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과장은 바쁜 사람이다. 오라는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원진 녹색병원 의사라는 직업 외에도 병원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보건운동단체인 노동건강연대(이하 노건연)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산업재해 대책마련을 위한 공동대응위원회’ ‘산재보험 공동대책위원회’ 등의 사회단체 공동조직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들어있다.
직업병이나 산재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는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날아간다. 정확한 발병과정과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직업병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그의 몫이다.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는 회사에 맞서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소견을 작성하고 간혹 사회적 이슈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기자와 만나기 수일 전에도 그는 울산에서 벌어진 벤젠 관련 백혈병 사고의 산재 여부를 파악하는 작업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러다 내가 산재 피해자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최근 그는 지난해 6월29일 창립한 노건연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산업안전보건체계와 산재보험의 개혁, 소외 노동자 지원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노건연은 의사 60명, 활동가 15명 내외로 구성돼 있다.
“일이 터지면 대책을 만드는 데 급급한 현실에서 벗어나 산업재해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운동을 해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보건운동전략이나 근거를 제공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하고 싶었고요. 앞으로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등 산업안전체계 외곽에 방치돼있는 이들에 더욱 더 주목할 생각입니다.”
산재노동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산재보험제도 개혁운동 역시 지난 한 해의 주요활동 가운데 하나다. 현장 노동자들의 특수검진 결과를 회사가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조선소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둘러싸고 회사와 노조가 극한대립을 벌이는 등 지난 한해 이슈가 불거진 모든 현장에는 어김없이 노건연이 함께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들어가는 날은 잘 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가끔 긁히는 바가지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역시 의사인 아내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인데도 가사와 아이 돌보기는 온전히 아내에게 맡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참 나쁜 남편이죠. 한번은 심부름을 시키길래 제가 좀 퉁퉁댔더니 부부싸움이 됐어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나는 돈도 벌어, 애도 내가 봐, 집안일도 내가 해, 그런데 그것도 못해줘?’ 속이 다 뜨끔하던데요.”
그런 그에게 아내 박현주(36)씨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다. 처음 임대표가 현장의료운동에 뛰어들겠다고 말했을 때, 현장진료활동을 하다 만나 결혼에 이른 아내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다른 의사들의 절반도 안되는 월급봉투를 들이밀 때도, 아내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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