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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사장 8人의 방북기

“김정일은 서두르고 있다”

  • 정리·육성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김정일은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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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급속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이며 이로 인해 남측과 화합을 통해 국제적인 신임을 얻고자 하는 속셈이라고 본다. 나아가 남북통일을 이루어 북한 주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기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돌파구라고 생각된다. 남쪽과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 화합과 통일의 붐을 타 고립되다시피 한 북한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져 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여 미국 등과도 거리를 좁히는 사업을 펼칠 것으로 본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수단을 발휘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솔직한 심정이 이해된다. 남북화합이 열쇠이며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에서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조급함을 엿볼 수도 있다. 남북통일을 꾀해 폐쇄적 굴레에서 벗어나고 노벨 평화상이라도 받아 국제적인 새 지평을 열겠다는 의욕이 김정일의 변화를 불러온 원인이 아닌가 싶다.

성급한 진단은 금물이겠지만 전쟁이나 도발은 억지되리라고 본다. 북한이 세계적으로 더 이상 고립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묘향산 국제친선 전람관에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외국에서 선물받은 21만점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국가지도자가 받은 선물을 개인이 소장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내어놓은 것과 이를 관리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실향민 등이 북한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김정일의 태도변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펴고 있다. 우리는 이런 반론이나 이의 제기를 수용해야 하고 언론도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주의 국가답게 갖가지 이론이 혼용되고 이를 합일화하는 끈기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9~10월에 파격적인 일 벌어질 듯

과거 우리 대표단이 평양에 갔을 때는 안내자들과 우리 대표단이, 어느 쪽 체제가 우월한가를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것이 최근 남북 관계에서 큰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경직된 사람이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불량스런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그는 소탈했고 잘못한 것은 시인할 줄 알고, 비전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김위원장은 우리가 상상 못한 이야기까지 했다. 남북 교류와 남북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는데, 자기 고집대로가 아니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남북관계가 급진전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김위원장이 “휘발유도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비행기가 서해로 돌아갈 이유가 있느냐. 직항로로 비행기를 띄우자”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가 말한 대로 9∼10월에 파격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가 그러한 제의(직항로)를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북한 방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두산의 산림 지대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수해(樹海)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밖에도 북한이 개방하면 훌륭한 관광 단지가 될 만한 곳이 많았다. 가슴 아픈 것은 평양 시내에서는 옛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평양시내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었다. 북쪽 사람들은 “6·25전쟁때 하도 폭격을 당해 잿더미가 된 것을 다시 일구었다. 완전히 새판을 짰다”고 말하더라.

평양은 한산하고 깨끗하고 오염이 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이 있고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터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북한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은 듯 했다. 야산을 개간해서 밭으로 쓰느라고 헐벗은 산이 많아 마음이 찹잡했다. 하루 빨리 남북 교류가 이뤄져 이러한 분야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통일에 중점을 두고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데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부터 통일을 국익으로 생각하고 언론은 중상을 자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용순 비서, 너희가 비판받아야 돼”

북한 권력의 상부는 변화에 대한 의지도 있고 노력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일반 시민들은 감정에 복받혀 ‘통일’을 외칠 뿐, 통일을 위해 과연 어떤 노력과 절차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인식이 없는 것 같았다. 권력 상부의 경제협력 등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그같은 노력을 하는 것이겠으나, 밑에서는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것이다 보니 ‘오래 헤어졌던 민족의 만남’ 같은 감정적인 의식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비록 남루한 옷차림이었으나 눈빛은 달랐다.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처리하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머를 섞어가며 거침없는 화술을 구사했다. 일반 언론인도 아니고 언론사 사장 50명을 초청한 자리다 보니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쉬웠을텐데, 그는 이런 면모를 과시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런가 하면 자기주장도 확실했고 비판의식도 강했다. 그의 지식은 놀랄 만했다. 대화 도중 방송 얘기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NHK, CNN, BBC 등에 대해 코멘트를 했고, 영화에 대해서도 박식했다. 어린 시절부터 폭넓은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게 아닌가 싶었다.

그의 발언과 행동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철저히 계산되고 曼宙?것이 아닌가 싶었다. 가령 현대 정몽헌 회장 얘기를 하면서 그는 한번도 ‘회장’ 직함을 붙이지 않고 “몽헌이가…” “입이 찢어졌어” 하는 식으로 말했다. 충분히 조심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도 굳이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외교와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그는 “나는 평양에 가만히 앉아서 외교한다. 외국에 안 가도 자기들이 다 나를 찾아온다. 작은 나라일수록 명예와 자존심이 있어야 무시 당하지 않고 대접받는다”고 하기도 했다.

북한의 유일체제는 확고해 보였다. 김위원장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도 절대권력자의 파워를 과시했다.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김용순 비서에게도 “용순비서, 너희가 비판받아야 돼!” 하면서 하대했으며, “군부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남북한 모두 ‘통일’부터 강조해선 안된다. 그렇게 하면 성급하게 장미빛 미래만 꿈꾸게 돼 서로에게 안좋다. 먼저 상호 신뢰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어느 선까지는 끌어올려줘야 한다. 이번에 북한 갔을 때도 어딜 가나 누구나 ‘통일 통일’ 하길래 내가 “지금 통일이 급한 게 아니다”고 설득했다.

통신 때문에 죽을 고생했다. 사장단 방북활동 풀 기사를 썼던 사람은 몹시 힘들어 했다. 평양시내에서 작성한 원고를 송고하려면 숙소인 봉화초대소까지 가야 했다. 평양근교에 있는 봉화초대소는 평양시내에서 편도 30km나 되는 거리다. 평양시내 오찬장에서 기사를 쓰면 30km를 달려 초대소까지 가서 전화로 기사를 불러주고 다시 30km를 달려와 평양시내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전화나 팩스 한 대만 있어도 송고를 할 수 있는데, 시설이 없는 건지, 시설은 있지만 사용을 못하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북한에선 핸드폰 쓰는 사람을 한사람도 못봤다.

언론이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해 전문적, 거시적 시각을 갖추고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간 우리 언론이 북한에 대해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 의심스럽다. 북한의 웬만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다. 언론이 지식을 갖춰야 정부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지지하고 비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도 언론에 북한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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