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3D] 일제 순사들, 마을 만세운동에 무릎 꿇다!

[광복 80년 : 항일의 기억 - 속초시 대포만세운동기념관] 속초 주민 만세운동 유물과 사연, 기록 전시

  • 최영철 기획위원 ftdog@donga.com

    입력2025-08-10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올해는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독립한 지 꼭 80년이 되는 해다. ‘신동아’는 광복 80년을 맞아 전국의 항일 관련 현충 시설을 찾아 소개하는 ‘광복 80년 : 항일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와 함께 각 현충 시설에 대한 디지털 트윈(리얼 3D VR 디지털 미디어)을 제작해 공개한다. <편집자 주>

    강원 속초시 대포항 인근 대포만세운동기념관 전경. 기미 독립선언서가 외벽 전면에 기록돼 있다. 홍중식 기자

    강원 속초시 대포항 인근 대포만세운동기념관 전경. 기미 독립선언서가 외벽 전면에 기록돼 있다. 홍중식 기자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대포만세운동기념관] 바로가기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3·1만세운동은 우리의 국권 회복 의지와 민족 자주의 뜻을 세계만방에 알린 거사이자 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발화점이었다. 이후 두 달여 동안 유관순 열사의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3월 14일)을 비롯한 각종 만세운동이 전국 각 지역에서 계속됐다.

    문제는 서울, 천안 등에서 벌어진 대규모 만세운동과 달리 지역 단위 소규모 만세운동에 대해선 알려진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4월 초, 1000여 속초시민이 강원도 속초시 대포항 인근 순사(경찰)주재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속초 대포만세운동’도 그중 하나. 하지만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제 경찰(순사)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 등에서 대포만세운동이 가진 항일운동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석범 가족, 만세운동 주도

    대포만세운동기념관 건립을 담당한 김만중 속초시 국가유산팀장. 홍중식 기자

    대포만세운동기념관 건립을 담당한 김만중 속초시 국가유산팀장. 홍중식 기자

    속초시는 대포만세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대포항개발사업소로 쓰인 일제 순사주재소 건물을 전면 리모델링해 2021년 8월 13일 대포만세운동기념관(속초시 대포항1길 20)을 건립했다. 기념관 건립을 담당한 김만중 속초시 국가유산팀장은 “대포만세운동 과정과 주요 인물의 그래픽 패널 및 애니메이션, 중심 장소인 김종우가옥(이종국 생가) 모형, 독립유공자 기증 유물(훈장과 훈장증 등) 등이 전시돼 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같은 해 11월 1일 대포만세운동기념관을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조선 황실의 기선 운항으로 당시 양양 지역의 인적·물적 교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대포항(당시 양양군 도천면 대포리)은 일제 강점 이후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로, 상권 중심지로 변모하면서 일제 경제 침탈의 관문 구실을 했다. 그 때문일까. 3·1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속초 대포만세운동은 당시 양양군 도천면(지금의 속초시) 중도문리에 살던 유림 이석범이 고종 황제의 장례식(1919년 3월 3일)에 참석했다가 버선 속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가져오면서 본격화했다.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이 함께 주도한 만세운동은 4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도천면 대포리와 강현면 물치장터 등지에서 대규모의 시위로 발전했다. 

    대포만세운동기념관 내부. 대포만세운동의 과정과 주요 인물의 그래픽 패널 및 애니메이션, 중심 장소인 김종우가옥(이종국 생가) 모형, 독립유공자가 기증한 훈장과 훈장증 등이 전시돼 있다. 홍중식 기자

    대포만세운동기념관 내부. 대포만세운동의 과정과 주요 인물의 그래픽 패널 및 애니메이션, 중심 장소인 김종우가옥(이종국 생가) 모형, 독립유공자가 기증한 훈장과 훈장증 등이 전시돼 있다. 홍중식 기자

    김만중 팀장은 “도천면 만세운동은 이석범의 동생 이국범과 아들 이능렬·동렬이 중심이 돼 추진됐다”며 “이석범이 세운 쌍천서숙 출신들이 각 지역의 대표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도천면 지역의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이석범은 4월 3일 경찰에 체포됐지만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은 4월 5일 강현면 물치장날에 맞춰 만세운동을 펴기로 하고, 마을마다 책임자를 둬 태극기를 만들었다. 도천면 중도문리 전주 이씨 종갓집 종손이었던 이종국은 자신의 집에 지역 대표자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 천을 제공했다. 

    “돌아가겠다” 일제 경찰의 사죄

    대포만세운동 관련 독립유공자들이 기증한 훈장과 훈장증. 홍중식 기자

    대포만세운동 관련 독립유공자들이 기증한 훈장과 훈장증. 홍중식 기자

    4월 5일 오전부터 도천면 사람들은 순사주재소가 있는 대포리로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 강현면 사람들은 물치장터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몰려든 군중이 일본인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다급해진 일제는 새벽부터 배를 띄워 경찰을 제외한 일본인은 바다로 나가 머물게 했다. 오후가 되자 물치장터에 모인 강현면 주민들까지 대포리로 몰려와 만세운동 군중이 1000명이 넘어갔다. 

    김만중 팀장은 “이때 만세운동에 두려움을 느낀 순사주재소 수석 이시다 기사부로(石田喜三郞)는 시위 군중에게 허리를 굽히며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며 연거푸 사죄했다”고 설명했다. 조선 민중의 만세운동에 일제가 굴복한 것이었다. 

    도천면과 강현면 사람들은 일본 경찰이 완전히 굴복하자 다음 날인 4월 6일 양양군 양양읍으로 가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양양읍으로 향한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은 진압에 나선 일제 군대의 저지선을 뚫고 양양읍 경찰서로 몰려가 만세를 불렀다. 이능렬 등 주민 대표들은 경찰서장과 군수에게 “양양에서 떠나라”고 요구했다. 결국 주민들은 “일본 사람은 돌아가겠다”는 일본 경찰의 회유에 속아 오후 늦게 도천면과 강현면으로 돌아왔다. 

    기념관 내 연표로 보는 만세운동. 홍중식 기자

    기념관 내 연표로 보는 만세운동. 홍중식 기자

    대포만세운동 당시 양양군 도천면 대포 순사주재소 부근 일제강점기(1919) 지도. 국립중앙박물관

    대포만세운동 당시 양양군 도천면 대포 순사주재소 부근 일제강점기(1919) 지도. 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이는 일본 경찰의 술책이었다. 만세운동이 잠잠해지자 일제는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을 붙잡아 가혹한 태형을 가하거나 주동자급들은 감옥에 보냈다. 4월 5일과 6일의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도천면 논산리(현재 속초시 조양동) 인근 주민들도 4월 8일 논산리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후 대포리 순사주재소로 향했으나 도천면사무소 직원의 만류로 지금의 부월리(현재 속초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만세를 부르다 논산리로 되돌아갔다. 

    대포만세운동 계획을 짜고 태극기를 제작했던 이종국 애국지사의 생가(김종우가옥). 김만중 속초시 국가유산팀장

    대포만세운동 계획을 짜고 태극기를 제작했던 이종국 애국지사의 생가(김종우가옥). 김만중 속초시 국가유산팀장

    옥살이를 겪은 독립유공자들

    대포만세운동기념관에 전시된 대포만세운동의 주요 인물 4명. 홍중식 기자

    대포만세운동기념관에 전시된 대포만세운동의 주요 인물 4명. 홍중식 기자

    김만중 팀장은 “4월 5일과 6일의 만세운동으로 현재의 속초시인 당시 양양군 도천면에서 8명, 강현면에서 19명이 체포돼 원산감옥에서 옥살이를 했다”며 “태형(60대)을 받은 이는 손꼽을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대포만세운동기념관에 전시된 대포만세운동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이석범(1859~1932) : 양양 지역 만세운동 기획, 전개토록 한 인물. 4월 3일 양양경찰서 구금.

    ■ 이국범(1869~1931) : 이석범의 동생. 양양 지역 만세운동 주도. 징역 1년형. 건국훈장 애족장.

    ■ 이능렬(이재훈·1888~1951) : 이석범의 큰아들. 대포만세운동과 양양만세운동 주도. 징역 1년 8월형. 건국훈장 애족장. 

    ■ 이동렬(이재형·1896~1961) : 이석범의 작은아들. 대포만세운동과 양양만세운동 주도. 징역 6월형. 대통령 표창. 

    ■ 이종국(1876~1940) : 태극기 제작 및 대포만세운동 주도. 징역 1년 2월형. 건국훈장 애족장.

    ■ 이춘재(1878~1929) : 도천면 주민. 대포만세운동 주도. 징역 6월형. 대통령 표창.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