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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인식하라 그리고 바꿔라 조금만!”

정서적 과부하 상태 ‘제2 청소년기’ 인정해야

“나를 인식하라 그리고 바꿔라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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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인식하라 그리고 바꿔라 조금만!”
40대가 바뀌었다. 그들은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젊고 피 끓는 학생의 신분으로 역사의 대변혁에 참여했고, 마침내 세상을 바꾸었다.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이뤄냈던 것이다. 주인공 의식이 그들에게 자연스레 심어졌고, 이어지는 시대 역시 그들을 빠르게 주역으로 등장시켰다. ‘386세대’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 사회는 활기차게 흘렀고, 젊은 사람들의 입김이 거세어졌으며, 대한민국의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2011년 현재, 그들은 40대가 되어서 더욱 강해졌어야 하지만 오히려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는 것이 더 팍팍해지고, 자녀교육에 등이 휘고, 노후 대비에 불안해하면서도 실제로 준비를 하지 못하는 무기력감에 싸여 있다. 심하게 말하면, 지금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언제쯤 나의 사회·경제적 능력이 종지부를 찍을지 불안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국제화 또는 글로벌화가 가속되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이나 유럽의 기침 소리에도 몸살을 앓고 있고, 성장이 둔화된 채 고용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기에, 사실 개인의 삶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제·사회적 요인이 각 개인의 정신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40대의 심리 상태를 한마디로 규정짓는 단어는 ‘불만족’이다. 그들은 지금 자신과 자신 밖의 세계에 대한 불만족을 갖고 있다. 자신 밖의 세계란 바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다. 직장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포함한다. 그들이 20대에 꿈꿨던 세상을 이제 본격적으로 이루기 위한 주체는 바로 40대 자신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들러리를 설 뿐이다. 386세대 정치인들이 국회에 입성할 때 그들은 박수를 쳤다. 기꺼이 들러리를 원했고, 조력자와 지지자의 역할을 자임했다. 학창 시절에 그들을 대표했던 학생회 간부였거나 또는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섰던 학우였기에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적인 권력을 탐했고, 기성 정치인처럼 빠르게 노회해졌으며, 정치적 운신에 급급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연연하는 모습이었다. 열정과 순수함이 사라진 그들에게 많은 학우는 실망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20대들에게 다시 한 번 대규모 항쟁을 일으키라고 할 열정도 사라지고 있다.

능동성은 수동성으로, 행동은 말로, 승리감은 패배감으로, 자신감은 열등감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그래서 불만족이다. 심리적 불만족은 자연스레 불안정성으로 표현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그들의 불만족이 응집되어 거대한 풍선을 형성했다. 그러나 잠깐 들뜬 채 거품은 곧 꺼졌다. 앞으로 ‘제2의 안철수’가 나타나면 그 거품은 금세 커지리라. 그러나 얼마나 지속될지는 장담 못한다. 그들의 불안정성은 분노와 좌절, 공격성과 적개심, 우울과 불안, 투사(남 또는 세상을 탓하기), 자기비하 등의 증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40대는 어른이다. 생물학적으로는 그렇다. 정신적 독립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적으로도 어른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젊은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잠시 생각해야 대답할 수 있다. 20년 전의 40대는 젊은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40대는 젊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과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어른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젊은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 수명이 늘면서 노인인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드롬’은 불만족 응집된 풍선

그러나 사회적으로 젊은 사람 취급받는 40대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주역에서 물러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에너지와 열정은 30대에게 뒤지고, 참신성과 아이디어는 20대에게 뒤지며, 노련미와 안정감은 50대에게 뒤지는 것이 40대의 현실 아닌가. 그러니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샌드위치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열심히 배우고 활용하려고 하는 40대는 분명히 20년 전의 40대와는 다르다. 20년 전의 40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예전에 이미 습득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잘살았고,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의 40대는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가서 마치 고교생 또는 대학생 시절 학문과 기술을 연마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 결국 사회적 리더나 회사 중역, 때로는 학생과 같은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나이가 좀 들었구나. 나도 늙었어. 쉬면서 여유를 찾자”라고 말하다가도, “어휴, 할 일이 태산인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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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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