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몇 군검찰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김대업씨의 주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님을 시사하는 증언들이다. 그렇지만 김도술씨의 진술이 담긴 녹음테이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딱 한 사람, 김대업씨말고는.
‘뇌관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형국’. ‘신동아’ 2002년 7월호에 실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 정연씨의 병역기피 의혹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의혹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이 ‘예측’은 놀라우리 만치 맞아떨어졌다.
무더기 소송 사태와 사활을 건 여야의 대치 국면, 그리고 요란스러운 언론 보도.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의 의도야 어쨌든 이 문제는 이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검찰 수사결과와 상관없이 정치권의 분쟁은 쉬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한쪽이 승복하면 다른 한쪽이 수긍하지 않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5년 전인 1997년에도 제기됐던 이정연씨 병적기록표 위·변조 의혹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정말 이상한’ 병적기록표라는 의심을 갖게 하는 징후가 자꾸 드러나 의혹을 부채질한다.
김대업씨 주장으로 불거진 은폐대책회의 의혹은 먹구름처럼 병무청과 한나라당 당사 위를 떠돌고 있다. 장본인으로 지목된 김길부 전 병무청장의 기자회견은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씨의 주장은 일면 타당해 보이지만 영 개운치가 않다. 다른 얘기는 그만두고라도 서울지방병무청 문서창고에 안전하게 보관된 이정연씨의 병적기록표를 왜 자신이 ‘특별관리’했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8·8 재·보선을 앞둔 지난 6월 초 김대업씨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병역면제과정에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녹음테이프가 있다는 주장.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녹음테이프가 공개된 후에도 진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다. 한마디로 ‘깔끔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은 까닭이다. 녹음테이프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진실이라고 보긴 어렵다. 비밀녹음이라 객관성이 떨어지는 데다 관련자들이 부인하기 때문에 법적 증거능력도 없다.
그렇다면 김대업씨는 왜 녹음테이프 얘기를 꺼내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는가. 정치적 시각을 배제하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그 테이프가 수사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정연씨의 병역기피 의혹을 검찰이 공식 수사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써 녹음테이프의 소임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테이프가 아니라 검찰 수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김씨의 ‘작전’은 기막히게 성공했다.
사건의 진실 여부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김대업씨의 행적이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한 남자의 진실이다. 도대체 그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추적한 것일까. 그가 확보한 ‘증거’들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그리고 그가 여권 또는 검찰의 지원으로 ‘이회창 사냥’에 나섰다는 의혹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