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장 분위기에 취해 시장의 노예가 되지 말라

[윤지호의 투자공방] 철학자 니체가 한국 주식시장 본다면?

  • 윤지호 경제평론가

    입력2026-02-17 1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나만 뒤처지나”…강세장, 판단 기준 ‘주가’ 되기 쉬워

    • 늦게 탑승한 투자자, 불안감을 ‘의심 없는 지지’로 표명

    • 코스피 상승 논리 견고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때가…

    • 주가에 취해 뜨거워지기보다 차갑게 반문하라

    의심하지 말고 강세장을 외쳐야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기다. 그러나 기차에 늦게 탑승한 투자자일수록 불안감을 의심 없는 지지의 형태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Gettyimage

    의심하지 말고 강세장을 외쳐야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기다. 그러나 기차에 늦게 탑승한 투자자일수록 불안감을 의심 없는 지지의 형태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Gettyimage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깊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선악의 저편’의 4장 ‘잠언과 간주곡’에 남긴 이 문장은 강렬한 격언으로 소비된다. 마치 “악과 싸울 때 너도 악해지지 마라”는 윤리적 훈계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고자 한 핵심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경고한 것은 훨씬 더 구조적인 지점, 우리가 무엇을 오래 바라보느냐가 결국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대상을 계속 기준 삼아 바라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그 대상의 논리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만 뒤처지나”…강세장, 판단 기준 ‘주가’ 되기 쉬워

    니체에게 선과 악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어떤 힘의 관계 속에 있는지에 따라 형성된 판단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악의 저편’에서 도덕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주인 도덕’, 다른 하나는 ‘노예 도덕’이다. 

    주인 도덕은 단순하게 말해 판단의 출발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상태다. “나는 이것을 원한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에서 사고가 시작한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기준이 내 안에 있다. 반대로 노예 도덕은 판단의 출발점이 바깥에 있는 상태다. “저들이 강하다” “저들이 성공한다” “그래서 저들이 옳다”에서 출발한다. 니체에게 노예 도덕은 착함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힘과 결과에 반응하는 사고방식이었다. 무엇이 옳은지 먼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 그것을 옳다고 하는 상태다.

    금융시장에서도 니체의 철학은 유효하다. 시장은 구조적으로 노예 도덕을 가장 쉽게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가격은 매초 바뀌고, 수익률은 즉시 비교되며, 다수가 선택한 방향이 곧 ‘정답’처럼 보인다. 특히 지수 고점이 연일 경신되며 “지금이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말이 자연스러워지는 강세장 국면에서는, 투자 판단이 기업이나 산업구조가 아니라 시장가격 자체에서 시작되기 쉽다. 



    실제로 투자할 때 주가가 오르면 자신의 판단이 옳고, 떨어지면 틀린 것처럼 느껴진다. 수익은 판단의 결과가 아닌 근거가 되고, 지수 역시 참고 지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 구간에서 많은 투자자는 “이 기업이 왜 좋지”가 아니라 “지금 오르고 있나”를 먼저 살피게 된다. 자연스레 주가가 오르면 매수의 이유가 생기고, 떨어지면 논리가 바뀐다. 가격이 생각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코스피 상승 논리 견고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때가…

    코스피가 5000을 넘어서자 여기저기서 주식 이야기를 한다. 식당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주식 이야기는 인기 주제다. 의심하지 말고, 강세장을 외쳐야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기다. 여기저기서 주식으로 돈을 번 성공 스토리가 회자되고, 아직 동참하지 못한 이들은 급하게 주식시장에 들어선다. 

    뒤늦게 시장에 합류해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주식을 산 이들일수록 감정의 기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찍 참여하지 않아서 돈도 크게 못 벌었는데, 상승장이 멈추면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주가 상승을 외치게 된다. “집단은 곧장 극단으로 치닫는다. 의심이 표현된다 해도 그것은 곧장 명백한 확신으로 바뀌고 약간의 반감도 격렬한 증오로 바뀐다.” 귀스타브 르 봉이 쓴 ‘군중심리’의 한 구절이다. 마찬가지로 기차에 늦게 탑승한 투자자일수록 불안감을 의심 없는 지지의 형태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때 투자자는 시장을 분석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시장의 움직임에 맞춰 생각을 수정하고 있을 뿐이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심연을 오래 들여다봐 심연의 시선이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들어온 상태다. 즉 기업을 보기보다 지수의 높고 낮음을 먼저 보고, 산업구조를 묻기보다 시장의 분위기를 먼저 느끼고, 판단하기보다 반응한다. ‘선악의 저편’에서 말하는 노예 도덕의 상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은 금융시장에서도 유효하다. 시장은 구조적으로 니체의 노예 도덕을 가장 쉽게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Gettyimage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은 금융시장에서도 유효하다. 시장은 구조적으로 니체의 노예 도덕을 가장 쉽게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Gettyimage

    주인 도덕적 관점으로 시장을 본다는 것은 ‘더 크게 베팅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판단이 만들어지는 자리를 시장에서 나에게로 돌려놓는 일에 가깝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매력적인지에 대한 기준을 가격이 아니라 내 사고에서 시작하겠다는 선택이다. 주가가 오른 뒤에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이유 위에 가격을 올려놓는 식이다. “얼마나 올랐는가”보다 “왜 이 기업인가”가 먼저 나오고, “지금 시장이 좋다”보다 “산업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먼저 묻는다. 그래서 수익률도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돈을 벌었는데도 판단이 틀렸을 수 있고, 돈을 잃었는데도 판단이 유지될 수 있다. 이처럼 주인 도덕이란 결과에 편승하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판단 기준에서 먼저 생각하는 태도다. 

    2026년 1분기 코스피 상승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AI) 투자가 늘어나니, 하드웨어인 반도체 기업을 사자”는 논리는 여전히 견고하다. 판매 가격을 높여도 반도체 수요는 굳건하다. 게다가 AI 내러티브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 결과 누구도 미국 빅테크의 과잉 투자가 현금흐름을 훼손할 가능성,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IT 제품들의 생산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자연스레 전설적 투자자 앤서니 볼턴의 “주식시장의 관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완전히 동의할 때가 가장 틀리기 쉬운 때다”라는 지적이 떠오른다. 

    ‘선악의 저편’을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지금의 한국 시장은 ‘사고방식이 흔들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식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분명히 ‘좋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현대차는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성장 서사를 등에 업고 주가가 재평가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랜 조정을 지나 다시 반도체 사이클의 중심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역시 자본시장을 성장의 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며 정책적으로 자본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겹치며 코스피는 5000을 넘어 6000, 길게는 1만 국면에 와 있다. 지금의 상승을 단순한 착시나 광기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구조가 바뀌고 있고, 산업이 움직이고 있으며, 한국 시장을 둘러싼 이야기 자체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좋은 소식이 우리의 판단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다. 지수가 빠르게 오르고, 특정 섹터와 종목이 가파르게 오르면, 우리의 투자 판단은 자연스럽게 가격에서 출발한다. 기업 대신 가격을 보고, 사업을 분석하기보다 테마를 보고, 산업구조를 묻기보다 주가 상승 흐름에 올라탄다. 이때부터 밸류에이션은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정당화의 도구가 된다. 지금 가격이 옳다는 전제가 먼저 놓이고, 분석은 그 뒤에 붙는다. 그러나 우주, 로봇 등의 테마에서는 아직 기업의 실체가 고공권의 주가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숏을 쳐야 한다”거나 “곧 시장이 무너진다”는 전망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우리의 투자 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점검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지금 시장을 ‘분석’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장 분위기’를 근거로 쓰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현대차의 기술 변화가 실제로 수익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 반도체 사이클이 이번에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정부 정책이 일시적 자금 유입인지 구조 변화의 신호인지, 지금의 지수가 한국 기업의 현금흐름과 자본 효율성으로 설명되는 구간인지, 이런 질문은 가격이 대신해 줄 수 없다.

    강세장은 생각의 기준이 가장 쉽게 ‘시장’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이 구간에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매매가 아니라, 더 느린 질문이다. 나는 지금 기업을 보고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격을 보고 따라가고 있는가. 니체의 문장은 결국 이렇게 읽힌다. “시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은, 어느 순간 시장의 논리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열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투자 사고의 출발점을 지키는 일이다. 가격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주가에 취해 뜨거워지기보다 차갑게 반문하라

    니체는 고전문헌학자로서 도덕의 개념을 추적하면서, 선과 악의 실체를 파고들었다. 선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은 전복적이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으면 기쁘고, 뺐기면 기분 나쁘다. 현실은 이처럼 좋음과 나쁨이 있을 뿐이다. 니체는 힘없는 이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과 악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가령 장사꾼의 기질은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부를 이룬 이들은 이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개는 부자를 악으로 묘사한다. 부를 이룬 사람들은 선한 이들을 갈취한 이로 비난받는다. 반면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 가난하면 동정받고, 선한 이로 칭송받는다. 즉 선악이 필요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강자는 대중이 투자에 나서지 않을 때, 자신의 시선으로 투자에 나선 이들이다. 강세장이 오면 강자를 부러워하던 약자들은 부랴부랴 투자에 나서지만, 강자는 그 시점부터 고민한다. 싸게 샀기에 강자는 변동성 장이 와도 버틸 수 있지만, 비싸게 쫓아 산 이들은 그러기 힘들다. 

    여러분은 주인인가, 노예인가. 주인 도덕적 태도로 시장을 본다는 것은 판단의 자리를 나에게로 돌려놓는 일이다. 남들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근거로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 지수가 어디까지 왔는지가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기업이 무엇으로 돈을 벌고 있고, 어떤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어떤 전제가 무너지면 판단이 틀어지는지를 하나씩 복원하는 것이다.

    주가에 취해 뜨거워지기보다, 차갑게 스스로에게 반문해야 한다. 지금 투자는 내 기준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조언 내지 주가 자체에 근거한 결과인가.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어린양과 맹금류의 우화를 들려준다. 어린양은 자신을 사냥하는 맹금류를 사악하다고 비판하지만, 맹금류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선한 어린양을 사랑한다. 어린양보다 맛있는 것은 없다.” 노예의 가치판단이 아닌, 주인의 시선으로 주가를 바라보자. 그때 당신은 어린양을 잡아먹는 맹금류가 돼 있을 것이다. 

    윤지호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