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호

삼단봉·보디캠 챙겨 출근…물류센터는 ‘내전 중’

[기획 | 노란봉투법 그 후 100일] ‘노사갈등’보다 무서운 ‘노노 갈등’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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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6-06-2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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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봉투법 100일…파업 불참자 향한 폭언·폭행 늘어

    • “뭐하는 ××냐” “죽어야 쓰겄다”며 CCTV 밖에서 폭행

    • 가족 같던 동료들, 파업 동참 여부로 편 갈려

    • 만일 대비해 호신용품 지참, 4채널 블랙박스 설치

    • 화물연대의 반장직 독점, 비조합원에 ‘은근한 불이익’

    • “단체행동 않는 소극적 단결권 존중돼야…노동계 자정 필요”

    6월 2일 CU나주물류센터 인근의 한 배송 차량에 화물연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최진렬 기자

    6월 2일 CU나주물류센터 인근의 한 배송 차량에 화물연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최진렬 기자

    “너는 도대체 뭐 하는 ××냐. 안 되겠다. 너는 좀 죽어야 쓰겄다.” 

    CU나주물류센터에서 배송 기사로 일하고 있는 Y씨는 한 달 전 일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아찔하다. 여느 때처럼 물류창고에 출근해 물품 분류 작업을 돕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로 작업이 멈춰 잠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다른 동료 기사가 다가와 느닷없이 욕설을 퍼붓더니 멱살을 잡고 수차례 폭행한 것이다. “웃고 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Y씨는 ‘올 게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CU 물류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배송 기사들을 상대로 보복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해 조만간 이런 일이 터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뭐하는 ××냐” “죽어야 쓰겄다”며 CCTV 밖에서 폭행 

    6월 17일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나면서 일선 근로 현장에서는 이른바 ‘노노(勞勞) 갈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는 물론 개인사업자이자 특수고용노동자인 배송 기사들까지 사실상 교섭권을 인정받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집단행동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파업 참여 여부를 둘러싼 노동자 간 갈등이 깊어진 탓이다. 파업에 적극 동참하지 않은 직장 동료를 향한 따돌림과 괴롭힘이 잇따랐고, 일부 현장에서는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신동아’ 취재를 종합하면 5월 7일, 전남 나주의 CU나주물류센터에서 파업 문제를 둘러싼 배송 기사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화물연대의 CU 물류파업이 종료된 후 일주일간의 휴식을 보낸 화물연대 집행부 간부가 복귀 다음 날 비(非)화물연대 배송 기사를 폭행한 것이다. 피해자인 Y씨는 그간 화물연대의 물류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화물연대 측이 BGF로지스와 협상하는 데 사용한다며 요구한 용차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은 점이 폭행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 달 전의 영수증을 갑자기 제출하라고 했는데, 당시 용차 담당자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사정을 설명했지만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Y씨는 멱살을 잡힌 채 물류센터 건물 밖으로 끌려 나가 수차례 폭행을 당했는데,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Y씨는 “조금이라도 맞대응했다가 쌍방 폭행으로 엮여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상대방의 목적이 그것일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내에서는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소수의 배송 기사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유·무형의 압박을 통해 현장을 떠나게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폭행이 이어지던 가운데 Y씨는 자신이 CCTV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카메라가 촬영하는 방향으로 뒷걸음쳐 분위기를 진정시켰고, 잠시 뒤 BGF로지스 직원이 몸을 던져 두 사람을 떼어놓으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이후 Y씨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작업장 내에 있던 갈고리를 집어 들고 “내가 언제 폭행했느냐” “경찰 신고를 하고도 여기서 발붙이고 일할 수 있겠느냐”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경찰의 중재로 상황은 마무리됐으며, 현재 나주경찰서가 사건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합의 의사를 밝히며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일주일 이상 피해자 측에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만일 사태 대비해 호신용품 지참, 4채널 블랙박스 설치

    앞선 사태는 누적돼 온 노노 갈등이 수면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평가가 많다. ‘신동아’가 만난 복수의 CU나주물류센터 배송 기사들은 “한때 가족처럼 지냈던 동료들이었지만 지금은 파업 동참 여부에 따라 편이 갈리고 있다”며 “CU 물류파업 국면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해 긴장감이 높아졌던 만큼 터질 일이 터졌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사갈등이 확산되면서, 파업 참여를 둘러싼 노노 갈등마저 불붙는 양상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특히 CU나주물류센터는 노노 갈등의 최전선으로 꼽힌다. 70여 명의 저온파트 배송 기사 가운데 약 90%가 화물연대 소속으로, 파업 불참자가 소수에 불과해 압박받기 쉬운 구조다.

    6월 2일 전남 나주의 CU나주물류센터. 최진렬 기자

    6월 2일 전남 나주의 CU나주물류센터. 최진렬 기자

    “원래는 동료들끼리 정말 친하게 지냈다. 배송용 트럭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고쳐주고, ‘형 고맙습니다’ 하며 웃던 사람들이었다. 집안일로 고민이 있으면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곤 했다. 그랬던 일터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곳이 됐다.”

    배송 기사 안모 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분위기가 더 나빠질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보여준 물류센터 내부 식당은 직장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대낮인데도 불이 꺼져 어두웠고, 의자는 두서없이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한 달여간 이어진 파업 동안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식당 주변에 천막을 치고 내부 공간까지 사용하면서 운영이 어려워진 탓이다. 곳곳에 널브러진 쓰레기와 정리되지 않은 집기들은 파업의 후유증을 짐작하게 했다. 안 씨는 “식당 아주머니는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냐”며 “투쟁 외의 모든 가치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안 씨는 최근 들어 호신용품을 지닌 채 출근하고 있다. 일터에서 여러 차례 폭행·폭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내린 결정이다. 앞서의 ‘Y씨 사건’ 이전에도 배송 기사 한 명이 파업 기간 중 일하다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상대방이 모자와 마스크를 써 신상이 특정되지 않아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비화물연대 배송 기사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단봉을 휴대하거나 보디캠을 착용하고, 차량 훼손에 대비해 4채널 블랙박스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 씨는 기자에게 2월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줬는데, 영상 속에는 화물연대 측 조합원들이 그의 차량을 둘러싼 채 위협하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안씨는 “경찰도 아닌데 왜 이런 장비를 갖추고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무엇보다 비화물연대 배송 기사들이 견디기 힘들어한 것은 달라진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파업이 한창이던 4월 12일. 화물연대 측은 사업장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보험 든 거 알지 않느냐. 징역 가도 일당 15만 원씩 나온다”며 과격 행위를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동료 배송 기사 A씨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징역을 가도 일당이 나온다’며 폭력을 부추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은근한 불이익’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물류센터 배송 기사들은 사업자등록을 하고 회사와 용역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특수고용노동자이면서도 개인사업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문제는 업무 배정 과정이다. 휴가자 대체 인력 투입이나 지원배송 인원 선정 등은 ‘반장’ 역할을 맡은 배송 기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화물연대 측이 관련 보직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당초 반장직은 자신의 배송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사 간 작업 조정과 일정 관리까지 도맡아야 하는 자리였다. 가욋일이 따르는 만큼 기피되는 보직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나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반장을 도맡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고 한다. 안 씨는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지원배송 업무에서 밀려나거나, 기피되는 장거리 노선을 맡는 일이 잦아졌다”고 호소했다. 다른 배송 기사도 “전날 갑작스럽게 일정 변경을 통보받는 경우가 많아져 병원 예약도 맘 편히 잡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업무 배정이 조합 가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 대응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한 노무사는 “화물연대가 우호적인 배송 기사에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다만 이를 제재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아 관행처럼 굳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주 입장에서도 개입이 어려운 만큼, 비조합원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더더욱 난망한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김슬기 비노조택배기사연합 대표 역시 “차라리 폭행 사건처럼 잘못이 명백한 경우 책임을 묻는 게 수월하다”면서 “조합원-비조합원 간 갈등 다수는 형사사건으로 다룰 정도가 아니라서 대응은커녕 파악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등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를 압박하는 일은 BGF로지스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을 둘러싸고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3월 한 유튜브 방송에서 “(파업 기간에) 만약 회사를 위해 근무하는 자가 있다면 명단을 관리해 추후 조합과 협의가 필요한 강제 전환 배치나 해고에 이들을 우선적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전 노사 합의가 타결되면서 실제 조치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파업 불참자를 향한 공개 경고로 받아들여져 논란이 일었다.

    “파업 불참자, 해고 우선 안내할 것”…불붙는 노노 갈등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 요구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6월 기준 1000곳이 넘는 하청 노조가 원청 430여 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지방노동위원회가 판단한 사건 80건 가운데 대부분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하반기부터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이 줄지어 나오는 만큼 원청과 하청 노조 간 교섭 국면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파업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노노 갈등이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동법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적극적 단결권’도 중요하지만, 노조에 속하지 않거나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인 ‘소극적 단결권’ 역시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 노동 현장에서는 이러한 균형이 지켜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을 포함한 다양한 근로자들의 이해관계가 일터 내에서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노동계 내부의 자정작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자는 일선 배송 기사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화물연대 측에 질의했으나 “질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내주면 잠시 후 연락하겠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후 비조합원 배송 기사에 대한 업무상 차별 의혹, 조합원-비조합원 간 폭행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책, 노노 갈등 완화책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고,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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