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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97년 대선 ‘JP 대통령’이 역사의 순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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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죽이기’라 할까 봐 재임 중 황장엽 안 만나
  • ●김광일 설득해 노무현 ‘픽업’, “재야 그만하고 그만 들어온나”
  • ●노무현, 의원직 사표 내고 사라졌을 때 부인 불러 “찾아오라” 호통
  • ●DJ, 당선자 시절 김태정 만나 비자금 수사 종결 부탁
  • ●하나회 청산 안 했다면 DJ, 노무현 대통령 못 됐을 것
  • ●전두환·노태우에게 미안한 마음 전혀 없다
  • ●월드컵 유치 때 정몽준 자기 돈 한푼 안 써
  • ●현철이 문제 직언했다는 사람들, 다 거짓말
  • ●JP 탈당 안 했다면 이회창도 없었을 텐데
  • ●거짓말쟁이 DJ와 화해하는 일 절대 없을 것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은 ‘전’자를 떼고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부르겠습니다.”“하하, 그래요.”“그때 기분 나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아니, 괜찮았어요”

“퇴임하신 이후 만난 사람 중에서 ‘각하’나 ‘김영삼 대통령’이 아닌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뇨, 없었어요. 그때가 처음이었죠.”

8월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의 2층 응접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주앉으며 필자는 2년 6개월 전 ‘같은 장소’에서 진행했던 인터뷰(여성동아 2001년 3월호)를 떠올렸다.



─그땐 우리 사회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칭이 현직에 있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꼬박꼬박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질문을 했던 거고요. 또 며칠 동안 장관직에 머물렀던 사람도 죽을 때까지 장관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오늘은 또 뭘 물을지 모르겠네. 아, 뭐든지 물어봐요.”

필자의 ‘고백’에 ‘김영삼 대통령’(이하 YS)은 호탕한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인터뷰는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필자는 사전에 ‘예상 질문지’를 건네줘 답변을 미리 준비케 하는 관례를 깨고 나름대로 정리해온 질문들을 즉석에서 풀어놓았다.

먼저 황장엽씨 얘기부터 꺼냈다. YS 재임 마지막 해인 1997년 북한의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인 황씨가 망명한 것을 두고 항간에선 문민정부의 공작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황장엽 면담, DJ가 방해

─얼마 전에 황장엽씨가 상도동을 다녀가지 않았습니까. 재임 중에 그를 만난 적은 없었습니까.

“아, 못 만났어요. 김정일하고 대화도 많이 한 사람이고,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북의 실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죠. 당시 황장엽을 만나보고 싶어 날짜까지 잡았는데, 동아일보가 ‘황장엽이 김대중과 이북의 비밀관계를 알고 있다’, 뭐 이런 내용을 톱기사로 실은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통령선거 전인데 내가 만나면 그 얘기가 새 나간단 말입니다. 청와대에 비밀이 없거든요. ‘둘이서 김대중 죽이는 음모를 꾸몄다’, 두 야당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더란 말이야. 참 난처하게 됐지.

그래서 결국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못 만났어요.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도 몇 번 만나려고 했어요. 안기부장(국정원장)이 오케이 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 청와대와 연락한 다음엔 못 만나게 했죠.”

─당시 청와대측에서 황씨를 못 만나게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장엽이 김대중의 비밀 같은 것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때 내가 김대중을 많이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황장엽을 만나 자기를 공격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약점을 잡힐까봐 그랬다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그토록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내가 오래 봐 왔기 때문에 잘 알지. 그 사람은 겁쟁이예요.”

─이거, 이대로 써도 되겠습니까. 겁쟁이라고.

“아∼이∼고. 써도 괜찮아요. 거짓말도 잘하고. 거짓말하는 것은 그 사람 전공이에요.”

─이것도 이대로 써도 되겠습니까.

그는 “돼요. 돼” 하면서 박장대소했다. 그 웃음에는 DJ에 대한 오랜 불만과 앙금이 담겨 있는 듯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황장엽씨 쪽에서 먼저 YS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YS와 황장엽씨는 지난 1월7일과 6월16일 두 차례 만났다.

─지난 1월에 만났을 때 무슨 말씀을 나누셨나요.

“이북의 실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국정원이 하는 여러 가지 일을 비판하고, 김대중을 비판하고, 뭐 그랬어요. 그런데 그날 만나보니 이런 양반한테 우리가 이래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황장엽씨) 부인이, 남편이 망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옛날 사람들처럼 사약을 가지고 있다가 목숨을 끊었다고 해요.”

─망명 후 얼마나 지나 일어난 일인가요.

“중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에 자살했다고 해요.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딸은 붙들려 가다가 차에서 뛰어내려서 죽고 아들은 수용소에 끌려갔을 텐데 아마 죽었을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보통 불쌍한 게 아니야. ‘건강이 어떠냐’ 물었더니 ‘좋다’ 이러더라고. 참고 견디는 수양이 돼 있는 거지. 내가 전두환 정권 때 3년 동안 갇혀(가택연금) 있어 봤잖아요. 감옥보다 훨씬 나쁩니다. 갇혀 지낸다는 게. 이거는 나가지도 못하고 누가 오지도 못하고. 황장엽씨도 그리 지낸 거 아닙니까.”

YS는 질문에 대답하는 중간중간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 쥐고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는 필자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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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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