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의 ‘법을 수단으로 한 지배체제’
사법부, 정치적 사건 욕먹지 않는 방향으로 판단
갈등 증폭 핵심 사건=문재인의 김명수 ‘코드 인사’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위험
정치인 고소·고발 난무=‘정치의 죽음’이자 ‘사악한 정치’
탄핵으로 출범한 文 정권, ‘법대로 해보자’는 논리 동원
文 시절 ‘정치의 사법화’ 극심…‘정치 파국’ 후유증으로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2017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특집에 참여한 전남대 교수 오승용은 ‘정치의 사법화와 법조지배체제의 현실’이라는 글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는 통치행위라고 지칭되는 ‘정치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적인 정치적·정책적 문제부터 비정치적 문제의 정치화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사법적극주의 같은 명칭으로 포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반드시 통치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포괄적인 사회문제에 법원과 사법부가 개입함으로써 사법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정치의 사법화 상황을 법조 지배체제 또는 사법 지배체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법조 지배체제에 관한 논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2월 9일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이루어진 2017년 3월 10일까지, 아니 이 기간을 포함해 그 전후로 왕성하게 이뤄졌으며, 이후 최고조에 이르는 정점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선 2017년에서 2020년까지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5월 22일 청와대에서 두 달 전 퇴임한 조희대 전 대법관(왼쪽)에게 훈장을 수여한 뒤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권이 누린 ‘사법의 정치화’ 특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이뤄지기 닷새 전인 2017년 3월 5일 중앙일보는 “정치의 사법화가 두 동강 갈등 불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사법의 정치화’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야 할 사법기관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걸 말한다. 법조계에서 회자되는 이른바 ‘폭탄 돌리기’ 이론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사건이 사법부에 오면 소신대로 판결하기보단 욕먹지 않는 방향으로 판단을 하고 검찰은 법원에, 1심은 항소심에, 항소심은 대법원에 책임을 미루는 현상이다. 그러는 사이 갈등은 증폭된다.”2017년 8월 21일, 갈등이 더욱 증폭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통령 문재인이 춘천지방법원장 김명수를 차기 대법원장으로 지명함으로써 ‘사법의 정치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맞은 것이다. 사법연수원 15기로 양승태 대법원장보다 13기수 아래고, 현역 대법관 중 9명이 김명수 법원장보다 기수가 높은 데다 1968년 조진만 대법원장 이후 50년 만에 나온 비(非)대법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김명수 지명은 ‘코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코드’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드는 지시나 압력과는 달리 자발성을 내포한 개념이어서 문제 삼기가 어렵다. 공영방송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문재인 정권은 공영방송 노조와 같거나 비슷한 코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 노조를 통해 간접적이지만 사실상 공영방송을 통제할 수 있었다. 방송의 주체는 노조원인 방송인들인지라 문제 될 게 전혀 없으며 방송통제 논란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다. 이는 방송노조와 사실상의 적대적 관계인 보수 정권이 넘볼 수 없는 엄청난 정치적 특혜였다.
이전 보수 정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법의 정치화’를 위해 간접적인 지시·압력·특혜를 이용해 나중에 큰 논란이 되고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됐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원리에 기반한 코드 특혜는 그런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박근혜 파면 이후 문 정권과 코드를 공유하는 일부 판사들에게 사법의 정치화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8월 30일 인천지법 판사 오현석은 법원 내부 게시판에서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판사들마다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등의 주장을 해 논란을 빚었다.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인권법연구회’ 출신인 그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조사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재조사를 요구하며 10여 일간 단식까지 한 바 있었다.
이에 보수 논객 전원책은 “사법부는 판사 개개인의 정치적 이념을 달성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오 판사의 돌출 발언에 우리가 눈감으면 판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사법의 정치화’ 방치하면 법원 독립 흔들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2017년 9월 2일)을 통해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위험하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사법은 우리 사회 갈등과 분쟁 해결의 최종 절차이기 때문이다. 사법이 정치화하면 거꾸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개입이나 불복 운동을 부메랑처럼 부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사법부의 독립도 밑동부터 흔들리고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 체계도 위험해질 수 있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가운데)와 전성균(왼쪽), 조대원 최고위원이 2024년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 등에 대한 내란죄 및 직권남용죄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DB
사법부 개혁을 검찰에 맡긴 사법부 수장
김명수는 퇴임하는 양승태의 뒤를 이어 2017년 9월 25일, 오전 0시부터 6년의 대법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그날 첫 출근길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추가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김명수는 한 달여 뒤인 11월 3일 양승태 대법원에서 벌어졌다는 ‘사법농단’에 대한 2차 조사를, 이듬해인 2018년 1월 3차 조사까지 지시했다.2018년 6월 15일 김명수는 “직접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하진 않겠지만, 인적·물적 자료 등 필요한 협조를 마다치 않겠다”며 사실상 검찰에 수사 개시를 요청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두고두고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 개혁을 검찰 수사의 칼날에 맡겼다”라는 내부 비판을 받게 된다. 한겨레 선임기자 이춘재는 ‘검찰국가의 탄생: 검찰개혁은 왜 실패했는가?’(2023)에 “적폐 수사로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윤석열 사단에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발언은 호재였다”고 썼다. 이후 100명 넘는 판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한 법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돌아와 우는 판사들이 많았다. 이후 상당수가 법원을 떠났다”고 했다.
파격 발탁은 상호 독립적이어야 할 관계마저 서열 체제로 만드는 걸까. 2018년 9월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 때 문재인이 사법농단 의혹을 거론하며 “만약 잘못이 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합니다”라고 사법부를 비판하자, 김명수는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맞장구를 쳐 ‘대법원장 맞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2019년 1월 24일 양승태가 구속됐다.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이 구속된 사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의미에 대해 이춘재는 이렇게 썼다. “‘윤석열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법원장까지 잡아넣으며 역대 최강의 권력기관으로 거듭났다. 검찰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정권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검찰이 탄생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낳은 기막힌 아이러니였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여전히 ‘중단 없는 적폐청산’만 외쳐댔다. 그의 집권 목적이 ‘적폐청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영을 넘어선 공평무사한 적폐청산이라면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겠지만, 문재인의 적폐청산은 ‘내로남불’ 일변도여서 정치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의원들의 “법으로 하는 주먹질”
검사 출신 민주당 의원 금태섭은 한겨레 2019년 4월 6일자 기고문에서 툭하면 고소·고발하는 의원들의 싸움을 가리켜 “법으로 하는 주먹질”이라고 했다. 그는 1년 전 일본 방문 시 현직 검사로서 최고위 직책을 맡고 있는 법무성 형사국장부터 부장검사,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과 연배의 검사들을 만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했다.“일본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명예훼손죄가 있습니다. 무고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아베 신조 총리는 소위 ‘학원스캔들’ 문제로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런 공방이 벌어질 때 정치인들끼리 서로 고소·고발을 하는 일이 많습니까? 예를 들어 아베 총리는 자신을 공격한 야당 의원을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그런 고소를 당한 야당 의원은 아베 총리를 무고죄로 고소해서 검찰이 시비를 가려줘야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까?”
질문을 받은 일본 검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라고 무릎을 치더니 바로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을 했다나. “정치적인 논란을 가지고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고발을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의원들 스스로도 고소장을 내지 않고 설사 고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억지로 고소장을 접수시키면 입건은 되겠지만 제대로 수사를 해주지 않고 처박아 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소해 봤자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이지요.”
이어 금태섭은 “실제로 적용은 거의 되지 않아도 형법전에 명예훼손죄가 있는 일본이 이럴진대 애초에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는 대다수 선진국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고소장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라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진보 진영의 구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진보는 토론과 논쟁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를 문제 삼아서 법정으로 가자고 하는 것은 진보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권을 잡은 기회에 솔선수범하면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진보 쪽에서 고소·고발을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하면 결국 보수 쪽도 정치적 문제를 검찰이나 법정으로 들고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문화를 바꿔나가는 것이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좋은 제안이긴 했지만, 정당 보스와 강성 팬덤의 노예가 돼 있다시피 한 국회의원들에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현시점에서 보자면, 금태섭 자신이 그런 현실에 대한 산증인이다. 그는 정당 보스와 강성 팬덤에 대한 아부를 거부하면서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의원이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공천에서 탈락하고, 당에서 사실상 쫓겨난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은 “법으로 하는 주먹질”과 보스·팬덤에 아부를 잘 하는 의원들이 득세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코미디 같은 짓을 하면서도 그게 코미디인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엽기적인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금태섭이 기고문의 첫머리에 언급한 희한한 풍경을 소개한다.
“‘고소장’ 혹은 ‘고발장’이라는 제목이 적힌 봉투를 들고 검찰청 민원실에 나타나서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국회의원.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풍경이 아니다. 의원 개인과 관련된 문제로 고소·고발을 하기도 하지만 여야가 대립하는 와중에 당직을 맡은 의원이 고소장을 내기도 한다. 주로 상대 쪽과 공격적인 논평을 주고받는 원내대변인들이 그 구실을 맡는다. 형사 고소에 이를 정도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이슈일 터.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고소장을 들고 뉴스에 나오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적(!)’에게 정의의 심판을 안기는 용감한 모습으로 보여서 환호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정치의 모습일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의원들이 고소장 들고 사진 찍는 모습은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정상적인 정치’의 풍경이 되고 말았다. 못난 정치다. 아니 단지 못난 정치일 뿐인가. 정치의 사법화라는 말은 너무 점잖아서 정치판 패싸움을 혐오하는 유권자들에게조차 공분(公憤)을 유발하지 못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궁극적으로 정치의 죽음을 의미할진대, ‘못난 정치’를 넘어서 ‘사악한 정치’라고 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라. 정치의 사법화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치에 의한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정치를 사법화 했으면 그 결과에 대해 승복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판엔 그런 승복의 문화가 없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환호하고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저주를 퍼붓는다. 정치인들만 그런 짓을 하면 또 모르겠는데, 선량한 시민들까지 동원해 그런 패싸움에 미쳐 돌아가게 만드니, 이게 사악한 정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019년 4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회의장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상민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경수사권조정안 패트스트랙 지정을 통과시키고 있다. 패스트트랙 사태로 인해 여야 의원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동아DB
‘무능’이 아니라 ‘사악함’이다
2019년 5월 5일 국회 패스트트랙 사태로 검찰에 고발된 여야 의원만 67명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 1~4월 언론에 보도된 정치인들의 고소·고발 사건만 해도 10건을 훌쩍 넘어섰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한국에서만 정치인 고소·고발이 남용되고 있는 것은 모든 문제를 ‘형사사건화’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했다. 이 기사에 인용된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 이창현은 “민사사건에 인지대를 붙이듯 고소사건도 불기소하는 경우엔 비용을 과감히 부담하게 해야 한다”면서 “한 50만 원 받으려고 고소를 남발하는 경우도 있는데 쉽게 말해 고소장이 ‘공짜’라서 가능한 거다. 본인 부담을 원칙으로 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1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 10호 환영 행사에서 이해찬 대표(왼쪽)가 이탄희 전 판사에게 당헌 당규 책자를 선물하고 있다. 동아DB
문제는 수사기관에서도 정치권에서 넘어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거나 사법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패스트트랙 건을 수사하고 있던 영등포경찰서와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관련 영상과 녹취, 증언 등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일로 소환된 정치인은 단 1명도 없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벌어진 일을 사법부에서 판단하라고 하면 사법부가 정치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며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건을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당들은 사법부가 눈치를 더 보게끔 하기 위해 법조인 출신을 앞다퉈 영입하곤 했다. 고려대 로스쿨 교수 하태훈은 법률신문(2019년 9월 2일) 칼럼에서 정치의 사법화로 인한 사법지배(juristocracy)로 “정치와 정치인은 사라지고 법과 법률가만 살아남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경향신문은 “서초동에 기대는 여의도…‘무능 정치’만 반복된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2019년 10월 11일)를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다.
“여의도정치는 사라지고 정당들은 서초동으로 향하고 있다. 정치의 수단인 타협과 중재 대신 사법기관 판단에 기댈 뿐이다. 그렇다고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유불리에 따라 검찰과 법원을 비판하거나 옹호한다. 때로는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고, 사법부를 공격하는 식이다. ‘여의도의 무능을 서초동에서 증명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무능이 아니다. 무능하다는 건 잘해 보겠다는 뜻은 있지만 능력이 모자라서 잘할 수 없을 때 써야 어울리는 말이다. 사악함이다. 저쪽을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사악함이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나 이유는 무엇인가. 국리민복(國利民福)? 그건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냥 언론 앞에서 떠들 때나 쓰는 헛소리다. 승자독식 체제에서 살 길은 오직 저쪽을 죽여야만 한다. 그냥 죽이겠다고 들면 불편해할 사람들이 있을 테니,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한 대의명분으로 포장을 하긴 한다. 하지만 우선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정치를 사적인 ‘밥그릇 싸움’으로 여기고 실천하는 사악함이다. 진영으로 갈라진 패싸움이 상대편에 대한 증오·혐오의 정서를 고조시켜 그걸 보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고소·고발전 지휘하는 법조인 출신 의원들
경향신문 논설실장 양권모는 2019년 11월 5일자 칼럼에서 “한마디로 여의도에 법조인 명패만으로 정치에 무임승차한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며 이런 인적 구성부터 바꿀 걸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는 정치의 사법 의존을 부추기고, 경직된 법 논리가 득세해 대결 정치를 추동하는 걸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다양한 계층, 직능, 직업의 대표들이 의회에 참여하는 게 대의민주주의를 튼튼히 한다. 법조인처럼 특정 집단이 과잉 대표되면 의회가 다양성을 잃고 대표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닮은 국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조인으로 기울어진 대의 운동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그러나 정당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20년 2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인재 영입 환영 행사를 보자. 총선 후보로 끌어들인 20명 중 6명이 법조인이었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젊은 층과 소수자를 중시해야 할 ‘인재 영입’에선 의식적으로라도 법조인 비율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본다”고 했지만, 그건 현실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는 게 민주당의 생각이었을 게다. 이 생각이 옳다는 걸 말해 주듯, 당 지도부를 법조인들이 장악한 자유한국당도 이에 질세라 7명의 법조인을 영입했으니 말이다.
여론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면 거대 정당들은 새로 영입하는 인재 전원을 법조인으로 채웠을지도 모른다. 그 쓰임새가 워낙 독보적으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정권현은 ‘‘과포’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2020년 2월 12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의석의 15~20%를 법조인이 차지하는 ‘법조 국회’가 3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법치 수준은 어떻게 됐나? 법치 실현의 ‘소금’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 여당이 주도한 4+1 협의체가 공수처 설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한 면면은 대부분 법조 출신이다. 이들은 각 당의 법률위원장, 법률지원단장 같은 자리를 꿰차고 고소·고발전 선봉에 나선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공개 비난하고, 특권의식의 발로에서인지 검찰 소환은 거부한다. 국회법은 예사로 어기면서 판단은 사법부에 던져버린다.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 정상인가.”
유권자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사법고시에 무슨 한이 맺힌 건지 그걸 통과했다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정권현이 잘 지적했듯이, “문제는 법조인이라는 품질보증서를 달고 선거에 나서면 유권자들에게 상당 부분 먹혀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거에 떨어져도 다시 변호사를 하면 된다’는 안전판까지 준비된 사람들이다.”
정치의 사법화를 키운 법률가 마인드
대통령 문재인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의 본질을 비판하다’(2011)에서 “정치의 문제는 정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며 “정치와 민주주의를 검찰이나 권력기관의 손에 맡겨놓고 있는 이상, 검찰이나 권력기관의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치 사안이 법으로 결정되는 ‘정치의 사법화’를 경계한 말이다. 2020년 12월 8일 중앙일보 기자 강태화는 “‘정치 사법화’ 경계했던 文의 모순…秋·尹 갈등에 法 꺼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말을 소개하면서 문재인이 자신의 생각을 부정한 모순(矛盾)을 범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는 말이 있다. 법정을 이끄는 판사, 검사, 변호사를 뜻한다. 이 ‘세 개의 바퀴’가 법정이 아닌 정치를 이끌고 있다. 현직 검찰 수장인 윤석열 검찰총장과 윤 총장을 징계하겠다고 나선 판사 출신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그리고 합법적 징계 절차를 주장하는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대 정치 현안이 된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거대한 소송전을 방불케 한다.”
이어 강태화는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근거로 출범했다. 출범 이후에도 많은 정치 사안 해결에 ‘법대로 해보자’는 논리가 동원됐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판결하자, 문 대통령은 2019년 1월 신년회견에서 “일본 정부도 불만이 있더라도 한국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한일 간의 정치와 외교는 사실상 실종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 23명의 장관급 인사가 야당의 강한 반발로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10명)나 이명박 정부(17명) 때보다 훨씬 많은 수다. 이때도 ‘법적으로 하자는 없다’는 이유를 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청문회 절차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어 국민통합과 좋은 인재 발탁의 큰 어려움이 된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적 하자는 없다던 조 전 장관의 임명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질이 생략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보수 언론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2020년 12월 24일 법무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중징계에 대해 법원이 ‘집행 정지 결정’을 내린 ‘사건’을 보자. 법원 결정이 나온 지 16시간 만에 문재인은 “국민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차질 없이 검찰개혁을 완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겨레21’은 ‘강경파에 휩쓸리는 민주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윤 총장 복귀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검찰개혁은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애초에 ‘윤석열 징계=검찰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법원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속하는 ‘검찰총장 진퇴’의 정당성까지 판단하도록 상황을 키운 것(‘정치의 사법화’)도 그들이다.”
물론 문재인에겐 선의의 뜻도 있었겠지만, 그의 경직된 법률가 마인드가 혼밥 체질의 성격적 특성과 결합하면서 정치의 사법화에 앞장선 결과를 초래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치적 결단과 설득이 꼭 필요했던 일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소송전에 내맡김으로써 국가적 혼란과 국민적 증오·혐오의 대결 구도를 부추긴 건 아니었을까. 그의 집권 시절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극심해졌고, 그 후유증이 오늘날의 정치까지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