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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50주년 특별연재

중공군 참전 경고한 주은래… 자만에 빠진 도쿄의 맥아더

‘잊혀진 전쟁’ 그 결정적 순간들의 秘錄(중)

  • 이정훈 hoon@donga.com

중공군 참전 경고한 주은래… 자만에 빠진 도쿄의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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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합참모본부가 인천상륙작전을 강력히 반대하는 가운데 맥아더 원수는 이 작전을 기적적으로 성공시켰다. 이때 한국 해병대는 중앙청 국기 게양대가 아니라 돔 창문으로 태극기를 먼저 내걸었다. 서울을 탈환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총참모장을 불러 38선을 돌파하라고 기합을 준다. 그러는 사이 이미 국군 3사단 예하 부대는 38선을 넘어버렸다. 국군 1사단은 미군부대에 지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진격해 미군 부대보다 먼저 평양에 닿는다. 한편 맥아더는 원산상륙작전이라는 새로운 상륙작전을 감행했는데, 이 작전은 인민군이 부설한 기뢰로 인해 완전 실패하고 ‘요요작전‘이라는 비아냥까지 받는다. 이 기뢰를 제거하는 작전에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해정 부대가 비밀리에 참전했다. 38선 돌파 이후 UN군은 작전 지휘권이 세 개로 쪼개져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그런데도 맥아더는 도쿄에 주로 머물며 UN군을 분할 통치한다. 그런 가운데 국군 6사단 7연대가 압록강에 먼저 도착한다. 그러나 어디로 숨었는지 인민군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삭풍은 병사들의 얇은 옷 속을 매섭게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 제3편 38선 돌파와 평양 함락 ]

김 백일(당시 34세) 1군단장은 정일권 총참모장과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5기 동창생인데, 그의 원이름은 김찬규(金燦圭)다.만주군 대위를 하다 광복을 맞아 평양에 들어온 그는 김일성의 초청을 받았다. 이때 김일성이 ”나와 같이 인민군을 하자.미군놈들을 몰아내고 미군에게 붙어먹는 민족 반역자를 싹슬이해야 통일이 된다.이승만, 김구,김성수는 전부 나쁜 놈이다”라며 권총을 뽑아 김찬규를 위협 했다.

이렇게 3일을 시달린 그는 평양을 빠져 나와 38선을 넘었는데, 그날 우러러본 하늘이 너무 맑고 밝아서 ‘온 세상이 붉은 색(공산주의)으로 물든다 해도 나만은 희게 버티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백일(白一)‘ 고쳤다.수도 환도식이 열린 다음날(9월30일) 에하 두개 사단(수도-3)을 38선에 도달시킨 그는 정일권 총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38선에 도달했다.각하께서 북진명령만 내 리시면 당장에 38선을 걷어차고 밀고 올라가겠다!”

9월29일 환도식에서 이대통령은 맥아더에게 ”38선 돌파”를 설파했다. 이에 대해 맥아더는 ”우리 목표는 인민군 기본 전력의 섬멸이다. 38선 이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군사상의 추적권은 승 자의 당연한 권리다”라고 박자를 맞췄다.그러나 ”이틀 여유를 달라. 10월1일 김일성에게 항복을 권유하겠다.김일성은 당연히 버틸 테니까, 그것을 빌미로 북진하도록 하겠다.이는 워싱턴과도 합 의한 사안이다”라고 설명했다.이때 이대통령이 한 대꾸가 걸작이다. ”알겠다. 그런데 사기충천한 현지 부대가 무슨 실수를 저질러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다음날(9월30일) 이대통령은 정일권 총참모장 이하 전 육본 참모를 집무실로 불렀다.이날다라 이대통령의 목소리는 매우 카랑카랑했다. ”정 총참모장! 우리 3사단과 수도사단이 38선에 도달했 는데 어째서 북진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인가?38선 때문인가? 정 총참모장! 당신은 미국 쪽인가, 한국 쪽인가?” 정 총참모장이 엉거주춤하게 ”38선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불 같은 성질의 이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였다.”38선이 어찌됐다는 게야? 철조망이라도 있다는게야? 장벽이라도 있다는 게야? 건너지 못할 골짜기라도 있다는 게야?”

정총참모장이 ‘찍‘소리도 못하자, 이대통령이 인사국장 황헌친(黃憲親) 대령을 향했다.”인사국장! 당신은 38선 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게야,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야?”황대령이 명쾌히 대꾸했다. ”각하의 명령이면 언제든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다른 참모들도 똑같이 대답했다.이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정일권 총참모장을 돌아보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38선을 돌파하라”

정총참모장은 ”저희는 대한민국의 군인입니다.UN군과 지휘관 문제가 있습니다만 저희는 각하의 명령에 따라야 할 사명과 각오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이대통령은 속 시원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맥아더 장군에게 국군 지휘권을 맡기기는 했으나, 내가 자진해서 한 것입네다.따라서 되찾아올 때도 내 뜻대로 할 것입네다.지휘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따질 일이 아닙네다.그러 한즉 대한민국 군인인 여러분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령만 충실히 지켜주면 되는 것입네다.”이어 붓을 듯 이 대통령은 일필휘지로 이렇게 썼다.‘大韓民國 國軍은 三八線을 넘어 卽時 北進하라.一九五O年 九月三十日 大統領 李承晩‘

이날 맥아더 원수는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시각 정 총참모장은 강릉에 주둔해 있는 1군단으로 날아가 김백일군단장을 만났다.두 사람은 사적으로는 친구다.국군의 심정을 잘아는 정일권이 먼저 물었다.”아직도(38선을 돌파하지 않고) 대기중인가?...워커를 설득해야 해.그쪽은 그쪽대로 사정이 복잡해.”

김백일이 지도를 꺼내놓고 말했다.”인구리(양양군 현북면)에서 38선 너무 800m 북쪽에 기사문리가 있어.여기서 직사포탄이 심심찮게 날아오거든. 이렇게 하면 어떻까.기사문리에서 날아오는 적 포탄 때문에 아군의 희생이 적지 않다.그런데도 38선을 넘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총 한방 못 쏘고 당하고만 있다.장병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38선을 넘어 직사포를 쏴대는 적진을 박살내야 한다. 38선 너머 1개 중대를 보내 까부수는 즉시 돌아온다.이렇게 보고해 보자고.”

북진 개시!

정일권이 즉시 찬성해 워커에게 전화를 걸었다.워커는 ”그렇다면 함포나 공군기로 때리자”고 대꾸했다.정일권은 얼른 ”적 포대는 동굴로 돼 있다.보병이 아니고는 곤란하다”라고 둘러쳤다.워커 사령관은 ”그러면 내일(10월1일) 작전을 개시하되 작전이 끝나면 즉시 부대로 복귀시키라”고 한 후, 제너럴 정 다른 의도는 없겠지요?”라고 물었다.”물론입니다.” 미군들은 이대통령의 북진명령을 모 를 터이니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두 사람이 주문진의 3사단 사령부로 가자 이종찬 준장이 ”23연대장 김종순(金淙舜) 대령이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돌파명령을 재촉한다.잠시 후 두 사람은 인구리의 23연대를 찾았다.연대장 김 대령은 ”병사들이 38선 팻말을 걷어차고 밟아 뭉개고 있다.군화가 다 닳을 지경이다.38선이 뭐냐며 총질을 해대는 병사도 있다.이러다간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며 자랑 반 위협 반의 보고를 했 다.이때 김대령 앞으로 ”수도사단 1연대가 38선에 도달했다”는 무전이 날아왔다.

그 즉시 김대령은 ‘총참모장 각하. 수도사단 1연대가 먼저 38선을 돌파하면 저는 연대원 앞에서 배를 갈라야 합니다.맥아더의 명령이라해서 선봉을 빼앗겼다는 원망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그리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하더니 그 즉시 무전병을 불러 예하 대대를 호출했다.”금강산, 금강산.여기는 백두산이다.대대장 바궈라!”잠시 후 김대령은 ”여기 총참모장 각하가 와 계시니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직접 보고 드려라!”하고 말했다.이어 그는 정 총참모장에게 수화기를 건네며 ”3대대장 허형순(許亨淳)소령입니다.직접보고를 받으시지요”고 말했다.

수화기를 타고 오는 허소령의 목소리는 아주 당당했다.”저희는 38선 북쪽 12km인 양양 뒷산에 있습니다.병력은 1개 중대입니다.” 정총참모장은 속으로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중하라.”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이때가 10월1일 오전 11시30분부로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개시하라”고 명령했다.그러자 김백일 군단장이 김종순 대령에게, ”23연대는 현위치에서 38선을 걷어차고 북진을 개시하 라.제3사단장을 대신하여 제1군단장 김백일!”이라고 소리쳤다.

이로써 3사단은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부대가 되었다.1950년 12월 3사단은 국군으로서는 가장 북쪽인 혜산진까지 진격한 예하 26연대를 수도사단으로 보내고 수도사단에 속해 있던 18연대(일명 백골부 대)를 배속받는다.1962년 정우주 사단장(준장) 때 3사단은 ‘ 부대 별칭‘ 공모를 했는데, 부대원들은 압도적인 다수로 18연대의 별명인 ‘백골‘을 추천했다.이에 따라 3사단은 ‘백골사단‘이 되고, 18연대 는 진짜 백골이라 하여 ‘진(眞)백골‘, 서북청년단 출신이 절대 다수였던 18연대 1대대는 ‘진진백골‘ 부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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