이나 경영학처럼 살아서 빛을 보고 돈이 되는 분야의 글을 쓰지만 문곡성(文曲星)이 조림하면 별로 돈이 안 되는 음지의 분야에 대한 글을 쓰는 팔자가 된다. 어떤 판단이 정확하려면 사판(事判)과 이판(理判)이 일치해야 한다. 사판 다르게 나오고, 이판 다르게 나오면 골치 아프다. 마찬가지로 영안으로 보는 것과 사주팔자를 육십갑자로 풀어서 도달한 결론이 일치하면 그건 확실한 경우다.
“보호령이 위기 때 도와줘”
수산도사에게 물었다
“사람마다 누구나 보호령이 있는 겁니까? 아니면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겁니까?”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분야를 막론하고 보호령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령은 글자 그대로 그 사람을 보호해주는 영(靈)이죠. 보호령이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 위험한 순간에 그 사람을 도와줍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죽지 않고 운 좋게 고비를 넘기는 것은 도와주는 존재가 있는 덕분이에요. 고려 때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이때 고려의 서희(徐熙)가 나가서 소손녕과 담판을 했어요. 국가의 명운을 건 담판이었죠. 서희와 담판을 벌인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철수시켰습니다. 서희에게 설득당한 셈이죠. 이러한 담판에는 알게 모르게 그 사람 개인의 기세(氣勢)가 작용하는 법입니다. 서희의 기세에 소손녕이 제압당했다고나 할까요. 논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기세에 눌리면 자기주장을 제대로 못하는 법이죠. 서희에게도 강력한 기운을 지닌 어떤 보호령이 작용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세가 가장 센 기세입니까?”
“극귀(極貴)한 형태의 기세가 가장 강합니다. 아주 고귀한 형태의 기세를 극귀하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보았을 때 아주 고귀하게 느껴지면 그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적개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듯 적개심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기세가 고귀함이고, 이 고귀함은 고도의 정신 수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수양이 경지에 이르면 고귀한 기세를 자기도 모르게 풍깁니다.”
“자기수양의 경지라는 것은 어떻게 도달하는 경지입니까. 좀 풀어서 설명해주시죠?”
“자기의 에고(ego)가 소멸돼야만 수양이 된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아상(我相)이라고 하죠. ‘나’라는 게 있다는 생각을 없애야 아상이 소멸됩니다. 가장 쉽게 표현하면 자존심입니다. 수양이 된 사람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 없습니다. 항상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합니다. 아상이 줄어들면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차례로 없어집니다. 연쇄반응이죠. 인상은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을 말합니다. ‘저 사람이 원래 내 사람인데, 나를 배신했다. 괘씸하다’ 같은 식의 대처는 인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내 사람이다’라고 집착했기 때문에 상처가 생긴 것이죠. 인상을 없애려면 남을 도와주고도 전부 잊어버려야 합니다. 안 잊어버리면 인상이 발생합니다. 말은 쉽지만 이거 정말로 어렵습니다. 저도 자신이 없어요. 아상을 소멸하는 자기 수양을 해야만 극귀(極貴)한 아우라가 나와요.”
수산도사에 따르면 운이 오는 사람은 담담하고 점잖으며 들뜨지 않고 침착하다. 사안을 인식하는 태도가 운이 오기 전과는 다르다. 종합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주변을 인식한다. 시시비비를 덜 따지고 대립과 분별에도 초연하다. 설령 꼬이는 일이 있더라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타협적인 대안을 마련한다. 화를 내면 타협을 못해 일이 더 꼬이게 마련이다. 운이 오면 사소한 일에 흥분하지 않는다. 대범하게 용서하고 못 본 체하며 넘어가는 처세를 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몸이 피곤을 덜 느낀다는 점이다. 운이 안 좋으면 피로를 빨리 느끼지만, 운이 좋아질 무렵에는 몸의 경락에 기운이 소통되므로 다른 때보다 피로를 덜 느끼는 것이다. 잘나가는 사람의 운을 종합하면 직관이 아주 빠르고 사소한 일에 삐치지 않으며 대개는 보호령이 지켜주고 있다.
반대로 운이 나빠지는 사람은 시시비비 따지기를 즐긴다. 자신만 옳다고 여겨 주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집을 피우면서도 막상 스스로에게 의지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자신에게 의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면이 허(虛)하다는 뜻이다.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뒤집어보면 타인에게 의지하는 셈이다. 자기의 허물과 과오도 타인 탓으로 돌린다. 재물을 소중히 할 줄 모르고 돈의 가치 대신 돈의 위력만 생각한다. 화를 잘 내고 짜증을 부린다. 수산도사는 이런 인품에는 좋은 보호령이 붙어 있지를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악신(惡神)이 붙어 있는 수가 있다. 수준 높은 보호령이 붙어 있으려면 그 사람도 수준 높은 인격을 지녀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격(神格)과 인격(人格)이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생을 보는 능력
그런데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가 작용한다. 전생(前生)이 그 사람의 현생(現生)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삼세인과(三世因果)다. 전생, 현생, 내생이 그물코처럼 연결돼 있다는 세계관이 삼세인과다. 전생의 업보가 현생의 생활습관, 성격, 인간관계에 직·간접으로 관련된다면 전생의 업보를 파악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전생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전생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가? 선천적인 능력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인가? 아니면 그 두 개가 합쳐진 것인가. 전생이 비주얼하게 화면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아니면 스토리로 들리는 것인가? 그리고 전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수백 수천의 전생이 있을 터인데, 바로 직전의 전생만 가지고 현생의 실타래를 설명하는 것인가? 수산도사와 필자는 수차에 걸쳐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필자의 전생이 먼저 궁금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문제가 시급하다. 필자는 중국에서 주로 살았다고 한다. 학자와 관료가 결합된 삶을 여러 번 살았다. 10생(生)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한·중·일 삼국에서 중국이 5, 한국이 3, 일본에 2 정도의 비율로 살았다고 한다. 필자는 중국의 산천과 역사인물,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풍수, 주역, 역사, 유, 불, 선, 족보(族譜). 이 모든 분야가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수산도사는 머리에 문관의 관(冠)을 쓰고, 소매가 길게 늘어진 도포를 입은 내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수생(數生)에 걸쳐 독서를 하고, 문장을 짓고, 세상사 이치를 연구하는 삶을 살았으니 금생에 이러한 방면의 글을 쓰는 문필가로서의 업보를 받았다는 견해다. 학자와 관료의 삶을 살면서도 수시로 명산대천을 찾아 도관의 도사, 사찰의 승려와 교류도 했다고 한다. 그 인연이 현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수산도사의 해석이다. 사람에 따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안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나는 받아들이는 쪽이다. 받아들이면 뭐가 달라지는가? 현재 자기가 하는 일을 운명으로 여기게 된다. 이것이 팔자로구나! 거역할 수가 없구나! 그러면 삶이 달콤해진다. 현재의 괴로운 일도 전생의 업보로 여기면 마음이 편해진다.
전생에 상궁이던 술집마담
언젠가 수산도사에게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에서 큰마담으로 일하는 여자들의 전생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전생 부분은 매우 미묘하기에 도사에게 자주 물어보면 안 된다. 어쩌다 가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예의다.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는 듯 남발하면 도사의 품격이 떨어진다. 중요한 순간에만 물어야 한다. 강남의 큰마담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돈을 벌어 흥청망청 쓰지도 않을뿐더러 제비족에게 잘 뜯기지도 않는다. 그만큼 지혜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 독신생활을 유지한다. 큰마담 중 궁궐의 상궁 출신이 더러 보인다고 한다. 궁궐에서 살았기에 미모도 있고 나름의 격(格)도 있어서 술을 따르더라도 자기를 천하게 대하는 남자와는 거리를 둔다. 절제력이 있다고나 할까. 궁궐 상궁은 시집을 못 간다. 상궁은 나라의 임금을 모시던 직급이다. 그렇다보니 큰마담들은 어지간한 남자는 우습게 본다. 눈에 차는 남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기업 오너 몇몇과 함께 수산도사와 어울린 적이 있다. 오너들과 여행을 가보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감동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홀한 광경을 봐도 무덤덤하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비즈니스할 때 속마음을 드러내면 백전백패다. 그래서 기업가들과 여행을 가면 재미가 없다. 인간은 좋은 곳에 가면 좋다고 감탄사를 터뜨려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로 오너들이 잘하는 게 있다. 술이다. 양주 몇 병을 반드시 가지고 온다. 어떤 물건이나 현상을 보면 ‘저거 돈 되겠다’는 말이 터져나온다. 머리가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 나는 몇몇 오너의 이런 행태를 관찰하면서(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너들이여!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일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로지 사업과 돈,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일부 부자들은 그러한 삶의 패턴을 보이는 겁니까?”
“전생에 똑똑한 머슴들이 금생에 태어나 부자로 사는 수가 있습니다. 머슴으로 살았다는 것은 봉사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죠. 다른 사람 밑에서 뼈 빠지게 일하면서 봉사한 것이죠. 봉사도 공덕이 아니겠습니다. 멍청한 머슴은 큰돈을 만지지 못합니다. 두뇌가 없으면 큰돈 못 만집니다. 전생 머슴 중에서도 머리 좋은 머슴이어야만 금생에 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머슴살이 하면서 얼마나 돈에 한이 맺혔겠습니까. 새경 몇 푼 때문에 갑(甲)으로부터 온갖 구박 다 받고, 쉬지도 못하고, 끊임없이 눈치 보면서 일만 했을 것 아닙니까. 봉사의 공덕, 돈에 대한 집념과 관련한 업보가 금생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머슴이 어떻게 풍류를 알겠어요. 놀아보지를 못했는데요. 그러니까 금생에서도 놀 줄을 모릅니다. 놀 수 있는 심리적 여유를 갖지 못하죠. 풍류를 즐기지 못한다는 겁니다. 놀아봐야 룸살롱에서 술 먹고 술집 여종업원과 ‘재미’ 보는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한 인생입니다.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들여다보면 오만가지 걱정을 끌어안고 삽니다. 특히 과거 여러 생에 걸쳐 천한 일에 종사하며 부림당한 사람은 뼛속까지 돈에 대한 집착과 한(恨)이 맺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색한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 여럿 봤습니다. 금생에 재물을 많이 갖는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기도 하고, 천한 업보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조 선생님이 이런 애기 너무 많이 쓰면 안 될 텐데요. 무시당했다고 성질 낼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대부분 전생에 천한 업보를 쌓은 사람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원래 귀(貴)와 천(賤)이 둘이 아닙니다. 귀가 천이 되기도 하고, 천이 귀가 되기도 합니다. 돌고 돕니다. 전생에 천한 업보를 쌓아 금생에 부자가 됐더라도 금생에서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현실에선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사례가 적습니다. 구두쇠로 살아요, 대부분. 자기 밑구멍에만 돈을 씁니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부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전생의 업보가 천하지 않습니다.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재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죠.”
죽을 사람은 죽어야
수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에 사는 어떤 중소기업 오너 부부와 친분이 있었다. 명절 때마다 필자에게 갈비짝을 선물로 보내오고, 음식 맛이 좋은 레스토랑에도 초대해 필자를 대접하곤 해서 늘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 오너의 부인이 흉몽을 꾸었다. 이탈리아에 성악을 공부하러 간 아들이 있는데, 그 녀석이 지붕에서 떨어져 다치는 꿈을 꾼 것이다. 문제는 부인만 나쁜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남편도 아들이 다치는 꿈을 꿨다. 단순한 개꿈인가? 메시지가 있는 꿈인가? 혹시나 해서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들 역시 좋지 않은 꿈을 꿨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개꿈이 아니구나! 부부가 필자에게 부탁했다. 이 문제를 상의할 도사를 한 명 소개해달라고. 평소에 필자가 갈비짝을 안 받아먹었으면 잘 모른다고 거절했겠지만 매몰차게 자르기가 어려웠다. 평소에 신세진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발동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사실 이런 부탁은 처리가 애매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영계(靈界)의 일이기에 문제를 처리해줘도 상대방이 모를 수 있는 데다 일을 확실하게 처리해줄 능력자를 물색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수산도사의 판단은 부부가 유학 보낸 아들이 짧은 명을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수명도 집안의 유전이다. 유전(遺傳)이 업보(業報)이고, 업보는 유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을 늘이는 일을 할 때는 집안 가계를 살펴봐야 한다. 어머니 쪽은 적선을 많이 한 양반 집안이었다. 뼈대가 좋았다. 아버지 쪽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추측됐다. 조상이 남에게 못된 일을 한 업보가 있으면 여러 대를 걸렀다가 후손에게 단명보(短命報)로 되돌아오는 수가 있다. 아들은 부계 쪽의 나쁜 업보를 물려받은 셈이다. 업보를 받은 후손이 일찍 죽으면 업보는 청산된다. 죽는 게 순리다. 수산도사가 필자의 청에 따라 명을 늘이는 일에 관여했다. 갈비는 내가 받아먹고, 뒤처리는 수산도사에게 맡긴 꼴이다.
수산도사는 이 일을 수임(?)하고 나서 기도에 들어갔다. 도사는 기도할 때 보통 사람의 10배가 넘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도사의 자질은 집중력에 달려 있다. 보통 사람은 잡생각이 많아 집중이 잘 안되지만 도사는 참선과 삼매를 통해 집중력을 증강한 터라 엄청난 염력을 우주에 쏘아댄다. 1주일쯤 흘렀을까. 부인이 꿈을 꾸었다.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부부가 강을 건너는데 아들이 뒤에 있다 가까스로 배를 타는 것이었다. 배에 간신히 오르는 과정에서 신발이 벗겨졌다. “꿈에서 아드님의 신발이 벗겨졌으니, 신발을 30켤레 정도 구입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수산도사가 처방을 내렸다. 어머니는 지시대로 신발을 구입해 적선했다. 얼마 후 그 집안의 가까운 친척 한 분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70대 중반으로 건강이 나쁘지 않던 할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우연인가? 아니면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가? 수산도사는 나중에 필자에게 넌지시 말했다.
“마음 비워야 기운 들어와”
“그 할머니가 내 꿈에 나타나 항의했습니다. ‘죽을 때도 안 됐는데 내가 죽었다. 당신이 원망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 아들 명을 연장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를 드렸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사 인과(因果)가 이렇듯 복잡하고 어렵네요.”
필자도 이 일을 겪으면서 많은 공부를 했다. 이런 부탁을 받으면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의 집안일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죽을 사람은 죽게 내버려두는 게 업보를 청산한다는 점에서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기도는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면 과연 효험이 있습니까?”
“효험이 확실히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자신의 소망을 염원합니다. 중간쯤 되면 자신을 비우게 됩니다. 기도가 올바르면 참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데 참회를 하면 자신을 비울 수 있습니다. 비워지면 새로운 기운이 들어옵니다. 사람도 좋은 사람을 새로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그 수준에 맞는 인연을 만나게 되는 법입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특별한 사람만 효험을 보는 게 아니에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북한이 수십 발의 포를 쏜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개인적 일화가 있다. 2010년은 간지로 경인(庚寅)년이다. 2009년부터 경인년은 국가적으로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해로 점쳐져왔다. 2009년 초여름 필자는 휴휴산방에서 쉬고 있었다. 6월경 일본에서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마흔 살 정도의 남자였는데 필자가 TV에 출연한 모습을 우연히 보고 연락처를 물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아버지가 일본인, 어머니가 한국계였다. 일본에서 자랐지만 한국말로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었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얼굴에 신기(神氣)가 가득했다. 눈을 보면 신기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박수무당 느낌이 났다. 도사와 무당은 다르다. 도사는 눈이나 얼굴 표정이 평화롭다. 무당은 눈에 긴장과 섬뜩함이 어려 있다. 도사는 상대가 묻는 말에 마지못해 대답하지만 무당은 묻지 않아도 얘기를 해준다. 남자가 한 마디씩 내뱉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필자에 대한 점사(占辭)도 적중률이 높았다. 엉터리 무당이 아니었다. 일본의 영산인 고노야마(高野山)에서 신기를 공급받는 것 같았다. 고노야마는 일본의 영발(靈發)을 대표하는 곳이다. 한국의 계룡산에 비견된다. 그는 201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한국의 여러 산신이 전쟁을 걱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막으려고 필자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전쟁을 막아요.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들어 빌빌거리는 팔자인데, 그런 황당한 소리 하지 마시오”라고 면박을 줬지만 허튼소리로 들리지는 않았다. 경인년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전쟁은 없어야 할 텐데…’ 하고 기도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경인년의 나쁜 국운을 액땜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9월 필자는 제주도 한라산 자락의 어느 요가 도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라산에 사는 요가 선생님에게 몸을 뒤로 젖히는 후굴(後屈)자세, 낙타자세, 고양이자세, 활 체위 등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느닷없이 수산도사의 전화를 받았다.
“조 선생님, 나라에 또 일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올해 11월 20일에서 11월 30일 사이에 국지전 비슷하게 뻥 터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어디다 말하지는 말고, 조 선생님만 알고 계십시오.”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올해 액운은 끝난 것 아닙니까? 또 있단 말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좌선을 하던 중에 그런 장면이 눈에 보였습니다.”
도 닦느라 장가 못 가
9월 초순의 일이다. 과연 그런 사건이 정말로 일어날지 궁금했다. 주지하듯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다. 공부를 한 사람들은 개인의 작은 일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 대사는 예측하기 어렵다. 고공에서 내려다보는 능력이 있어야 대사가 보인다.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높이 올라가 사물을 볼 수 있다.
수산도사는 1965년생이다. 경남 진주시에서 태어나 경북 포항시에서 자랐다. 30대 초반에 입산했다. 경남 양산시 영축산 자락의 암자에서 10년간 면벽 좌선을 했다. 좌선의 화두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었다고 한다. ‘어머니 배 속에 있기 전에 나는 어디 있었는가?’에 천착한 것이다. 화두를 잡고 앉은 지 한 달이 채 못돼 아랫배에 기운이 차면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어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과 손바닥의 노궁혈(勞宮穴)이 터지는 체험을 했다. 몸이 변하는 신비를 경험한 후엔 하루에 8~10시간씩 앉아서 좌선에 몰두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후 정수리가 쪼개지는 듯한 체험을 하면서 백회(百會)가 터졌고, 영안이 열렸다고 한다. 수산도사는 40대 초반 세상에 나왔다. 도 닦는다고 아직 장가도 못 갔다. 좌선에 몰두하면서 단식을 자주 해 치아의 뿌리가 많이 상했다.
“공부가 된 사람은 어떤 모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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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비스럽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상대가 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둘째, 내 것이 없어집니다. 소유욕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셋째, 화를 내지 않습니다.”
수산도사는 세상을 만행(萬行) 중이다. 집도 절도 없다. 108명 선지식을 만나려 세상을 떠돈다. 세상사람 모두가 선지식이란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그의 토굴에 들른 지도 1년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