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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탄광 터의 씁쓸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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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 동원탄좌 터(왼쪽), 1981년 정동광업소 가스폭발사고.

다시 차를 돌려 사북으로 향하다보면, 민둥산역이란 낯선 역이 나타난다. 옛 이름은 증산역인데, 이 지역의 주산인 민둥산이 대처의 산행객에게 널리 알려졌고 또 가을의 억새풀을 보려고 꽤 많은 사람이 찾는 덕분에 2009년 9월 옛 이름 대신 민둥산역으로 개명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 강원 남부 여러 마을은 탄광이라는 오랜 숙명을 한편으로 되새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확장하거나 개명하거나 증개축하면서 필사적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름이 바뀐 민둥산역에 서서 한참이나 증산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38번 신작로를 타고 사북으로 향한다.

#오후 4시30분, 사북

사북에 이르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고산준령의 허리를 일직선화한 국도를 따라 줄기차게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램프를 타고 국도의 아랫마을로 급하게 내려가는 형세다. 이 일대 수많은 마을 지형이 이와 비슷하다.

함백, 증산, 고한, 태백 등 이 강원 남부 마을은 골짜기 아래에 형성됐고, 그 위로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구분하는 고산이 첩첩하며, 그 중간 탄광을 주 목적지로 삼는 태백선이며 함백선 같은 철로가 오랜 세월 동안 산허리를 가로질러 달렸으되 이제는 4차선으로 확장된 38번 국도가 그 반대편 산허리를 관통하며 내달린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함백역이나 민둥산역도 모두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허리에 위치했다. 사북이나 고한의 기차역 또한 마찬가지다.



4차선으로 확장된 신작로를 따라 터널을 지나고 가파르게 오르막을 오르고 일렬횡대의 준령 사이를 질주하면 느닷없이 램프가 나타나는데, 그리하여 사북은 산 아래로 펼쳐지는 것이다. 12월 초, 눈발은 더욱 거셌고 차는 제동거리를 한참이나 어기며 미끄러졌으며, 간신히 들머리 신호등에 멈췄을 때, 사북은 오래전 필름 속 이미지가 아니라 이 산간 오지에 기이한 형체로 들어선 숙박업소와 노래방, 전당포, 음식점 간판이 서로 어깨싸움을 하며 난립한 형상을 보여준다. 탄광 산업의 요충이었다는 기록이나 한때 폐광지로 스산했다는 뉴스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점멸과 함께 사북의 과거로 사라졌다.

사북은, 최근 3년 사이 서너 차례 방문한 기억까지 합해 말하건대, 언제나 조금은 들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주말이면 차량이 밀려들고 저녁이면 사람이 분주하게 왕래하며 그 위로 네온사인 불빛이 사북의 로터리를 중심으로 도로와 골목의 끝까지 명멸한다. 12월 초의 주말은 더욱 그 들뜬 분위기가 바이러스처럼 확산해 있었다. 겨울 레저의 꽃인 스키가 시즌을 맞이한 바람에 어느 곳에서나 과장된 웃음과 언성을 터뜨리는 젊은이들의 울긋불긋한 아웃도어 복장이 사북의 거리를 메웠다. 떠들썩하면서도 어딘가 스산한 사북의 거리 위로 눈이 내렸으나, 이내 진창에 처박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후 6시, 강원랜드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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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역 풍경.

그곳에 강원랜드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강원랜드는 법인명이고 2007년 6월 ‘하이원리조트’라는 브랜드로 론칭해 지금은 이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마도 카지노 때문일 것이다. 강원랜드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데다 이 시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부정적 사건 때문에 강원랜드 대신 하이원리조트를 론칭해 복합 레저 타운의 면모를 내세우려고 한다. 기존 카지노 시설에 더하여 스키장을 비롯한 다양한 레저 문화 시설을 확충해 ‘리조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업 운영이 가능해진 현실적 이유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카지노는 폐광지역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강원도가 주도한 범국가적 ‘탄광지역개발 촉진지구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 시작은 1994년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의 제정·공포 이후이며 이에 준거해 1995년 12월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이 제정·공포돼 내국인 출입 카지노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1998년 6월 법인을 설립했고 이듬해 스몰카지노호텔을 착공해 2000년 10월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도저히 생략할 수 없는 강력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법적 근거 확보와 실제 공사의 진행에 있어 이 지역 주민들의 필사적 사투가 있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이 일대의 삶은 황량하고 피폐했다. 폐특법만이 유일한 탈출구였고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지역 주민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대개의 싸움이 그렇듯 그 속에는 수많은 이해가 상충했고 중앙정부, 지방정부, 각 지역 기관과 단체 그리고 삶의 처지가 조금씩 다른 주민들 사이에 숱한 갈등과 반목이 있었으며 그 여진은 사북과 고한 일대에 지금도 아득하게 번져 있다.

그렇기는 해도 카지노라는 산업 형태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울 만큼 절박했다. 이 산업에 대해 공인된 도박이란 오랜 관념이 있고 또 이를 극복하고자 건전한 게임이란 설정으로 도덕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도 있었거니와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 주민에게 이 같은 개념의 긴장은 오히려 나른한 말의 유희일 뿐, 그 선입관이나 이미지에 있어 카지노보다 더 꺼림칙한 방사능폐기물처리장까지 유치하려고 했던, 그 생존의 열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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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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