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보금자리지구(왼쪽)와 하남 열병합발전소 조감도.
하남시는 2011년 5월 지경부에 집단에너지 사업허가 의견을, 12월엔 국토부에 지구계획 변경 관련 의견을 냈다. 이때까지 하남시는 ‘경관과 안전을 고려하고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을 추진해달라’는 원론적 입장만 취했을 뿐, 부지 이전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인접 주민들이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자 ‘입지를 종합적으로 검토 분석해 민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한 지난해 5월 이후에는 지경부에 ‘당초계획 부지(선동)로의 환원을 요청하며, 부지면적 증가와 시설용량 증설 등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남시-강동구 갈등으로 확대
하남시가 당초 계획 부지로 환원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7월, 국토부가 부지를 풍산동으로 옮기는 내용이 포함된 하남 미사지구계획 4차 변경안을 승인 고시한 시점은 그로부터 석 달 앞선 4월이었다. 주민 반대가 거세지자 하남시가 이를 의식해 뒤늦게 부지 환원을 요청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지구계획 변경(2012년 4월)과 집단에너지 사업 변경(2012년 7월)이 모두 끝난 뒤 이 지역 정치인들은 시민들과 열병합발전소 건립 반대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교범 하남시장과 이현재 국회의원 등이 규탄대회에 참가했다.
반대 여론이 일자 하남이 지역구인 이현재 의원은 지난해 12월 7일 지경부와 국토부, LH공사 등과 합동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토부는 “사전 동의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사업진행 절차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고, 지경부도 “발전소 사업 허가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12월 14일 주민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가 다시 열렸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 역시 일부 단체의 출입 저지로 무산됐다.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선임된 이현재 의원은 올 1월 14일 국토부, 지식경제부, LH공사, 코원 등 관련기관을 다시 소집해 두 번째 합동대책회의를 했다. 이날 회의에서 민원을 해소하고 미사지구 열 공급 차질을 막기 위해 이미 승인이 난 풍산동 대신 새 이전 부지를 물색할 것을 합의했다.
LH공사는 1월 말 이전 후보지 3곳을 선정했다. 1안은 풍산동 부지에서 500m 떨어진 LH하남사업본부 부지 인근, 2안은 1안에서 도로를 건넌 곳이다. 3안은 1안과 2안보다 서울 강동구 경계에 더 가까운 곳이다. LH가 이 같은 이전안을 제시하자 이번엔 강동구가 발끈했다. 강동구 의원들이 “강동구와 가까운 곳에 열원시설을 짓지 말라”며 들고 일어난 것. 강동구의원들은 LH를 항의 방문하는 한편 하남 열병합발전소 이전 반대 촉구를 결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2월 20일 하남시는 강동구에 가장 가까운 ‘3안’을 택해 LH에 통보했다. 하남시 내부 반발에서 한발 나아가 하남시와 강동구의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하남 열원시설이 당초 강동구 열원을 이용하는 보조열원으로 계획됐다가 자체 열원으로 바뀌게 된 원인 제공자가 강동구라는 점이다. 자체 열원시설로 확충하려다보니 부지 확대를 위해 선동에서 풍산동으로 옮기게 됐고, 이 때문에 주민 반발로 다시 이전 부지를 물색하다 강동구 인접지역이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사안이 지자체 간 대결 국면으로 전개되자 LH와 코원은 더욱 난처한 처지가 됐다. 하남 주민의 반발로 9개월을 허비한 끝에 또 논란에 휩싸이게 돼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미사보금자리에 입주할 주민들에게 열 공급을 제때 못할 우려가 현실화했기 때문. 3월 말까지 건립 부지가 확정되더라도 환경영향평가와 건축허가 등 후속 인허가 절차를 밟는 데 9개월 정도 소요되고, 열원시설을 짓는 데 24개월이 필요해 준공은 일러야 2015년 12월에나 가능하다. 미사보금자리지구에는 2014년 6월 1000가구가 입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5년 6월에는 1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내년에 입주할 1000가구에는 임시로 이동식 보일러를 가동해 열 공급이 가능하지만, 1만 가구가 입주할 2015년 6월 이후에는 이마저 여의치 않다.
3월 말 부지 확정될까?
사정이 이렇게 되자 ‘냉골 아파트’에서 살게 된 미사지구 입주 예정자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입주 예정자 대표들은 LH를 항의 방문하고, 지역구 이현재 의원을 찾아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관련기관들이 이견 조정을 위해 나섰다. 국토부는 절충안을 마련하기 위해 3월 8일 관련기관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하남시와 강동구의 입장차가 워낙 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나마 ‘한 발씩 양보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처음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함께 자리하는 것조차 꺼렸지만, 이제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처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며 “조만간 절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열원시설을 이전하라는 하남 주민의 요구에 부응해온 하남시와 이현재 의원은 입장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 의원은 “열원시설을 시 중심에 짓겠다는 것을 일부 주민이 반대해 다른 부지로 이전 추진 중”이라며 “강동구에서 문제를 삼고 있지만, 하남 행정구역 내에서 벌이는 일인 데다 도로 방음벽 등으로 (경계가) 분리돼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하남시와 LH공사 등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조정하고 있는 만큼 곧 이전 부지가 확정돼 시설을 착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LH공사 관계자는 “45만 인구의 강동구에서 민원이 폭주하고 있어 하남시가 강동구 인접 부지 이전을 고수할 경우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라며 “3월 말까지 이전 부지 협의가 안 되면 국토부가 승인한 원안대로 풍산동에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미사지구 입주 예정자들의 소박한 소망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