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에세이] 뜨거운 계절을 건너는 마음

  • 정승혜 만화작가

    입력2025-08-12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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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이 뜨겁다. 길 위에 서면 땅에서 열기가 치솟고, 머리 위로는 햇볕이 내리꽂힌다. 말 그대로 ‘구워지고’ 있다. 더위는 이제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낯설다. 익숙함 속에 깃든 낯섦. 늘 겪어온 계절인데도 이번 여름은 다르게 느껴진다. ‘불볕’이라는 단어는 더는 은유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걸어 다니고,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혹독한 더위 속에도 무언가 배울 만한 태도나 감각이 남아 있을까. 숨이 턱 막히는 폭염조차 어쩌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불러내고, 둔해졌던 감각을 조용히 흔들어주는 건 아닐까. 삶의 결 하나쯤은 그 속에서 새겨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누군가에게 여름은 어린 시절의 감각이요 풍경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 자체일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느끼는 감상이 누군가의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나도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여름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색과 감각이 살아나는 계절

    감상의 틈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찜통더위 속에서 쉴 곳 없이 일하는 사람들, 냉방조차 사치인 환경에 놓인 사람들…. 그래서 나는 이 계절을 이야기할 때 늘 머뭇거리게 된다. 여름을 예찬하는 말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자각이 이 계절에 대한 감상을 더 신중하게 만든다.

    여름엔 색이 돋보인다. 장마가 물러간 자리엔 햇살이 내리쬐고, 사물의 윤곽은 더 선명해진다. 들판의 초록은 수필가 이양하가 예찬한 ‘신록(新綠)’을 지나 익을 대로 익은 짙고 묵직한 ‘녹음(綠陰)’이다. 해 질 무렵 골목길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길고 진해지고, 시장 어귀에 쌓인 수박 껍질은 햇빛 아래에서 윤기를 더해간다. 이 계절의 풍경은 모호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단호하게 말한다. 눈부심은 존재의 증명이다. 나는 여름이 무덥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감각들을 다시 불러낸다.

    어린 시절, 마당에 놓인 대야에 발을 담그고 파란 고무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물을 맞으며 깔깔 웃던 기억이 떠오른다. 발끝을 간질이던 물기, 햇볕 아래 금세 말라버리는 젖은 머리카락, 부엌에서 들려오던 수박 써는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얹히던 매미 소리….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내던 여름의 평온함은 단지 무더위를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조용히 감싸는 정서의 공간이었다. 그 시절의 더위는 무조건적 인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감각의 일부였다. 더운 줄도 모르고 뛰놀다가 해 질 무렵 어른들의 부채질 소리에 더위를 실감하곤 했다. 어떤 순간은 이유도 없이 마음이 편안했고, 그 감정이 지금 와서야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느린 여름 속에서도 모든 것은 조용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임은 작았지만 생명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런 감정은 지금의 나를 이끄는 감수성의 첫 뿌리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여름이 안겨주던 그 독특한 감각의 밀도를 잊지 못한다. 어린 날의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었다. 감각과 관계, 정서가 한데 엉켜 작은 우주처럼 응축돼 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이제 다시 오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가끔은 그 시절의 공기와 냄새가 문득 그리워진다.



    며칠 전, 더위 속에서도 마음의 통풍을 위해 집 근처 생태공원을 찾았다. 기대했던 건 잔잔한 연못, 그늘 아래 느긋이 앉은 오리 가족,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 떼였다. 하지만 그날의 풍경은 달랐다. 연못은 말라 있었고, 수면 대신 햇빛만이 바닥을 흔들고 있었다. 물고기도, 오리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텅 빈 연못 앞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이 여름은 단지 고통만을 주는 계절일까? 그 순간, 나는 오히려 그 ‘멈춤’의 풍경에서 여름의 또 다른 면을 느꼈다. 모든 것이 숨어 있고, 멈춰 있고, 기다리는 고요 속에서 자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위와 타협하고 있다는 것을. 고요는 생존의 전략이고, 그늘은 단지 피신처가 아니라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그날 벤치에 앉아 땀을 훔치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뜨거움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생명의 가능성이 숨 쉬는 풍경

    말라붙은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생명의 가능성이 숨 쉬고 있었다. 그 고요함은 오히려 외침처럼 들렸다. 말보다 더 큰 메시지를 남기는 적막. 고요는 때때로 가장 명확한 언어가 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깨닫는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풍경이,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더 또렷하게 흔든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기록적 폭염은 단지 날씨 변화가 아니라, 재난에 가까운 실체가 됐다. 폭염주의보는 일상이 됐고, 온열질환자가 늘더니 사망 소식까지 들려온다. 이제는 ‘이 여름을 살아낸다’는 말조차 함부로 쓰기 어려워졌다. 누군가는 그 여름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시는 움직인다. 고층 건물과 아스팔트 사이를 조심스레 걷는 사람들,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바람을 기다리는 아이들, 양산을 든 어르신의 절제된 걸음. 이 모든 풍경은 뜨거운 계절 속에서도 그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 질서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내기 위해 몸으로 익혀온 본능에 가깝다.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이 계절을 통과해 본다. 아침 여섯시, 아직 달궈지지 않은 보도를 따라 걷는다. 가로수 아래의 그늘과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 아이스 보리차 한 모금. 도시가 주는 가장 조용한 위로다. 낮에는 선풍기 뒤에 젖은 수건을 걸어두고, 에어컨 대신 서늘한 바람을 기다린다.

    퇴근길 풀잎에서 배어 나오는 향을 지나칠 때, 무뎌졌던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 무더위는 감각을 마비시키지만 그 무뎌진 감각은 아주 작은 순간에 되살아난다. 민트 향이 스치는 찰나, 손끝에 머무는 바람 한 줄기처럼. 여름은 우리가 선택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 계절을 잘 산다는 건 결국 작고 섬세한 감각에 귀 기울인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여름은 조율이 아닌 생존 자체다. 며칠 전, 복지관 앞 인도에서 폐지를 수레에 싣고 빌딩 그림자에 기대서 계시던 할머니를 보았다. 전광판은 34도를 가리키고 있고, 지나가던 청년이 편의점 생수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생수를 받으며 작게 말했다. “오늘 쉼터 문 닫았대.”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종종 ‘제도’가 있으니 괜찮다고 안심한다. 하지만 그 쉼터는 닫혀 있었고, 운영시간은 할머니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폭염 속의 제도는 몇 시간, 몇 미터, 몇 겹의 장벽 뒤에 존재할 뿐이다. 보호받는다고 생각하는 그 구조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름은 자꾸 들춰낸다. 그날의 더위는 숫자로 기록되지 않는다. 그것은 갈 곳 없는 열기, 숨을 곳 없는 뜨거움이었다.

    뜨거운 나날 속에서 피어나는 마음들

    삶이 여름 같을 때가 있다. 숨이 막히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고단한 순간. 그러나 그때에도 사람은 사람을 느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친 누군가의 땀 냄새로 그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버스 안에서 우는 아이를 보며 ‘덥고 힘들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겨울 냉기가 사람들 사이를 멀게 만든다면, 여름의 더위는 느슨하지만 가까운 연대를 만들어낸다. 작지만 단단한 감정, 그 안에 깃든 공감이 사람을 다시 살게 한다. 여름은 단지 견뎌야 할 계절이 아니라, 감각을 되살리고 마음을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 속에서 서로를 감지하고, 삶의 결을 다시 되짚는다. 여름은 사람의 속도를 늦추고, 그 속도 속에서 관계를 살펴보게 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작고 조용한 순간에도 마음이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감각에 가까운 무언가다. 그럴듯하게 정리되지 않는 삶일지라도,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잠깐의 숨을 돌린다. 뜨거운 날들이 지나고 나면 어쩌면 더 단단해진 마음 하나가 남을지 모른다. 그러니 언젠가, 이 여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여름, 꽤 뜨겁고도, 꽤 괜찮았지.” 

    정승혜
    ‌● 1975년 서울 출생
    ●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 ‘영카페’ 만화세상, ‘카툰K-공감’ 등에 다수 연재
    ● 단행본 ‘천년 묵은 지네’ ‘연오랑과 세오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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