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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 추적!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8월4일 평양 서재골 초대소에 나타났다”

  •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8월4일 평양 서재골 초대소에 나타났다”

  • “김우중씨가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통인 한 교포 사업가가 구체적 정황까지 제시하며 ‘김우중 목격담’을 들려줬다. 사실이라면 놀라운 뉴스다. 사법처리가 임박한 ‘환자’가 무슨 이유로 북한행을 결심했을까.
”8월 4일 금요일, 평양의 기독교계 인사들과 의약품 지원문제 등을 협의하다가 봉수교회 옆에 있는 서재골 초대소로 자리를 옮겼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윗쪽에서 너댓 명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중에 낯익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김우중(金宇中)씨였다. 캐주얼한 옷차림에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나는 김씨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과거에 몇차례 대면한 적은 있다. 그는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계면쩍은 듯 한 손으로 뺨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피하고 내려갔다.”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해외교포 사업가 K씨의 목격담이다. K씨는 7월24일부터 2주 가량 평양을 방문했는데, 7월말 경 북측 인사로부터 “중요한 인물이 지금 극비리에 평양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밀사를 보낸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

그 ‘중요한 인물’이 바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었다는 것이다. K씨는 북측 인사에게서 김 전회장이 그로부터 10일∼2주쯤 전 독일-프랑스-베트남을 거쳐 평양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K씨는 “평양에서 돌아온 후 정부의 한 관계자에게 그 사실을 귀띔했더니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북한정보에 정통한 또 다른 인사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해줬다. 김우중씨가 7월 하순경 평양을 방문해 상당 기간 머물렀다는 얘기가 베이징의 정보통들 사이에 회자됐다는 것. 서재골 초대소는 한때 대우그룹이 인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현재 북한 대외 경제분야의 일각을 맡고 있는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장과 과거에 대북사업을 함께 한 인연으로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동물적 감각의 베팅?

김우중 전회장은 지난해 10월18일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고 종적을 감춘 뒤 해외에서 잠행을 계속해왔다. 대우그룹 부실을 조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대우 계열사의 경영과 자금관리에 전권을 행사했던 김씨를 직접, 혹은 서면으로라도 조사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소재를 파악해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간 김씨는 베트남, 미국, 독일 등지를 옮겨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말 금감원이 대우에 대한 특별감리에 들어가자 베트남에 한 달 정도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국내의 한 아마추어 바둑기사를 초청, 바둑을 두며 소일했다는 것. 대우는 96년 베트남 하노이에 ‘대우호텔’을 지은 데 이어 98년엔 올해부터 하노이 신도시 개발에 참여하기로 합의하는 등 베트남과의 관계가 돈독하다. 이후 김씨는 연말께 미국 동부지역으로 떠나 두 달 동안 머물며 심장질환 치료를 받았고, 올해 초 독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대우 관계자는 “김 전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150km쯤 떨어진 옛 동·서독 국경 부근의 한 대학병원 심장센터 부설 요양타운에서 지내며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체류 초기엔 수행비서들과 함께 지냈으나, 재산을 모두 내놓은 후에는 비서를 둘 형편이 못돼 이들을 다 내보내고 한동안 홀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미국 MIT대에 유학중인 3남 선용(25)씨와 함께 보스턴에 머물고 있던 부인 정희자 여사(대우개발 회장)가 독일로 가 김씨를 돌보고 있다는 것.

일각에선 “김씨가 미국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싶어 하지만 사법처리를 우려, 우리와 범죄자인도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독일에 체류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우는 96년 8월, 최초의 남북한 합영회사인 민족산업총회사를 설립하고 남포에서 공장을 가동했으나, 제품 반출이 지연되고 경영이 악화되는 등 사업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열의가 식었다고 한다. 그후 대우는 북한측과 이렇다 할 협력사업을 벌인 게 없다. 북측과 마주해야 할 현안도 없고, 더욱이 몸까지 불편한 김씨가 평양을 방문한 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방북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대북정보통들은 서너 가지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하나는 김씨가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안전한’ 평양행을 선택했다는 것. 김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임박한 상황인데다, 최근 김씨가 우리측 해외파견 요원들이 자신을 연행하러 올 것으로 알고 도피하는 등 몹시 불안해 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혹은 청와대)가 그를 밀사로 파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북한이 그의 비즈니스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 불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씨가 사실상 ‘망명’에 가까운 극적인 방법을 택했을 리 없다는 면에서, 또한 정부가 굳이 ‘범법자’로 비쳐지고 있는 그를 밀사로 보내 도덕성에 흠집을 낼 리 없다는 면에서 앞의 두 가지 가능성은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하지만 북한전문가 P씨는 “세 가지 가능성을 다 결합하면 꽤 설득력 있는 논리가 나온다”고 지적한다.

“김씨가 평양에 갔다면 북한이 그를 불러서였을 것이다. 북측이 그의 능력을 활용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거론됐다. 북한과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든 김씨는 동물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 정부측에 먼저 연락을 취해 ‘베팅’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부로부터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으면 자신의 신변보호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김우중씨에게 빚이 있다. 김씨는 90년 북한에 9만5000t의 쌀을 갖다주기도 했고, 남포공단과 관련해서도 받을 돈이 있다. 받을 돈이 모두 1억 달러는 된다. 그런데 지금의 북한 형편에 빚을 돌려받기란 불가능하니 그 대가로 큼직한 대북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평양에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의 평양 방문이 사실이라 해도 그다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김씨로부터 얻을 게 없다는 것이다. 몇 달 전에는 북한이 김우중씨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경제고문으로 위촉할 것이라는 소문이 베이징에 나돌기도 했지만, 곧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북한 관료들이 ‘핫바지’들이 아닌 이상 굳이 ‘실패한’ 기업가인 김씨를 내놓고 활용할 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씨의 입장에서도 북한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과거 같으면 대규모 사업 독점권을 얻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볼 수도 있었겠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사정이 딴 판으로 변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남한에다 이 사업, 저 사업 다 내놓은 마당에 특별히 김씨에게 내줄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씨가 이 시점에 평양을 방문한 것은 무슨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러 간 게 아니라, 과거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김씨가 목격된 서재골 초대소가 VIP용이 아닌, 콘도미니엄 형태의 다소 격이 떨어지는 숙소라는 점도 이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한편 대우측은 김씨의 방북설을 일축했다. 대우 구조조정본부 백기승 이사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찰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회장님이 어떻게 북한까지 가실 엄두를 내겠느냐”며 “‘멀쩡한 몸으로 유럽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등 회장님에 대한 갖가지 악의적인 루머가 나돌았지만, 워낙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이젠 일일이 대응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 병원측에서 “일단 칼을 대면 큰 수술이 될 테니 치료를 계속해 경과를 지켜보면서 수술 시점을 잡자”고 할 만큼 김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 증권가 루머집에 ‘DJ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신상옥 감독과 김우중 전회장의 안부를 물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 방북설은 이런 루머가 돌고 돌면서 변질된 게 아니겠느냐는 것.

김우중 전회장의 장녀인 선정(35)씨도 김씨의 방북설을 전해듣자 놀라워하며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예전처럼 북한에 사업을 벌여놓은 게 있기라도 하면 북한을 드나드실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형편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 평양에서 김씨가 목격된 정황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자 “그 사람이 잘못 봤을 것”이라며 못미더워 했다.

하지만 선정씨도 김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지 6개월이 넘었다”며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데, 어머니와도 연락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우리 가족들이 원래 그렇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도·감청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공중전화도 안전하지 않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신동아 2000년 9월 호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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