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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⑦

쌀알 동동 뜨는 뽀얀 술 냄새는 이웃을 부르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쌀알 동동 뜨는 뽀얀 술 냄새는 이웃을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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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 글을 쓰며 정리되는 한마디는 이렇다. 길지 않지만 몇 년을 산골서 살아보니, 이곳은 돈은 없지만 생명은 있다. 만일 돈이 아닌 참다운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이라면 살아볼 만하지 않겠나. 내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선생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두려움에서 풀려나게 도와주셨다. 농촌 현실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나도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자.

가을 하면 시월. 천고마비의 계절. 농사하는 사람에게는 일년에 가장 바쁘면서도 뿌듯한 가을걷이의 계절이다. 농사란 본디 똑같은 해가 있을 수 없다.

올해는 어떤가. 유월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이 글을 쓰는 구월 초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비가 안 오고 해가 난 날을 손꼽을 만큼. ‘올해 같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논밭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곳곳에 쭉정이들. 비에 키만 웃자란 곡식이 넘어지고. 어째 벌레들은 더 극성인지, 성한 곡식이 별로 없다. 해마다 한두 번 고비는 있었지. 지독한 가뭄, 놀라운 태풍, 쏟아지는 비…. 그걸 견디고 이겨내 가을걷이를 하곤 했다. 올해도 그렇게 될까?

자연이 해마다 다르듯, 그에 맞춰 일하는 사람 손길도 달라진다. 우리 가을걷이 모습은 해마다 많이 바뀌었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밭에서 트랙터가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 논을 트랙터가 가는데, 하던 일손이 저절로 멈춰지고 입이 헤 벌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보았다.

엄청난 힘. 유연한 기계 놀림. 논을 갈면서 논바닥을 편편하게 하는 써레질까지 한번에 해 내는 실력. 우와. 멋지다. 중국 무술 영화에서 주인공이 활약하듯. 게다가 이건 실제 상황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그 훌륭한 기계를 쓰지 않기로 했다. 되도록 자급해 보자고 각오를 했기에. 대신 경운기를 마련해 남편이 손수 논을 갈고, 고무래로 일일이 밀었다.

그해 가을 그러니까 첫 가을걷이를 앞두고. 논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 가니 마음이 뿌듯했다. 우리는 나락 타작을 콤바인으로 하기로 했다. 논에 나락이 가득 찬 걸 보고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선 거다. 콤바인을 가지신 마을 반장님에게 일찌감치 부탁을 하고. 콩이야 팥이야 다른 가을걷이를 했다. 가을걷이가 웬만큼 끝나가도, 논에 서 있는 나락이 벨 때가 지나도 콤바인은 들어올 줄 몰랐다. 몇 번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 집 논에 나락이 우리보다 더 빨리 익었는데도, 못 털고 있을 만큼 콤바인은 바빴다.

홀태가 주는 평화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 사정을 봐 줘 어렵사리 시간을 잡은 거다. 해가 다 져 가는 저녁에. 콤바인은 불을 켜고 일을 했다. 콤바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멀거니 구경하고. 나락은 논에 서 있던 그대로 순식간에 기계로 빨려 들어가 알곡이 되어 포대에 담겨졌다. 정말 순식간에.

이듬해 가을걷이 때 우리는 콤바인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몸 편하자고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나.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어찌 타작을 하나. 남편은 발로 돌려서 하는 탈곡기, 그걸 구해보자 한다. 발탈곡기는 마침 마을 아저씨 창고에 있었다. 아저씨는 그걸 아무 대가 없이 꺼내 주셨고.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걸 받아 썼다.

발탈곡기로 타작을 하려면, 먼저 낫으로 벼를 베어 묶어 세우고 나락이 어느 정도 마른 뒤 발탈곡기를 돌려 털어야 한다. 낫으로 벼를 베는데 남편은 타닥타닥 리듬악기 같은 소리를 내며 앞으로 쭉쭉 나갔다. 낫질을 해서는 손가락 사이에 한 움큼씩 끼워 모아, 끈 위에 한번은 오른쪽으로 기울게, 다음에는 왼쪽으로 기울게, 그렇게 놓으란다. 나중에 탈곡할 때 손에 한 움큼씩 잡히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걸 뒤따라가며 하는데, 내 낫질 소리는 띄엄띄엄 나고, 한 단 만드는 데 한참 걸린다. 그래도 자꾸 해 봐야지. 그렇게 벼를 다 베어 논 한 쪽에 두 줄로 세워놓았다.

드디어 우리 힘으로 탈곡을 하는 시간.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 큰애는 볏단을 날라다 주고, 나는 한 줌씩 모아 탈곡하는 남편에게 대주고. 남편은 볏단을 탈곡기에 넣는다. 큰애는 한 사람 몫을 하고. 작은애는 일하는 곁에서 뛰어 놀다 잔심부름하고. 온 식구가 가을 햇살을 받으며 신나게 일을 했다. 올벼 논에서 한나절하고. 찰벼(찹쌀벼) 논에서 하루 하고. 이렇게 논마다 알곡이 적당히 익었을 때 날을 받아 제때 털어 거두었다. 내 몸으로 일하는 뿌듯함. 우리가 바라던 게 바로 이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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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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