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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지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비잔틴 제국의 성상파괴운동

우리는 이미지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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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차례에 걸친 성상파괴운동으로도 성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 분명 구약은 우상 숭배를 금하고 있는데….
  • 그만큼 우리는 이미지를 좋아한다.
  • 사람의 속성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클루도프 시편’의 성상파괴운동을 묘사한 삽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 쓸개즙을 적신 스펀지를 들이대는 것에 빗대 예수의 성상에 회반죽을 칠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850~875년경, 모스크바 국립역사미술관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 너희는 신상들을 만들어 내 곁에 두지 못한다. 은으로든 금으로든 신상들은 만들지도 못한다.”(출애굽기 20:4-5, 23)

“그러므로 너희는 깊이 명심하여라. 야훼께서 호렙의 불길 속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 너희는 아무 모습도 보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는 남자의 모습이든 여자의 모습이든 일체 어떤 모습을 본떠 새긴 우상을 모시어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모습이나 공중에서 날개 치는 어떤 새의 모습이나,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어떤 동물의 모습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물고기의 모습도 안 된다.”(신명기 4:15-18)

이미지를 사랑하는 대중

오늘날은 이미지 시대다. 이미지만의 시대는 아니지만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글자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한다.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직접 감각하고 그로부터 느낌을 얻는다. 전자매체가 발전한 덕분에 이러한 경향은 증폭되고 있다. 이러하니 사람들은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미지 개선에 애쓴다. ‘이미지 정치’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미지 메이킹’이 처세 기법으로 간주된다.

이미지란 넓게 얘기하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감각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온갖 종류의 형상을 말한다. 대개 2차원 형상을 뜻하지만 3차원일 수도 있다. 이미지는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머릿속에 바로 그려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문자를 통해 표현된 생각이나 사상은 추상적이지만, 이미지는 시·공간적이고 감각적인 특성으로 인해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이 된다.



이미지는 ‘어떤 것’의 이미지이기에, ‘어떤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 그 자체는 아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미지는 갖고 있는 매력과 마력으로 인해 애호되기도 했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는 이미지의 영향력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인정해왔음을 뜻한다. 모든 이미지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이 이미지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면,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든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을 인간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회화나 조각처럼 조형예술로 일컫는 것들이 이미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플라톤이 ‘국가’ 편에서 보여준 화가와 시인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이미지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물이나 사태의 참된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고, 우리의 감성에 과도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도 막지 못한 이미지 범람

플라톤은 어떤 사태나 사물의 본질을 이데아에서 찾았다. 이데아란 정신의 눈으로만, 즉 이성적으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은 이데아가 불완전하게 반영된 것으로 봤다. 이미지는 불완전하고도 덧없는 현실보다 더 불완전하고 더 덧없는, 진리와 진실로부터 동떨어진 감각의 대상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미지를 진짜라고 믿는 것은 가짜를 진짜로 믿는 오류에 빠지는 것을 뜻했다.

플라톤은,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이 진짜라고 믿게 하는 일을 하는 이들을 화가나 시인과 같은 예술가로 봤다. 그래서 예술가를 위험한 인간으로 봤다. 플라톤은 ‘국가’ 대화편에서 이미지와 예술가를 가혹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이미지에 대한 대중의 사랑이, 예술가에 대한 민중이 사랑이 식어버렸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예술가들의 지위가 어떠했든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도 이미지는 계속 생산됐고 많은 예술가가 칭송을 받았다. 대중의 이해를 잘 얻어내지 못한 것은 오히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쪽이었다.

오늘날에도 범람하는 이미지에 대해 비판적 언사를 늘어놓는 비평가와 이론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이미지의 범람을 막는 데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존재한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이미지의 양적 팽창을 가능케 해 확고한 이미지 시대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플라톤이 주장했듯 이미지는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주장은 이미지를 향한 대중의 욕망을 잠재울 이유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 만족감 깨달음이 너무 커서, 그것이 줄 수도 있을 나쁜 영향은 무시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이미지가 언제나 애호의 대상 또는 무해한 것으로 여겨져온 건 아니다. 플라톤 이후에도 이미지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벌어진 논란과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금부터 살펴보게 될 성상(聖像)파괴운동이다. 이 운동은 비잔틴 제국 시대에 벌어진 것으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지 전체가 아니라 종교적 성격을 갖는 이미지다.

성상파괴운동은 예술적, 종교적, 정치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뒤얽히며 장기간 지속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비잔틴 제국과 비잔틴 미술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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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형|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미학 baipark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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