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호

“‘5선 시장’ 만든 건 한강벨트…부동산 민심이 정권 흔든다”

[Interview] 박해천 동양대 교수가 말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6-06-2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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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구정 84%, 이촌1동 72%…자산 기반 계급투표 뚜렷

    • 박정희와 ‘맨션의 트라이앵글’, 오세훈과 ‘한강벨트’

    • 부동산 ‘상급지’는 왜 ‘한강 뷰’를 ‘픽’했나

    • 아파트 기반 중산층 신화와 ‘벼락 거지’

    • 2030이 능력주의와 절차적 공정성 외치는 이유

    • 부동산정책, 새로운 게임의 규칙 만들어야

    박해천 동양대 교수. 조영철 기자 

    박해천 동양대 교수. 조영철 기자 

    ‘개표 13시간 만에 골든크로스, 오세훈 대역전’이라는 속보가 뜨기 시작한 것은 선거 다음 날인 6월 4일 오전 7시 20분 전후. 서울시장 선거 개표율 94.12% 상황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일 오전 8시 2분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다면 다음 중 그 이유는?” 여당의 패인에 대해 박 교수는 5개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1. ‘공소 취소’ 추진하던 친명/ 2. 차기 대권주자 자리 놓지 않으려던 친문/ 3. 정원오/ 4. 아파트/ 5. 2030 보수화

    그러자 흥미로운 댓글이 달렸다. 선택지 중 3, 4, 5번은 사실상 하나라는 것이었다. 

    3. 정원오=아파트 가지는 걸 방해할 사람/ 4. 아파트=아파트를 이미 가진 사람/ 5. 2030 보수화=아파트를 가지고 싶은 사람

    마을 이장과 강남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의 대결

    박 교수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촌평을 남겼다.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4만6800달러의 글로벌 도시 서울을 두고 진보 혹은 좌파 진영이 내세운 시장 후보의 캐릭터 콘셉트가 ‘마음씨 좋은 운동권/시민운동 출신 마을 이장님’인 이상, ‘대기업 임원 혹은 법조계 출신 강남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 콘셉트의 보수진영 후보에게 이기기 어려울 것 같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박해천 교수는 한국 현대사, 건축디자인, 자본주의가 어떻게 결합해 ‘한국형 중산층’이라는 계급을 형성해 왔는지 추적해 온 사회문화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콘트리트 유토피아’, 2013년 ‘아파트 게임’, 2015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등 이른바 ‘콘유 3부작’을 출간했다. 2023년 엄태화 감독의 동명 영화에 영감을 준 책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새로운 물리적 공간으로 등장한 아파트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개조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아파트 게임’에서는 부동산 자본의 증식 과정이 세대별 계급과 욕망을 어떻게 분화시켰는지를 살펴봤다. ‘아수라장 모더니티’에서는 고도성장기 아파트 공화국의 토대가 된 한국인의 근대적 감각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했다. 

    15년 만에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정판 작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그는 한반도 서남단 지방도시에서 태어나, 서울과 고향의 중간쯤에 위치한 도시에서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서울 강북 동네에서 경기도 북단 도시로 출퇴근하는 1971년생 가장의 시선에서 ‘부동산 선거’로 불리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은 ‘아파트’로 수렴됐다. 

    50대 중반에 접어들어 30대에 쓴 책의 개정판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 원고는 대부분 2009년에 썼다. 그 시기는 개정판 서문에도 언급했지만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보수 후보(이명박)가 당선되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이행기의 초입이기도 했다. 2002년 이후 지속된 부동산시장의 과열 양상은 한풀 꺾였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편된 세계의 논리는 특정 계층·지역·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대중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그들의 의식구조와 행동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개정판을 쓰면서 비로소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쓰던 시기가 역사적으로 특수한 국면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분양가 자율화가 진행되던 시기를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본격화하는 시기라고 했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아파트의 변화 과정은 ‘브랜드화’를 중심으로 ‘고급화’와 ‘차별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 건설사, 수요자 간의 삼각관계가 은행, 건설사 수요자의 삼각관계로 대체됐다.”

    아파트의 브랜드화가 한국 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먼저 1998년부터 2007년까지를 세 단계로 구분해 보자. 첫 번째 시기는 1998~1999년까지로, 분양가 자율화라는 제도적 변화를 계기로 LG빌리지, 롯데캐슬, 타워팰리스 같은 초기 아파트 브랜드가 등장했다. 완전한 브랜드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소구 집단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시화하는 디자인 기제로 브랜드가 기능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기는 2000~2003년까지로 삼성 래미안, 대림 e-편한세상을 등 주요 건설사들이 체계적인 브랜드 개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며 아파트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단계다. 강남 재건축 수주전이 브랜드 서열의 시험대로 부상하는 한편, TV광고에서 아파트는 거주자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표상하는 기호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당신의 이름이 되는 아파트’(래미안), ‘앞선 라이프스타일’(자이) ‘그녀의 프리미엄’(푸르지오) 같은 광고 카피가 이때 등장했다. 세 번째 시기는 2004~2007년까지로 거의 모든 건설사가 독자 브랜드를 내세워 경쟁하는 단계다. 개별 브랜드 간 인지도와 선호도 격차가 자산 가격에 직접 반영되는 ‘브랜드 위계의 공고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잠실주공5단지. 2020년 8월 4일 촬영. 동아DB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잠실주공5단지. 2020년 8월 4일 촬영. 동아DB

    ‘당신의 이름이 되는 아파트’와 상위 중산층의 구별 짓기 

    중산층의 분화도 이때부터 본격화한 건가. 

    “이 변화 과정은 아파트의 금융상품화와 ‘상위 중산층’의 부상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중층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분양가 자율화와 주택담보대출 확대로 촉발된 아파트의 금융상품화는 브랜드가 자산가치를 담보하는 ‘금융적 기호’로 기능하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토대 위에서 외환위기 이후 분화된 중산층, 특히 경제적 안정성과 강한 계층적 정체성 욕구를 동시에 갖춘 ‘상위 중산층’은 아파트를 통해 자산 증식과 ‘구별 짓기’를 동시에 실현하는 핵심적 집단으로 사회적 기반을 형성했다. 그리고 저금리를 기반으로 대출 레버리지를 활용해 시장에 진입한 젊은 중산층은 그 욕망을 전국적 규모의 사회현상으로 확산시켰다. 이것이 2000년대까지의 변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 아파트 문화는 또 어떻게 달라지나. 

    “‘아파트 브랜드 시대’를 거쳐 ‘아파트의 하이엔드 브랜드화’ 단계로 진입한다. 아크로리버파크, 래미안원베일리, 아크로리버뷰,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등 재건축을 통해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로 거듭난 서울 강남의 단지들이 한강을 배경으로 늘어선다. 이 경관은 시각적 위용의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의 ‘초양극화’를 상징하며, 특정한 사회적 의미 체계를 서울 도시 공간에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10개 구(송파, 광진, 영등포, 양천, 강동, 동작, 중, 용산, 서초, 강남)에서 승리했는데 이 가운데 8곳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서울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상위 10개 지역에 해당한다. 이를 ‘부동산 민심’ ‘한강벨트 효과’라고 할 수 있나. 

    “서울시장 선거의 승부가 ‘한강벨트’에서 갈렸다는 해석은 그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본다. 아파트의 브랜드화와 하이엔드 브랜드화를 말했는데 그런 흐름이 고밀도로 집중된 지역이 바로 한강벨트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이 보수를 선택한 것은 계급투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산 기반의 계급투표라는 현상이 한강벨트 아파트를 통해 가시화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특정 지역 아파트 거주자의 계급투표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광역화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수도권과 광역시 규모의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됐다.”

    한강 이남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아파트 단지. 2024년 6월 25일 촬영. 사진 동아DB

    한강 이남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아파트 단지. 2024년 6월 25일 촬영. 사진 동아DB

    한강벨트 아파트에서 자산 기반의 새로운 계급이 형성됐다는 의미인가. 

    “서울에서 아파트 가격은 그 자체로 자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1940년대 이전 출생한 올드스쿨 상류층과 중류층이 사라지면서, 대신 아파트가 소득·자산·직업·학력·성별·가구 구성·라이프스타일 등을 반영해 보유자의 계층 위치를 알려주는 종합 지표로 자리 잡았다. 이런 지표 측면에서 한강벨트 아파트는 다른 지역 아파트와 차별성을 지닌다. 역설적으로 ‘아파트 공화국이 이룬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박정희 정권에서 건설한 ‘맨션의 트라이앵글’이 강남 신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한강벨트와는 어떤 관계가 있나. 

    “1970년대 초반, 기존의 60년대식 아파트(대표적으로 1963년에 완공된 마포아파트 단지)와 단절하고 대한주택공사가 이촌동에 한강맨션을 건설했다. 이어 서울시 주도의 여의도시범아파트, 주택공사의 반포주공 1단지로 이어지는 세 지역의 흐름을 일컬어 ‘맨션의 트라이앵글’이라고 했다. 이 지역들은 모두 공유수면매립 공사를 통해 조성된 한강변 택지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후 ‘이층 양옥’이라는 경쟁자를 밀어내고 ‘맨션’이라는 이름의 아파트가 고급 주거 모델로 부상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한강벨트는 ‘맨션의 트라이앵글’이 1인당 개인소득 3만5000달러 시대와 보조를 맞춰 확장된 형태라고 하겠다.”

    부동산 전문용어가 된 ‘상급지’와 계층이동 욕망

    한강벨트를 좁게 해석하면 ‘한강 뷰’라고 할 수 있는데 ‘한강이 보인다’가 하나의 특권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한강벨트 내에서도 위계화가 이뤄지는데 그중에서 ‘한강 뷰’ 아파트는 최상위 포식자라 할 수 있다. 거실 두쪽 벽면에 한강 뷰를 담아내도록 설계된 재건축아파트가 중산층에겐 꿈의 ‘스위트 홈’ 모델이 됐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한강 뷰를 강조하면서 ‘집에는 알맞은 영혼이 있어’라고 하지 않나. 한강 뷰 아파트가 특권적 지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20세기 후반까지도 강남 아파트의 베란다 창은 채광과 환기를 위한 장치였다. 거주자는 커튼을 쳐서 맞은편 아파트로부터 시선을 차단하고자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한강의 공원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한강변 재건축 고층 아파트에서 베란다 창이 처음으로 ‘조망’의 기능을 획득한 것이다. 이제 시선이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한강이라는 도시 경관을 향해 열린 상태가 된다. 여기에는 외부 세계를 향해 자신을 노출하고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SNS를 통해 한강 뷰 사진을 자산 투자의 성공 사례로 노출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닫힌 커튼 뒤에서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던 주부의 거실이, 열린 창 너머 한강을 배경으로 SNS 폴로어(follower)의 ‘좋아요’를 기다리는 피드로 진화하는 데 아파트라는 장치가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자산 증식의 강력한 도구였던 아파트 신화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지난 5년 사이 부동산에서 ‘상급지’란 말이 엄청나게 강조돼 왔다. 무조건 지금보다 좋은 지역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급지에 대한 집착은 곧 계층이동의 욕망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 신화는 단순히 유지되거나 붕괴되는 게 아니라 다극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재건축(현실적으로는 리모델링)이 쟁점화될 서울 아파트가 약 80만 호, 1980~2000년 사이 지어진 전국 아파트는 약 360만 호다. 이 아파트들 사이에 한강벨트와 비한강벨트, 학군지와 비학군지, 신축과 구축, 재건축 가능 지역과 난점이 많은 지역,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비수도권, 광역시와 인구 20만 명 미만 도시 등 다양한 균열선을 따라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어떤 아파트는 그 신화에 한 다리 겨우 걸치거나 아니면 거기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식이다. 신화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수혜가 점점 더 좁은 범위로 집중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용산구 한남재개발 구역과 한강 이남 반포동 아파트의 대조적인 모습. 2022년 8월 17일 촬영. 동아DB

    용산구 한남재개발 구역과 한강 이남 반포동 아파트의 대조적인 모습. 2022년 8월 17일 촬영. 동아DB

    ‘내 가난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가난이 아니다’

    아파트 신화의 균열 현상과 청년들의 보수화는 어떤 관계가 있나. 

    “1971년생 소설가 백민석의 자전적 단편소설 ‘이 친구를 보라’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 가난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가난이 아니다. 내가 겪은 가난은 누구는 가난했고 누구는 가난하지 않던, 그런 시절의 가난이다.’ 1960년대생들은 모두가 가난하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 가난이 얼마만큼 차별화의 기재로 작동하는지 모르지만 1970년대생으로 경험한 가난은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 2030이 ‘벼락 거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가난의 개념을 넘어, 자신을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추락’의 공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파트 신화의 수혜가 점점 더 좁은 범위로 집중되는 흐름이 뚜렷해지면 그 경쟁에서 이탈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신화를 공유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의 균열이 지금보다 훨씬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2030 청년들의 보수화 흐름도 ‘아파트 기반 중산층 신화’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지역과 성별에 따라 이 복수의 세계관 중 하나와 관계 맺으면서 다층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아파트 게임’이 계층이동의 사다리였다면, ‘부의 세습’을 기대하기 어려운 2030에겐 불가능한 욕망이 됐다는 것인가. 

    “불가능하다기보다 무척 어려워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20세기 후반에 부모 세대가 주택청약제도와 분양가상한제라는 규칙 속에서 아파트를 통해 중산층으로 계층이동 게임을 할 수 있었다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상위 중산층의 ‘계급 재생산’을 위한 게임으로 변모했다. 내가 아파트를 연구하다 보니 중산층에만 집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능력주의나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2030 청년들의 집착은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발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전보다 한층 좁아진 사다리를 오르겠다는 치열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다리를 오르다 실패하더라도 원한만은 품고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은 인정할 테니, 억울하게만 만들지는 말라는 것이다. 부모 세대가 만든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끝까지 지키려는 내면의 마지노선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5년 만에 개정판을 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지음). 

    15년 만에 개정판을 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지음). 

    박해천 교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정판에서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소득세 감면 조치(1974), 근로자재산형성저축제도(1976), 주택청약제도와 분양가상한제 같은 제도를 통해 박정희식 ‘잘살아 보세’를 실천한 것은 일종의 사회계약이었다. 1990년대는 경제성장과 소득 증가, 아파트의 천문학적 공급을 통해 약속이 이행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 서울 강남 3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A씨, 분당 신도시에 사는 B씨, 지방 중소 도시에 사는 C씨는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거의 유사한 평면의 실내 공간을 점유하며 살았다. 대량 복제된 실내 공간에서 ‘주거의 평등’이 이뤄졌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되면서 과거의 사회계약은 해지됐고, 주거의 평등주의는 와해됐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오늘도 대한민국은 양도세 중과, 전세대출 금지 같은 땜질식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2026년 부동산정책은 저성장, 양극화, 저출산, 1인 가구 증가, 지역 소멸, 여성 및 성소수자 문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의제들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영 논리에서 헤매는 사이에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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