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경제 검찰’ 공정위 창의적 큰 그림 그려야

공정위 vs 재계 공방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2-08-23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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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D금리 담합은 2009년에도 금감원이 포착
    • 금리 담합 두고 공정위 vs 금융위 기싸움
    • ‘일감 몰아주기’ 용어 부적절 주장도
    • 농심, 라면값 담합 과징금 취소소송 제기
    • 공정위 물가관리 기관 이미지 벗어야
    • 행정소송 잇단 패소 체면 구겨
    ‘경제 검찰’ 공정위 창의적 큰 그림 그려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1월 16일 4대 그룹 대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순택 삼성그룹 부회장, 김동수 위원장, 강유식 LG 부회장, 김영태 SK그룹 대표이사 사장.

    요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위상이 하늘을 찌른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관은 검찰이 아니라 ‘경제 검찰’인 공정위라는 소리도 나온다. 대기업과 은행 등 재계에 대한 감시활동이 크게 강화돼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조사, SK 및 롯데의 계열사 부당지원 단속, 백화점 등 유통업체 판매수수료 인하 압력, 대형 건설사 4대강 수주 담합·라면값 담합·통신 3사 및 휴대전화 제조사 불공정거래 행위 제재….

    공정위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가 처리한 사건 수는 총 3879건으로 전년보다 6.6% 증가했다. 공정위 내 최고 제재 수준인 고발이 38건으로 전년보다 100% 늘었고, 과징금 부과건수는 156건으로 136.4% 늘었다. 시정명령도 370건에 달해 전년보다 33.6% 많아졌다. 올해는 이보다 더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의 설립 목적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촉진 △창의적 기업 활동 조장 △소비자 보호 등을 통해 국민경제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경제력 집중을 막고, 불공정 거래행위 등을 규제한다. 요즘 공정위는 과연 이런 설립 취지에 맞게 제 구실을 하고 있을까.

    CD금리 담합 진실은



    공정위를 감시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한결같이 공정위를 질타한다. 대기업들은 괘씸죄에 걸려 더 큰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도 과징금 결정 불복 소송을 제기하거나, 심지어 공정위 조사 자체를 불법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공정위와 재계가 어떤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한 느낌이 든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신동아는 최근 벌어진 공정위와 재계의 공방을 들여다보고 그 소용돌이의 실상을 짚어봤다.

    공정위의 CD금리 담합 조사 발표는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그 결과를 예상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당장은 왜곡된 담합을 시정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효과보다는 부정적 후폭풍이 거센 상황이다. 우선 금융권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했고, 이로 인해 소비자는 금융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사전에 관계 당국이 면밀히 조율해 발표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 모(49)씨 등 3명은 8월 1일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을 상대로 “은행 간 CD금리 담합으로 피해를 본 만큼 이자까지 포함해 각각 700만 원씩 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은행의 CD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해 “은행들이 3년 동안 모두 4조1000억 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고, 피해를 본 사람들은 모두 50만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9월 말까지 집단소송 신청자를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CD금리 담합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난 것은 공정위가 CD금리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7월 17일 10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다른 시장 금리가 하락했던 지난 4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CD금리는 연 3.54%에 고정됐다. 그런데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뒤 금융회사 한 곳이 CD금리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했다. 공정위는 담합 사실을 1순위로 자진 신고한 기업에 대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해주는 ‘담합자진신고자 감면제(leniency) ’제도를 두고 있다.

    CD금리 담합조사에 대해 공정위는 조사 초기 단계이므로 조사와 관련해 현재 확인되거나 밝혀진 사실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금융사 담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인정했다.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이 “금리를 연 0.1%포인트만 담합해 올려도 은행들이 3000억 원을 부당 이익 본 것이 된다”고 주장하자, 김 위원장은 “담합해서 인위적으로 금리를 높였다면 계산상으로 그 정도 피해가 발생한다”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은행 부서장 간담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이 모임을 조사 대상에 올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은행연합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김 위원장의 간담회 관련 발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연합회는 ‘김 위원장이 언급한 간담회는 19개 은행 및 연합회의 자금업무담당 부서장을 대상으로 매월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오찬 형식의 간담회로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상 금지된 일체의 행위를 한 바 없다’고 밝혔다.

    김석동 “담합이라 생각 안 해”

    금융 감독기관 수장들의 생각도 다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7월 2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담합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이는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이 “담합했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김 금융위원장은 “금리가 자유화됐고 금융회사들이 대출 금리를 정할 때 CD금리에 가산금리를 붙여서 결정하는 마당에 굳이 시장지표를 조작해서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담합 여부는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단정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며 공정위의 조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CD는 제3자에게 양도가 가능한 정기예금 증서로, 만기일 이전에 유통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주요 단기 금융수단이다. CD금리는 금융투자협회가 지정한 10개 증권사가 매일 2회 제출하는 CD의 추정금리 가운데 최고금리와 최저금리를 제외한 8개 금리를 산술평균해 결정한다. 10개 증권사는 리딩투자, 메리츠종금, 한화, KB투자, KTB투자, LIG투자, 동부, 미래에셋, 우리투자, 하나대투 등이다. 이렇게 정해진 금리는 다음 날 은행을 비롯한 거의 모든 금융기관의 변동금리 상품에 대한 기준금리가 된다.

    ‘경제 검찰’ 공정위 창의적 큰 그림 그려야
    물증 갖고 얘기했어야

    문제는 CD 추정금리는 실제 거래금리가 아니라 거래 예상금리이므로 시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지정된 10개 증권사 가운데는 실제 CD 거래가 없는 증권사도 있어 왜곡된 금리가 결정될 수도 있고, 실제 CD 거래가 없어도 금리가 변동될 가능성도 있다. CD 거래 경험이 부족한 일선 직원이 시장 동향만 살펴서 금리를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고시되는 매우 불합리한 결정구조다.

    CD금리 담합은 이전에도 포착된 바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부터 CD금리의 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학계를 중심으로 ‘담합의 소지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그러다 2009년 하반기 CD금리가 급등하자 금융감독원이 CD금리 관련 실태조사를 했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CD금리보다 바스켓 금리(CD금리, 정기예금, 금융채 등의 가중평균금리)가 바람직하며, 단기 금리 결정 구조의 변경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당시 CD금리의 담합 여부를 규명하지 못했고, CD금리 결정체계는 그대로 둔 채 2010년 2월 코픽스(주택담보 기준금리)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은 “금융당국은 CD금리가 실제 시장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결정체계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후속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CD금리 조사 결과 실제로 담합 사실이 발견되면 줄소송과 금융권의 신뢰 하락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뿐 아니라 과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금융위와 금감원이 무능론에 휩싸일 것이다.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의혹을 제기한 공정위가 같은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공정위원장과 금융위원장이 이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등 ‘기싸움’을 벌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제대로 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고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담합이라는 확실한 물증을 찾기 전에는 ‘CD금리 담합’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관계 당국이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사전에 조율하고 발표했어야 금융권의 신뢰 상실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공정위는 이런 지적에 대해 ‘카르텔 조사 시 사전에 관련 기관과의 협의는 전례도 없고,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담합조사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다. 또 2007년 11월 공정위와 금융위의 양해각서(MOU)에서도 금리와 수수료 등에 대한 담합조사는 공정위 소관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CD금리 담합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김재경 의원은 “금융당국이 2009년에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CD금리 담합 문제가 공정위로 넘어간 만큼 향후 공정위는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말고, 금융 신뢰 회복이라는 대전제 아래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K의 반격

    7월 8일 공정위는 정부 고시 단가에 따라 인건비를 책정해 거래한 SK그룹 계열사들에 대해 부당 내부지원이라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SK그룹 7개 계열사가 SK C·C와 IT 시스템 관리·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과징금 총액은 346억6100만 원.

    공정위 결정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자. SK그룹 7개 계열사(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네트웍스, SK건설, SK마케팅앤컴퍼니, SK증권)는 SK C·C와 수의계약 방식으로 5~10년 동안 전산시스템 관리 및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2008년부터 2012년 6월 말까지 아웃소싱(OS) 거래의 대가로 시스템 통합(SI) 업체인 SK C·C에 모두 1조7714억 원을 지급했으며, 이 가운데 인건비가 9756억 원을 차지한다. 이 인건비가 과다하게 책정된 것이 잘못됐다는 게 핵심이다. 공정위는 또 과다한 유지보수(MA) 요율, 물량 몰아주기 등도 문제 삼았다.

    언뜻 SK그룹이 잘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SK는 공정위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공정위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개별 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자칫 잘못 반기를 들었다가 공정위의 미움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건비 과다 책정의 문제를 보자. SK는 정부의 고시단가를 기준으로 인건비를 지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고시단가는 지식경제부가 매년 4만 명 이상의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실지급 임금을 조사해 발표하는 수치다. 이는 관련 업종의 인건비를 산정할 때 적용되는 유일한 객관적 기준이다. 심지어 공정위도 과거에 이 고시단가를 인정한 적이 있다. 또 2005년 서울고법도 대기업의 내부사업에 고시단가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명시했다.

    공정위는 2008년 이후 정부의 고시단가에 대해 업계가 그보다 낮은 금액으로 책정해온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SK C·C가 SK그룹사들로부터 정부 고시단가 수준의 인건비를 받았다면, 그룹사가 아닌 다른 업체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인건비를 받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공정위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SK C·C는 SK텔레콤으로부터 2008년 기준 고시단가의 97%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받았지만 모 은행으로부터는 63% 수준의 인건비를 받았다. SK C·C와 같은 업종의 다른 SI업체는 모 통신사로부터 고시단가의 76% 수준의 인건비를 받았다. 결국 이 차액(97%-63% 혹은 97%-76%)만큼을 SK C·C가 부당하게 취득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많은 SI업체가 정부의 고시단가를 적용하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적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또 공정위 주장대로 SI업체들이 정부 고시단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내부거래를 한다면 이 또한 역(逆)지원 논란이 일 수 있는 것이다. 또 고시단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후려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상한 논리도 나오게 된다.

    문제는 공정위가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번 심사보고서에서도 정부의 고시단가를 대체할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일부 심사위원들이 “법원이 인정한 정부 고시단가를 이제 와서 부정하고 부당 지원의 근거로 판단한다면 정상 가격은 어떻게 산정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공정위 심사관은 “솔직히 공정위가 (정상가격을) 자체 산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공정위 전원회의의 이견

    공정위 전원회의는 공정거래 관련법 위반사건 등에 대한 심리 및 의결을 위해 위원 전원(9명)으로 구성되고, 재적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둘째, 이번 사안이 물량 몰아주기에 해당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도 SK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공정위가 애초 SK 각 계열사가 SK C·C에 현저하게 많은 물량을 몰아줬는지에 대해 조사했으나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이 사안은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기간인 2006~2011년 SK C·C의 내부거래 비중은 늘어난 게 아니라 2000년부터 90%대에서 60%대로 줄어들었다. SK 관계자는 이에 대해 “SK C·C가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고 대외 사업을 늘리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일부 심사위원들은 “SK C·C 건이 물량 몰아주기에 해당한다면 그보다 더 큰 상위 2개 SI업체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상위 업체의 계열사 간 거래 규모가 SK C·C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2010년 기준 국내 주요 그룹의 내부거래 규모를 보면 삼성SDS(2조2880억 원), LG CNS(9360억 원), SK C·C(9420억원), 포스코ICT(6050억 원) 등의 순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라는 용어에 대해 다시생각해봐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산업조직론의 대가 윌리엄슨이 지적하듯 시장에 계열사가 등장한 이유는 업종 다변화를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특수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미국의 GM처럼 하나의 거대 기업 아래 각 사업 부문을 둬야 하고, 거대 기업의 비효율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따라서 계열사끼리 100원에 살 것을 200원에 사서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정도의 부당 내부거래가 아니라 정상적 시장가격에 따른 내부거래는 시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계열사 간 거래를 무조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 이득 편취이자 부당 경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증오를 재생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국민 정서는 결코 곱지 않다. 대기업 집단 간 일감 몰아주기로 대기업은 부당한 경쟁우위를 유지하게 되고, 독립 중소기업은 사업 기회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호영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재계도 바로 인식해야 한다. 과거 방식대로 이너 서클을 만들어 경쟁 없이 내부자끼리 나눠 먹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계열사 내부거래 많아져

    김재경 의원에 따르면 2008~ 2010년 분석 대상 20개 업체의 총 매출액 12조9000억 원 가운데 71%인 9조2000억 원이 계열사 간 내부거래 금액으로 파악됐다. 또 2010년엔 전년도보다 내부거래 비중이 더 높아졌다. 업종별로는 물류 분야의 내부거래 비중이 83%로 가장 높고, 이어 광고가 69%, SI가 64%로 그 뒤를 이었다. 또 조사대상 업체의 계열사 거래 가운데 88%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어 공정한 시장경제 원리를 왜곡하고 있는 점도 드러났다.

    대기업 집단 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대책으로 기획재정부는 해당 기업에 증여세를 부과하고, 공정위는 부당지원행위를 막기 위한 법집행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인 소모성자재 구매대행업(MRO)은 대부분 정부의 증여세 부과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내부자 거래비율 30% 이상,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 지분 3%에 해당하는 기업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부과하는데, 그 대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다.

    가격 담합 공방

    ‘경제 검찰’ 공정위 창의적 큰 그림 그려야
    8월 14일 농심은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서울고법에 제기했다. 7월 16일 공정위로부터 1080억7000만 원의 과징금 최종의결서를 통보받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공정위는 3월 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4개 라면 제조·판매사가 지난 10여 년간 가격을 담합했기 때문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135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키로 했다고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은 농심이 1080억7000만 원, 삼양식품 116억1400만 원, 오뚜기 97억5900만 원, 한국야쿠르트 62억7600만 원이다. 그러나 삼양식품을 제외한 이들 회사는 정부 부처의 행정지도에 따라 농심이 라면값 인상 폭을 조정했고, 후발 사업자들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삼양식품은 자진 신고해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라면업계는 공정위가 내세운 세 가지 담합 정황, 즉 △라면사 대표자 기본합의 △가격 인상폭 동일 △업체 간 정보교환 등에 대해 반박자료를 내놓았다.

    첫째, 라면업계는 2000년 말 4개사 대표자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자 회의를 통해 기본 합의를 했다는 진술은 삼양식품 측에서 나온 것인데 그 회의에 참석했다고 주장하는 당시 삼양식품 영업본부장 최모 씨는 이미 타계한 뒤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확인이 불가능한 작고한 사람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라면업계는 공정위의 결정이 자진신고업체인 삼양식품 측의 일방적·추상적인 진술에 따랐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도 이에 대한 직접적·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2003년 라면사업에서 철수한 빙그레는 제3자이지만 “대표자 회의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공정위가 지적한 ‘라면협의회’는 실제로는 ‘라면거래질서협의회’다. 이는 라면업계 임원들의 회의체가 아니라 국세청이 무자료거래 방지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로, 가격 인상과는 무관하며 사무국장도 국세청 출신 전직 공무원이었다. 공정위는 조사과정에서 라면협의회에 대해 2차례의 강도 높은 현장조사를 벌였으나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라면 가격의 인상폭이 동일하다는 지적에 대해 라면업계는 원가인상 요인을 고려해 독자적으로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농심은 “시장점유율 70%를 기록하는 마켓리더로서 타사와 가격 인상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며 “라면은 각사별로 원가 구조가 유사해 인상요인도 공통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반박했다.

    라면 가격은 사실상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 가격 인상의 상한선이 정해진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인상폭이 유사하거나 동일할 수밖에 없는 점도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심 측은 “이런 상황에서 타업체에서 유사한 폭으로 가격을 따라 올리는 것일 뿐이지 가격 인상에 대해 논의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셋째, 공정위는 340건의 e메일 자료를 확보해 업체끼리 가격 인상과 관련한 정보나 신제품 출시 계획 등 민감한 경영 정보를 일상적으로 주고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라면업계는 공정위가 정보교환 혐의로 제시한 e메일 내용은 가격 인상 내용을 거래선에 통보하거나 언론발표 뒤 삼양식품 직원의 요청으로 농심 직원이 보낸 e메일 등이라고 주장했다.

    라면업계는 가격 결정 이전에는 관련 정보를 주고받은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담당자가 주고받은 정보는 모두 알려진 내용에 불과해 가격 담합과는 무관한 활동이었으며, 가격 인상과 관계없이 평상시 시장조사를 위해 활용하는 자료들이라고 주장했다. 가격 결정 이후의 정보교환을 담합으로 보는 것은 이례적이고 지금까지 담합 판정과 비교해 형평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라면업계는 일단 과징금을 내야 한다. 농심은 과징금 1080억 원을 내느라 올 상반기 639억1000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대비 적자로 전환했다. 이 기간 매출은 9652억9500만 원으로 3.1%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500억4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3% 줄어들었다.

    체면 구긴 공정위

    공정위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 잦다. 8월 10일에는 SK네트웍스가 자사에 50억 원대의 과징금을 결정했던 공정위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 명령은 취소된다. 지난해 10월 공정위는 지주회사 SK의 자회사인 SK네트웍스가 유예기간 4년이 지났음에도 SK증권을 계속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로 50억8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 말엔 공정위가 보험사들에 대해 2001~2006년 이율 담합을 이유로 1174억 원의 과징금을 매긴 적이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공정위의 과징금 산정 기준이 불합리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공정위가 바로 항소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제 검찰’ 공정위 창의적 큰 그림 그려야
    시정명령, 과징금 등 공정위 제재조치에 반발해 기업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비율이 2006년 34건(4.1%)이었다가 지난해 52건(11.3%)으로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의신청 제기율도 2006년 3.7%에서 지난해 7.0%로 3.3%포인트 높아졌다.

    공정위 제재에 대한 소송 가운데 공정위가 패소한 사건은 12.3%다. 공정위가 승소하거나 소취하·각하된 비율은 57.6%, 부분승소한 사건은 13.7%다. 나머지는 상고가 미확정되거나 계류 중이다.

    공정위에 대한 불복소송은 점잖은 반응이다. 기업들은 심지어 공정위의 조사까지 방해하며 극단적 대응을 하기도 했다. 한두 기업이 아니다.

    SK C·C 임직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공정위가 확보한 증거자료를 반출한 뒤 폐기했고, 허위진술 등 조직적인 조사 거부 행위를 저질렀다. SK C·C 측은 “조사가 진행되는 현장에서 벌어진 개인의 우발적 행위로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방해가 아니었다”며 “해당 직원 등을 즉각 교체한 후에는 91차례에 걸친 공정위의 각종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히 임했다”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현장조사를 방해한 SK C·C에 2억 원, 임직원 3명에게 9000만 원 등 총 2억9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조사 방해도 불사

    7월엔 LG전자 및 직원들이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태료 8500만 원을 부과받았다. 지난 3월에는 삼성전자가 공정위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4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공정위의 조사를 가장 많이 방해한 재벌그룹은 삼성그룹으로 모두 5회이고, 이 중 삼성전자가 3회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7월 25일 일부 대기업의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방해 행위와 관련해,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현안보고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기업들의 조사 방해가 끊이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내는 것보다 과태료 2억 원을 내더라도 증거 확보를 못하게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공정위의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과징금 부과 액수를 근거 없이 감면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10월 28일 한국 일본 대만의 전자업체 10곳의 담합에 대해 제재하면서 331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하는 데도 10%에 불과한 338억 원만 부과했다고 민주통합당 송호창 의원이 지난 6월 말 밝혔다.

    송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는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의 직접매출액만 과징금 부과대상으로 봤는데, 노트북과 TV 등 완제품 매출액(간접매출액)도 부과대상에 포함시켰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또 유럽연합(EU)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담합행위를 이미 처벌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의 20%를 줄였고, 내부거래 제품에 대해서도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30%를 추가로 깎아줬다.

    공정위의 담합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적용도 문제였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모두 자진신고 후 최소 5개월 이상 담합을 지속했으나 공정위는 삼성전자에는 과징금 전액을, LG디스플레이에는 50%를 면제해줬다. 송 의원은 이번 박막액정표시장치 담합을 고발조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공정위는 이 사안이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를 지나 고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과징금 부당 감액 사례는 여러 건 있다. 공정위는 2010년 8월 항공권 가격 할인 제한 등으로 저비용 항공사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한 대한항공에 대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로 9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이의신청 뒤 재심결에서 과징금을 60억 원 감면했다. 그 이유는 개정된 과징금 부과고시에 근거해서 ‘2년 연속 적자를 이유로 20% 감액’했던 원래 조치를 부정하고 ‘2년 연속 적자를 이유로 70% 감액’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정위는 행위 시점의 법령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이 사안에 대해선 공정위 의결 시점의 법령을 적용해 의혹을 낳았다. 동일 사안에 대해 스스로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

    그동안 8차례에 걸쳐 공정위의 과징금 부당 감면 사례를 지적한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공정위가 부당하게 과징금을 감면하면 현재로선 그 결과를 바꿀 수 없는 구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3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소비자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 조치 전에는 검찰이 먼저 불공정 기업을 기소하거나 개인이 불공정 행위 중단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기업 활동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그동안 대기업 봐주기 등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정부가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공정위가 여기에 보조를 맞추느라 시장 자율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말 그대로 공정거래와 경쟁을 촉진하는 기관으로 범위를 좁혀서 활동해야 하는데 특히 지난해 초부터는 물가 관리와 연계된 활동을 하면서 ‘물가관리 기관’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물가가 크게 오르자 라면의 표시광고법 위반 제재, 주유소 거리제한 담합 제재 등을 들고 나온 것이다.

    “연초부터 대통령이 고유가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제재해야 하지만 대통령까지 나서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유가가 올라가면 국민도 절약 의지가 생긴다. 물가가 생필품과 먹을거리 등 서민의 삶과 연결되니 공정위가 나서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정위는 시장 구조에 대한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올해 들어 공정위의 조사 강도가 강해진 것에 대한 억측도 난무한다. 대선 철을 맞이해 기업들에 대한 기강 잡기에 나섰다거나 과징금 등으로 세수(稅收)를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호영 한양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공정위 어디로 가야 하나

    “공정위가 법적 권한을 갖고 적극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 나서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다만 과거를 돌아보면 공정위는 특정 시기마다 중점을 둔 사항이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철퇴를 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제, 그리고 서민 물가 잡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정위도 국정 기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논의되는 경제민주화 방안은 대부분 공정위와 관련 있다.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지주회사 규제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다 공정위가 다루는 이슈들이다. 관련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경제민주화 바람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공정위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공정위는 경쟁 촉진과 창의적 기업활동 조장이라는 핵심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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