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재스님이 얼른 먹물옷을 덧입는다. 고은의 에세이에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 숲길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경내 암자의 젊은 이승(尼僧) 한 분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아름다운 여자 스님이다. 그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맑음, 그 흰빛 이마의 고요, 아직도 염염한 색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그윽하고 눈부신 입술이 머금은 외로움, 바람 한 자락이 실수해서 와르르 와르르 나뭇잎새마다 가지고 있던 빗물이 쏟아질 때 그 때문에 아득하게 놀라서 떠지는 검은 눈동자의 잉잉거리는 아픔을 만난 사람이라면 아, 절에 오길 잘했구나라는 환희를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이 화려한 문장 이후 나는 여승을 만날 때면 필요 이상으로 감상적이 되곤 했다. 선재스님은 그런 잉잉거리는 눈동자를 예전에 졸업하고 몇 달 후면 세속 나이로 쉰이 되는 침착한 연대에 도달한 이승이다.
여기는 절이 아니다. 음식을 배우거나 구경하러 찾아오는 손이 하도 많아 산사 대신 수원시내로 숨어든 스님의 아파트다. 실내가 예전 대가댁 안채 같다. 넓은 거실에 그릇과 음식재료가 빼곡한데, 오래된 목기며 유기, 도기와 자기들은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뒀고 삶은 고춧잎, 연잎, 취나물, 얇게 저며 썬 사과는 바닥에 흰 보를 펴고 정갈하게 널어뒀다. 고춧잎은 장아찌를, 연잎은 차를, 사과는 졸여서 반찬용으로 쓸 거란다.
절 마당에 연꽃을 키우는 이유
바지런하고 재빠르게 매만지고 뒤집다가 “말린 사과 한점 맛볼래요?” 하며 입에 쏙 넣어준다. 선재. 머리는 파르라니 깎았지만 마음씨 솜씨 맵시는 대갓집 큰 며느님같이 야물고 고운 사람. 그는 음식을 만드는 스님이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더 효율적으로 맹렬하게 정진할 수 있는 음식이 뭔지를 불경 안에서 찾아내 재료와 요리법을 부처님 시대 그대로 재현해내는 일을 한다.
“해국 큰스님이 서귀포에서 무문관에 드셨을 때 멀리서 봐도 스님 계시는 산이 훤하게 빛났었대요. 하루 한 끼만 드시면서 정진을 하셨다는데 먹는 음식에 따라 공부 진도가 달라졌다고도 했어요. 큰스님이 드시는 음식은 무얼까. 그게 그렇게 궁금하데요. 물어봐도 거기에 대해 말해주는 스님이 안 계세요.
내가 스스로 찾아보자 싶어 공부를 시작했지요. 불경을 샅샅이 뒤져봤더니 예상외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자세하게 나와 있었어요. 일반 음식이라기보다 스님들이 공부하다 병이 났을 때 치료하는 약으로 소개된 거예요. 약 대신 식품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으라는 지침이 나와 있어요. 요리법뿐 아니라 손질과 보관법, 주방 설치법까지 정교하게 지시돼 있죠. 나중에는 해국스님 계신 곳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올려 보내드렸어요. 무문관을 나오신 후 어찌나 치하를 하시던지….”
구수 사리불이 어느 날 열병이 나서 앓아누웠다. 병문안을 온 목건련에게 사리불이 물었다. “목건련이여, 그대가 열병이 났을 때 무엇을 먹고 나았는가.” 목건련이 답하기를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연의 줄기와 연의 뿌리를 다려 먹고 나았네.”
(대품국역 대장경 논부 심사 약제편 발췌)
절 마당에 연꽃을 키우는 이유가 거기 있었구나.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을 그저 윤회의 상징인 줄로만 여겼더니 사찰 앞의 연못이란 스님을 위한 상비약 보관소였구나.
“경전 ‘중일 아함경’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일체 제법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食)이 아니면 존재할 수가 없다’라는.”
부처님이 음식을 소홀히 여겼으리라는 건 턱없는 오해다. 욕망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음식에 관한 정보가 불경 안에 풍성하게 들어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다. 참살이(웰빙) 식품으로 치자면 부처님 음식만한 참살이가 또 있을까. 나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선재스님은 입을 야물게 다물고 있다가도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