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소통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에 포획됐다. 한 번의 은밀한 거래는 인사, 정책으로 이어진다. 결국 대통령과 기득권 세력 간의 인적, 금전적, 콘텐츠적 소통이 활성화한다. 이럴 경우 여론 전파력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대통령이 소통을 잘한다’고 칭송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현재 여성 대통령 박근혜가 불통, 독선, 권위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기득권 세력과의 밀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의 소통은 기득권 세력과의 소통이 아닌 국민과의 소통이어야 한다. 국민 일반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가장 큰 소통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총선,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복지, 탈세 및 지하경제 색출, 부패청산 등 제대로 방향을 잡고 소통을 했기에 승리한 것이다.
문제는 집권 이후에도 국민과의 소통을 지속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요체는 ‘시대상황에 걸맞은 국민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다. 이것은 길거리에서 국민을 만나고 담화를 발표하고 라디오 노변정담을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막상 현실에선 보안, 취재장벽, 불친절한 설명, 일방적 전달 같은 홍보 기술 수준이 불통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누가 뭐라든 내가 옳으니 내 갈 길을 간다’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 보안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불통의 원인처럼 인식되는 측면은 전술적 차원에서라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언론은 지도자의 마음속 진심을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로 평가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사소한 실수와 맞물려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소통을 ‘연기’해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다. 링컨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계산과 담합에 능수능란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완전무결한 성인처럼 추앙받는다. 이는 홍보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적응하기도 전에 불통 이미지부터 내보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과감한 개혁에 나서고 홍보역량을 강화한다면 ‘육영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35조 조달 방안 속히 내놔야
박 대통령은 생애 주기별 맞춤식 복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국민행복연금 도입, 4대 중증질환 진료비 국가 부담,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확대, 육아 서비스 질 개선,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맞벌이 부부 자녀 양육 지원, 사병 월급 인상,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하우스푸어 및 렌트푸어 지원, 청장년·어르신·여성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을 약속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5년간 135조 원이라고 했다. 당선 후 ‘박근혜 예산’으로 일컬어지는 2조4000억 원이 2013년도 예산 안에 반영됐다.
박 대통령은 약속한 복지 공약을 지키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두 달여간 인수위를 지켜본 바와 같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폐기하라’는 강한 압력과 반대가 정관계, 재계에서 제기됐다. 대표적인 것이 ‘135조 원이라는 재정 마련을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는 여러 경제연구소와 정치권의 냉소적 목소리였다. 또한 관료 사회도 지하경제 양성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수위에서 재정 현황을 세밀하게 검토한 결과, 박근혜 공약 중 몇 가지는 사실상 수정됐다. 국민행복연금의 경우 당초 공약에선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인수위 검토 결과 소득수준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4만~20만 원을 차등지급 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가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해 국민연금을 통해 해당 재원을 조달할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박 대통령과 인수위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어쨌든 복지 확충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비현실적 부분을 조기 수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다만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 논란은 박 대통령 측은 부인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슈라 할 수 있다.
4대 중증질환의 경우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100% 지원하는 것으로 했다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를 제외하고 필수 의료서비스를 100% 보장하는 쪽으로 수정했다. 지금도 필수 의료서비스는 90% 보장된다. 사실상 10%만 인상되는 셈이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를 급여화하면 의료기관과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진료 남용을 낳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대선 때 좀 무리하게 공약을 내세운 측면이 있었으나 과잉 의료급여가 초래한 영국식 복지 망국론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부분만으로 조기 수정한 것은 잘한 일로 보인다.
큰 논란이 된 반값 등록금 문제 또한 소득수준에 따른 차등 지급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실대학 정리, 사학재정 운영의 투명화, 대학교육 개선이 실행되지 않고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식 복지는 증세 논란에 휩싸였지만 대통령 자신의 관철 의지로 약간의 수정만 거쳐 살아남았다. 하지만 아직 산 넘어 산이다. ‘현재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볼 때 재원 135조 원의 절반 정도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일부 측근들은 ‘세출조정과 세제개혁을 통해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정권이 무엇보다 시급히 해야 할 과제는 ‘취임 6개월 이내 복지예산 조달 가능 방안에 대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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