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1998년 8월 ‘21세기 경제특집’을 통해 21세기 세계경제는 미국과 일부 영어사용 국가들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영어음치 망국론’을 주장한 일본의 저명한 경제 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일본이 결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에 뒤지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유난히 강한 프랑스도 영어를 사용하는 북유럽 국가들에 뒤지자 자존심을 버리고 영어교육과 사용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지식정보화의 근간이 되는 세계 유일의 언어가 영어다. 전지구적 지식, 정보 총량의 80∼90%는 영어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를 확립하려면 영어사용인구가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원활한 영어사용 능력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됐으며 영어는 전략적 자산의 일종이 됐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된 경제의 3대 주체인 정부, 기업, 가계(노동자)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각 주체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고 가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이 영어 구어(口語)와 문어(文語)의 완벽한 구사력이다.
영어는 지식정보화 시대의 ‘문명어’다. 중세유럽에선 라틴어가 지식인의 언어였고 16∼18세기 영국 궁중과 20세기 초엽까지 러시아 왕궁에선 프랑스어를 문명어로 사용했다. 최근까지 동양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한자를 썼던 것도 중국어가 문명어였기 때문. 인류 역사를 통해 문명의 중심지는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문명의 중심지와 주변국은 태양계와 그 주변의 위성, 혜성처럼 시스템을 이뤄 상호작용을 한다.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문명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현대에는 영어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를 포함해 총지식의 80∼90%가 영어로 형성돼 있고 또 쉴 새 없이 새로운 지식이 영어로 만들어진다. 또한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인력과 지식인의 절대 다수가 영어권에서 영어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며 지식을 생산한다. 이러한 세계적 지식 생성과정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19세기 후반 경험한 국치를 반복, 지구상의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다.
지식정보사회의 문명어
한국어로 스스럼 없이 사고와 표현을 하면서 동시에 영국인이나 미국인처럼 영어로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언어심리학은 균형적 이중언어 구사자(Coordinated Bilingual)라고 규정한다. 이와 대비되는 소위 ‘콩글리시’를 쓰는 한국인, 한국어 구사에 이상한 느낌을 주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복합적 이중언어 구사자(Compound Bilingual)라고 한다. 필자가 아는 한국의 영어 달인 대부분은 국내에서 영어를 익힌 사람들이고 그것은 연령과는 큰 관계가 없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예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도 50대에 교도소에서 영어를 독학해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표현하며 자연스럽게 영어로 기자회견을 하는 김대중 대통령이다.
필자를 포함해 3∼4명이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동시통역사로 각종 국제회의에서 독점적으로 일을 했다. 필자와 고명식씨(전 동양통신 외신부장), 김용성씨(전 주한 미국대사 정치고문) 등이 국내에서 유일한 국제회의 동시통역사였다. 동시통역사는 머리 속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사고체계가 동시에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하며 두 언어 체계간에 간섭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적 이중 언어 구사자다.
이들이 보통의 복합적 이중언어 구사자와 다른 점은 한 두뇌가 동시에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완전한 한국어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완전한 영어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떻게 국내 교육만으로 가능할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노력과 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필자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종종 “당신의 글은 한국어적 관점으로 생각하면 한국적이고 영어적 관점으로 볼 때는 미국인이 쓴 글 같다”고 말한다.
미국이나 캐나다 국제회의에서 그곳 교수들이 필자에게 “미국에서 오래 거주하며 수십 년 동안 강의를 한 한국인 대학교수도 한국식 영어를 쓰는데 당신은 우리처럼 말한다”며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물어올 때 “한국에서 배웠다”고 답하면 믿으려 들지 않았다.
필자의 영어구사능력이 돋보이는 것은 발음과 영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덕택이다. 영어 어휘 수나 문법의 정확도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열세에 있다고 자인한다. 하지만 영미인의 발상법, 즉 표현법과 그것이 표현되는 상황을 공부했고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에 네이티브 스피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한국어로 생각해서 어휘만 영어로 바꾸는 과정으로는 제대로 된 영어를 배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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