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아무래도 이번엔 첫 회담이었기 때문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먼저 나쁜 소식은 앞서 문교수께서도 지적했다시피 3자회담 때와 비교해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예의 벼랑끝 전술에 따라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접촉 때 핵실험도 할 수 있고 핵선언도 할 수 있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회담 뒤에도 북한은 ‘이런 협상은 백해무익했다’는 식으로 줄곧 얘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북한 대표가 김영일 외교부 부부장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은 아시아통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부장 중 상대적으로 낮은 서열입니다. 강석주나 김계관처럼 풍부한 협상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정치적 재량권을 발휘하기가 힘든 인물이기 때문에 결국 중앙의 지령에 따르는 역할밖에 할 수 없지 않느냐, 그런 점에서도 북한이 6자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보여집니다.
세 번째로는 문교수께서도 이미 지적했지만 접점이 없었다는 점, 즉 북미 양쪽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차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서도 북한이 아직 그 점에 대해 확약한 것이 아니므로 여전히 대화의 모멘텀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건 나쁜 소식들입니다.
좋은 소식 중 첫 번째는 역시 6자회담 자체가 열렸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반대해온 다자회담이 열렸다는 건 대립 국면에서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언론에서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부분인데, 미국의 입장이 상당히 유연해졌다는 점입니다. 즉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핵시설을 폐기할 때까지는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없고 인센티브도 줄 수 없다는 게 그동안 미국의 기본 입장이었는데 이번 회담에서는 논의도 할 수 있고 폐기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북한에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건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세 번째로는 중국의 달라진 태도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년 전에는 중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희미했었는데 이제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예요. 중국 외교관들이 워싱턴 도쿄 모스크바 서울을 무대로 셔틀외교를 전개했고, 아주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6자회담의 전망을 밝게 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신지호 이번 회담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봤을 때, 차기 회담에 합의하면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던 것 같아요. 이 점에서 보면 앞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분명히 얘기하기가 곤란한 게 아닌가, 그러니까 마지막 날 북한 대표단이 베이징 공항에서 발표한 성명만 없었더라도 대체로 성과가 있었다는 분위기가 됐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한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내심 기대했던 것보다는 진도가 조금 덜 나간 것 아닌가, 다시 말해 기대에 비해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6자회담이 사실상 상견례이고 탐색전인데 우리 정부가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역할과 관련해 또 하나 짚을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공동합의문을 내는 것을 놓고 북한만 반대하고 나머지 5개국은 찬성했다고 합니다. 결국 공동합의문은 북한 반대로 무산됐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참가국들이 보인 입장 차이를 살펴보면 저는 기본적으로 2 : 3 : 1 구조였다고 봐요. 2는 미·일, 3은 한·중·러, 나머지 1이 북한이라는 건데, 이런 구도가 과연 우리 입장에서 바람직한 구도인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효과 낸 북미 양자접촉
문정인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 일본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 중순 우리측 회담 대표인 이수혁 차관보가 워싱턴에 갔을 때 미국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다고 해요. 당시 파월 국무장관은 “북한이 원하는 불가침조약은 어렵지만 미 의회의 결의 형식으로 불가침을 담보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은 ‘대담한 제안’에서 “반드시 불가침조약은 아니더라도 불가침을 보장하는 문서라도 좋다”고 한 데 대한 답변이었거든요.
이런 메시지에 대해 우리 정부가 꽤 흥분해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8월19일인가 20일에 열린 미국의 안보회의에서 갑자기 기조가 바뀌게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6자회담 기조연설에서 켈리가 내놓은 말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이건 미국측 인사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