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1995년부터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백동일 대령을 알고 지냈습니다. 그후 한미 해군 고위 장교들 간의 만남이 있을 때마다 한미 장교들은 화기애애하게 대담했습니다. 한미 고위 장교들 간에 기밀로 취급될 수 있는 것이 오고가기도 했습니다. 미국 장교들은 저와 백동일 대령을 감시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측에서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기밀 취급자도 출입하지 못하는 상황실에 한국 장교를 들어 갈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안에서 브리핑을 받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미묘한 한미관계 때문인지 1996년 강릉에 좌초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의 사고 전(前) 항해경로를 백대령에게 전화로 알려준 후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해군은 한국 해군에 C₄I와 관계된 컴퓨터 시스템을 팔려고 매우 노력했습니다. 저는 C₄I와 관계된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한 팀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그것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한국 해군이 이 시스템을 구매했다면 지금쯤은 먼지만 쌓여 있는 고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시스템의 계약 부서는 계약을 위한 모든 서류를 준비해놓고 한국에서 온 방문 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팀의 한 분을 사무실 밖으로 불러내어 “이번에 계약하지 말고 한국에 돌아가서 시간을 갖고 논의한 후 한국에 맞는 요구 성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나서 구매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미국 시민이라 미국에 충성해야 하지만, 이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날은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제가 교도소에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난 후 이 시스템을 구입했다고 들었는데, 현재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저는 한국이 미국 시스템이 아니라 한국에 맞는 독자적인 C₄I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왔습니다. 동맹국이 제공하는 정보 중에는 한국에 필요 없는 것도 있을 수 있으며, 동맹국 사이에도 정치적 혹은 기술적 이유로 시스템을 일체화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이러한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인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던 중에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담당했던 시스템은 C₄I이 아니라 해상을 통한 마약류 등의 밀수입과 불법 체류자의 밀입국을 차단하며 해상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이를 발견해 조속히 구조(Search and Rescue)하는 일을 지원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미국 연안을 중심으로 개발된 것이지만 인재가 있다면 한국 실정에 맞게 독자 개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이러한 시스템을 독자 개발한다면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이 극동 지역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미국에 충성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한미 관계를 더욱 증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제가 미국 해군의 눈 밖에 난 것 같습니다.
은퇴할 시기가 다가온 저는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기 위해 태평양사령부 쪽으로 파견해줄 것을 희망했습니다. 그러던 중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제게 맞는 자리가 있어서 신청했는데, 미 해군성 정보국장은 신청서를 기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FBI의 감시대상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보국 인사과에서도 정보국장의 지시라고만 할 뿐, 왜 기각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