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진단

날 수 없는 백두 정찰기 2200억만 날렸다

자주국방 헛꿈 ‘백두사업’

  • 이정훈 hoon@donga.com

날 수 없는 백두 정찰기 2200억만 날렸다

1/2
  • 《전략정찰의 자주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백두사업에 투입된 국민 예산은 무려 2억1000만 달러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무려 2200억원 정도가 되는 대형 사업이다. 혹시 우리 국민은, 결국은 ‘뭔가 보여주지도 않고’ 끝날 것이 뻔한 영화 ‘린다-양호 스캔들’을 보기 위해 무려 2200억원의 입장료를 지불한 한심한 관객은 아닐까? 백두사업은 왜 잘못되었고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살펴본다.》
에이전트 린다김과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주고받은 연서(戀書)가 공개됨으로써 그동안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백두사업의 문제점이 국민 앞에 던져졌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백두사업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그저 ‘린다’와 ‘양호’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만 집요히 관심을 기울였다. 양호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하고, 린다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호사가들은 “섹스냐? 키스냐?”란 화두를 만들어, 골라보라고 한다.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했을 때, 법정에서 그것이 ‘섹스’였는지 ‘오럴’이었는지가 문제가 됐던 것을 빗댄 것이다.

지금의 백두사업은 사방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동네북’ 신세가 됐지만, 시작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는, 100억 달러라는 거대한 무역 수지 흑자 시대에 출범하고서도 북방 사업을 한다며 폼만 잡다 ‘흑자를 다 까먹고’ 사라진 노태우 대통령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88서울올림픽과 흑자 수지를 지렛대 삼아 노대통령이 북방 외교에 주력할 때, 북한은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핵 개발이라는 ‘확실한 한 방’ 개발에 주력했다. 북한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으면 응당 노대통령도 더 확고한 대북 억제수단을 마련하는데 진력했어야 하는데, 그는 덜렁 “우리는 핵을 갖지 않겠다”며 ‘비핵화 선언’을 해버렸다. ‘순진하게’도 우리가 먼저 비핵화를 선언하면 북한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은 것인데,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권 사항’ 운운하며 핵 개발을 향한 ‘마이 웨이’를 구가했다.

이런 상황에 노정권이 물러나고 김영삼(YS)정권이 들어섰다. 문민정부를 자처하던 YS정권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북한에 대해 더욱 유화적인 조처를 취했다. 그에 대해 북한은 93년 5월 동해로 노동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바로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핵과 미사일로 한국 겁주기’를 계속했다. 급기야 94년 3월 판문점에 나온 북한 대표 박영수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북한은 그들 나름의 자존을 지키면서 미국과 핵 문제를 타결 짓기 위한 고위급 회담을 정례화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에 의존해온 북한정보

이 고위급 회담은 북한 외교부의 강석주 부부장과 미 국무부의 갈루치 차관보를 대표로 했다고 해서 ‘강-갈 회담’으로 불렸다. 지루하게 계속된 ‘강-갈 회담’은 94년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국은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를 만들어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제공하고, 대신 북한은 현 시점부터 핵 개발을 중단한다’는 합의를 도출해냈다(제네바 합의).

제네바 합의가 나오기까지 한국 사회는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하는가’ ‘흡수통일시켜야 하는가’로 시끄러웠다. 북한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막을 현실적인 방안도 갖고 있지 못하면서도 뜬금없이 ‘연착륙 대 흡수통일’ 논쟁을 벌인 것이다. 그러다 제네바 합의가 나오자 매파는 물론이고 비둘기파까지도 갑자기 “미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불만은 한국이 전략 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정보는 크게 인간정보-신호정보-영상정보로 나뉜다. 인간정보(HUMINT)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으로, 적국에서 귀순한 사람이나 적국에서 파견한 간첩, 그리고 우리 쪽에서 적국으로 침투시킨 공작원으로부터 얻는 정보를 말한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인간정보에서 앞서는 것은 당연히 한국이었다. 그러나 인간정보는 과장되는 경우가 많고 모르는 분야는 끝까지 모른다는 한계가 있다.

신호정보(SIGINT)는 적국에서 오가는 숱한 무선 신호를 잡아 분석함으로써 얻는 정보다. 때문에 이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적국에서도 비밀리에 주고받는 고급 정보가 걸려들 수가 있다.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감청기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감청기는 항공기에 실을 수도 있고 지상 고지에 세워 사용할 수도 있다. 백두 정찰기가 바로 항공기에 실은 감청기다. 린다김 사건에서 백두사업과 별건으로 거론된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는 지상 고지에 세운 감청기인 것이다.

영상정보(IMINT)는 인공위성이나 정찰기 또는 무인항공기(UAV) 등에 실은 촬영장비로 적진을 찍어온 정보. 미국은 ‘열쇠 구멍(Key Hole)’이라는 별명을 가진 KH-12와 KH-14 첩보위성으로 가상적국을 촬영하고 있다. 촬영장비를 실은 U-2R기도 사용한다.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적진 촬영은 이스라엘에서 주로 연구됐는데, 최근에는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국은 이렇다 할 영상정보 수집기가 없었는데 백두사업과 한 세트로 추진되는 금강사업이 바로 영상 정보 수집용 정찰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세 종류의 정보 중에서 한국은 인간정보를 제외한 신호정보와 영상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왔다. 인간정보는 주관적인데 반해 신호정보와 영상정보는 객관적이다. 객관적인 정보가 약하다 보니 항상 우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북한의 상황을 곡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이 북한과 제네바 합의에 도달하자, 미국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우리도 독자적인 신호정보와 영상정보 수집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은 ‘냄비 기질’의 사회이기 때문에 한번 한쪽으로 기울면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그냥 쏠려버리는 특징이 있다. 미국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반대했지만 한국은 “우리의 주권 사항인데, 무슨 소리냐”며 이를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래서 ‘전략 정찰의 자주화’란 기치를 내걸고 백두산까지 북한 전역을 상대로 신호정보를 감청하는 정찰기를 도입하는 백두사업과, 금강산 인근까지의 북한 지역을 상대로 영상정보를 촬영하는 정찰기를 도입하자는 금강사업이 추진되었다.

“독자적인 대북정보를 수집하자”

당시만 해도 IMF 관리에 들기 전이라, 우리는 우리가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언감생심 미국이 운용하는 U-2R기 수준의 정찰기를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U-2R기는 북한 영공에 들어가 전략 정찰을 할 수 있는 비행기다. 한국이 U-2R기를 북한 하늘로 침투시키면 자칫 전쟁이 재발할 수도 있으므로, 미국은 ‘세상없어도’ U-2R기는 한국에 팔지 않는다. 그래서 대안으로 거론된 것이 북한 땅에는 들어가지 않고 우리 영공을 비행하며 북한을 정찰할 수 있는 전략 정찰기를 만들자는 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찰기는 세계에서 단 한 대도 만들어진 바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초강대국은 전략 정찰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영국·독일·일본·중국 같은 강대국들은 전략 정찰기를 ‘개발도-보유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전선(前線)이 없기 때문이다. 전선을 맞댄 주적이 없으니 가상적국에 대해서는 첩보위성을 통한 전략 정찰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에 대비할 수 있기에 장거리를 살피는 전략 정찰기는 따로 보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중국은 대만과 대립하고 있지만 최소 거리가 130㎞ 이상인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대만의 국력으로는 중국을 침공하기도 어렵지만 대만해협이라는 바다가 있어 대만이 몰래 중국을 기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은 전략 정찰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 중국과 러시아, 중국과 인도 사이의 긴장도는 그저 국경수비대끼리의 몸싸움이나 소총 사격을 하는 정도라 남북한 대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은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이 없는 새로운 전략 정찰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 정찰기는 U-2R처럼 미사일이 도달하지 못하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고도로 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도 이 정찰기는 U-2R기 수준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며 철저히 U-2R를 벤치마킹했다. U-2R기에 어떤 장비가 탑재되는지. U-2R의 내부 공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는 사항이다. 따라서 U-2R과 비슷한 크기의 내부 공간을 가진 제트기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대답이 서방세계의 부호들이 자가용으로 구입하는 중형 제트기였다.

이러한 제트기로는 미국 레이시온 항공기 제작사의 ‘호커800XP’, 같은 미국 회사인 세스나사의 ‘시스테이션Ⅲ’, 프랑스 닷소사의 ‘팰콘50EX’가 있다. 여객기를 타면 스튜어디스들이 “조종 장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소지한 휴대폰을 꺼달라”고 부탁한다. 이처럼 비행 조종장치는 휴대폰을 사용할 때 나오는 미세한 전자파에도 영향을 받을 만큼 예민하다. 반대로 비행기 안에서 무선 전자제품을 사용하면, 빠르게 돌아가는 제트 엔진 등에 영향을 받아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1/2
이정훈 hoon@donga.com
목록 닫기

날 수 없는 백두 정찰기 2200억만 날렸다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