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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 정관수술 전성시대 넘다

대한민국 산아정책 ‘흑역사’

  • 이윤수 | 한국성과학연구소장,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

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 정관수술 전성시대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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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피임 상식 제로…아들 낳을 때까지 ‘무한도전’
  • ● 국민소득 78달러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
  • ● 예비군 집중 공략…아파트 청약우선권 혜택
  • ● 정관수술 보험 적용 마지막 날 종일 북적북적
  • ● 180도 바뀐 정책…“아빠! 혼자는 싫어요”
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 정관수술 전성시대 넘다

대한가족계획협회가 만든 어머니회에서 주부들을 모아놓고 가족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인구가 넘쳐나 감당 못하는 중국과 인도를 보자. 인구가 많은 것보다 적은 게 좋은 건 아닐까. 우리나라도 한동안 인구를 줄이려 노력했다. 1960년 이전까지 우리 국민은 헐벗고 굶주렸다. ‘가난이 줄줄 흘렀다’는 말 그대로였다. 일제의 패망으로 갖은 수탈이 끝나나 했더니 6·25전쟁으로 식량난이 닥쳤다.
요즘 젊은 세대에겐 ‘보릿고개’라는 말이 낯설 것이다. ‘먹을 게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라면 그 시절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는지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한 집에 아이가 보통 7, 8명이었다.
이처럼 아이를 많이 낳은 가장 큰 이유는 남녀 모두 피임 상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임의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다. 농경 중심 사회에선 아이를 노동력으로 여겼기에 많이 낳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더욱이 열악한 위생상태와 영양실조 등으로 죽는 아이가 많았던 탓에 말 그대로 생기는 대로 낳았다.



끝순이 말순이 말숙이

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 정관수술 전성시대 넘다

차범근 가족을 내세운 가족계획운동 포스터는 어떤 강연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사진제공 ·인구보건복지협회

여기에 남아선호사상까지 일조했다. 여성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무한도전’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딸만 7, 8명인 집도 많았다. 그 시절 막내딸의 이름으로 많이 쓰인 끝순, 말순, 영순, 말자, 말숙 등에는 더 이상 아들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로 운 좋게 아들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아들을 낳은 집은 대문 기둥에 금줄을 매달았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온 동네에 자랑하러 돌아다녔다. 딸을 낳으면 남편은 아이 얼굴도 보지 않고 동네 주막으로 달려가 술잔을 들이켰고, 시어머니는 갓 출산한 며느리 앞에서 손자타령을 해댔다.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예부터 아들을 중시했다. 집안의 대를 잇고 조상을 모시는 일이 중요했다. 아들을 못 낳은 며느리가 쫓겨나지 않으려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든지, 남편이 첩을 둬 아들 낳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여성의 건강과 행복은 무시되고 오직 아들을 낳기 위해 임신과 출산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법조차 아들과 딸의 상속 권리를 차별하고 남자가 가계를 승계한다는 전통의식을 인정했다.
정부의 가족계획은 이처럼 왜곡된 사회의식과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시작됐다. 1960년부터 시작한 가족계획사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산업이래야 대부분 농업이었고, 2차산업의 존재는 미미했다. 1인당 국민소득(GNI) 78달러. 세계 최하위 국가군으로 분류됐다. 당시 어느 신문의 사설 제목이 이랬다. ‘우리는 얼마나 가난한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알자.’
우리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기아와 빈곤 해결. 그 대책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가족계획이다. 1955~1960년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율은 약 3%. 다른 선진국에 비해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정부는 인구 억제 정책을 민간 주도로 추진하기 위해 1961년 4월 1일 대한가족계획협회(이하 협회)를 발족했다. 협회 설립 취지문의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가족계획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임신횟수 및 터울을 조절함으로써 도의적으로나 모성 건강을 위해 좋지 못한 임신중절을 피하고 원치 않는 수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생명을 존중하고 잘 양육하게 함으로써 적절한 자녀 수를 유지하고 명랑하고 윤택한 가정생활을 이룩하고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함에 있다.’
협회는 한 달 뒤 발생한 5·16군사정변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바로 다시 열고 6월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에 가입했다. 당시 정부나 지식인들은 가구당 가족 수가 너무 많다 보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봤다. 나아가 국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1961년 11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인구 억제정책을 병행하기로 했다.



차범근 “하나만 더 낳고…”

정부가 내세운 가족계획 표어나 포스터에는 당시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1961년 가족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표어는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였다. 대책 없이 닥치는 대로 낳을 게 아니라, 경제적 능력에 맞게 적당히 낳아 제대로 키우자는 얘기다. 이어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적게 낳아 잘 기르면, 부모 좋고 자식 좋다’ 등 비슷한 취지의 표어들이 등장했다. 사회적 인습과 전통 등 국민의식 전환에 중점을 둔 것이다.
1966년에는 ‘세 자녀 갖기 운동’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부는 세 자녀를 3살 터울로 35세 이전에 낳자는 취지의 ‘3·3·35 원칙’을 올바른 가족계획이라고 소개하면서 홍보 영화까지 동원했다. 1970년대는 한 명이 더 줄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정부는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가족계획을 실천하는 가정에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세 자녀 이하까지 세제 혜택, 여성 상속권을 인정하는 가족법 개정, 두 자녀 불임수술 가정에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 제공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독일에서 활약하던 축구선수 차범근 가족을 내세운 포스터도 등장했다. 차범근과 부인, 딸이 함께 나와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어요”라며 가족계획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유명 스포츠 스타를 앞세운 이 포스터는 어떤 강연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
1980년대의 대표적 표어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이는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고운 딸 하나 백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까지 등장했다. 대가족 중심에서 소가족 중심으로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남아선호사상이 퇴색한 것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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