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외교? 자칫하면 줄타기 외교로 비칠 위험
중국에 비핵화 동참 요구했으나 묵묵부답
추경 통해 경기 부양하려면 100조 이상 필요
국힘 ‘내란’ 세력으로 보는데 협치 가능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중앙홀(로텐더홀)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사를 하고 있다. 동아DB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다. 새 정부가 해결할 과제가 많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으로 전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빠르게 관세 협상에 나섰어야 했으나 쉽지 않았다. 지난해 12월부터 대통령이 궐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교·안보 관련 협의는 멈췄고, 대북 관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한 정책적 논의도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과는 관세 및 방위비 협상 등 풀어야 할 협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0%로 이전보다 0.5%포인트 내려 잡았다. 미국발 관세전쟁 여파로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된 점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OECD마저 한국의 1%대 저성장을 전망하면서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고도 나왔다.
심각한 정치 양극화도 당면 과제 중 하나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가 2022년 실시한 국가 정치 양극화 실태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응답자의 90%가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사람들 간의 충돌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조사대상 19개국 중 1위다. 지난 정부 여야가 극한의 대립으로 일관했고, 그 결과 계엄 선포 등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통령선거 후보 대부분이 개헌과 정치 양극화 해소를 공약한 것도 이 같은 세태를 반영한 처사다.
이재명 정부는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신동아’는 현 정부 당면 과제를 △미·중 외교 △한반도 비핵화 △경기부양 △정치 양극화 해소 등 4개 부분으로 나눠 정부의 정책 방향과 그에 따른 우려를 분석했다.
미·중 갈등 심해질수록 외교정책은 일관돼야
현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급한 불은 미국과의 관계다. 관세 및 방위비 협상은 물론 심심찮게 불거지는 ‘주한미군 감축설’도 안보 불안감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첫 외교 행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였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6월 6일 오후 10시경(미국 시간 오전 9시)에 약 20분간 통화했다.대한민국 대통령이 당선되면 해외 정상 중 최우방국인 미국 대통령과 첫 통화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간은 당선 직후 통화했지만 이 대통령만 당선 이틀 뒤에 통화가 성사됐다. 이를 두고도 비판이 이어졌다. 나경원 의원은 6월 6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 5시간 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 이튿날에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이 대통령은 취임 사흘이 지났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철수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 지연에 대해 시차 문제라고 해명하지만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궁색한 변명”이라며 “‘코리아 패싱’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신호가 아닐지 우려된다”고 적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이 대통령이 강조했던 새 외교정책, ‘실용 외교’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에 집중했다면, 새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은 유지하며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5월 13일 대구 유세 현장에서 “한미동맹도 중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와 원수질 일은 없지 않나”라며 “국익 중심으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잘 유지하면서 물건도 팔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실용 외교 노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미·중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시점에서 실용 외교가 양국 사이 줄타기 외교로 비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강대국 간의 경쟁이 심해질수록 한국과 같은 지정학적 중간 국가는 외교정책을 일관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강대국은 상대적 약소국과 외교 전략을 수립할 때 자신들이 유리했던 시점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도 “사안별로 정체성과 국익, 국민 합의에 기반한 외교 원칙을 선제적으로 만들고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6일 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북핵 억제하려면 중국보다 미국 신경 써야
미국은 이미 아시아 국가들에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5월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중국은 아시아를 지배하고 통제하려 한다”면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이미 미국은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6월 3일 이 대통령 당선 축하 메시지에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적었다. 이에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백악관의 우려에 대해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미국 측에 중·한 관계를 이간질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꾀하는 이유는 북한을 압박해 비핵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가깝게 지내며 양국이 모두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이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6월 10일 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0분간 영상통화를 진행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 평화 안정에 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하지만 중국 측이 발표한 양국 정상 통화 내용에는 해당 내용이 빠져 있었다. 중국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 대통령에게 “두 나라(한국과 중국)가 협력해 혼란으로 뒤엉킨 국제 정세에 확실성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 일방주의와 관세전쟁을 비판하며 한국과 중국이 공동전선을 펴자고 요청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비핀 나랑 MIT 정치학과 조교수는 6월 12일 발간한 ‘협상, 교착, 그리고 억제 : 북·미 외교 재개를 위한 시나리오’ 보고서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조급한 외교는 북한을 유리하게 만들고 한미동맹에도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실질적 외교보다는 (북·중·러) 확장 억제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통해 한미 공조의 일관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찬대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는 6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속한 추경(추가경정예산) 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동아DB
내란 세력과 협치 않을 가능성 높아
이 대통령이 실용 외교로 외교·안보·북핵 문제를 해결하러 나섰다면 경기 침체는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대처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6월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경기회복과 소비 진작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라”고 지시했다.추경 외에도 정부의 지출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의 ‘기본사회’ 공약 때문이다. 기본사회는 생애주기별 소득보장 체계를 구축하는 일종의 복지 체계다. 그만큼 추가 재정 지원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공약의 세부 내용으로는 △아동수당 지급 확대 △청년미래적금 도입 △기초연금 부부 감액 폐지 △자영업자 육아휴직 급여 확대 △농어촌 기본소득(농어민 1인당 월 15만 원 지급) 등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집계에 따르면 농어민 1인당 월 15만 원을 지급하면 2016년 한 해에만 17조4122억 원이 든다. 이 대통령 임기 내내 지급한다면 총 소요 비용은 86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왼쪽)은 6월 10일 국회를 찾아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5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환자가 힘들어한다고 내일, 모레 생각하지 않고 스테로이드를 부어선 안 된다”며 과도한 추경을 경계했다. 하지만 한은은 6월 12일 “내수 침체에 대응해 추경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이 총재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계 관계자는 한은의 견해가 바뀐 이유에 대해 “정부 초기인 만큼 (한은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 평가했다.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마지막 현안은 정치적 양극화 해소와 협치다. 이 대통령도 취임사를 통해 이를 공언했다. 취임사에서 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선언했다.
협치의 첫 행보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6월 10일 국회를 찾아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박찬대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를 만났다. 우 정무수석은 이 자리에서 “민생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야당과도 진지하게 협의하고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며 협치의 가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 비대위원장은 “지금의 정치 상황은 협치보다는 대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통령 재판 중지법’과 이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이승엽 변호사의 헌법재판관 후보 검토 등을 짚으며 “법 위에 선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여당만으로 입법과 행정이 가능한 상황이라 (여당이나 대통령실의) 협치 의지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6월 10일 내란 특검법을 의결한 것만 봐도 윤 전 대통령과 관계된 정치세력은 협치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