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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보험금 노린 살인인가, 부실수사 희생양인가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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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된 20대 여성의 절규. 무기수로 복역 중인 그녀는 대법원 판결로 형이 확정된 후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인정한 살해동기는 아버지의 성추행, 살해목적은 사망보험금이다.
  • 하지만 재판 종료 후 유죄 근거를 뒤집는 단서가 하나 둘 발견됐는데…. 고난도 퍼즐과도 같은 진실게임의 종착지는?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2000년 12월 말경. 내가 일하던 모 시민단체에 한 통의 이메일이 접수되었다. 그것이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이 의문에 가득 찬 존속살해사건의 시작이었다.

2000년 3월7일.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50분경. 남도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50대 초반의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인으로, 현장에서 약 7km 가량 떨어진 곳에 살던 김진만(가명)씨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뺑소니 교통사고로 판단했다. 사체가 도로에서 발견됐고 그 주변에 자동차의 깨진 라이트 조각이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충격에 따른 외상 흔적이 보이지 않자 경찰은 타살된 후 교통사고로 위장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조금 지난 3월9일 0시10분 경,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변사자의 큰딸 김서희(1977년생, 가명)를 전격 체포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1년 3월, 대법원은 그녀에게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경찰은 김서희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는 성추행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2000년 1월경 이복 여동생(당시 18세)으로부터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말을 들은 김서희는 자신이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짐승 같은’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2000년 3월6일 저녁 6시경. 마침내 김서희는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먼저 김서희는 수면제 가루를 A4 용지에 싸서 핸드백 속에 넣었다. 전날 밤, 사기 밥그릇 뚜껑을 이용해 수면제 30알을 갈아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조그만 실수가 있었다. 수면제 가루가 식탁 유리 위로 조금 떨어진 것이다. 서희는 무심코 행주로 이를 닦아 쓰레기통에 버린 후 냉장고에서 약 3분의 1 정도 남아있는 0.7ℓ들이 일본산 양주병을 꺼내 가방에 담았다.



3월7일 0시55분경. 7시간에 걸친 운전 끝에 고향에 도착한 서희는 승용차를 아버지 집 앞에 세운 후 골목의 초입에 있는 오래된 2층집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생활하는 2층은 불이 꺼져 있었다. 서희가 큰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자 깜깜했던 2층 유리창이 환해지면서 창문이 열렸다.

서희는 아버지에게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 후 가방에서 일본산 양주와 잘게 부순 수면제를 꺼냈다. 서희는 아버지 앞에서 준비해온 수면제를 양주에 넣어 섞은 후 방 한 쪽에 놓인 장식장에서 양주잔 두 개를 가져왔다. 잠시 후 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는 약과 양주를 가져왔다는 큰딸을 의심하지 않고 자기 앞의 양주잔을 들어 시원하게 마셨다. 그 순간 서희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극약’을 마시는 것을 보자 두려워진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다시 서희의 앞에 놓여있던 양주잔도 가져와 자신이 마셔버렸다. 서희는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그렇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리를 절뚝거리며 아버지가 뒤쫓아 나왔다. 겁에 질려있던 서희에게 아버지는, 그러나 의외의 요구를 했다.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서희는 아버지를 자신의 차에 태워주었다.

목적지가 따로 있지 않은 ‘죽음의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내내 불안과 공포를 느끼던 서희가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그의 ‘더러운’ 손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차가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는 내내 서희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30여 분이 지날 즈음, 서희는 어느 순간 아버지의 손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서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출발했다. 이제 아버지의 사체를 버릴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차가 멈춘 곳은 인적이 없는 시골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서희는 재빠른 동작으로 아버지가 앉아있는 보조석의 문을 연 후 아버지의 상체를 밖으로 힘껏 밀었다. 시계바늘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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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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