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을 앞둔 태양이 수평선 위 한 뼘 높이에서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있던 지난 7월8일 오후 5시15분(현지 시각), 하와이 제도 카우아이(Kauai) 섬으로부터 북서쪽으로 80마일(약 150km) 정도 떨어진 해상. 굽이치는 물결 위로 거대한 군함 한 척이 한평생 자신의 치열한 삶을 지탱해온 바다를 응시하며 미동도 없이 떠있었다.
그러나 배는 자신의 종언을 예견한 듯 차츰차츰 중심을 무너뜨리더니 이윽고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0여 분 후, 배는 진수 이래 한번도 내보인 적 없던 함저(艦底)를 물 바깥으로 뒤집어 내놓으며 마지막 발버둥인 양 간헐적으로 물기둥을 뿜어 올렸다.
배는 미사일 두 발과 100여 발의 함포 사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터였다. 온몸이 벌집처럼 뚫린 다음이라 파공(破孔)을 통해 진작부터 바닷물이 엄청나게 밀려들고 있었다. 그 숨가쁜 침수를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배는 마지막 포효로 물기둥을 뿜어 올렸던 것이다.
잠시 후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한 맥아더 원수의 말처럼, 배는 지난 시절의 숱한 무공을 간직한 채 3000여m의 깊디깊은 태평양 해저로 사라져갔다. 엄숙한 최후였다.
이 배는 함포며 레이더며 기타 의장품을 고스란히 갖춘 완전한 군함이었다. 바로 지난 반세기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낸 미 해군 소속 1만t급 퇴역 군수(軍需)지원함 ‘화이트 플레인(White Plain)’이다.
화이트 플레인의 함체가 크게 기울 었을 때 이 배의 좌현 외판 모습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무차별적인 격파사격을 받은 터라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두 개의 파공이 커 보였다. 파공의 직경은 10인치(25.4㎝)도 넘어 보였는데, 그 구멍은 대한민국 해군의 전투함 두 척이 발사한 함대함 미사일이 명중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날 오전 우리 해군 전투함 두 척은 가상 적함인 화이트 플레인으로부터 40마일(약 74㎞) 떨어진 곳에서 각기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다.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1200t급 잠수함 ‘나대용함’(함장 文根植 중령·해사 35기)이다. 나대용함(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참모였던 나대용의 이름을 딴 것)은 잠대함(潛對艦) 미사일인 서브하푼(sub-harpoon)을 발사하였다. 그리고 두 시간 후 1200t급 한국형 초계함인 ‘원주함’(함장 朴文寧 중령·해사 39기)이 함대함(艦對艦) 미사일인 하푼을 쏘아붙였다.
서브하푼을 담고 있는 캡슐은 나대용함 함수(艦首)에 있는 어뢰 발사관인 ‘바우 튜브(bow tube)’에 탑재돼 있었다.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캡슐이 바우 튜브에서 나와 물속에서 145피트(약 44m) 가량 직진한 후 쪼개지고 그 순간 서브하푼이 물 바깥으로 1100피트(약 334m) 가량 솟구쳤다. 그리곤 미리 기억하고 있던 목표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적함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해면 80피트(약 24m)쯤으로 고도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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