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사용할 수 없는 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7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문제는 중국이 지금과 같은 기조를 계속 유지하느냐다. 리바오둥 대사는 ‘결의 2094’ 채택 직후 “결의안 통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완전한 실행”이라면서도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제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기 위한 절차”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나 급작스러운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 한미 간 안보리 제재안 논의에 참여한 한 인사는 “중국이 그간 대북 제재안에 물을 타 농도를 엷게 만든 것은 북한이 망하는 것을 수용할 준비가 안 돼서 그런 측면이 있다. 중국은 안보리에서 자신들이 지킬 수 있는 것에만 동의해왔다. 강한 벌을 주면 더 세게 반항하고, 약한 벌을 주면 덜 반항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중국이 한동안 벗어나지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김정은의 선택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4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대남 도발 등으로 긴장을 더 높이는 것이다. 북한은 위기를 고조시켜 협상력을 높인 경험을 갖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핵무기를 다른 나라로 확산하지 않을 테니 핵 보유국임을 인정한 상황에서 핵감축 북미 양자협상을 하자’면서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의 대화 요구에 마지못한 척 응하면서 한국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여 경제 지원을 요구하는 시나리오다. 군사적 옵션이 배제된 안보리 제재만으로는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주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다. 이것이 미국의 딜레마다. 북한의 핵무기, 핵시설(혹은 지휘부까지)을 일거에 타격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벌초해버릴 것”이라는 협박대로 북한이 한국을 보복공격한다면 그 후폭풍이 심대하다. 미국의 해법도 경제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미국의 고민은 ‘레짐 체인지를 준비해야 할 단계인지, 아직은 아닌지’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미국은 일단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이 손들고 나오게 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 안보 당국자로 일했던 인사는 2월 26일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사용할 수 없는 핵이다. 1, 2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 러시아도 수백 번의 핵실험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미사일에 핵을 장착하고 실전 배치할 단계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은 확실하니 5~10년 안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이 ‘긴장 고조’라는 선택지를 고를 때 미국이 추진할 수 있는 독자 대북 제재로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2차 제재)이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나라의 금융기관을 국적에 상관없이 제재하는 방식이다. 북한과 거래하는 곳은 미국 내 모든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게 하는 것. 이렇게 되면 기축통화인 달러화 결제와 국제금융망 사용이 어려워진다.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과 기업이 영업활동에 심대한 타격을 받는 것. 또한 북한 금융기관은 외환결제를 사실상 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의회는 이란을 상대로 세컨더리 보이콧 방식의 제재를 입법화한 바 있다.
한국의 카드는?“공화국이 얼마나 험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외세가 안 건드린다” “적이 압박할수록 우리는 공세적으로 맞받아쳐야 한다”는 평양의 오랜 사고방식은 동북아 안보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한국이 가진 카드는 뭘까.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해 제재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강(强)대 강(强)’ 대치를 끝내고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도 흘러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3월 13일 “북한이 일정 기간 자제하면 경색을 풀 방안을 시도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인도적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자위적 핵무장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한국의 핵주권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폐기 천명하라”
|  1991년 1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자위적 핵무장론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장은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한미원자력협정이 한국의 핵무장을 막고 있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핵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한국은 모든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과 CTBT 이전에 나온 지하 핵실험 금지조약(TTBT),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PTBT)에 국회 비준을 거쳐 가입했다. 평화 목적으로 제공받은 원자력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핵확산 금지조약(NPT)도 국회 비준을 받아 가입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는 IAEA 사찰을 받는다는 안전조치협정(safe guard)을 맺었다. 2004년 한국은 우라늄을 20% 농축했다고 공개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 직후 IAEA로부터 더욱 강한 사찰을 받는다는 ‘추가의정서’에 동의했다. 한국의 자위적 핵무장은 이렇듯 6중 7중으로 막혀 있다.
남북한이 1991년 12월 채택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도 한국의 핵무장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북한이 핵 보유를 천명함으로써 사실상 사문화했다. 이 때문에 이 선언은 폐기됐다고 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폐기 선언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약속을 어긴 북한을 제재하려면 북한이 저지른 죄를 분명히 밝혀 놓아야 한다.
둘째,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북핵을 막지 않으면 한국도 핵무장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다. 중국 처지에서는 한반도가 분단돼 있는 것이 유리하므로 한국이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고수하는 한,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북한 핵무장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다. 그런 중국과 국제사회를 압박해 북한을 완전한 핵 폐기로 이끌려면 한국도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사인을 보낼 필요가 있다.
셋째,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해서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평화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도 금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쌓아놓고만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처분하려면 지하 500m쯤에 있는 암반지대를 찾아 매립해야 한다. 지금 추세대로 원전과 사용후핵연료가 늘어난다면 2100년 한국은 서울 동대문구만한 지하 암반지대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재처리를 해서 핵물질을 다시 핵연료로 사용한다면 폐기해야 할 핵 쓰레기의 양은 100분의 1까지 줄어든다. 지금 미국이 이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몇 해 전 미국은 유카산에 처분장을 지었는데, 그동안 축적된 사용후핵연료가 너무 많아 개장과 동시에 거의 다 차버리고 말았다. 사용후핵연료를 줄이려면 반드시 재처리를 해야 한다.
한국은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파이로 프로세싱과 이 처리로 나온 핵물질을 다시 핵연료로 사용하는 증식로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원자력협정이 재처리를 금하고 있어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본격화하려면 한국이 평화 목적의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미원자력협정은 내년 3월 19일 만료된다. 박근혜 정부는 새 협정에 한국이 평화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으려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농축과 재처리 시설을 갖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다. 따라서 평화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있는 중국 등 국제사회에 압력을 가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을 위해 이 선언 폐기를 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 |
신동아 201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