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나에게 “국민의힘 당원으로서 자괴감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괴감은 없다. 다만 깊은 실망감은 있다. 많은 이들이 보수의 몰락을 계엄과 탄핵에서 찾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지난 3년간 5번의 ‘비대위 체제’를 말하고 싶다.
당대표 임기는 2년이다. 그런데 비대위원장이 5번이나 바뀌었다는 건, 그만큼 우리 당이 구조적으로 불안정했다는 증거다. 이 혼란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생각하며, 같은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정당, 곧 ‘무리 당(黨)’의 의미를 믿고 국힘 당원이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 당은 정체성이 무너졌다. 보수정당이어야 할 국힘이 ‘중도 확장’ ‘청년 정치’라는 명분 아래 중심을 잃었다. 물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보수의 덕목이다. 하지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없이 변화를 위한 변화는 방향 없는 표류일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당내 대선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외부에서 대통령후보를 영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1호 당원’이라는 상징성을 부여받았지만, 그가 언제부터 보수주의자였는지 알 수 없다. 그가 데려온 한동훈 전 대표 역시 보수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 적이 있는가.

2023년 10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서 악수하는 윤석열·박근혜 전 대통령. 동아DB
좋든 싫든 자신과 척을 진 인사들을 찾아 악수를 청한 이재명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 전 대표는 당 내부를 향해 “내란 동조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분열이 아니면 무엇인가.
나는 계엄의 적법성 여부는 법원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든 국민을 불안에 빠뜨렸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윤리적으로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짜놓은 탄핵 프레임에 뛰어들어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무책임한 자기부정 행위였다. 만약 한 전 대표 계열의 세력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다면 탄핵은 없었다. 당원들은 그를 대통령에게 진언하라고, 그래서 대통령을 변화시키라고 대표로 뽑았는데 정작 한 전 대표는 진언은커녕 탄핵을 주도했다. 이는 당원들의 뜻을 저버린 행위다. 그가 과연 어떤 개혁을 했는가? 오히려 정권을 넘겨주는 데 일조한 꼴이 됐다. 이웃에게 돈을 빌리러 갈 때, 아무리 가난해도 화목한 집에는 신뢰가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난한 데다 싸움만 하는 집이라면, 누구도 믿고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정당도 같다. 내부가 화합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
개혁을 위한 중대 기로,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아야
지금 우리는 개혁을 위한 당대표를 뽑아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개혁은 107명의 국회의원이 하는 것이 아니다. 당원들의 뜻이 모여야 진짜 개혁이다. 특정 세력에 유리하게 구조를 설계한 개혁은 결국 누더기 개혁이 되고 만다.당대표 선거는 빠를수록 좋다. 더 늦기 전에 당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분란이 있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빠른 정리다. 우리는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진보와 보수가 10년 주기로 교대로 정권을 잡고 있다. 우리는 5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되지만, 그 과정에서 우파만 두 번의 탄핵을 겪었다. 이것은 분열과 사욕의 결과다.
김무성, 한동훈. 두 당대표의 사적 욕심이 당을 두 번 파국으로 몰았다. 물론 당의 지도자로서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물러나면 권력이 자신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책임은 그들을 뽑고, 그들을 따랐던 당원들에게도 있다. 이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깨어 있자. 그것이 진정한 보수 재건의 시작이다.
- 70대 초반, 서울 거주, 당원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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