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책본부 가선 안돼” vs “가야 돼”
- “그날 안 갔으면 엄청난 오해 샀을 것”
- ‘세월호 인양’ 언급한 차관 질책…해저에 둔다?
- “문고리 3인방 외부인 안 만나…권력비리 종식될 것”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후 2시 30분경 실무진은 ‘생존자 370명’ 집계 오류 사실을 처음으로 접한다.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대로, 오후 2시 50분 “190명 추가 구조 인원은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이 박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계 오류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수의 고등학생이 숨진 대형사고인데 정부가 생존자 숫자를 부풀려 발표했다 줄인 것이다. 대중의 비난이 정부로 향할 결정적 빌미가 제공된 셈이다. 엉터리로 집계해 알려준 해경에 분통을 터뜨릴 겨를도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라는 엄청난 위기감에 휩싸였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오후 4시 10분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실수비(※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는 ‘대수비’라 한다)엔 모든 수석이 참석할 수도 있고 안건과 관련 있는 일부 수석만 참석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선 실장이 수석 두어 명과 대화를 나눠도 실수비가 된다. 회의의 형식이나 참석자 수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라고 전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상황 보고를 듣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날 회의의 쟁점은 대통령의 동선(動線)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와 가까운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돼 있었다. ‘대통령이 대책본부를 방문해야 한다’는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의 의견과 ‘방문해선 안 된다’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의견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이정현 수석은 홍보의 관점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큰 재난이 났는데 대통령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나’라는 비난이 제기될 텐데 이는 방어하기 쉽지 않다고 봤다는 것이다. 또 집계 오류를 알게 된 직후 세월호 사건을 초대형 사건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반면 김 실장은 대통령이 대책본부를 찾으면 생존자 수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석 측은 생존자 수색이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진행되므로 정부서울청사를 찾는 것은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이 한 시간 정도 만에 급하게 결정되는 일은 평소엔 거의 없다. 이 수석 측은 대통령의 일정을 담당하는 부속실의 동의를 구하려 애썼다고 한다. 결국 박 대통령은 대책본부를 찾았다.”
다음 날 박 대통령이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야 하는지를 놓고도 김 실장과 이 수석 간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대책본부 방문 건과 마찬가지로 김 실장은 “가선 안 된다”는 의견이었고, 이 수석은 “가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특히 사고 당일 팽목항을 찾은 정홍원 총리가 단원고 학생 가족들의 물세례 등 봉변을 당한 상황이어서 우려가 컸다는 것. 그러나 이 수석이 자기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고 이번에도 그 의견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에 도착한 뒤엔 학생 가족이 머무는 진도체육관에 들어갈지를 두고 또 의견이 엇갈렸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이 정 총리처럼 불상사를 겪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결국 박 대통령 자신이 “여기까지 와서 체육관에 안 들어갈 수는 없다”는 취지로 상황을 정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체육관 단상에 서 있는 동안, 당시 실종 상태였던 단원고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단상을 향해 “사람 바꿔달라니까! 책임자 바꿔줘!”라고 고함을 쳤다. 경호원이 제지하자 돌아서며 “XX, 받아버릴까 한번!”이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김 실장이 우려했던 정도의 심각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론조사는 청와대를 안심시켰다. 사고 이틀 후인 4월 18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71.0%까지 치솟았다. 박 대통령의 대책본부 및 팽목항 방문이 지지율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내부에서 ‘이정현 수석이 잘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이는 잠깐 동안의 위안일 뿐이었다. 구조 및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해경의 무능이 계속 전해지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대통령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엄청난 오해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미스터리와 관련해, 김기춘 실장은 ‘신동아’ 9월호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경내에 있었고 외부인을 접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내 집무실, 관저, 안가 중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선 확인해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소재지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실장이 밝힌 것 이상의 정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靑·대통령 수사해본들…”
박 대통령이 사고 당일 대책본부에서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일부에선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았는지 의문이다. 딴 일에 신경 쓴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통령은 당일 오후 3시 30분이 돼서야 비서실 서면보고로 ‘구조인원이 166명뿐인 대형 참사’라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책본부를 찾은 것이다. 이 무렵 대통령에게 올라온 보고서들은 주로 생존자-피해자 ‘집계’에 관한 내용들이었다(※이날 박 대통령에게 올라온 22차례 보고서의 내용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여기엔 ‘CC-TV 확인 같은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정확한 집계가 가능하다’ 식의 보고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당일 청와대 측이 해경에 사고해역 영상정보를 계속 요구했으나 확보하지 못한 점을 보여주는 녹취록이 국회에서 공개된 바 있다). 대통령은 국가기관이 올리는 공식 보고를 보고 판단하는데, 사고 당일 늦게까지 그 보고들이 그리 종합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았다. 큰 숫자도 계속 틀리는데 말 다했지…. 아이들에게 ‘그냥 앉아 있으라’고 방송했다고는 상상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갖고 마치 큰 의혹이 있는 양 한다. 사고 정보를 충분히 알게 된 지금의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재단해선 안 된다.”
이 관계자는 “사고 당일 해경이 배가 가라앉기 전에 헌신적으로 구조활동을 벌였다면, 또 집계만 정확히 했다면, 정부를 향한 비난은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 측에 수사권·기소권을 주는 문제와 7시간 미스터리를 엮어 “대통령과 청와대를 수사한다고 해서 나올 게 뭐가 있나. 대통령은 수시로 보고받았고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으며 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사실과 다르게 보고가 올라오는 건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최대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 기조는 수사권·기소권 문제는 국회가 입법으로 결정할 일로 대통령이 이 일로 유가족 측을 면담하는 것은 힘들다는 쪽으로 해석된다.
“철옹성 안에 계신 분”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참사 당일 7시간 동선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하자 일부 언론과 네티즌은 박 대통령의 일정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정을 비교했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시간대별 일정을 세세히 공개하는 점, 박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점을 지적했다. 또 이들은 “청와대 공개 자료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겐 아무런 공식 일정이 없는 날도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일정이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보다 결정해야 할 게 더 많다. 거긴 분권이 잘돼 있지만 우린 대통령이 일일이 결재해야 한다. 또 대통령에겐 참고해야 할 수많은 보고서가 올라온다. 대통령은 결정을 앞두고 혼자서 깊이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일정이 많으면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주변에 대해 잘 아는 여권 한 관계자의 설명은 좀 다르다.
“의원들은 동료 의원과 연락이 잘 안 되면 짜증을 낸다. 하지만 과거 박근혜 의원에 대해선 이런 일로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당연히 연락이 안 되는 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제왕적 총재’라는 이회창조차, 심지어 대세론이 한창일 때도 두드리면 열렸다. 측근 그룹인 함덕회를 통해 이회창의 사생활 정보가 줄줄 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유력 대선주자일 때도, 여성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철옹성 안에 계신 분’으로 통했다. 일과 생활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외부인은 전혀 모른다. 물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일을 잘해서 정권을 창출하긴 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런 스타일이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월호 선체 인양 문제는 조만간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이 문제에 조심스럽게 대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돌발 사건이 발생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차관은 9월 4일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이 한계에 도달한 후에는 그대로 방치하기는 어렵다. (…) 수색의 대안으로서 인양을 고려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기술적 검토를 한다”고 밝혔다. 정부에서 처음으로 인양 검토를 시사한 것이다.
김 차관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내부에서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차관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꺼낸 건지…”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수색상황에 비춰보면 남은 실종자들은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고 배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수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종자를 더 찾지 못하면 어느 순간 배를 인양해 실종자를 찾아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63빌딩이 해저에 누운 셈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 물이 차 있고 흙이 계속 들어온다. 엄청 무겁다. 인양에 1000억~2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배를 끌어올려본 경험이 없다.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될지 모른다. 유족이 요구하면 인양해야겠지만 스웨덴과 미국 하와이 사례를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1994년 발트 해에서 대형 여객선 에스토니아 호가 침몰해 852명이 희생됐다. 스웨덴 정부는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검토한 끝에 실종자 수색과 인양을 모두 포기했다. 1941년 일본군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전함 USS 애리조나 호가 침몰하자 미국 정부는 이 배를 물속에 그대로 둔 채 그 위의 해상에 추모관을 설립했다.
여권 관계자는 “20만 원 기초연금, 영유아 보육지원금 등 복지예산 확대로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담뱃값과 지방세 인상도 이와 맞물린다. 이런 청와대로선 막상 세월호 인양 시점이 다가오자 이 일에 막대한 금액의 국고를 쏟아 부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 ‘유가족 의견에 따르겠다’며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 의혹
세월호 사건 수습책으로 박 대통령은 내각 쇄신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인사 참극’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실장, 안봉근 2부속실장 등 이른바 문고리권력 3인방에 대해 비선(秘線)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학로, 최도술, 박영준 등 전임 정권의 대통령 최측근은 예외 없이 기업인 등과 자주 만나며 돈을 챙겼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비서진 세 사람은 외부 인사를 거의 만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권력남용이나 부정을 용납하지 않으며 이들도 의원실에 있을 때처럼 자기 직분에 맞게 일만 하는 것으로 안다. 정윤회 씨는 박 대통령 측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다. 김기춘 실장,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 박 회장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 그리고 비서진 3인 등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권력형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므로 박근혜 정부는 권력형 비리를 근절한 최초의 정부가 될 것이라 본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는 5월 세월호 사건 수습을 책임질 총리 후보로 지명됐으나 전관예우 논란이 일자 후보직을 사퇴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안 전 후보자는 사퇴 당시 약속한 ‘재산 11억 원 기부’ 방법을 곧 결정해 실행할 것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과 관련해 정윤회 씨와 함께 있었다는 소문을 기사화한 일본 ‘산케이 신문’의 기자는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계는 한국 정부가 언론자유를 침해한다고 논평한다. 검찰이 기자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한 건 지나쳤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고발로 해당 기자에 대한 검찰조사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중재위원회 자료를 검토해보면, 현 정부 들어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한 반론·정정보도 청구가 현저히 줄었다는 점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