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양수발전소 건설에 백두대간 죽어간다

지역갈등, 血稅낭비, 비효율성

  • 글: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gh@greenkorea.org

    입력2003-12-26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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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야의 남는 전기를 활용해 한낮의 전기생산량을 늘린다는 효율적 발상에서 시작된 양수발전소는 알고 보면 핵발전소의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백두대간에 건설되고 있는 양수발전소는 완공도 되기 전에 환경훼손과 지역갈등, 그리고 대규모 산사태 피해까지 낳고 있다. ‘백해무익’ 양수발전소 논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양수발전소 건설에 백두대간 죽어간다

    점봉산 양수발전소 건설 현장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역주민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건설을 밀어붙이려는 공권력과 이에 저항하는 주민의 몸부림은 국민들에게 핵발전에 대한 근본적 고뇌를 던져주었다. ‘계속 핵발전소를 지어야 하는가’ ‘핵 이외의 대안은 없는가.’

    하지만 핵발전을 근간으로 하는 전력수급체계의 변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와 현재의 전력산업은 물론이고, 미래 전력사업의 근간인 ‘장기전력수급체계’에 관한 모든 정보와 논의가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에 독점되어 있다. 또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일체의 고리가 ‘정부-한국전력-전력학계’로 연결되어 있어 전력수급체계 변화에 관한 합리적 토론과 논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핵발전을 배제한 전력생산을 선택하고 있고, 대체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투자 또한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핵발전 정책이 가져다주는 현상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이 만만찮기 때문에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핵발전 문제가 불거진 것은 ‘부안 사태’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 인천 굴업도와 충남 안면도는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문제를 놓고 민란에 가까운 갈등을 겪었다. 그밖에도 핵발전소 주변에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로 인해 인근 어장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으며, 해양생태계 또한 야금야금 파괴되고 있다.

    핵발전소는 그 특성상 또 하나의 전력사업을 낳는다. 이 전력사업은 지역갈등과 민원을 야기하는 동시에 환경훼손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양수발전사업이다.



    연중 40일만 가동되는 ‘비효율’ 댐

    큰 산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고도 차이가 나는 수력전용 댐을 각각 지어 두 댐의 수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하는 사업이 양수발전사업이다. 전력소비량이 늘어나는 낮 시간에 상부댐에서 하부댐으로 수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을 한다. 반대로 전력소비가 줄어드는 심야 시간에 남는 전기를 이용, 터빈을 돌려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린다.

    원리를 보면 효율적인 발전방식인 것 같지만, 실제 양수발전의 기본 기능은 핵발전소를 보완하는 데 있다. 핵발전소의 원자로는 한 번 가동하면 멈출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전기는 여타 에너지와 달리 저장이 안 된다. 한번 전기를 일으키면 가두어두거나 묶어둘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핵발전소는 양수발전소를 필요로 한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 가운데 남는 전기를 양수발전소에 보내 활용하는 것이다. 즉, 양수발전소는 핵발전소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발전사업이다. 우리나라 장기전력수급계획은 핵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산자부와 한전은 지속적으로 양수발전소를 건설해왔다.

    그런 양수발전이 점점 쓸모 없게 되어가고 있다. 양수발전의 필요조건인 심야전기가 더 이상 남아돌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심야전기 소비량이 폭증해 겨울철 난방용 심야전력 수요가 핵발전소 발전용량을 초과하기에 이르렀고, 여름철 냉방용 심야전력 수요 또한 급증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양수발전소의 연평균 가동률은 6∼10%에 지나지 않는다. 1년에 40일 가량 운영되는 셈으로, 효율이 가장 낮은 발전 방식이다. 1개소당 사업비가 5000억∼8000억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인 양수발전은 사업근거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한전은 양수발전이 ‘첨두부하(尖頭負荷)’용 발전사업이라며 전력 사용이 최고점에 달했을 때 전력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리가 맞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주) 홈페이지는 양수댐에 대해 ‘전력수요가 적은 밤에 하부저수지의 물을 상부저수지로 끌어올리고 전력수요가 증가하는 낮에 상부저수지의 물을 하부저수지로 내려보내 이때 발생하는 힘으로 지하발전기에서 전기를 발생시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양수발전소는 당초 산업자원부가 예산과 정책을 조직하고 한국전력공사가 사업시행을 맡았다. 그러나 2000년 지역발전회사가 한전의 자회사 형태로 분리되면서 양수발전소를 분할, 관리하게 되었다. 2003년 11월 현재 전국의 양수발전소 중 가동중인 곳이 4개소, 건설중인 곳이 2개소이다. 또 1개소의 양수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건설된 것이 경기도 가평의 청평 양수발전소다. 이후 밀양 삼량진 양수발전소, 무주 적상산 양수발전소, 산청 지리산 양수발전소 등이 건설돼 가동되고 있다. 한편 인제-양양의 점봉산 양수발전소가 2년 내 완공을 앞두고 있고, 경북 청송의 청송 양수발전소는 지난해 착공되었다. 경북 예천의 예천 양수발전소는 2004년 하반기에 착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건설중이거나 최근 완공된 양수발전소는 하나같이 환경을 크게 훼손하고 심각한 지역갈등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곳이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에 들어설 점봉산 양수발전소와 최근 완공된 경남 산청의 지리산 양수발전소다.

    이 두 곳은 1990년대 중후반에 착공된 발전소로, 국내 최고의 자연 생태계와 자연 경관을 간직한 곳에 들어선다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입안에서 착공에 이르기까지 일방적 전력 논리만이 관철되면서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낳았다는 점, 여러 차례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랐다는 점, 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진행한 점 등이 그것이다.

    발전소를 가동하려면 송전탑을 건설해 다른 지역의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와 연결해야 하는데, 이 송전탑으로 인해 추가적 환경 파괴가 발생된다. 국토의 뼈대인 백두대간의 핵심 권역에 들어서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낳았던 점봉산과 지리산의 양수댐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전 vs 환경단체의 치열한 공방

    점봉산 양수발전소는 국내에 본격적인 양수발전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주리조트와 더불어 1990년대 최대의 생태계 훼손 사례로 꼽히는 이 사업은 지금도 백두대간 난개발의 대표적 현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더 이상의 대규모 환경파괴를 막자는 취지로 마련된 ‘백두대간보전법’의 탄생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점봉산 양수발전소다. 이 법안은 16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에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1995년 7월 지역주민들의 수 년간에 걸친 반대와 환경단체 및 전문가들의 환경파괴 문제점 지적, 연어 자원의 급감을 이유로 한 수산청의 반대 등을 무릅쓰고 11개 정부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전원개발특례법을 통해 총공사비 9300억원의 점봉산 양수발전소 사업을 승인했다.

    그러자 1995년 여름부터 인제군 기린면 진동 2리 주민들과 우이령보존회, 백두대간보전회, 녹색연합 등이 중심이 되어 댐 건설 반대운동을 벌였다. 건설 중반기까지 사업자 한전과 환경단체 사이에 공방이 계속되었다. 10여 차례의 댐 건설 저지 대회와 점봉산 생태계 보전 행사가 상부댐 건설지 주변에서 전개됐다. 1996년 2월부터는 해마다 정월대보름맞이 설피밭 밟기 행사가 열렸고, 5월에는 점봉산 꽃나물에 관한 모니터링, 10월 말에는 연어생태학교 등이 열렸다.

    해발 1424m의 점봉산은 인제군 기린면과 인제읍, 양양군 서면에 걸쳐 있다. 양수발전소는 곳은 점봉산 단목령을 지나 남쪽 능선에서 진동계곡으로 내려오는 곳으로 인제군 기린면 진동 2리 진동초등학교로 오르는 벌막골 계곡에 지어진다. 공사는 80% 정도 진척된 상태로, 지금은 설악산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된 점봉산의 진동 계곡 쪽이 건설 중에 있다.

    시설용량 100만kw로,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점봉산 양수발전소가 완공되면 점봉산 진동계곡에는 5만7000평의 상부댐이, 영덕리 남대천의 상류인 후천에는 30만평에 이르는 하부댐이 들어서게 된다. 또 양쪽 댐을 잇는 3.5km의 지하 도수터널이 백두대간을 관통하게 된다.

    생태계 모니터링 제대로 안해

    상부댐이 들어서는 진동계곡에는 점봉산에서 발원한 물이 흐른다. 점봉산과 진동계곡은 ‘생태계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남한 지역 최고의 자연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는 곳. 하부댐이 들어서는 양양군 영덕리 일대부터 동해안까지는 국내 유일의 연어 회귀천이다.

    인제군과 양양군에 걸쳐있는 점봉산의 일부는 설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2049㎢가 천연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199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보존권 핵심지역으로부터 불과 수백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진동계곡의 원시림은 300∼400년 동안 관광개발, 전쟁, 대규모 산불 등으로 인한 훼손을 당하지 않아 안정된 ‘극상림’을 이루고 있다. 극상림이란 나무와 풀이 생성과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생태적으로 최고로 안정된 상태에 있는 삼림을 일컫는다.



    신갈나무를 비롯한 원시 활엽수림, 전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숲은 그 자체가 자연 수목 박물관이다. 점봉산은 854종의 식생을 자랑하는데, 주목, 등대시호, 한계령풀, 점봉산엉겅퀴 등 희귀식물을 비롯해 모데미풀, 금강초롱꽃, 진부애기나리 등 36종의 한국특산 식물이 있다. 이중 10여 종은 법정보호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모데미풀은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인데, 점봉산 모데미풀은 남한의 최북단에 서식하는 모데미풀이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이곳은 또 생물다양성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다. 멸종 위기종인 삵, 늑대, 목도리담비 등 4종과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 곰, 사향노루, 산양, 수달 등 총 31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진동계곡에 서식하는 어류로는 열목어, 금강모치, 꺽지, 배가사리, 쉬리 등이 대표적이다. 열목어와 금강모치는 생태적 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한국 특산종이다. 그런데 이곳에 상부댐이 축조되면 이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는 천연림 보호구역이 포함되어 있다. 하부댐이 들어설 후천은 오색천과 어성전천 사이에 흐르는 남대천의 세 지류 중 가장 긴 지류로 1급수 하천이다. 물이 맑은 이곳에는 금강모치, 돌상어 등 10여 종의 특산 담수어와 송어, 산천어, 은어를 포함한 48종의 어류가 서식하며, 북태평양 연안국들이 지정한 공동 보존 어류인 연어의 회귀천이기도 하다.

    후천에 건설되는 양수발전소는 자연 유수를 차단함으로써 수년 안에 저수지 상·하류 수질의 부영양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수질 부영양화는 연어를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열목어 등 산천어류에 악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대대로 청정하천을 이웃하여 살아온 주민들의 상수원 또한 위협받게 될 것이다.

    남대천에서 생활용수를 가져다 쓰는 양양군은 댐 건설로 인해 환경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또 인제군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진동리 주민들의 위기감과 피해의식은 커질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진동계곡 35km 전체에 도로가 개설되면 댐 공사로 인한 훼손 이상의 생태 파괴가 일어날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대규모 개발공사가 시작되는 초기에는 반대도 하고 감시도 하지만, 막상 공사가 진행되면 제대로 관찰하거나 감시하지 않는다. 비단 환경적 문제뿐 아니라 공사의 안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업자나 환경부 등은 점봉산과 진동계곡이 지닌 생태적 가치에 주목하여 점봉산 양수발전소 공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태계 모니터링을 전개했어야 마땅하다. 특히 수몰 이전과 이후의 생태계 변화 추이 모니터링은 매우 중요하다. 전력회사와 환경단체 간의 논란에 대한 진실을 밝혀줄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자부와 한전은 물론이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환경부도 공사 이후 생태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지리산 분할시킨 도로공사

    경남 산청의 지리산 양수발전소는 양수댐을 둘러싼 환경 파괴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이 발전소의 상부댐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 고운동에 들어섰고, 하부댐은 시천면 신천리에 들어섰다. 1995년 착공해 2001년 12월에 완공, 현재 발전 용량은 700MW(350MW×2기)다.

    착공 당시인 1995년을 전후해 진주환경연합을 비롯, 경남 지역의 환경단체와 산청군 시천면 주민들이 연대해 격렬한 건설 반대시위를 전개했다. 특히 공사 초기에 경찰이 반대운동에 나선 지역주민들에게 “국가 사업에 계속 저항하면 구속하겠다”고 협박했을 정도로 정부는 이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지리산 양수발전소는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에 인접하여 건설되었다. 댐 구조물은 국립공원을 벗어나 있으나 댐으로 조성된 호수는 공원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리산 양수댐은 다른 양수댐들에 비해 그 면적은 작지만 댐 건설용 도로공사가 지리산의 생태계를 양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북부의 성삼재 도로, 서부의 노고단 도로, 그리고 발전소 진입도로 지리산은 4개로 등분되었다. 또 양수발전소 인근의 청암댐, 합천댐, 진양호가 보태어져 서부 경남 지역에 기후 변화와 생태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발전소 건설 후 안개가 끼는 날이 크게 늘어 주민들은 양수발전소가 들어선 예치마을의 특산물인 토종꿀, 차, 곶감 등의 재배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상부댐이 들어서는 바람에 수몰된 고운동에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 건조지역에 자라는 수종이 서식했었다. 그러나 댐 건설로 주변 습도가 올라가면서 현재 수종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지리산 남부능선을 중심으로 삼신봉 인근 지역에 대한 정밀한 자연환경 조사가 시급하다.

    지리산에 양수댐이 건설되기 전, 환경부가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결과 상부댐 예정지의 녹지자연도는 8∼10등급으로 나타났다(보통 8등급 이상 지역은 개발이 금지된다). 사업을 계획했던 한전이 발표한 7등급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건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상부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은 토양과 식생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양수발전소 건설에 백두대간 죽어간다

    지리산 양수발전소와 연결된 송전탑 부실공사로 인해 2002년 여름 산청군 반천리에 대형 산사태가 발생했다. 전형적인 인재의 현장이다.

    댐이 들어서기 전 지금의 수몰지역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새매와 지역 희귀 동물인 맹꽁이, 능구렁이, 까치, 살모사 등이 서식하고 있었다. 한전에서는 이러한 희귀 동물이 댐 건설을 피해 스스로 이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희귀동물은 특정지역의 자연환경이 그 동물에 적당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만 서식하는 것이다. 다른 환경에서는 잘 살아갈 수 없다. 결국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들 희귀 동식물은 급격히 감소했다.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덕천강 상류인 거림 고운동 계곡은 공사기간 중 토사유출로 인해 수질이 악화되었다. 현재 진양호에는 퇴적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수심이 얕아지고 부영양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심 깊은 곳의 찬물을 방류하면 하류 지역 농작물은 심각한 냉해를 입게 될 것이다. 또 녹조류의 발생, 하천수 고갈로 인한 하류 생태계 변화도 우려되고 있다.

    지리산 양수발전소 또한 사후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상부댐이 들어서 있는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 고운동 일대에는 댐 구조물에 필요한 토석을 조달하기 위해 토취장이 조성된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이 때문에 태풍이나 장마가 닥치면 붕괴해 재해를 낳을 우려가 높다. 또 생태 복원은 하지 않은 채 잣나무 묘목을 띄엄띄엄 형식적으로 심어놓았다. 이는 주변 식생과 같은 수종으로 복원하는 것이 기본인 일반 조림의 원칙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조치다. 현재 이 일대 곳곳에는 고사하는 나무가 속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양수발전소는 발전소 건설과정의 환경파괴 외에에 또 다른 중대한 갈등을 낳는다. 송전탑이 바로 그것이다. 양수발전소가 지어지면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 발전소와 연결하는 송전탑도 건설해야 한다. 문제는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산사태를 비롯한 경관 훼손, 소음과 전자파 발생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지리산 양수발전소 인근인 경남 산청군 반천리 일대에서는 송전탑으로 인해 엄청난 산사태가 일어났다.

    2002년 8월31일 태풍 ‘루사’가 지나가면서 산청군 반천리와 내공리 일대에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하였다. 반천리와 내공리 뒷산 송전탑 작업도로에서 시작된 산사태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골짜기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산사태 최초 발생지점은 폭 2m에서 폭 35m까지 패나갔고, 일부 작업도로는 깊이 47m까지 내려 앉았다.

    어마어마한 폭탄을 맞은 전쟁터처럼 수천 톤의 유실물이 계곡을 통해 쓸려내려오면서 아랫마을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었다. 폭 2∼3m였던 계곡은 최대 200m까지 확장되었고, 이로 인해 가옥과 농경지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한전은 지리산 양수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경남 중남부지방에 공급하기 위하여 산청 양수발전소와 의령 변전소 사이 45.9km에 345kV 송전탑 131기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와 내공리 뒷산에 송전탑 13기와 10.48km의 작업도로가 개설된 것이다.

    그런데 이 송전탑 노선은 건설 당시 한전의 관계자조차 “급경사인 산악지로서 철탑 건립이 불가능하며 본 선로 건설 완료 후 사고에 대비하여 신속한 유지보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산사태 초래한 송전탑 건설

    그러나 한국전력공사는 송전탑과 작업도로 건설에 따른 지역주민의 안전문제를 무시한 채 당초 평지를 지나도록 계획되었던 송전선로 노선을 급경사 산지인 반천리와 내공리 뒷산을 지나도록 변경하였다. 결국 도로 개설 2년 만에 도로 26개소가 붕괴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엄청난 환경 파괴와 주민 피해를 낳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전은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강우량을 분석해보면 한전의 주장이 변명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태풍 루사가 닥쳐왔던 2002년 8월31일 하루 동안 반천리와 내공리의 강우량은 총 285mm로, 시간당 최대 47.5mm였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 이전 하루 강우량 287.5mm, 시간당 최대 53mm를 기록했던 1987년이나, 지리산대원사에서 100여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난 1998년 큰 비에도 반천리와 내공리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작업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은 인근 지역에는 피해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산청 반천리 사례에서 보듯 송전탑 건설은 생태계 파괴와 재해를 발생시킨다. 이는 애초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졌기 때문일 뿐 아니라, 송전선로 건설 후 환경훼손에 대한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은 결과다. 따라서 대규모 환경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송전탑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재점검을 비롯해 송전탑 건설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모든 피해는 양수발전소에서 비롯되었다. 건설 당시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긴 했지만, 이토록 사무치는 피해와 고통을 줄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한전이라면 치가 떨린다. 아무리 국가시책이라고 해도 이런 법은 없다. 힘 없고 빽 없다고 짓밟아도 되는가. 보상은 고사하고 복구조차 기약 없다.”

    산청 반천리 피해주민대표 박충수씨는 이와 같이 아픔을 전했다. 한전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는 1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산사태피해원인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문제는 결국 청와대국민참여수석실의 정책간담회에 의제로 상정되었다. 덕분에 기본적인 복구대책은 마련되었지만, 보상은 아직 추진되지 않고 있다. 한전은 청와대 간담회에서도 ‘책임이 없다’는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다가 청와대 당국자의 “상황이 이렇게 됐는 데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질책을 받자 복구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송전탑 건설은 점봉산 양수발전소에서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는 송전탑이 건설되기도 전에 강력한 주민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하부댐 지역인 양양군 공수전리에서 강릉을 거쳐 동해시 지흥동 동해 변전소까지 총연장 85.4km구간에 송전선로와 244기의 송전탑이 2005년 4월까지 건설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로 발전소 완공시기인 2005년 하반기는 고사하고 2006년 봄까지도 완공이 어렵게 됐다.

    양양-강릉-동해를 잇는 송전탑은 지난 2월초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다는 논란이 일면서 해당 지역에서 반대 움직임이 시작됐다. 강릉시의회는 환경부에 환경영향평가의 협의 연기 요청을 공식적으로 낸 상태이며, 정밀한 환경조사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일체의 사업을 불가하겠다는 입장을 수 차례에 걸쳐 밝혔다.

    강릉시의회 기세남 의원은 “강원도, 특히 동해안에 위치한 영동권 지역의 미래는 관광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송전탑이 기본적 관광자원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해치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동해까지 대형 철탑이 늘어선다면 지금의 자연 가치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아울러 “경제성과 실효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양수댐을 위해서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산자부나 한전이 굳이 송전탑을 지어야겠다면 먼저 양수발전소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전탑 논란은 점봉산 양수발전소로 인한 갈등과 분쟁이 강원 영동권 전체의 현안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타당성, 필요성 재검토해야

    지금까지 양수발전소로 인해 빚어진 환경훼손과 지역갈등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발전사업 자체의 타당성과 필요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한전은 환경문제와 지역갈등 해결에 대해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전원개발특례법’과 같이 개발이 최고 가치로 군림했던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법이 한전 사업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양수발전소는 공론의 장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과연 양수발전소 건설이 필요한 사업이며 타당성이 있는 사업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양수발전소를 그대로 두기에는 환경 파괴가 극심할 뿐더러, 비효율적인 사업에 낭비되는 국민의 혈세가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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