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왼쪽)과 이정현 정무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너서클 내 파워게임은 5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 때의 ‘인사 전쟁’과 비교하면 소규모 ‘전투’ 수준이었다는 평가도 많다.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선 제한적이었다는 의미다.
2008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단계에서부터 이명박 당선인의 핵심 측근들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시작돼 청와대 참모진 인사 때는 절정에 달했다. 이명박 정권을 만든 세 주역인 이상득-이재오-정두언 라인이 각각 한 명이라도 더 자기 사람을 밀어 넣기 위해 곳곳에서 부딪쳤다. 그 결과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두언 의원이 당시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겨냥해 “인사전횡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려 초반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안겼다.
박근혜 정부 출범 과정에선 그런 전면전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도 극심한 권력암투가 일어나기 어려웠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단독 플레이’로 정권을 잡은 격이다. 친박계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았고, 친박 안에서도 약간의 분화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눌려 티 나게 자신들의 몫을 챙길 순 없는 구도다.
첫 인사 둘러싼 저강도 신경전
정치적으로 독자세력이 미미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의원, 정두언 의원으로 분화된 세력들을 ‘친이계’란 울타리 안으로 끌어모아 정권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실세들은 논공행상 과정에 지분을 챙기기 위해 인사 전쟁을 여러 차례 치렀다. 그에 비해 박근혜 정부 구성과정에서는 핵심 측근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사람들을 ‘조용히’ 심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에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 몇 사람의 명단이 중간에 바뀐 정황 정도만 감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초 홍보수석실 비서관으로 내정됐던 A씨다. 그는 동향이자 학교 선배인 허태열 비서실장의 선을 타고 청와대 입성이 내정돼 있었다. 하지만 친박계 한 핵심 인사가 뒤늦게 A씨의 전력을 문제 삼고 나섰다고 한다. A씨가 친이계 성향의 인물이란 주장이었다. 그 자리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민정수석실을 둘러싸고도 여러 소문이 나돌았다. 법무비서관으로 내정됐던 변환철 중앙대 로스쿨 교수가 곽상도 민정수석과 행정관급 직원 인선 문제 등을 놓고 마찰을 빚다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정비서관 내정자인 이중희 전 인천지검 부장검사 내정이 번복된 듯했다가 다시 기용되는 과정에서 친박 핵심부의 내부 알력이 있었다고 한다.
고용복지수석실의 보건복지비서관 자리도 김원종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에서 장옥주 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의 경우 당초 K치안감이 내정돼 직원들과 작별인사까지 나눴지만,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해 강신명 전 경북경찰청장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고 한다.
친박계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보좌진을 청와대에 입성시키려는 로비전도 벌어졌다. 행정관급으로 들어간 보좌진은 대부분 대선 때 실무적으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았지만 행정관 정원이 제한돼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새누리당의 중간 당직자 중에서도 내부 경쟁을 뚫고 대선 캠프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 입성한 경우도 더러 있다. 최상화 직능국장이 춘추관장(비서관급)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필두로 이재성 기획조정국장이 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이호근 기획조정국 심사팀장이 민정비서관실에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7일 청와대에서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